소설리스트

第五章 마인곡 (5/38)

第五章 마인곡

섬서성(陝西省) 서안에는 남북천맹의 한 축을 담당하는 북천맹(北天盟)의 총타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남북천맹은 두 개의 거대 세력의 연합이었다.

북천맹과 남천맹(南天盟)으로 말이다.

물론 남북천맹의 맹주는 율천세였고, 부맹주의 자리에 있는 자가 관리하는 남천맹은 안휘성(安徽省) 합비(合肥)에 위치해 있었다.

중원 무림을 지배하는 거대한 무림 단체, 남북천맹 중 북천맹 총타의 크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총타에만 머무는 무인들의 숫자가 무려 이만 명이 넘었다.

그리고 그들을 수발드는 자들까지 수용하려면 엄청난 비용과 면적이 필요함은 당연한 일이다.

곳곳에 세워진 전각들의 숫자 또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고, 건물들도 웅장하고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그중에서 북천맹의 실세들, 즉 맹주를 비롯해 북천맹의 각 기관들을 대표하는 자들이 머무는 장소는 총타의 정중앙에 자리하고 있었다.

핵심적인 인물들이 기거하고 있기에 그 주변은 절정의 무인들이 철통과도 같은 경계 체제를 취하고 있었다.

특히나 맹주가 기거하는 거처인 천성각(天星閣) 바로 옆에 위치하는 건물에서 일남 일녀가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사내와 여인 외모가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답고 출중했다. 게다가 그들이 나온 건물에서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두 사람의 신분은 평범하지 않았다.

율무천(律武川), 율미금(律美擒) 남매가 바로 그들이었다.

남북천맹의 맹주인 율천세의 금지옥엽과도 같은 존재들이 바로 두 사람이었다.

그들의 뒤로는 열 명의 시비들이 따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대단한 사내의 자식답게 풍기는 분위기는 절도가 있었고, 위엄스러운 모습마저도 보였다.

"오랜만에 밖을 나오니 좋네요."

청명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율미금이 상쾌하다는 듯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렇구나. 나도 요즘 무공서적에만 집중하다 보니 바깥 공기를 마셔 보지 못했구나."

율무천의 나이는 기껏해야 이십 대 후반이었지만 눈빛이 날카롭고 움직일 때마다 흘러나오는 기도는 절대자의 자식다웠다.

"참, 그 이야기를 들었느냐?"

"무림에 관한 이야기인가요?"

율천세는 사내아이인 율무천에게만큼은 혹독하게 무공을 가르쳤지만 율미금에게는 그러지 않았다. 본인의 거부 의사가 확실한 탓도 있었겠지만 율무천을 비롯해 그에게는 많은 제자들이 있었기에 필히 가르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율미금은 무공을 익히지 않았지만 무림의 일에는 관심이 많았었다.

"그렇지. 꽤나 놀랄 만한 일이란다."

건물 밖으로는 나오지 않았지만 율무천은 앞으로 남북천맹을 이끌어 갈 사내였다. 무림정세에 관해서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의 귀로 정보들이 들어오는 상황이었다.

그런 그에게 며칠 전 흥미로운 이야기가 들려왔다.

"수적들과 산짐승들이 전쟁을 벌인다는구나."

"장강수로십팔채와 녹림이 말인가요?"

영특한 동생은 자신의 말을 금방 알아들었다.

율미금은 진심으로 놀란 눈으로 그에게 반문했다.

"그렇다는구나."

무림사를 깊게 알고 있지 않는 율미금이었지만 그 두 세력이 전쟁을 벌이게 되었다는 소식은 믿기 힘들었다.

"녹림의 초웅천과 장강의 원상은 그 친분이 깊다고 들었습니다."

"나도 처음 그 소식을 듣고는 적잖이 놀랐단다."

장강의 수왕인 원상이 과거 유명하던 다섯 명의 살인귀들에게 수하들을 잃고 며칠을 쫓긴 적이 있었다. 그때 그 소식을 듣고 초웅천이 홀로 원상을 살리기 위해 그들을 상대했다는 일화는 유명했다.

사실 당시 초웅천의 실력으로는 그들 다섯을 이기기가 힘이 들었다는 것을 상기했을 때 굉장히 어려운 선택이었다.

그만큼 두 사람의 친분은 깊은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전쟁을 벌인다고 해서 본맹에게 피해가 오지는 않을 게 확실하겠죠?"

율무천이 강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모르는 일이란다. 몇 십 년 만에 무림에서 거대 세력이 전쟁을 벌이는 일이다. 직접적으로는 아니더라도 본맹의 속해 있는 문파들에게는 피해가 갈 수도 있겠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율미금은 진작 물어봤어야 할 질문을 꺼내었다.

"헌데, 왜 그토록 친하던 두 사람이 전쟁을 벌이는 건가요?"

"그것은……!"

말을 이어 가던 율무천의 걸음이 멈췄다.

두 사람은 바깥바람을 쐴 겸 오랜만에 부친을 만나기 위해 천성각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그런 두 사람의 눈에는 천성각을 향해 부리나케 뛰어 들어가는 부친의 모습이 보였다.

항상 위엄과 맹주로서의 권위만을 보여 주셨던 아버지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얼핏 보기에는 그분의 눈빛에서 불안감과 초조함마저 보이기도 했기에 더욱더 놀라웠다.

천성각, 내실.

"사부님!"

화려한 수실로 커다란 용이 가운데 그려진 복장을 하고 있는 중년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남북천맹의 수장이자 현 무림을 좌지우지하는 엄청난 자리에 있는 사내치고는 꽤나 경박한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평소와는 차원이 다른 모습임에는 틀림없었다.

자신을 찾아왔다고 하는 노인이 그런 그의 모습을 드러나게 하는 결정적인 인물이었다.

허겁지겁 실내로 들어온 율천세를 바라보던 노인이 혀를 찼다.

"네놈이 그래도 이 사부를 알아보기는 하는구나."

제자라고 있는 인간이 수년 동안 연락이 되지 않는 자신을 찾지 않는 것이 괘씸하여 한 소리였다.

"도대체 어디 계셨던 겁니까."

"세상 구경 좀 하였다."

"못난 제자가 얼마나 사부님의 행방을 찾아다녔는지 아십니까?"

오랜만에 본 사부였지만 그동안 찾아 헤매고 다닌 기억이 나자 서운함과 야속함이 들었다.

실제로 그는 칠 년 전 갑자기 사라진 사부를 찾기 위해 중원 곳곳에 수하들을 뿌려 그의 행방을 수도 없이 찾아 헤매었다.

정녕 사부는 그런 제자의 진심 어린 노력을 몰라주고 있더란 말인가.

늙은 사부가 씩 웃었다. 누런 이가 모습을 드러냈지만 보기 흉하지는 않았다.

사실 그도 알고 있었다. 남북천맹의 맹주가 된 제자에게 신세를 지고 싶지 않아 떠났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을 찾는다는 걸 알면서도 일부러 피해 다니곤 했다.

그걸 알면서도 그저 오랜만에 제자를 보니 예전처럼 면박을 줘 보고 싶었을 뿐이다.

"그만 앉아라."

그때까지도 너무 놀란 나머지 서성이고 있던 율천세에게 앉을 것을 권했다.

"그런데 이 친구는 누구입니까."

율천세는 자리에 앉자마자 사부의 옆에 있는 자신과 같은 연배로 보이는 사내를 보며 물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식으로 인사드립니다, 사형."

"……!"

태어나 사부라고는 단 한 분뿐이었다.

그리고 그에게 제자라고는 자신 하나라고 알고 있었다.

"인사하거라. 네 사제이니라. 이름은 원상이라고 한다."

수하들 앞에서는 철혈의 군주라고 불리기까지 하는 율천세였다. 그만큼 냉정한 그가 지금은 놀라움과 충격에 얼굴 표정으로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어 버렸다.

"아, 이 아이를 사람들은 수왕 원상이라고 부르더구나."

"……!"

설마 했던 일이 사부의 입을 통해 사실로 밝혀지자 율천세는 충격에 휩싸였다.

생각지도 못했던 사제가 생긴 것도 황당한데 그가 장강의 수장인 수왕 원상이라는 말에 할 말을 잃은 표정이었다.

"농을 건네시는 건 아니시겠죠?"

"하하하! 천하의 야수마황 여곤이 제자 놈에게 실없는 농이나 건네겠느냐."

야수마황 여곤, 남북천맹의 맹주 율천세에게 무공을 가르쳐 준 것은 물론 그를 맹주로 만들어 준 장본인이 지금 이 노인이었다.

율천세에게 있어서 여곤은 사부 이전에 친아버지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허망한 미소가 그의 입가에 그려졌다.

그런 존재에게 배신을 당한 기분이었다.

"몇 살 때 제자로 받아들이신 겁니까."

"음…… 그러니까, 저 아이가……."

"열세 살 때였습니다."

"아, 그런가? 벌써 그렇게 되었구나."

그렇다면 자신이 한참 사부에게서 무공 수련을 배울 때가 아니던가.

"그때 천세 이 아이를 열성적으로 가르칠 때였지."

여곤이 따뜻한 눈빛으로 율천세를 바라보았지만 그의 눈은 원망 어린 빛을 띠고 있었다.

"그리 볼 필요 없다. 네가 아무리 그래도 난 그때 이 아이를 보고 한눈에 반했단다. 내 무공을 익히기에는 전혀 부족하지 않았지."

"저보다 더 말입니까."

"아니지. 그건 아니었을 게다. 상아, 네가 지금 연화검법(燃花劍法)을 몇 성까지 끌어올렸지?"

"육성입니다."

"들었느냐."

"그렇군요."

율천세는 여곤이 창안해 낸 연화검법을 팔성까지 익힌 상태였고 조만간 구성을 바라보는 경지였다.

피나는 노력으로 육성까지는 끌어올릴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의 경지로 올라서려면 천부적인 재능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만. 이제 이 아이에 대해서는 그만 이야기 하자꾸나."

율천세는 화제를 돌리려는 사부를 보며 화가 치밀어 올랐다. 늘 존경의 대상이었지만 지금까지 다른 제자가 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내가 오늘 이렇게 직접 온 것은 다름이 아니라 너에게 부탁을 하러 왔단다."

"부탁…… 말씀이십니까?"

언제 사부가 자신에게 신세를 지려 했던 적이 있었을까? 결코 단 한 번도 없었다. 율천세는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가 무슨 부탁을 한다 하더라도 들어줄 의향이 있었다. 사부가 아닌 아버지의 부탁이라 생각하고 말이다.

"녹림과 전쟁을 하게 되었다. 이 아이의 세력이 말이다."

율천세는 원상에게 슬쩍 시선을 두었다 대답했다.

"남북천맹이 이 아이에게 힘을 실어 주려무나."

"그것은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다만 그 이유가 궁금할 뿐이지요."

사제라는 걸 몰랐다면 모를까 안 이상 원상의 일은 곧 자신의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손녀를 찾았단다."

"잃어버렸다던 그 손녀를 말입니까!"

마치 자신의 손녀를 찾은 듯이 율천세는 기뻐했다.

"그렇게 되었구나. 헌데 그 아이가 녹림으로 흘러갔더구나."

여곤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 아이를 찾아오려다 녹림과의 전쟁이 불가피해졌어."

"제 불찰입니다."

원상이 고개를 숙였다.

"아니다. 내 부탁을 들어주느라 넌 친형과도 같은 사람과 피를 보게 되었고, 형제를 잃지 않았느냐. 내가 더 미안하구나."

"설마……."

"초웅천의 딸 초미라는 아이가 내 손녀더구나. 그 아이를 찾는 데 도움을 주겠느냐?"

* * *

오후의 햇볕이 쨍쨍한 날씨의 연속이었다.

점심이 지나면 모두가 나와 따스한 햇볕을 받으며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커다란 도시와는 달리 작은 시골의 객잔은 형편없을 정도로 낡고 보잘것없었다.

"도대체 무엇으로 만들었기에 이리도 맛이 비리단 말입니까!"

커다란 사기그릇에 있던 내용물을 한 번에 비운 대찰영의 외침이었다. 눈썹은 진한 내 천 자를 그리고 있었고 눈가는 파르르 떨리는 것이 엄청 고통스러운 얼굴이었다.

"말하면 네가 아냐. 그냥 주는 대로 먹어라. 그게 다 네 몸을 위한 거야."

정말이지 진심으로 괴로워하는 대찰영의 얼굴을 쳐다도 보지 않은 채 사우는 배 속을 채우는 데에만 집중했다.

대찰영이 들이켠 것은 사우가 손수 직접 제조한 약이었다. 사우는 어린 시절 무공에만 전념한 것이 아니라 의술, 서예, 그림에까지 천부적인 재능을 보여 왔었다.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그릇을 키워 온 사우는 대찰영에게 제멋대로 마성이 터짐을 방지해 줄 약을 지어 준 것이다.

그 재료들을 구하기 위해 지난 열흘 동안 강서성 일대의 산이란 산은 모조리 다 찾아 헤매었다. 그 결과로 만들어진 약이었지만 대찰영은 도저히 못 먹겠다는 표정을 유지했다.

"난 너에게 한 약속을 지켰다."

그러니 너도 나에게 약속을 지켜라, 는 뜻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대찰영의 입에서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아직, 효과를 보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뭘 또 그렇게 험악하게 노려보십니까. 그저 그렇다는 이야기지요. 서두르지 마시라는 뜻입니다."

갑자기 싸늘한 눈빛으로 변한 사우의 눈을 마주하자 대찰영은 손사래를 치며 어색하게 웃었다.

"하지만 선택받지 못한 손님을 데려가게 되면 전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습니다."

"변하지 않았군, 그 율법."

"율법에 대해서 아십니까?"

거창하게 율법이라고는 했지만 쉽게 말해 마인곡은 그들이 택하지 않은 자들은 들이지 않는 성지였다. 그걸 어겼을 경우 같은 식구라도 엄청난 형벌에 처하는 게 바로 그 율법이었다.

"나라면 괜찮으니까, 제대로 안내하기나 해."

"도대체 그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겁니까."

"마인곡이…… 남쪽에 있었던가?"

자신의 질문에 대답은 하지 않고 시선마저 돌린 채 엉뚱한 말을 내뱉는 그를 보며 대찰영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가끔, 아니 자주 남의 말을 무시하는 경향이 큰 이 사내의 얼굴을 때려 주고 싶었다.

그런 충동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대찰영은 자신의 무력함을 탓해야만 했다.

"헌데……."

사우가 한 말을 곱씹어 보던 대찰영의 동공이 조금씩 확장되어 가기 시작했다.

"마인곡을 가 봤던 적이 있는 건 아니겠죠?"

"가 봤는데, 어렸을 적에."

"거짓말 마십시오."

대찰영은 절대로 믿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였다.

"오래된 벗이 거기 있어."

"설마 당신 마인곡 출신인 겁니까?"

"뭐, 그렇다고 해 두지."

이도저도 아닌 대답에 대찰영은 속이 뒤집혔다.

"그럼 그 벗이라는 자가 누구입니까."

"마존."

"당신…… 사기꾼 아닙니까?"

대찰영은 코웃음을 치며 사우의 말을 부정했다.

단순히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마인곡을 들락거릴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마존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을 보면 또 그의 말이 진실일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대찰영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의 의심은 이로울 것이 없었다. 그는 마인곡으로 가는 게 목적이었다. 그 길을 아는 사람은 현재 자신뿐이었다.

그리고 사우는 자신에게 마성을 멈추게 해 줄 약을 제공해 준다. 빌어먹을 마존에게서 얻은 무공 비급으로 인해 어울리지도 않는 살인마 소리를 듣는 판이었다.

물론 강해짐을 원한 건 자신의 선택이었지만 그 후유증이 이토록 강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대찰영은 강한 마성으로 인해 이성을 잃었고 결국 마인곡에서 뛰쳐나오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도 자신을 말리지는 않았다.

그 안에 있는 자들은 오로지 자기 수련 외에는 관심이 없는 자들이었다. 대찰영으로서는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상황인 것이다.

낯선 이를 데리고 왔다고 해서 자신에게 뭐라고 한다면 반박하여 대들 작정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이판사판이었다.

* * *

그 시각, 천성각 내실에는 율천세와 젊은 사내들이 여러 명 모여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누가 가겠느냐."

사부 여곤과 있을 적과는 사뭇 다른 기운을 흘리며 그가 물었음에도 선뜻 대답하는 자들은 없었다.

그의 앞에는 친혈육인 율무천과 세 명의 사내들이 서 있었다.

율천세가 바라보는 시점에서 가장 오른쪽에는 율무천이, 그 왼쪽으로는 서열의 순서대로 있는 상황이었다.

율무천의 옆에 있는 애꾸눈의 사내가 입을 열었다.

"수왕 원상에게 본 맹의 힘을 실어 주시려는 이유를 여쭤도 되겠습니까, 사부님."

천봉장(天鳳掌) 화진천(華震天)이 애꾸눈의 이름이었다. 남북천맹의 맹주 율천세의 애제자 세 명 중 첫째였다.

그는 율천세의 무공 중 홍염장(紅炎掌)을 극성까지 이끌어 올린 기재였다.

"미안하구나, 그 이유는 지금은 말해 줄 수가 없구나."

"제자, 소립(蘇粒)이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화진천의 옆에 있던 청색 무복의 사내가 말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너무나 자존심이 상하는 일입니다."

"나도 안다. 하지만 이번 일은 본맹의 위엄을 한껏 멀리 펼칠 수 있는 좋은 기회니라. 난 그 기회를 앞으로 본맹을 이끌어 갈 너희들에게 주는 것이고 말이다."

청안검객(靑眼劍客) 소립의 무례한 언사에도 율천세는 너그러운 태도를 보였다.

눈앞에 있는 아이들은 자신의 제자이기도 하지만 자식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하나같이 어린 시절부터 애지중지해 오며 자신의 모든 것을 나눠 주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자량(子亮), 네 뜻은 어떠하냐."

가장 왼쪽에 있는 청년의 나이는 가장 어려 보였다. 아직 약관도 채 넘지 않아 보였다.

율천세의 제자 중 막내인 검괴(劍怪) 은자량(殷子亮)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뜸을 들인 후에 입을 열었다.

"저 또한 사부님의 의중이 궁금할 뿐입니다."

율천세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자식과 제자들이 왜 이토록 나서기를 꺼려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였다.

장강수로십팔채는 수적들의 집단이었다. 개중에는 무공을 익힌 자들도 있겠지만 순수한 무림의 세력이라고는 하기 힘들었다.

녹림도 마찬가지였다. 제아무리 예전과는 다른 위치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신분은 산적들이었다.

그런 자들의 전쟁에 도움을 주려고 하는 맹주의 뜻도 이해하기 힘들거니와 그 도움을 자신들에게 맡기려는 사부의 뜻은 받들기가 힘이 들 수밖에 없었다.

"제가 가겠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율무천이 나섰다.

그는 진심에서 나온 것인지 밝은 얼굴로 말했다.

"천이 네가 말이냐?"

율천세는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떠 보였다.

아직까지 자신의 아들은 무림에 출두한 적이 없었다. 경험이 전무했다. 언젠가는 홀로 무림행을 떠나야 하겠지만 스스로가 말한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명 무슨 연유가 있으시겠지요. 아들이 그 뜻을 이행하겠습니다."

"조금은 이르지 않더냐? 아니면 이 아비 몰래 벌써 그 경지에 이른 것이야?"

"아닙니다. 단지 막힌 부분이 있어 바깥바람을 쐬고자 함입니다."

율무천의 말에 그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무슨 뜻인지 알기 때문이다.

아들 율무천은 직계 혈육에게만 전해지는 검법을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하면 무림행을 언제까지라도 미루고자 했었다. 일취월장하던 그의 실력이 어느 순간 벽에 가로막힌 것이다. 그걸 허무는 방법은 목숨을 걸고 싸우는 실전이다. 많은 상대와 비무를 해 보고 경험을 쌓음으로써 더 높은 경지로 올라가겠다는 말인 것이다.

같은 무인으로서 앞서 성장했던 율천세로서는 당연히 공감이 가는 말이기도 했다.

"저도 가겠습니다."

제자 중 가장 연배가 높은 화진천이 나섰다.

율천세는 흡족하게 두 사람을 바라봤다. 하지만 화진천을 바라봄에 있어서는 그 눈빛이 조금은 남달랐다.

그의 성품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천산검문(天山劍門) 문주의 장남이기도 한 그는 다혈질에 남들과 검을 마주하는 걸 즐기는 취향이 있었다. 그리고 한번 검을 뽑아 들면 상대의 피를 보기 전까지는 절대 멈추지 않기도 했다.

그런 그가 무림행을 나서면, 그것도 두 세력 간의 전쟁 틈에 끼어들게 된다면 많은 이들이 희생당할 것이 뻔했다.

하지만 그는 엄연히 자신의 제자였고, 공평하게 진행되는 후계자 싸움을 하고 있는 아이였다. 자신이 내린 명령에 참여를 하겠다는 그를 막아설 수는 없는 법이다.

율천세는 바로 허락을 하였고 당장 내일 남쪽으로 떠날 것을 명령했다.

"너희 둘에게 천무대(天武隊)를 제외한 전투 기관에 속해 있는 힘을 하나씩 고를 기회를 주겠다. 그들을 데리고 장강으로 내려가 수왕을 도와라."

"잘 부탁드립니다, 공자."

화진천이 두 사제들과 함께 밖으로 나오자 율무천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니, 숙였다고 하기보다는 살짝 목만 까딱거렸다.

그가 맹주이자 사부의 혈육이라 할지라도 그 이상의 굽힘은 자존심이 허락지 않기 때문이다.

"나야말로 잘 부탁하네. 알다시피 난 경험이 부족하니 말일세."

나름 겸손의 자세를 취했지만 화진천의 입가에는 웃음이 걸려 있었다. 그것이 비웃음이라는 걸 율무천은 모르지 않았다.

수년 전부터 암묵적으로 시작된 후계자 경쟁에서 화진천은 상당히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직계가 아닌 자도 맹주의 자리에 앉을 수 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발표한 순간부터였다.

"소립. 혈도대(血刀隊)를 준비시켜라."

"알겠습니다, 대사형."

혈도대는 천산검문에서 키운 소수 정예의 무인들이었다. 그들의 힘은 남북천맹에 속해 있는 어떤 문파의 수장들도 제대로 파악이 되지 않는 조직이기도 했다.

* * *

활시위가 새끼 사슴의 머리를 향했다.

피잉!

시위가 당겨짐과 동시에 바로 화살이 튕겨져 나가 목표지점을 향해 쾌속으로 전진한다.

팍!

하지만 화살이 빗나갔다.

"이런, 요새 실력이 많이 죽었네."

삼십 대 중반으로 넓적한 얼굴과 비례하게 몸 전체가 살집으로 뒤덮인 사내는 눈을 가렸던 천을 풀었다.

새하얀 천을 풀자 양옆으로 길게 찢어진 눈매가 드러났다.

사내는 빡빡 민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난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사군악(査君惡) 그놈이 만들어 준 음식 때문인가. 살이 점점 쪄 가고 있어. 자식은 사내놈이 어찌 그리 음식을 잘 만드는 거야. 짜증나게."

담천(潭泉)은 혼자서 중얼거리며 입맛을 다셨다. 그의 시선은 멀리 도망치는 어린 사슴의 엉덩이에서 떠나지 못했다.

사슴을 잡아먹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아니었다. 예전에는 분명 눈을 가리고도 작은 새들조차 화살로 맞추던 실력이 있었다. 최근 다른 것에 한눈을 팔아서 주무기인 궁술에는 통 신경을 쓰지 못한 탓이리라.

"쩝."

담천은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한 채 걸음을 옮겼다. 살 때문인지 뒤뚱거리는 게 영 볼품없어 보였다. 요 근래 날씨가 좋아서 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헌데, 몇 걸음 가다가 이내 거구의 몸이 멈췄다.

"한 놈, 두 놈."

장난기 많고 푸근한 인상을 주던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바뀌어 버렸다.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다. 단지 눈빛 하나가 변했을 뿐인데 느낌 자체가 사나워졌다.

"미쳤구나. 마인곡에 발을 들여 놓다니."

그 순간 담천의 육중한 몸은 자취를 감췄다.

쐐애엑!

공기를 찢어발길 듯이 굉음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파악!

빠르게 몸을 움직였기에 맞지는 않았다.

다만 사우는 몹시 불쾌한 얼굴로 화살을 쏜 잡놈을 찾기 위해 주변을 살폈다.

"마인곡에서는 손님의 대한 예의를 이렇게 하나?"

"철궁마 담천이라는 자입니다."

"요상한 대접이군."

사우는 화살을 쏜 자를 보면 단단히 혼을 내 줘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발의 화살이 날아왔을 때 피하지 않고 한 손으로 잡아 버렸다.

'맙소사!'

대찰영은 또 한 번 기겁을 하였다. 철궁마 담천이 쓰는 화살은 일반인들이 들기에도 묵직한 쇳덩이였다.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쏘아 대는 담천도 신기하다 생각이 들었지만 내공이 실린 그것을 한 손으로 잡아내는 사우는 더 괴물같이 느껴졌다.

"하! 기가 막힌 물건일세!"

수풀 사이를 헤치고는 담천이 등장했다.

"뭐냐, 저 물건은."

"저분이 담천 형님이십니다."

"사람이 맞기는 한 거냐?"

"그, 그게……."

"하하하하!"

자신의 외모를 기분 나쁘게 비꼬는 사우의 말에도 담천은 웃었다. 그것도 너무나 호탕하게 말이다.

그는 웃음을 멈추고 사우의 위아래를 살폈다. 어리바리한 얼굴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음에도 절대로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분위기의 사내였다. 특히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강렬한 무엇인가가 담천에게 전율을 느끼게 했다. 오랜만이었다. 이런 느낌은 수년 전 마존을 봤을 때처럼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오랜만이구나, 대찰영."

"그렇게 되었습니다, 형님."

담천은 대찰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마성에 젖어 마인곡을 제멋대로 뛰쳐나간 그가 돌아왔다. 물론 반가운 마음이 들었지만 낯선 이를 데리고 왔다는 건 결코 쉽게 넘어가기에는 힘이 들었다.

"죄송……합니다."

대찰영도 그런 그의 눈빛을 느꼈는지 고개를 숙였다. 마존에게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담천에게는 밉보이기 싫은 것이다.

"혹시 네놈이 들고 있는 그 물건이 천강묵철(天剛墨鐵)로 만든 거냐?"

호기심 가득한 눈길로 자신이 든 궁의 정체를 말하는 사우를 보면서 담천은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새파랗게 어린놈에게 반말을, 그것도 첫 만남에 들으니 유쾌하게 웃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담천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우는 그의 손에 들린 철궁을 유심히 살폈다.

"철궁마…… 하포(夏布)가 죽었나."

작게 말한 그의 중얼거림은 담천과 대찰영 두 사람에게 똑똑하게 들려왔다.

"어떻게 하포라는 자를 아는 것이지?"

담천이 들고 있는 철궁을 만든 자가 바로 하포라는 사내였다.

대찰영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설마 그때 말했던 것이 사실이란 말인가?'

어렸을 적에 마인곡에 놀러 왔었다는 그의 표현이 사실이라면 정말로 충격적이었다. 대체 정체가 무엇이길래 마인곡이라는 곳을 놀러 왔다고 표현한단 말인가.

"다시 한 번 묻겠다. 네가 어찌 하포 님을 아는 것이냐."

철궁마 하포, 그자는 담천에게 있어서 무예스승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철궁이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사우는 그걸 보고 하포가 죽었다는 걸 눈치챌 수가 있었다.

"이노옴!"

자신의 말을 무시해서 화가 난 것보다는 혹여 사부의 죽음에 관하여 아는 게 있지 않을까, 그 진실을 저자가 알지 않겠나 싶어 조바심이 난 것이다.

순식간에 육중한 담천의 신형이 쭉 늘어났다. 그리고 사우의 얼굴을 향해 철궁이 휘둘러졌다.

빠악!

피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담천은 너무나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의 팔을 들어 철궁을 막은 이 미친 사내를 쳐다봤다.

"이 물건은 너같이 약한 놈이 쓰기에는 너무 좋은 물건이다."

순간 사우의 손에서 파란 불꽃이 일렁거렸다.

그리고 그의 파란 손이 담천의 복부에 꽂혔다.

피하고 자시고 할 시간은 그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사우의 손이 담천의 복부에 박히자마자 그의 몸은 붕 떠올라 삼 장이나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찰영."

"예…… 예?"

"마존에게 안내해라."

대찰영은 갑자기 일어난 이 상황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왜 그가 갑자기 담천을 때려눕혔는지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너같이 약한 녀석이 쓸 물건이 아니니 강해지면 그때…… 주겠다."

담천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안간힘을 써 가며 정신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기에 그나마 사우의 말을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잠깐 정신을 잃었다가 눈을 떴다.

가장 먼저 눈에 보인 것은 새까만 밤하늘이었다. 별들이 오늘따라 유난히 많이 밤하늘을 수놓았다.

담천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일부러 서둘지 않았다. 맞은 부위에 고통이 엄습해 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헌데 생각했던 고통은 없었다.

담천은 상의의 일부분을 재껴 올렸다.

벌겋게 주먹 자국이 나 있었다.

담천은 그걸 보는 순간 이를 악물었다.

부서져도 상관없다는 듯이 말이다.

지독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도대체가 정체를 알기 힘든 인물, 사우에게 얻어맞아 기절한 것은 둘째다. 한 번도 자신이 사부의 제자가 될 자격이 없다는 생각을 가진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는 마치 자신의 사부를 알기라도 하듯 자신이 철궁을 쓸 자격이 없다고 일갈했다.

정말이지 담천에게는 엄청난 충격을 주는 말이었다.

담천에게 하포라는 사내가 얼마만큼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는지 사우가 몰랐기에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했다. 또는 누군가에게 언제쯤이면 들어야 할 말이기도 했다.

중원 최고의 궁수 철궁마 하포라는 산을 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그는 몸을 일으켰다.

싸늘하게 식어 버린 몸과 마음을 다잡고는 자신의 거처로 걸음을 옮겼다.

거의 십 년 만에 와 보는 마인곡을 둘러보며 사우는 반갑다거나 오랜만에 와서 설렌다는 소녀적, 감성들은 느낄 수가 없었다.

단지 많이 변했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모닥불을 피워 놓은 지 한 시진이 지났다.

"설명해 봐."

"……?"

말이 없다가 갑자기 묻는 질문치고는 엉뚱했다. 대체 뭘 설명하라는 것인지 알려 줘야 대답을 할 것이 아닌가 말이다.

"마인곡이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지."

대찰영은 눈만 껌뻑거렸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몇 년이 되었냐. 마인곡에 들어온 지."

"삼 년도 채 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럼 모를 수도 있겠군, 이라고 사우가 중얼거렸다.

현재 두 사람이 모닥불을 피워 놓은 곳은 마존의 처소 앞이었다. 얼마나 비워 뒀는지 내부는 먼지로 가득했다.

사우가 이상하게 생각한 것은 마존의 오랜 부재가 아니었다.

자신이 마지막으로 이곳에 왔을 적만 해도 마존 거처 주변으로는 수십 개의 집들이 존재했었다.

하지만 현재는 거칠게 솟아오른 나무들만이 즐비했다. 어렴풋이 떠오른다. 눈앞에 있는 오두막 주변으로 퍼져 있던 집들과 이 앞에서 어설프게 뛰어놀던 어린 시절이.

긴 시간 동안 이곳에서 무슨 일인가 벌어진 것이 틀림없었다.

"어라?"

지붕 위에 검은 그림자 하나가 드러났다.

마존의 거처 지붕 위에 서 있는 그는 호리호리한 체격에 엄청난 장신을 자랑했다.

사우와 대찰영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올라갔다.

"찰영?"

그가 지붕에서 내려와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삼십 대 초반으로 호남형에 체격도 건장한 사내였다. 그의 오른손에는 호리병 하나가 들려 있었다. 술을 진탕 들이켰는지 술 냄새가 지독하게 났다.

"호진 형님!"

상대를 알아보자 대찰영이 벌떡 일어섰다.

"하하! 대체 이게 얼마만이냐!"

석 달 만에 마인곡으로 살아 돌아온 대찰영을 보자 그는 진심으로 반가워했다.

"마존에게서 들었다. 마성을 이기지 못하여 마인곡을 뛰쳐나갔다고 말이다."

"제가 다 부족한 탓이지요."

"아니다. 투살기(透殺氣)를 제대로 제어할 수 있는 이들은 흔치 않다. 열에 여덟은 극성까지 익히다 모두 뇌에 마성이 침투하여 즉사하는데 너는 천운이로구나."

"이분 덕입니다, 형님."

자연스럽게 대찰영은 사우를 소개해 줬다.

"음?"

"죄송합니다. 낯선 이를 마인곡으로 데려오는 게 얼마만큼 잘못된 행동인지 알면서도……."

멀뚱멀뚱 모닥불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 사우를 사내는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초호진(肖湖唇)이라 합니다."

"난 사우다."

초호진은 사우라고 짤막하게 밝힌 사내를 묘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호기심 가득한 눈길이었다.

사우라는 이름……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있다.

"설마…… 마존과 아는 사이인가?"

"마존이 내 이야기를 하던가."

"뭐, 특이한 친구가 있다고는 하더군."

사우는 피식 웃었다.

"앉지."

"그러지."

사우의 시건방진 태도에 초호진이 불쾌해할까 봐 걱정을 하던 대찰영은 의외로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되어 버리자 당황했다.

"한잔하지."

초호진이 사우에게 술병을 들이대며 말했다. 대찰영은 그 모습을 보고는 흠칫 놀랐다. 언제 초호진이라는 사내가 자신의 술병을 남에게 권한 적이 있던가?

마인곡 내에서도 최고의 주량인데다 술을 너무 좋아하는 그는 희한하게도 다른 이에게 술을 권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런 걸 알 리 없는 사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마시더라도 내공을 이용해 주독을 없앨 수도 있지만 그래도 마시지 않았다.

그가 거부를 하자 초호진은 입맛을 다시며 호리병에 입을 갖다 대어 남은 술을 쭉 들이켰다.

"마존은 어디에 있지."

"폐관수련."

초호진은 짤막하게 대답했다.

대찰영은 정말로 사우라는 자가 마존의 벗이라는 사실에 적잖이 놀라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초호진의 진지한 모습에 낯설어 하고 있었다.

"철궁마…… 하포가 죽었나."

사우는 또 하포라는 자에 대해서 물었다.

"죽었지. 내 아비와 함께."

"……!"

대찰영은 지금 이 장소에서 이들이 나누는 대화에 자신이 낄 수 없음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들에게서 멀어져 갔다.

"똑같네. 얼굴도, 술을 좋아하는 것도. 초 숙부와 말이야."

초호진의 눈 밑이 파르르 떨렸다.

"어깨가 참 넓으셨지. 그 위에 목마도 태워 주셨고."

"난…… 단 한 번도 아비의 얼굴을 본 적이 없어."

"그런가."

"……."

잠시간의 정적이 흘렀다.

사우는 주변을 둘러봤다. 덩그러니 남은 오두막 주변은 조용했다. 모닥불 타는 소리만이 들렸다.

"오랜 벗이라고 그러시더군. 철궁마 하포 님과 내 아비는 말이야."

"그랬지. 허물없이 지내셨었지."

사우가 마인곡에 들른 것은 서너 번 되었다. 올 때마다 반년씩 머물곤 했다. 그는 이곳이 너무 좋았다. 이곳에 오면 그는 귀여움을 독차지했었다.

형이 살던, 그리고 자신이 머물던 그곳과는 다른 분위기가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떠날 때쯤이면 가기 싫어 떼를 쓰곤 했다.

유년 시절의 유일하게 따뜻함이 묻어 있던 장소가 바로 마인곡이다. 세상은 그곳을 흉악한 마인들이 살고 있는 지옥이라 표현했지만 사우에게는 고향 같은 곳이었다.

그때는 이곳에 수십 명의 사람들이 머물고 있었다. 사우는 그들에게 모두 숙부라 불렀다. 특히나 그중에 가장 존경하던 인물이 하포였다.

언젠가 그 빌어먹을 형이 말한 적이 있었다.

'난 내 아비보다 그분이 더 존경스럽단다.'

어린 시절부터 형에게 반항적이던 사우는 그 순간만큼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난다. 유난히 자신을 아껴 주고 어여삐 여겨 주던 거한의 사내.

"누구지. 마인곡을 이렇게 만든 놈들 말이야."

"나도 몰라. 그걸 아는 자는 마존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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