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권 -第一章 사우 (1/38)
  • 1권 

    서문

    그가 빛이라면 난 어둠이었고,

    그가 하늘이라면 난 그를 받치는 땅이었다.

    그는 나에게 있어서 형제 이전에 나의 반쪽이었다.

    내 심장은 하나가 아니라 그래서 둘이었다.

    - 흑천 -

    중원 무림에 흑천살막(黑天殺幕)이 기생하기 시작한 것을 정확하게 아는 이는 전무했다.

    무림이라는 곳이 생성되기 전부터인지 아니면 그 직후부터인지 말이다.

    아마도 당금의 무림에서 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 유일한 단체이기도 할 것이다.

    존재해 왔던 시간과 비례하여 그들의 힘은 세상을 집어삼키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권력과 재력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축적해 왔다.

    그러한 흑천살막의 주인이 죽었다.

    그의 죽음을 아는 자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종사하는 사람들만이 그의 죽음을 슬퍼하고 애통해했다.

    하지만 그에게 죽임을 당했던 사람들과 가깝던 이들은 기뻐했다.

    모든 어둠을 지배했고, 세상 그 누구의 목숨이라도 마음만 먹는다면 빼앗을 수 있는 강함을 가지고 있던 그의 죽음은 충격이었다.

    그의 심장을 밖으로 뽑아 갔던 자는 천검무제(天劍武帝) 율천세(律天世)였고, 그에게 죽임을 당한 자는 사람들이 흑천(黑天)이라 부를 뿐이었다.

    하지만 그를 알고 있던 자들조차 모르던 사실이 하나 있었으니 흑천에게 친혈육이 하나 남아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세상을 뒤바꿔 놓을 것 또한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第一章 사우

    호남성(湖南省)에서 사우(史雨)라는 이름을 모르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흔히 그의 이름을 말하기 전 사람들은 미친개 사우라고 부르곤 했다.

    아마 그가 처음 도시에 나타났을 때가 오 년 전이었을 것이다.

    사우가 처음 도시에 발을 내딛자마자 한 짓은 혼자 처살기 위해 한 채의 집을 사들인 일이었다.

    그런데 커다란 충격을 준 것은 그 집의 크기가 도시에서 가장 크다는 것이었다.

    그래, 어디서 돈 많은 집 아들놈이 굴러들어 와 돈지랄을 하는 거겠지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아니, 전부였다.

    사우가 자신의 이름을 도시에 각인시킨 것이 그게 처음이었다.

    그런데 그 이후부터가 가관이다.

    술, 도박, 여자를 밝히고 폭력을 도맡아 오던 도시의 주먹패들이 모두 사우라는 이름 아래 몰려들었다.

    그 수만 무려 일백이 넘었다.

    그들은 사우의 집에 머물면서 그의 방탕한 생활을 목격, 또는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함께하면서 생활했다.

    그렇게 사 년이 지나자 끊이지 않을 것 같았던 그의 돈은 가뭄의 땅처럼 메마르는 것은 물론 그동안 즐겨 왔던 향락이 끝이 나 버렸다.

    당연한 일이다.

    처음 그가 구입했던 집까지 팔아 치워 겨우 자신이 생활할 수 있는 돈만이 남은 그는 쪽팔림도 모르고 일 년이라는 시간 동안 아직도 그 도시에서 머물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뒤에서 손가락질하고 욕하기를 망설이지 않았다.

    "젊은 놈의 새끼가 돈 귀한 줄 모르더니…… 쯔쯔쯧."

    "그러게 말이야. 에이 퉤!"

    장사가 안 되는 날에는 쌍욕을 내뱉으며 '에이, 사우 같은 날!'이라는 말까지 하는 장사치들까지 있었다.

    자신의 눈에 거슬리면 죄다 엎어 버리는 사우는 이제 미친개 사우로, 주먹패들의 우두머리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사우는 이미 도시에서 유명인사로 자리매김한 것은 확실했다.

    "하아암!"

    길게 늘어지는 하품에 입이 찢어질 듯했다.

    책상 위에 다리를 올려놓은 자세가 영락없는 주먹패의 우두머리다웠다.

    "형님, 황입니다."

    "들어와."

    귀를 파던 사우는 무료하던 차에 잘되었다는 얼굴로 적황(狄荒)을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들어오는 적황은 이십 대 후반으로 인상이 아주 오지게 더러웠다.

    거칠게 기른 수염에 넙데데한 얼굴과 부리부리한 눈망울은 보는 이로 하여금 이유 없이 답답함을 느끼게 할 외모였다.

    반대로 사우의 얼굴은 곱상했다.

    절대로 주먹패들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말 그대로 잘사는 집안의 전형적인 자식의 얼굴이었다.

    "왜."

    사우는 적황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며 자신을 찾은 용건을 물었다.

    "저어……."

    뭔가 할 말이 있는데 망설이는 모습을 보자 짜증이 밀려왔다.

    사우는 머리를 긁적였다.

    "황아."

    "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뭐지."

    지금과 같은 상황을 적황은 자주 겪었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는 일이었다. 분명 자신이 안으로 들어와 한 행동 중에 있을 것이다.

    "두 번 말하게 하는 것과 계집애처럼 쑥스러워하며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할 때입니다."

    "잘 아네."

    사우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입가에 미소까지 걸려 있다.

    "박아."

    "네, 넵!"

    적황의 행동은 칼같이 빨랐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는 그 자리에서 머리를 바닥에 박았다.

    "그래, 아까 하려던 말이 뭐냐."

    일각 정도 시간이 지나자 그제야 사우는 조금 전 적황이 찾아와 보고하려던 일을 물었다.

    '더럽게 빨리 묻네!'

    적황은 속으로 욕하며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내가 일어나라고 그랬나?"

    적황이 머리를 박는 동안 심심했는지 제목도 없는 책을 읽던 사우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다시 박겠습니다."

    "이왕 일어났으니 그럴 필요는 없어."

    '이런 썅!'

    사람을 가지고 장난을 쳐도 유분수지라는 속마음이 그대로 얼굴로 드러났다. 다행히 사우는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백 대인께서 형님을 좀 보자고 하십니다."

    "백무연(白務淵)을 말하는 거냐."

    "예."

    사우는 피식 웃으며 읽던 책을 덮었다.

    "왜 나를 보자고 하는 걸까."

    "그게 아무래도……!"

    "이번에 자신들이 독점하고 있던 무기 거래를 빼앗으려는 자들에게 힘을 보여 주려는 거겠지."

    "정확하십니다. 역시 형님은……!"

    "괜한 아부는 할 필요 없고."

    사우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리고 머리를 벅벅 긁었다.

    "직접 오라고 했다고 전해. 싸가지 없이 누구를 오라 가라 하고 지랄이야."

    그러더니 귀찮은 듯 적황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며 나가라고 손짓했다.

    구겨진 얼굴로 적황은 방을 나가 버렸다.

    그날 저녁 사우와 그 패거리들이 머무는 건물에 일단의 무리가 나타났다.

    백의 무복을 입고 있는 젊은이를 선두로 그 뒤로는 대 여섯 명의 건장한 이들이 따랐다.

    유화상단(劉華商團)의 주인인 백무심(白無心)의 아들들 중 셋째인 백무연(白務淵)이 선두에 있는 젊은 사내였다.

    그는 사우만큼이나 파락호로 유명한 자였다.

    물론 사우가 세운 업적을 따라갈 정도로 유화상단이 거대한 상단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력만 되고 눈치 볼 사람만 없다면 사우를 능가할 정도로 대책 없는 인물이었다.

    "네놈들 대가리에게 전해라. 백무연이가 왔다고 말이다."

    건물 앞에서 얼쩡거리던, 일명 사우파라는 단체에 묶여 있는 무리는 백무연이라는 이름에 긴장하며 짬이 낮은 놈 하나를 건물 안으로 들여보냈다.

    "어이, 백무연이! 허세 그만 부리고 들어오지."

    안에 기별을 하러 젊은 사내가 들어가자마자 이층 창가에서 사우가 비아냥거리며 얼굴을 내밀었다.

    백무연은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건물 안에 들어서자마자 백무연은 눈살을 찌푸리며 코를 막았다.

    '사람이 아니라 돼지 새끼들이나 사는 곳이구나.'

    그만큼 주변은 더러웠고 냄새도 시궁창 냄새가 지배했다.

    "두 놈만 따라오고 나머지는 이곳에 대기하도록."

    백무연은 호위무사 둘만을 대동한 채 이층으로 올라가 사우가 있는 실내로 들어갔다.

    "여어! 오랜만이야!"

    짐짓 반가운 척을 해 대는 사우를 본 백무연은 역겹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얼굴이 왜 그래 응? 나에게 부탁을 하러 온 거 아닌가? 그럼 웃어야지, 친구."

    "내가 언제 네놈 같은 천박한 놈과 친구라더냐."

    "꼴에 부잣집 도련님 행색은 하겠다는 건가?"

    "입조심하는 게 좋을 것이다."

    으르렁거리는 백무연의 태도에 사우는 능글맞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무렴, 유화상단의 셋째 도련님께서 말씀하시는데 듣는 시늉이라도 해야겠죠."

    사우는 자리에 앉으라고 손짓을 해 보이며 웃었다.

    그 미소는 사람의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살심을 일으키는 묘한 능력을 가진 종류의 것이었다.

    백무연은 사우를 노려보며 자리에 앉았다.

    "자, 이제 들어 볼까. 천하의 백무연 님께서 뭣 하러 이리 누추한 곳까지 오셨는지."

    "전에 네놈이 말했었지. 돈이면 못할 일이 없을 거라고."

    "내가 그랬었나?"

    "……."

    진지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내리꽂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백무연은 있는 힘을 다해 참았다.

    그들은 사우가 처음 이 도시에 오고 나서부터 잦은 마찰로 앙숙과도 같은 사이였다.

    동네에서도 그것은 꽤나 유명한 일이었다.

    "들어서 알고 있을 거야. 독점을 하려던 무기 거래를 다른 놈들이 노리고 있다는 것을."

    "용상회(龍商會)라던가?"

    "잘 알고 있구나."

    "나야 뭐, 정보통에는 늘 밝은 편이지."

    "조금은…… 진지한 태도를 보여라."

    "뭐, 그러지."

    사우는 자세를 고쳐 잡았다.

    "자,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고객님."

    "용상회는 조사한 바에 의하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곳이다. 물론 세상은 아직 용상회라는 곳이 생겼는지 관심도 없겠지만 말이야. 첫 사업 확장을 위해 무기 거래를 독점하려 하는데 그런 피라미에게 빼앗길 본 상단이 아니지."

    "자화자찬은 고객님 집에 가서 하시지."

    사우가 비꼬자 백무연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간단하게 말하지. 너희들이 원하는 금액을 말해. 우리가 원하는 건 한 가지다. 용상회 회주를 죽여 줘."

    "……."

    사우의 입술이 비틀어졌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미친놈."

    쾅!

    흥분한 백무연이 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내가 지금 장난이나 하자고 너에게 온 줄 아는 것이냐!"

    "금액은 얼마든지 상관없나."

    "얼마든지."

    "선불로 황금 오천 냥을 내놓고 일 처리가 된 이후에 잔금으로 황금 오천 냥을 받도록 하지."

    사우는 유화상단의 재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금액을 요구했다. 어쩌면 가능도 하겠지만 그 정도의 액수를 지불해서까지 용상회의 주인을 죽이려 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그 정도의 금액이라면 자신보다 더 뛰어난 살수를 고용할 수도 있었다.

    한마디로 거절의 의미가 담긴 것이었다.

    "내일 사람을 보내 선금 오천을 주도록 하겠다."

    "농담하는 건가?"

    "내가 분명 말했을 텐데. 지금 너에게 온 내가 장난질이나 하러 온 것으로밖에 안 보이나?"

    "이상하군."

    "뭐가 말이지."

    "굳이 나에게 의뢰를 맡기려는 거 말이야."

    "하나 있지."

    백무연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내가 너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싫어한다는 것 말이야."

    "그 말은 내가 절대로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 그 말인가?"

    "제대로 알아들었군, 그래."

    사우는 킥킥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너라는 녀석, 참 웃기는 구석이 많아."

    "받아들일 것이냐?"

    "좋아, 받아들이지."

    "역시 넌 별종다워, 미친개 사우."

    "그런데 말이야.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

    "내가 언젠가는 네놈의 목을 졸라 버릴지 모르거든."

    "기대하지."

    백무연은 싸늘하게 웃으며 방을 벗어났다.

    "정말 받아들일 생각이십니까?"

    "내가 언제 내린 결정을 번복하는 거 본 적 있었나?"

    "죄송합니다."

    꼴에 분위기를 잡고 있는 사우의 등 뒤에 자리해 있던 적황의 얼굴이 구겨진 종이마냥 잔뜩 일그러졌다.

    말도 안 되는 의뢰를 받아들인 사우가 정말로 별명대로 미친개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좋은 기회지 않냐. 이참에 목돈 만들어서 이곳을 떠 버리려고 했는데 잘됐지 뭐."

    역시나 개념을 밥 말아 잡수신 양반다운 말이었다.

    이것은 돈의 액수를 떠나서 사람을 죽여야 하는 일이었다. 일이 잘못 틀어질 경우 최소 평생을 도망자 신세로 살아야 하는 일이었다.

    "겁나냐."

    "솔직히 부담스러운 의뢰이기는 합니다."

    "쫄 거 없어. 담그는 건 네가 할 테니까."

    "……!"

    적황의 얼굴이 눈에 띄게 경직된 것은 사우의 말이 엄청난 충격으로 꽂혀 들어왔기 때문이다.

    "농담이다."

    '이런 미친 새끼!'

    적황은 입 밖으로 터져 나오려는 쌍욕을 간신히 안으로 삼켰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가슴팍을 찢어 심장을 들었다 놨다 하는 사우로 인해 적황은 간이 오그라들 지경이었다.

    "하지만 형님…… 용상회는 상인 집단입니다. 자신들의 돈을 지켜 주기 위해 거느린 무인들의 능력이 어디까지일지는 짐작조차 하기가 힘이 듭니다."

    적황은 한 대 맞을 각오로 말한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사우는 반응이 없었다.

    "우리……."

    그런 사우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선금만 먹고 쨀까?"

    쿨럭!

    도대체 저 인간의 입에서 무슨 섬뜩한 이야기가 나올지 몰라 마음의 준비하면서 마른침을 삼키던 적황은 피가 역류하여 흐르는 것 같았다.

    "황아."

    "네."

    "애들 불러 모아라."

    "……?"

    "다시 말하게 했다가는 너 한 대 맞는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방 안에 존재하던 인물은 사우 혼자였다.

    도대체 왜 저 인간이 애들을 불러 모으라고 했을까.

    일단은 서른 명 정도를 대기시켜 놓았지만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형님, 다 모았습니다."

    "……."

    "형님?"

    저녁노을이 멋지게 창가를 때리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감상하기라도 하듯 사우는 의자를 창가 쪽으로 돌려놓고 앉아 있었다.

    당연히 적황에게는 뒤통수만 보일 뿐이었다.

    "설마 주무십니까?"

    설마 하는 심정으로 적황은 약간 목소리를 높였다.

    "응? 아!"

    그제야 사우가 정신을 차리고는 몸을 일으켰다.

    분명한 것은 그가 일어나서 팔을 들어 얼굴 쪽으로 가져갔다는 것이다.

    '어이구 두야.'

    도대체가 긴장감이라는 게 없는 인간이었다.

    애들을 불러 모으라고 했으면 뭔가 대책이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위엄과 긴장감은 필수인데 저 인간은 그런 게 없다.

    "가자!"

    "어딜…… 말씀이십니까."

    "어디긴 어디야, 용상회 주인이 있는 곳이지."

    "헉! 하지만……!"

    "잔말 말고 따라와. 토 달면 귀싸대기 올라간다."

    "……!"

    용상회가 직접 관리하는 월궁루(月宮樓) 별채에서는 오늘 오전부터 간부들의 회의가 지속되고 있었다.

    늦은 오후가 되어서도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회의를 멈추게 한 것은 미친개 사우였다.

    용상회 회주를 가장 측근에서 보필하는 여상(呂峠)은 월궁루 출입구를 시작해 이곳 별채까지 무작정 머릿수로 밀고 들어온 이들로 인해 기가 차고 어이가 없는 얼굴이었다.

    도대체가 제정신이 박힌 녀석들이라고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에 가까웠다.

    오늘은 중요한 회의가 있는 날이라 용상회에 소속되어 있는 무인들 대부분은 월궁루에 오지 못하고 그저 상단의 장원을 지키고 있었다.

    덕분에 여상과 그의 밑에 있는 자 열 몇 명만이 별채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중이었다.

    "어이, 너!"

    "……!"

    여상의 눈썹이 역 팔자로 구겨졌다.

    평소 얼굴에 표정 변화가 없던 그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그 누구보다 분노를 터트리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새파랗게 어린놈이 자신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반말을 지껄이는 모습을 보면 누구나 그런 반응을 보일 것이다.

    "눈 부리부리하게 뜨고 있는 너 말이다."

    대략 서른 명 정도 되는 주먹패들을 데리고 무공을 익힌 상단의 호위무사들 앞에 선 것치고는 당당했다.

    아니, 당당을 넘어 시건방졌다.

    제아무리 날고 긴다 하는 주먹패들이라도 무공을 익힌 호위무사들의 상대가 되질 않는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그들의 무공이 삼류라 해도 그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사우만 모르는 것 같았다.

    적황은 당장이라도 이 미친놈을 줘 패서 데리고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자신의 힘이 너무 미약했다.

    "어르신들께서 회의를 하시니 어서 처리하거라."

    여상은 혹여 자신의 주인이 회의에 피해를 보기라도 할까 봐 얼른 저 미친놈들을 끌어낼 심산이었다.

    명령을 전달받은 호위무사들이 각자의 무기를 꺼내 들어 주먹패들 곁으로 호기롭게 다가갔다.

    "네놈들 대가리 좀 만나러 왔다. 용상회 회주 말이다."

    사우는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그의 음성이 컸든지 아니면 생각보다 회의가 일찍 끝났는지 월궁루에서 일단의 무리가 쏟아져 나왔다.

    대부분의 연령대는 중년인이 많았다.

    그리고 가장 선두에 있는 사내는 사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점잖게 생긴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얼굴에는 평온함이 가득했다.

    도를 닦는 도사가 아닐까 할 정도로 말이다.

    "무슨 일인데 이리 소란스러운 것이냐!"

    반조(潘照)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남자가 노한 얼굴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어르신. 동네 주먹패들이 사리분별 하지 못하고 날뛰는 것입니다. 제가 금방 처리하겠습니다."

    여상의 얼굴은 이미 똥빛으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불호령이 떨어질 것 같아 황급히 몸을 돌려 사우 일행에게로 달려가려 했다.

    "모두 무기를 집어넣어라. 그리고 나를 만나자고 한 저 젊은이와 독대를 할 것이니 준비를 하거라."

    "……!"

    청천벽력 같은 말이 선두에 있던 사내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여상은 마치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었다. 여상의 수하들, 그리고 반조와 그 뒤에 있는 용상회 간부들의 얼굴에서 당혹감이 떠올랐다.

    "뭐 하느냐. 회주의 명을 받들지 않고."

    재빨리 정신을 차린 반조가 여상을 다그쳤다. 자신의 주인이 그리 명령하면 따르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주인이 이런 일을 시킬 때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터였다.

    "하, 하지만."

    허나 눈치 없는 여상은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어허!"

    반조가 진정으로 화를 내려 하자 여상은 그제야 수하들을 물렸다. 그리고 길을 터 주었다.

    '대체 이게 뭔 일이래.'

    당황한 것은 사우의 패거리들도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적황은 믿을 수 없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도대체 용상회 주인이라는 자가 미치지 않고서는 초대하지 않은 손님을, 그것도 주먹패 우두머리를 이렇게 무례하게 찾아온 아이와 독대를 한단 말인가.

    유일하게 표정의 변화를 가지지 않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용상회주와 사우였다.

    "오랜만에 뵙게 되니 반갑군요."

    "그런가."

    사우는 살갑게 맞는 용상회주 양인홍(陽認弘)의 인사에 시큰둥할 뿐이었다.

    두 사람 앞에는 김이 피어오르는 찻잔이 각각 놓여 있었다.

    "딸아이가 공자를 많이 뵙고 싶어 합니다."

    사우는 들이켜던 찻잔을 한 모금 마시고는 다시 내려놓았다.

    "요즘은 건강한지 모르겠네."

    "많이 나아져 가고 있습니다. 다 공자 덕분입니다."

    양인홍이 고개를 숙였다.

    그의 성격을 아는 이들이 봤다면 놀랐을 것이다.

    "의외였어."

    "하하! 용상회 회주가 저인 것 말씀이신가요."

    "아니, 그것도 있지만 무림과 연관되어 있다는 거 말이야."

    "공자…… 전 상인입니다. 무력과 재력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종류의 것입니다. 상인인 제가 무림과 상관관계가 없을 리 없잖습니까."

    너무나 온화한 웃음을 지어 보이는 양인홍을 보며 사우는 혀를 찼다.

    "말은 그럴듯하군."

    "저 또한 놀랐습니다. 제가 무림과 관련되어 있는 걸 어찌 아셨는지요."

    양인홍의 말에 사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방금 나에게 그러지 않았던가? 무력과 재력은 뗄 수 없는 것이라고."

    "아뇨. 상인들은 무림과 어떻게든 연줄을 이어 보려고 노력하고 있죠. 허나 직접 무림세가의 힘을 등에 업는 곳들은 매우 적습니다. 방금 공자께서는 제가 무림과 관련되어 있다는 게 놀랐다 하셨습니다. 대외적으로 용상회는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에 있습니다. 그런 저희가 무림과 연관되어 있는 걸 예상하는 자들은 전무하다 할 수 있죠."

    "아, 아. 그런 뜻이었나. 뭐 내가 자주 이용하는 정보통이 있어서 좀 알아봤지."

    사우는 찻잔에 입을 대느라 보지 못했지만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양인홍의 따뜻한 눈빛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물론 다시금 원래대로 돌아왔지만 말이다.

    "사마련(邪魔聯)이라고 하던데 말이야."

    양인홍은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사우의 말에 심장이 멎을 뻔했다.

    그뿐만 아니라 아닌 척 노력해 봐도 손끝이 떨리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공자…… 딸아이를 살려 주신 점 깊이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공자께서 방금 언급하신 사안은 목숨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습니다."

    "경고인가?"

    "충고입니다, 공자."

    사우는 같잖다는 듯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고맙게 받아들이지. 내가 오늘 이렇게 온 건 그냥 자네와 거래를 하고자 할 뿐이야."

    "용상회의 비밀을 틀어쥐고 말입니까."

    "그렇지."

    "공자께서 무공을 익힌 무림인이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런 분께서 왜 이곳에서 주먹패들과 어울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마련이라는 곳은 개인이 우습게 볼만한 단체가 아닙니다."

    "나도 충고 하나 하지. 내가 이곳에 온 진짜 목적은 자네를 죽여 달라는 의뢰를 받아서야. 그러니 같잖은 충고는 삼가 줬으면 좋겠는데."

    사우는 찻잔에 담긴 내용물을 모두 비워 버렸다.

    "유화상단입니까."

    양인홍의 등짝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얼굴은 여유가 가득했다.

    "자, 거래를 할 마음이 생겼나?"

    "저를 너무 과소평가하시는군요."

    "아니. 그저 난 네놈이 나와 거래를 하게끔 하고 싶을 뿐이야."

    양인홍은 지금 눈앞에 있는 사내가 육 개월 전 아픈 딸아이를 낫게 해 주지 않았다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걸고서라도 갈기갈기 찢어 죽였을 것이다.

    "황금 오천 냥."

    "……?"

    "내가 원하는 건 그것뿐이야."

    "농담……을 하시는 겁니까?"

    맥이 탁 풀리는 것 같았다.

    물론 황금 오천 냥이 적은 돈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사우가 가지고 있는 패와 거래를 하는 것치고는 너무나 하찮은 액수였다.

    새롭게 등장한 용상회, 그 뒤에는 사마련이라는 거대 단체가 있다는 걸 무림이 주목한다면 계획이 틀어지기 때문이다.

    "지금 즉시 준비해 줬으면 좋겠는데."

    믿기 힘들었지만 양인홍은 이때다 싶어 수하를 시켜 즉시 사우가 원하는 액수를 내놓았다.

    사우는 자신이 챙길 자금을 품 안에 넣고는 작은 종이 하나를 양인홍의 앞에 내놓았다.

    "이게 뭔가요."

    "거기에 적힌 곳에 유화상단 주인인 백무심의 부인이 머물고 있다더군. 어차피 제거해야 할 곳 아니었나?"

    "하하. 저희도 그 정도 정보는 가지고 있습니다. 조만간 정리할 생각이었습니다."

    사우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소문은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유화상단과 사이가 좋지 않다고요."

    "……."

    사우는 말없이 문이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마도 도시를 떠날 듯싶은데…… 내 밑에 있는 놈들 그래도 쓸 만하다 싶으면 데려다 쓰도록 해."

    양인홍은 갑작스러운 그의 말에 반박하려 했으나 사우가 다시 말을 이었다.

    "마지막 충고 하나 해도 될까. 혹여 내가 그 비밀을 발설할까 괜한 쥐새끼들을 붙였다가는 내가 살려 놓은 당신 딸, 눈앞에서 사라지게 할 수 있으니 알아서 잘 판단하도록 해."

    등짝만을 본 채 들은 말이었지만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분위기로 인해 양인홍은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으아아아악!"

    이른 새벽, 적황은 물고늘어지던 잠기운이 혼비백산하여 달아날 만큼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한마디로 절규였다.

    덜덜 떨리는 그의 손에는 한 장의 서찰이 쥐어져 있었다.

    그동안 즐거웠다. 지금까지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황금 오십 냥 남겨 뒀다. 그리고 앞으로는 용상회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잘 말해 놨으니 그리 알거라.

    분명 빌어먹을 사우의 필체였고 이 서찰은 그놈의 방에 남겨져 있었다.

    황금 오천 냥을 손에 쥔 놈이 지금까지 고생한 자신에게는 겨우 황금 오십 냥을 남겨 둔 채 떠나 버렸다.

    적황은 자연스럽게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린다.

    "잡히면 뒤진다, 미친개 사우우!"

    * * *

    한 달 전.

    "그분께서 돌아가셨습니다."

    "……."

    사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신답지 않은 농담인데."

    "사실입니다."

    "그 말이 사실이라는 데 자네 목숨을 걸 수 있나."

    사내는 사우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에 몸이 움찔했다.

    "어차피 주인을 잃은 수족이 사는 데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사우는 눈앞에 있는 사내의 말이 진실임을 깨달았다.

    슬프다거나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다만 분통이 치밀고 억울할 뿐이었다.

    인간인 이상 언젠가는 죽는다.

    그게 빠른 사람이 있고 늦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가 죽었다는 말에 가슴 한구석이 찢겨져 나가는 듯하다.

    왜일까? 왜일까…….

    질문을 해 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그는 자신에게 있어서 형임과 동시에 언젠가는 넘어야 할 높고 험한 산 같은 존재였다.

    치기 어린 나이에 그 산을 넘어서려다 벼랑 끝으로 내몰려 떨어졌다.

    목숨을 구했지만 예전의 신분은 박탈당했다.

    그래서 이를 갈고 있었다.

    언젠가는 그 높은 산을 넘는 것이 아니라 무너트릴 것이라고 말이다.

    다짐하고 새겼던 그 마음이 이제는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렸다.

    "누구냐."

    "천검무제(天劍武帝) 율천세(律天世)라고 그러더군요."

    "아무리 당신이라 할지라도 지금 내 기분을 안다면 확실하게 말하는 게 좋을 거야."

    단순한 협박이 아니라 진심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내도 그것을 느꼈지만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아무도 모릅니다. 그분이 어찌 돌아가셨는지. 늘 최측근에서 보필하던 저조차도 말입니다."

    가슴에 납덩이 하나가 더 올라간 기분이었다.

    "사망총(死亡塚)의 짓인가."

    "모릅니다."

    "그럼…… 용맥(龍脈)이겠군. 예전부터 본 막과의 사이가 좋지 않았으니."

    "모릅니다."

    "그럼 아수귀옥(阿修鬼獄)이겠군."

    이번에도 사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신…… 명을 재촉하는군."

    쾅!

    사우의 손이 붉은 기류로 덮이더니 사내의 몸통을 가격했다.

    "다시 한 번 묻겠다. 누구의 짓이냐."

    죽일 수 있었지만 참았다.

    "그분께서 어찌 돌아가셨는지…… 누구의 손에 그리 싸늘한 주검이 되셨는지 저 또한 모릅니다."

    "천검무제는 알겠군."

    "누가 그분을 그리 만들었는지 안다 하더라도 지금의 당신으로는 복수를 하기 힘들 것입니다."

    사우는 큰 소리로 웃었다.

    "내가 아직도 오 년 전의 그 핏덩이로 보이나?"

    "많이 강해지셨더군요. 허나 그분에 비하면 당신은 아직도 애송이에 불과합니다."

    사내는 사우에게 밀리지 않았다.

    내상을 입었을 텐데도 한마디 한마디가 끊어지지 않고 자연스럽다. 죽을힘을 다해 참고 있을 것이다.

    "그래. 항상 그랬지. 난 죽어라 노력해도 그 녀석을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이야기를 당신이 또 하는군."

    "그분은 하늘이 내리신 무골이셨습니다."

    "그래서 뒤진 거야."

    사우의 눈은 언제부터인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싸늘하게 내뱉는 그의 음성은 쉽게 녹지 않을 것같이 얼어 있었다.

    사우도 알고 있었다.

    자신의 형이라는 존재가 얼마만큼 강한 존재인지를.

    파천의 힘을 가지고 있는 그가 죽었다는 게 쉽게 믿겨지지가 않았다.

    "형의 시체를 봤나."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했겠지?"

    "확실했습니다."

    사우는 이제 형의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당신의 선택은 단 하나입니다."

    "……?"

    "이대로 숨죽여 사시는 것입니다. 그분을 그렇게 만든 자들이 당신의 존재를 안다면 당신은 그들의 손에 죽게 될 테니까요."

    일종의 경고였고 충고였지만 사우에게는 자존심을 건드리는 발언이었다.

    "자네는 날 너무나 잘 알아. 그런 자네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내 자존심을 일부러 건드리는 것일 테지. 그 녀석의 복수를 내가 직접 해 주기를 바라는 건가?"

    상대의 속마음을 정확하게 파고드는 건 누군가 가르쳐 줘서 되는 게 아니다.

    사우는 그런 것을 타고났다.

    "지금의 당신으로서는 불가능합니다."

    "형을 죽게 만든 자들을 알고 있는 눈친데."

    "마인곡(魔人谷)으로 가십시오."

    "설마 마인곡의 애송이들의 짓이라고 하지는 않겠지."

    "그들은 강합니다."

    "강하지. 당신의 눈에는 그리 보이겠지."

    "그들을 당신의 사람으로 만드십시오."

    "그게 강해지는 방법인가?"

    "적어도 시작은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사우는 새하얀 이를 드러내 보이며 웃었다.

    "좋아, 네놈의 장단에 놀아 주지. 재밌겠군. 형을 죽게 만든 녀석들을 찾아내는 숨바꼭질 놀이 말이야."

    섬뜩하기까지 한 사우의 미소는 사내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꺼져."

    "……."

    사내는 당장 쓰러져도 모자라지 않을 몸뚱이를 일으켰다.

    "이봐, 이풍(李風)."

    문 쪽으로 향하는 사내의 이름을 불렀다.

    "갈 곳은 있나."

    "그저…… 공기 좋은 곳으로 가서 낚시나 하면서 지낼 생각입니다."

    "그런가. 뭐, 이제 나와는 더 이상 볼 일이 없을 테니."

    "그럼……."

    이풍이라 불린 사내는 문을 열고 나갔다.

    '위험한 존재입니다. 당신은. 천무성체(天武聖體)의 주인…… 그렇기에 그분께서 당신을 버리신 겁니다.'

    * * *

    하얗게 바랜 수염들이 가득한 얼굴의 노인은 청명한 하늘 아래 너무나 여유롭게 낚시를 즐기고 있었다.

    비록 육체는 다 늙었지만 주름진 얼굴 틈에 자리를 잡고 있는 눈에는 아직도 총기가 가득하다.

    "흠……."

    노인은 생각보다 고기들이 잡히지 않는지 기분이 썩 좋아 보이지는 않는 눈치였다.

    하지만 인내심을 발휘해 낚싯대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사마련(邪魔聯)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가."

    노인의 뒤에는 어느새인가 검은 그림자 하나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노인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그의 말에 대꾸했다.

    "용상회라는 상단을 조직하여 자금을 끌어모을 생각인 듯싶습니다."

    "황금의 힘은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지. 잘만 성장한다면 강남을 손에 쥐락펴락하겠군, 그래. 그 녀석은 뭐라던가."

    "조금 더 지켜보신다 하셨습니다."

    "줄타기를 잘해야 할 텐데 말이야. 앞으로는 나에게 이런 사소한 것까지 보고할 필요는 없어. 조만간 정식으로 그놈을 원주의 자리에 앉힐 거니까 말이야."

    "……."

    "불만이 많은 얼굴인데."

    "아닙니다. 그저 걱정스러울 뿐입니다."

    "나이가 어려서 말인가."

    "아직 원주께서 이렇게 건강하신데 벌써 후계자를 논한다는 게 시기상조가 아닌가 하는 마음이 더 큽니다."

    "입에 침이나 바르고 그런 거짓말을 하게나."

    노인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검은 그림자를 물렸다.

    "오랜만이구나, 싸가지."

    "건강해 보이는군."

    노인의 옆에 나타난 건 다름 아닌 사우였다.

    "뭐 겉으로는 그리 보이겠지. 하지만 안은 썩어 들어가고 있지."

    "그때 그 독 때문인가."

    "네놈 덕분에 몇 년 더 살고는 있지만 완전한 해독은 불가능한 모양이야."

    "안됐군."

    눈살까지 찌푸리며 사우는 짐짓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비아냥거림에 더 가까웠다.

    하지만 노인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나를 보자고 한 이유가 뭔가."

    사우는 대답 대신 손에 들고 있던 주머니를 노인의 앞에 살짝 던졌다.

    "황금 오천 냥이야."

    "……."

    노인은 낚싯대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마인곡이 어디 있는지 알아봐."

    "하하하하!"

    노인은 갑작스럽게 웃음을 터트렸다.

    사우는 멋쩍고 민망하기도 할 터인데 떨떠름한 얼굴로 귀만 후비고 있었다.

    "알아봐 줄 거야, 말 거야."

    "천하의 천기원(天氣院) 원주인 나와 독대를 하는 것만으로도 황금 오천 냥 가지고는 꿈도 못 꿀 일이지. 그 열 배 스무 배를 가지고 온다고 하더라도 불가능한 일이란다."

    "알아, 나도."

    "쯔쯧, 돈이 없나 보군. 내가 준 그 돈을 홀라당 탕진해 버렸나?"

    "그까짓 돈 얼마나 줬다고 생색을 내고 그러지."

    "허허, 황금 십만 냥은 적은 돈이 아니란다."

    "내게는 적더군. 그때 더 챙겨 갈 걸 그랬나 봐."

    "크큭, 천기원주의 목숨을 구해 준 대가로는 소심하게 챙겨 가긴 했지."

    "그러니까 생명의 은인에게 한 번 더 은혜를 갚는다 생각하고 알아봐 줘."

    "네놈은 이 세상에서 마인곡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는 자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마인곡.

    중원 무림에서 쫓겨난 마인들이 살고 있다는 전설상의 지역이었다.

    어디에 있는지, 그곳이 북쪽인지 남쪽인지 아는 자가 전무했다.

    "천기원에서 모른다면 포기하려고."

    "우리를 그동안 과대평가하고 있었군."

    "같은 말 자꾸 반복시키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노인은 잠시 동안 침묵을 지켰다.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이야."

    "흠…… 심각한가 보군."

    "마령호(魔靈虎)라는 독물의 독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 그 녀석들 아주 작정하고 덤볐으니 말이야."

    "천기원을 먹어 치우기 위함이었나?"

    "뭐, 그런 거겠지."

    "그럼 천기원의 주인이 바뀌겠군."

    "내 손자 놈."

    노인은 짧게 대꾸했다.

    "그 손자 놈이 싹수가 있는 놈이라면 할애비를 좀 더 살게 해 준 나에게 뭔가 보답을 하겠지."

    노인은 사우의 말에 살포시 미소를 머금었다.

    "그 녀석 성깔도 보통이 아니니 조심하는 게 좋을 것이야."

    "기대하지."

    사우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제 대충 한 달 정도면 온몸이 썩어 문드러질 것 같은데 말이야. 죽기 전에 네놈에게 궁금한 것이 하나 있는데."

    "……."

    "도대체 네놈은 누구냐."

    "원초적인 질문이군."

    노인은 처음으로 시선을 돌려 사우를 응시했다.

    "천기원의 힘으로도 네놈이 어디 출신인지는 알아내지 못했지."

    "곤란한 질문은 기분을 불쾌하게 만들지."

    노인은 느꼈다.

    사우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진득한 살기를.

    그것은 일류를 넘어선 노인에게도 감당하기 벅찬 것이었다.

    어차피 죽을 몸, 이 젊은 피와 한 번 붙어 보고 싶었지만 아직 살아야 할 이유가 있었다.

    "열흘이면 될 것이야."

    "다음에 부탁할 일이 있으면 그때는 당신의 손자에게 해야 하는 건가? 이름이라도 알려 주면 좋겠는데."

    "천기원주 천안도괴(天眼道怪) 하조천(何朝天)의 손자 하제량(何濟良)이 그 아이의 신분이란다.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그 녀석은 나처럼 마음이 따뜻하지 않거든."

    "충고 받아들이지."

    사우는 특유의 웃음을 보이며 노인의 곁을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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