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二章 초미 (2/38)

第二章 초미

이제 곧 여름이 다가오는지 날씨는 후덥지근했다.

특히나 태양 빛이 정점에 다다르는 정오의 날씨는 사람을 미치게 만들 정도였다.

하지만 역시나 하루를 힘차게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그리 장애를 주지 못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먹고살기 위해 일터에 머무는 자들은 그저 열심이었다.

시장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오갔고 수많은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닷 냥입니다, 손님."

여자들이 하는 장신구를 파는 노점의 주인이 상냥한 목소리로 손님이 구입하려는 것의 가격을 불러 주었다.

"비싸네."

"……."

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예쁘장한 소녀는 손님으로서 느낀 자신의 감상을 짧게 표현했다.

주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밝게 웃고 있었다.

"그래도 이 주변에서는 저희 가게가 가장 가격이 저렴하답니다."

소녀는 짙은 눈썹이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고집도 굉장해 보였다.

입고 있는 옷으로 보아 부유한 집에서 자라 온 듯 보였다.

"돈 내."

소녀는 옆에 있는 거한에게 말하고는 자신이 정한 장신구를 가지고 옆으로 사라졌다.

주인은 어이가 없는 눈길로 소녀의 말에 반응한 거한의 사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딱딱한 얼굴로 계산을 치르고는 소녀를 따라갔다.

"아가씨."

"왜."

거한의 부르자 소녀는 쌀쌀맞게 대꾸했다.

마치 그 작은 대답 하나도 감지덕지하라는 느낌이 묻어 있었다.

"벌써…… 열흘째입니다."

"나도 숫자는 셀 줄 알아, 하욱(何旭)."

"그럼 이제 그만 그 일은 잊으시고……!"

"잔소리할 거면 하욱 당신이나 먼저 사라져."

"죄, 죄송합니다."

거한의 사내는 괜히 본전도 못 찾은 것에 얼굴이 붉어졌다.

"반드시 그 미친 마귀 새끼를 잡아서 내 물건을 찾아낼 것이야."

소녀는 손에 힘을 불끈 쥐어 가면서 의지를 불태웠다.

"련주께는 보고를 드려야 합니다. 돌아가시기로 한 날보다 한참이나 늦어서 아마 걱정하고 계실 겁니다."

하욱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난처한 표정으로 선처를 구했다.

그러나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소녀는 그런 하욱의 말과 표정에는 애초에 관심이 없는 인물이었다.

"아버지께 전해. 절대 그 물건을 찾기 전까지는, 그리고 그 마귀 놈을 잡기 전까지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아가씨……!"

애처로운 목소리를 내면서까지 소녀를 부르던 하욱은 그녀가 차갑게 숙소 입구로 향하는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아!"

객잔의 입구를 지나던 소녀는 안에서 나오는 남자의 어깨와 부딪혔다.

신장이 남자보다 작았기에 소녀는 콧등에 사내의 어깨가 부딪친 것이다.

"초미(楚美) 아가씨!"

그 모습을 목격한 하욱이 허겁지겁 달려와 초미의 상태를 살폈다.

"으윽."

초미는 여성들이 쉽게 내지 않는 신음 소리를 내뱉으며 코를 움켜잡은 채로 몸을 비비 꼬았다.

그 모습이 참으로 안쓰럽게 느껴졌다.

하욱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어디 감히 아가씨께!"

하지만 너무나 어처구니없게도 사과를 해야 될 그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는 하욱의 동공에 터벅터벅 제 갈 길을 가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들어왔다.

"저, 저!"

정말이지 하욱은 속에서 열불이 터졌다.

대충 봐도 무림인 같지 않아서 손을 쓰지 않은 것이지 조금이라도 무림인처럼 보였다면 출수를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리는 없었다.

"저 녀석 나에게로 데리고 와, 하욱."

"알겠습니다, 아가씨."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초미는 씩씩거리며 자신에게 아픔을 안겨 준 파렴치한 남자를 데리고 올 것을 명령했다.

하욱의 몸놀림은 덩치와 맞지 않게 재빨랐다.

순식간에 초미와 부딪친 자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이봐, 젊은이."

낮게 깔린 그의 목소리는 꽤나 음산했다.

휘익.

빡!

워낙 빨랐기에 하욱은 자신의 턱이 누군가에게 맞아 돌아간 것을 늦게 깨달았다.

턱이 돌아감과 동시에 상대의 발목이 하욱의 허벅지를 강타했다.

"크윽!"

마치 쇠로 얻어맞은 것처럼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다.

하욱은 순간적으로 이 남자가 무림인인데다가 자신보다 높은 경지에 올랐다는 걸 직감했다.

이런 촌구석에서 만나기에는 거물이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욱 본인의 무공 경지는 중원에서 일류에 속하고 있다는 데 일절 의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콰악!

억센 손길이 목줄기를 움켜쥐고는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조심해라, 형님 기분이 별로 좋지 않으니까 말이다."

하욱의 목을 조르고 있는 이는 놀랍게도 사우였다.

"커억!"

목이 졸려 말은 나오지 않고 대신에 격한 비명만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당장이라도 숨통이 끊어질 것 같은 고통에 너무나 힘이 들었다.

퍼억.

사우는 상대가 위험해지기 바로 직전에 복부를 걷어차며 땅바닥에 내리꽂아 버렸다.

그러고는 미련을 두지 않고 휙 하고 사라져 버렸다.

"지금 장난치는 거야, 하욱?"

겨우 숨통이 트여 헉헉거리며 거칠게 숨 고르기를 하고 있는 하욱에게 초미가 다가와 코웃음을 쳤다.

자신보다 훨씬 작은 덩치를 가진 남자에게 패대기쳐지는 모습이 너무나 볼썽사나웠다.

"무림인 같지는 않던데."

초미가 군중들 속으로 사라져 가는 남자를 보며 중얼거렸다.

"무공을 익힌 자입니다, 아가씨."

"강해?"

"예."

하욱이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렇게 무기력하게 상대에게 당한 것이 얼마만인지 몰랐다. 그만큼 방금 저 사내는 충분히 하욱에게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있었다.

"본련의 오호장(五虎將) 중 하나인 권호가 이렇게 당하는 건 나도 처음 보네."

초미가 흥미롭다는 듯 중얼거리더니 이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방긋 웃었다.

"배고프니까, 우리 밥 먹자!"

코가 아프다고 징징 짜던 조금 전과는 달리 초미는 잘도 웃고 있었다.

그것이 자존심에 상처가 난 자신을 위로하는 차원에 일부러 행동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욱은 몸을 일으키더니 마주 웃었다.

"그나저나 이 마귀 새끼를 어디 가서 잡지?"

초미는 작은 체구임에도 불구하고 웬만한 성인들도 버거운 양의 음식들을 모조리 먹어 치웠다.

배가 두둑해지자 한껏 따스해진 표정이 되어 버렸다.

"저와 아가씨의 힘만으로는 조금 힘들 듯싶습니다."

초미의 눈치를 보며 하욱이 말을 꺼냈다.

"아버지한테 보고하자는 말을 꺼낼 거면 시작도 하지 마."

냉랭한 목소리 때문에 하욱은 그만 입을 다물었다.

"일단은 가진 돈으로 이 동네 유명한 곳에 의뢰를 하자."

"정보를 구하자는 건가요?"

"뭐, 그런 셈이지. 왜 불만이야?"

"아닙니다. 하지만 생돈 날릴 바에야 본련의 힘을……!"

하욱은 하던 말을 끝내 잇지 못했다. 초미가 아주 불쾌한 얼굴로 가녀린 손가락을 자신의 입에 가져다 댔기 때문이다.

"내 꿈이 뭐라고 했지?"

"련주님으로부터의 독립이라 하셨습니다."

"그런 내 큰 포부를 밝힌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의 손을 빌리면 되겠어?"

"……."

하욱은 아무란 반박의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녀의 고집은 세상 그 누구도 꺾을 수가 없었다.

초미가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지켜봐 온 하욱이 확신할 수 있는 것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녀가 진정으로 화를 내는 일 중 하나가 가지고 싶은 물건을 갖지 못할 때와 자신이 아끼는 물건을 남에게 빼앗겼을 때였다.

지금 그녀가 찾아 헤매는 인물 중 하나가 바로 초미의 물건을 빼앗아 가 버렸다.

목숨과도 바꾸지 않을 만큼 아끼는 물건이 그것이었다.

오 년 전 오랜 시간 앓아 오다 지병으로 인해 세상을 떠난 초미의 모친이 남기고 간 유품이 빼앗긴 물건이었다.

그리고 그 물건을 빼앗긴 것은 바로 열흘 전이었다.

모친의 기일이라 호남성 쪽으로 오던 중 갑작스럽게 등장한 괴인으로부터 기습을 받았었다.

인적이 드문 길인데다가 불시에 받은 공격이었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하욱의 힘으로는 괴인의 공격을 막을 방도가 없었다.

도시로 내려와 소문을 들어 보니 요 근래 호남성 일대를 누비는 마인 하나가 출몰한 것이 유명한 상황이었다.

핏빛 무복에 같은 색으로 칠해진 한 자루 도를 들고 다니며 살인을 일삼는 마인인데 지닌바 무공의 경지가 높아 높은 현상금이 걸렸음에도 잡히지 않는다고 들었다.

초미 모친의 유품을 빼앗아 간 녀석과 용모가 아주 흡사했다.

초미의 성격상 그 마인을 잡아야만 했다. 그리고 응징을 한 뒤 자신의 물건을 찾아와야만 했다.

그래야만 이 소녀는 발을 뻗고 편히 잠을 자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고집쟁이 아가씨는 편한 길을 놔두고 어려운 길을 돌고 돌아 가려고 한다.

중원 무림 그 어느 곳도 함부로 하지 못할 단체의 수장이 바로 초미의 부친이었다.

그런 부친의 힘을 빌린다면 마인 하나쯤이야 손쉽게 잡아 낼 수 있을 터인데 그렇게는 죽어도 하지 않겠다고 한다.

'미치겠군.'

하욱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난 좀 쉬고 있을 테니 하욱은 이 근처에서 유명한 정보 단체를 좀 알아봐 줘."

"혼자 말입니까?"

"나 피곤하다는 말 못 들었어?"

"알겠……습니다."

수행원이 아니라 완전 수발드는 하인이나 다름없었다.

하욱은 바로 객잔을 나와 도시 일대를 샅샅이 뒤져 가며 적당한 곳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풍림방(風林幇)이라."

저녁노을이 질 때쯤 하욱의 발걸음이 멈춰 세워졌다. 그의 앞에는 낡지만 고풍스러운 현판이 걸려 있었고 그 이름은 풍림방이라 적혀 있었다.

"아직도 그 녀석이 운영하고 있으려나."

풍림방이라는 곳은 예전부터 알고 있던 곳이었다.

게다가 그곳을 운영하는 주인과도 안면이 있고 말이다. 하지만 호남성으로 온 것에 대해서는 금시초문이었기에 긴가민가했다.

뒷골목에서 수소문해 보니 이곳이 그나마 가장 나을 것이라고 하여 찾아온 것이다.

하욱은 건물 안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

헌데 좁디좁은 실내에는 사람이 없었다.

좀 더 확실하게 표현하자면 제대로 정신을 차리고 몸도 멀쩡하게 서 있는 자들이 없다고 하는 게 정확했다.

시름시름 앓는 소리를 이빨 사이로 뱉어 내면서 새우처럼 등짝이 휜 상태로 자빠져 있는 이들이 다섯이나 되었다.

하욱으로서는 놀랄 만한 상황이었다.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반쯤 떨어져 나간 문짝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끄아아악!"

아마 쇠꼬챙이로 거시기를 맞았다고 하더라도 이처럼 처절한 비명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남성의 목소리로 추정되는 괴음이 문짝 안에서 흘러나왔다.

하욱은 조심스럽게 목을 안쪽으로 밀어 넣고는 상황을 살폈다.

"곡양풍(曲陽豊)?"

중년의 남성이 새파랗게 어린 젊은이에게 팔이 꺾여 나무 바닥과 입을 맞추고 있는 모습이 하욱의 시선에 잡혔다.

그 중년인은 그가 예전에 알고 있던 풍림방의 주인 곡양풍이라는 자였다.

그 모습이 꽤나 볼썽사나웠는지 하욱의 입에서 혀를 차는 소리가 나와 버렸다.

"누구냐."

곡양풍의 팔을 휘어잡고 있던 젊은이가 기척을 느꼈는지 하욱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음?"

하욱은 젊은이가 바로 얼마 전 자신에게 굴욕을 안겨다 준 사내라는 걸 눈치챘다.

묘한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이전에 궁금증이 일어났다.

도대체 저 사내가 왜 풍림방을 이토록 초토화시켜 놨는지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하욱? 자네 하욱 맞는가?"

곡양풍이 고통스러운지 인상을 일그러트리며 하욱을 알아봤다.

"그래, 자네가 알고 있는 그 하욱 맞네."

"아…… 하하하! 이제 되었네. 어서 이 미친 자식을 좀 어떻게 해 주게!"

저승사자를 보고 놀랐다가 신선에게 도움을 기대하는 표정이 곡양풍의 얼굴에서 숨김없이 드러났다.

"시끄러워, 이 대머리야."

곡양풍은 나이에 비해 머리가 일찍 까진 남자였다.

그런 그의 머리를 젊은 사내가 짓밟았다.

"이 녀석에게 볼일이 있냐."

"……."

하욱이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자 젊은 사내, 사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없으면 그만 꺼지고 있다면 조금 뒤에 와."

그의 얼굴이나 목소리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배어 나와 하대가 당연하게 느껴졌다.

설사 하대에 기분이 나빴다 해도 일단은 이 꼴사나운 상황을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공자께서 무슨 일로 이 친구에게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그만 화를 푸시고 말로써 일을 진행시키시는 게 어떠시겠습니까."

"공자는 개뿔! 크윽!"

곡양풍이 공자라는 단어에 발끈하여 몸을 일으키려다 다시 밟히고 말았다.

하욱으로서는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고 사우에게 말을 건넨 것이다. 그의 신분으로 생각한다면 너무나 예의가 배어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상대를 잘못 골랐다.

바로 조금 전 있었던 첫 만남이 결코 거짓이거나 꿈이 아니었다.

젊은 사내는 하욱의 말을 듣는 시늉도 하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원하는 건 한 가지야. 혈귀도마(血鬼刀魔) 그 새끼 어디 있는지 알아내는 거."

"혈귀도마?"

하욱이 의아한 얼굴로 중얼거리자 곡양풍이 빽 소리를 질렀다.

"돈을 지불해야지, 이 날도둑놈 같은 자식아!"

"이자 쳐서 나중에 준다고 했잖아."

너무나 태연하게 외상을 하겠다는 사우를 보며 하욱은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대체 무슨 깡으로 저런 말을 하는지 이해를 하기가 힘이 들었다.

'답이 없군.'

"야 이 미친놈아! 내가 널 오늘 처음 봤는데 어찌 믿느냔 말이다!"

곡양풍으로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갑자기 새파랗게 젊은 놈이 들어오더니 일하는 부하들을 모조리 때려눕히고 혈귀도마라는 별호를 가진 마인을 찾아 달라는 것이었다.

"미친개 사우, 몰라?"

"……!"

곡양풍은 너무 놀란 나머지 입을 크게 벌렸다.

"설마 그 사우?"

호남성으로 내려와 터를 잡을 때 조심해야 할 인물 첫 번째로 귀가 따갑게 듣던 자가 바로 이 미친놈이라는 것에 기가 막혔다.

만약 정말로 이놈이 그 사우라면 지금의 상황이나 지금까지의 말투와 행동이 모두 이해가 되었다.

그만큼 악명이 높았던 것이다.

한마디로 곡양풍으로서는 코 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혈귀도마가 누군데 그러나."

"왜 있잖나. 요새 호남성 일대를 휘젓고 다니는 살인마 말이야."

하욱은 사우라는 사내가 찾는 인물이 자신과 초미가 잡아야 하는 인물과 동일인물이라는 것에 내심 크게 놀라고 있었다.

묘한 우연의 일치였다.

순간 하욱의 뇌리에 무엇인가가 반짝 스쳐 지나갔다.

"일단 제대로 앉아서 얘기를 나누심이 어떠시겠습니까."

현재까지의 대화는 모두 하욱이 처음 들어와서 본 그대로의 상태였다.

변한 것은 없었다.

여전히 곡양풍은 엎어져서 사우의 발아래 머리가 밟혀 있었다.

하욱의 정중한 제안에도 불구하고 사우는 요지부동이었다.

"혈귀도마 어디 있냐."

"돈을 내지 않으면 절대 말하지 않을 것이다."

곡양풍도 고집이 상당한 인물이었다.

고집이라기보다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소신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원하는 금액을 지불하지 않는다면 절대로 공정한 거래가 성립되지 않는다. 그것은 변하지 않는 불문율이었다.

"네놈의 팔을 부러트릴 것이다."

사우의 협박에도 곡양풍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해볼 테면 해보라는 태도였다.

사우는 그의 고집스러운 모습에 피식 웃으며 서서히 힘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 돈 제가 지불해도 되겠습니까."

조금만 힘이 들어갔다면 곡양풍의 팔은 다시는 제 기능을 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하욱에게로 동시에 꽂혔다.

"저도 그 혈귀도마라는 자를 잡아야 하니까 말이죠."

"그러니까…… 이 계집애와 같이 동행을 해야 한다?"

사우는 볼을 긁적이며 초미를 게슴츠레한 눈길로 바라봤다.

"말씀이 좀 지나치십니다, 공자. 이분은 제가 모시는 아가씨입니다."

계집이라는 단어가 거슬렸는지 하욱이 목소리에 살짝 힘을 주며 말했다.

"내가 모시는 아가씨가 아니잖아."

"……."

그렇게 말하니 또 받아칠 말이 없었다.

"난…… 잘생긴 사람이 좋은데, 하욱."

초미가 사우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다가 한마디 던졌다.

"후우. 아가씨.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그러냐. 꼬마야? 나도 너같이 심심하게 생긴 계집애는 별로거든."

사우가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흠, 목소리도 마음에 들지 않아, 하욱."

초미는 정말로 사우가 마음에 차지 않는 눈치였다.

마치 길을 걷다 개가 싼 똥을 목격한 표정이랄까.

사실 사우의 얼굴은 초미가 투덜거릴 정도로 못난 편이 아니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이목구비도 뚜렷한 것이 꽤나 잘난 용모였다.

"죄송합니다, 공자. 아가씨께서 악의가 있어서 그러시는 게 아니니 이해해 주십시오."

"하욱 지금 누구 편을 드는 거야?"

"괜찮아. 이해하지. 원래 생긴 게 안 되는 것들은 성격도 모나거든. 같이 다니기 피곤하겠어."

사우는 그렇게 말하며 하욱을 불쌍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그의 어깨를 툭툭 토닥여 줬다.

"하욱! 나 정말 이 사람 싫다니까!"

"아, 아. 다시 말하지만 나도 너 같은 계집은 질색이다. 내 취향이 아니야."

처음이었다.

초미의 말에 이렇게까지 따박따박 말을 받아치는 사람은. 그렇기에 이 신경전이 언제, 어떻게 끝날지 전혀 파악되지 않았다.

하욱은 자신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갑자기 집에 가고 싶어졌다.

* * *

곡양풍은 빠르게 걷던 걸음을 멈추고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미친개 사우라니.'

자신의 팔을 부러트리려 자세를 잡았던 자가 사우라는 사실에 그는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그것뿐만 아니라 그가 사우라는 걸 알고 난 사흘 동안은 심장이 쿵쾅거리는 게 기분이 묘했다.

그가 풍림방의 거처를 섬서성에서 호남성으로 이전을 하자마자 이 업계에서 들은 가장 첫 한마디가 사우라는 놈을 조심해라였다.

오 년 전 호남성으로 처음 온 사우는 어린 나이였지만 어디서 횡재를 했는지 엄청난 재력을 소유했었다고 한다.

그와 더불어 개 같은 성격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다양한 감정 기복이 말 그대로 미친개라는 별명이 너무나 어울렸다.

곡양풍은 유화상단이라는 곳을 잘 알고 있었다.

이 동네에서는 꽤나 유명했다.

웬만하면 상인들과는 마찰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그들은 돈 계산이 철저하며 신뢰를 잃거나 자신들이 소속되어 있는 단체에 이익을 주지 못했을 때의 보복이 너무나 지독했다.

그런 유화상단의 셋째 아들인 백무연과 사우라는 자가 맞붙은 것은 사우가 호남성에 온 지 열흘째였다고 들었다.

그 두 사람이 거주하는 곳에서 가장 유명한 술집에서 사우의 패거리와 백무연의 수하들이 시비가 붙었던 것이다.

당연히 백무연의 수하들은 체계적인 무예 수련을 받은 자들이라 사우 패거리가 머릿수는 많았지만 일방적으로 얻어터질 수밖에 없었다.

그 광경을 목격한 사우는 처음으로 주먹을 썼고 놀랍게도 일곱 명이라는 적지 않은 상단의 무인들을 때려눕혔다.

그리고 그들의 우두머리인 백무연의 머리를 더러운 오물을 담아 두는 통에 수차례 반복적으로 박아 넣는 것으로 보복을 마쳤다.

한마디로 죽으려고 환장한 짓이나 다름이 없었다.

유화상단의 주인인 백무심이 평소 백무연을 탐탁지 않게 여기지 않았다면 그의 목숨은 이미 그때 끊어졌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백무심이 아들이 그런 꼴을 당하고 왔는데도 가만히 앉아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일개 상단이 보유하고 있기에는 꽤나 많은 수의 무인들을 대동한 채 사우가 머무는 대장원으로 쳐들어가 보복을 감행하려 했었다.

헌데 한낱 파락호 같은 놈이라 여겼던 그가 장원 안에 수많은 기관진식을 깔아 놓을 것을 그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덕분에 절반 이상의 무인들을 잃은 백무심은 수하들을 데리고 다시 유화상단으로 되돌아와야만 했다는 이야기는 그 일대에서 너무나 유명했다.

그 이후로 백무연과 사우는 마주치기만 하면 으르렁거렸고 틈만 나면 유화상단에서 살수를 보내어 사우를 죽이려 들었지만 실패만 거듭했다.

곡양풍은 지금 자신이 그런 미친개 사우를 만나러 가고 있다는 사실에 오만상을 찌푸렸다.

걸려도 하필 그런 놈에게 걸렸으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생각보다 늦었군."

약속된 장소에 가니 하욱과 어린 소녀 한 명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헌데 사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 곡양풍이 하욱의 맞은편에 앉았다.

"인사하게, 뫼시고 있는 초미 아가씨일세."

곡양풍은 살짝 초미에게 고개를 까딱거리며 인사를 했고 초미도 그런 그의 태도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

곡양풍은 그녀의 신분을 알고 있었지만 크게 두려워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밑바닥 인생을 살아온 자들만이 부리는 기개라고나 할까.

"그래, 찾았나?"

"그놈이 내 수하들을 반 죽여 놨기 때문에 애 좀 먹었지. 발 빠른 아이들을 구해서 알아봤는데 말이야. 호남성 일대를 설치고 다니는 것은 맞는 것 같은데 이동 경로를 보면 너무 불규칙하단 말이지."

곡양풍은 품속에서 지도를 꺼내어 펼쳤다.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사우는 어디 있나."

왠지 나타나지 않았으면 하는 눈치였다.

"내가 보고 싶었나 보네."

곡양풍의 어깨를 토닥이며 아무런 인기척도 없이 사우가 나타났다.

덕분에 곡양풍은 심장이 내려앉는 경험을 해야만 했다.

"공자께서는 큰일을 보고 오셨네."

"큰일?"

황급히 화제를 돌려 준 하욱에게 속으로 감사의 말을 전하면서 곡양풍은 되물었다.

"똥 싸고 왔다고."

큰일에 대해서 못 알아들은 곡양풍을 위해 사우는 친절하게 설명을 해 줬다.

초미는 불쾌한 얼굴을 하면서 코를 막는 시늉을 해 보였다.

"넌 똥 안 싸냐."

대놓고 코를 막아 보이는 초미를 보며 민망한지 사우가 어울리지 않게 헛기침을 하며 곡양풍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러더니 이내 곡양풍이 펼친 지도를 빼앗아 들더니 눈살을 찌푸리며 보기 시작했다.

"발바리같이 잘도 싸돌아다니네."

지도에는 붉은색 줄로 혈귀도마가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냈던 장소들이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중요한 건 지금 이놈이 어디쯤 있냐는 건데."

"그게…… 사실 애매합니다."

"애매해?"

"여기저기서 들리는 소문을 분석해 보면 호남성을 벗어났다는 이야기도 있고, 아니면 지금쯤 동정호(洞庭湖)를 향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가장 근거 있는 이야기들이기에 말하는 거겠지?"

"물론입니다. 자, 보십시오. 지금 현재로서는 혈귀도마가 모습을 드러낸 자리들을 보면 작건 크건 간에 강줄기가 흐르는 곳입니다."

곡양풍은 자신 있게 말했다.

사우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곡양풍의 말대로 빨간 줄이 그어진 곳들을 살펴보면 그 주변은 포구들이 있었다.

"어떻게 생각해."

사우가 마치 선심이라도 쓴다는 듯 지도를 하욱에게 보여 주며 물었다. 표정은 시큰둥했다.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아가씨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난 그런 거 모르니까 하욱이 빨리 결정해. 벌써 한 자리에서 사흘이나 보냈으니 시간이 없어."

초미는 혈귀도마가 더 멀리 도망가기 전에 잡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아마 동정호로 향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는 것이 좋을 듯싶네."

곡양풍의 제안에 하욱은 심각하게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동정호로 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지금 있는 곳과 아주 멀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곳은 수적들이 집단으로 모여 있는 곳이었다. 장강수로십팔채라고 사람들이 부르고 있는 집단이기도 했다.

"흠……!"

심각한 얼굴로 고민을 하는 가운데 앞자리에서 검은 그림자 하나가 벌떡 일어섰다.

"출발하지."

"……!"

하욱이 어처구니없다는 눈길로 사우를 올려다봤다.

"뭐 해, 일어서지 않고. 어이, 꼬마. 너도 일어나자. 목적지가 정해졌으니 빨리 움직이자고."

초미는 이번에 사우의 말에 별다른 토를 달지 않고 순순히 일어섰다. 그녀 또한 하루라도 빨리 어머니의 유품을 찾고 싶을 뿐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싫지만 저 남자의 도움이 필요했다. 자신은 무공을 익히지 않아서 힘들고, 반면 하욱은 무공을 익혔지만 저 정체 모를 남자에게도 꿇리니 아무런 힘이 없었다.

마침 저 사내도 혈귀도마를 잡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고 하니 웬만하면 저 사내의 의견을 따를 참이었다.

그 빌어먹을 혈귀도마를 잡기 위해서 말이다.

하욱은 결국 더 이상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떠나기 전 곡양풍에게 의뢰비를 지불하는 것도 잊지 않았고 말이다.

멀어져 가는 이남 일녀의 등을 바라보며 곡양풍은 금방이라도 악몽에서 깨어난 표정으로 이죽거리고 웃고 있었다.

다행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곡양풍과 헤어진 그날 사우와 하욱, 초미는 바로 출발하지 못했다. 이번에 도시를 떠나면 당분간은 필요한 물품들을 구입할 시간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물론 사우와 초미가 하욱의 의견을 묵살하려 했지만 이번만큼은 하욱이 바득바득 우겨서 늦은 저녁에 출발을 하기로 결정을 했다.

물품은 하욱이 홀로 돌아다니며 구하기로 했다. 초미를 사우와 단둘이 있게 하는 게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각처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이들이 있었기에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사실 초미의 부친이 거느리는 세력이 가지고 있는 독자적인 정보 조직을 이용하면 혈귀도마를 찾을 수도 있었다.

허나 초미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는 다른 이를 통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다. 뭐, 마음만 먹는다면 속일 수도 있었겠지만 친조카와도 같은 그녀를 속인다는 건 남자로서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시늉으로 끝내지 않고 하욱이 풍림방을 직접 찾은 건 실제로 정보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덕분에 고수로 여겨지는 사우를 끌어들이는 성과를 올리기도 하였고 말이다.

"천기원주가 죽었다고?"

"예, 그렇습니다."

날이 어두워지자 뒷골목의 밤은 빨리 찾아왔다.

그 가운데 하욱은 누군가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언제 죽었지."

"사나흘 된 것 같습니다."

"여우 같은 늙은이, 목숨 한번 질기군."

초미와 사우의 앞에서 보이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하욱이었다.

"마령호에게 물려 독에 중독되고도 오 년이나 버티다니 말이야."

"련주께서 아주 기뻐하셨답니다."

"그러시겠지. 하지만 제대로 천기원을 먹어 치우기 위해서는 아직 멀었어. 그래, 하조천의 뒤를 잇는 놈이 누구라더냐."

"그의 손자인 하제량이라고 들었습니다."

"하제량?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군."

"지금 그에 대해서 모든 정보들을 수집하고 있다고 합니다. 허나 아시다시피 천기원에 소속된 자들의 신상은 알아내기가 워낙 힘이 든지라."

"모르지 않지. 천기원주를 찾아낸 것만으로도 큰 행운이 필요했었으니까 말이야."

하욱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다.

"수왕(水王)에게 직접 전하거라. 무슨 일이 있어도 혈귀도마라는 그 마인을 찾아내서 절대로 북으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막으라고."

"수왕에게 직접 말입니까."

"힘들다는 것 나도 잘 안다. 하지만 천기원주가 죽었으니 나도, 그리고 초미 아가씨도 본련으로 돌아가야 하니 그렇게 하는 수밖에."

"알겠습니다."

보고를 하던 사내가 사라지자 하욱도 천천히 어둠 속에서 나와 분주히 사우와 초미가 기다리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혈귀도마는 왜 찾으려고 그러냐."

"계집애가 예의가 없구나."

그녀답지 않게 진지하게 물었지만 사우는 콧방귀를 꼈다. 다른 이들에게 반말은 많이 하지만 자신보다 어린아이에게 반말을 들으니 기분이 영 아니었다.

여자만 아니었으면 당장 얼굴로 손이 갔을 것이었다.

"그쪽이나 아무한테 반말 좀 찍찍 내뱉지 말지. 우리 하욱이 몇 살인지 알아?"

"생긴 거 보니까 꽤 많아 보이던데. 중요한 건 별로 궁금하지 않다는 것이지."

사우는 조금 늦네, 라고 중얼거리다가 초미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는 너는 혈귀도마를 왜 찾으러 가냐."

"내가 먼저 물어보지 않았나?"

"흠, 그런가? 그 녀석에게 물어볼 말이 있거든."

"물어볼 말?"

사우는 거기까지만 말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초미에게 자신이 대답해 준 것을 빌미로 왜 혈귀도마를 찾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빌어먹을 천기원주.'

대신 그는 다른 이를 씹고 있었다.

바로 천기원주 하조천이 자신의 돈을 꿀꺽 삼켰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그런 짓을 할 인물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런 치졸할 짓을 할 정도로 돈이 없거나 철이 없는 인물이 아니었다.

분명 마인곡을 찾아 달라고 의뢰한 날, 열흘이면 알아봐 주겠노라고 말했었다.

그가 그렇게 말했다면 이삼 일이면 자신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소식이 전해져야만 했다. 그게 천기원주 하조천이 사우와 거래를 하던 방식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천기원주는 자신에게 아무런 소식도 전해 주지 않았다.

사우는 그의 신변에 뭔가 문제가 생긴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분명 그날 봤을 때는 제 목숨이 한 달은 갈 거라 말했었다. 사우 본인이 봤을 때도 그 정도는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분명히 하조천은 죽었어.'

사우는 그렇게 확신했다.

마령호의 독에 중독된 하조천을 구한 건, 사우 본인이었다.

마령호에 대해서 지식이 있었고 자신의 내력이면 독을 모조리 몰아낼 수도 있었지만 그를 만났을 때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사우를 만난 덕에 그는 몇 년을 더 살 수 있었다.

그래서 그의 몸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우였다. 분명 그는 며칠 만에 죽을 몸이 아니었다.

필히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 확실했다.

'후우.'

그의 죽음을 애통해하거나 하는 그저 그런 사소한 감정에서 나오는 한숨이 아니었다. 그저 제 돈이 아까웠을 뿐이리라.

겨우 모은 돈 황금 오천 냥을 생으로 날려 버렸으니 억울하기도 할 것이다.

혈귀도마를 잡으려 하게 된 건 아주 우연치 않게 흘려들은 이야기 덕분이었다.

호남성 일대에 갑자기 나타난 마인인 혈귀도마가 그 전설상의 마인곡에서 튀어나온 게 아닌가 하는 이야기를 들은 순간부터였다.

그 뒤로 머릿속을 지배하는 건 오로지 그 미친 자식을 잡아 마인곡을 찾는 것뿐이었다. 신빙성이 없는 이야기도 아닐뿐더러 혈귀도마는 마인곡에서 나온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사우는 세상 그 누구보다 마인곡이라는 곳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고향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린 시절 동네 시장처럼 자주 들락거리던 장소였다.

우습지만 그런 곳을 제 발로 찾아가지 못하는 건 그만큼 신비스러운 공간에 자리를 잡고 있는 곳이고 낯선 자들의 발길을 허용치 않는 성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으로 마인곡에서 나왔을 때는 불과 여덟 살이었으니 정확하게 장소를 알고 있는 것이 말도 되지 않았다.

사우가 알기로는 마인곡이라는 장소가 만들어진 지는 벌써 이백여 년이 훌쩍 넘었다고 들었다.

당시 중원 천지는 마공을 익히고 스스로 그 마공에 사로잡혀 살생을 밥 먹듯이 하며 악행을 끼치는 마인들이 활개를 치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마인들의 악행이 그 정점을 향해 치달리는 가운데 나타난 사람이 바로 화월선자(花月仙子)라는 자였다.

그는 모습을 드러냈을 때 이미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경지에 있었다고 했다. 마인들에게 원한이 있는 자들은 그에게 모두 모여들었고, 그 숫자가 성 하나를 들어 올릴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하니 이루 말할 수 없는 인원수였던 것이다.

하지만 화월선자는 혼자의 힘만으로 마인들을 어느 한 곳에 묶어 버렸다.

그곳이 바로 마인곡의 탄생이었다.

기관진식에 능통한 자들 일백 명과 함께 그들이 다시는 밖으로 나타나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 뒤로 지금까지 마인곡에서는 그 누구도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고 하지만 사우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제아무리 강력한 기관들을 설치했다고는 하더라도 벌써 이백 년이나 지났고 깨져도 골백번 깨졌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기다리던 하욱이 도착하자 사우는 혼자만의 상념에서 깨어났다.

"왜 이렇게 늦었어."

"죄송합니다, 아가씨. 자, 그럼 출발하시죠."

사우는 잠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귀찮게 일행을 달고 다닐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필요한 정보도 이미 귀에 담은 상황에서 굳이 함께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괜히 방해만 될 듯싶었다.

하지만 앞으로 어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혈귀도마가 북으로 계속 전진한다면 찾는 일이 쉽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수중에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도둑질을 하자니 쪽이 팔리는 일이고, 결과적으로 돈줄을 하나 잡았다고 생각하는 게 마음이 편한 일인지도 몰랐다.

꼬마 계집아이가 건방지기는 했지만 그런대로 봐줄 만한 수준이니 괜찮겠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그것이 쭉 갈지에 대해서는 미지수였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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