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202화>
202. 외전-2
사진혁은 지금의 상황에 인상을 잔뜩 썼다.
‘쯧. 아깝게 무인들만 죽었군.’
곽휘운과 위무악을 어찌하지 못하고 모든 무인들이 죽어버렸다.
거기에 더 문제는 곽휘운과 위무악이 아무런 타격도 없다는 것이었다.
둘은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있었다.
모두 자신이 거느린 무인들이었다.
훗날을 위해서는 이렇게 헛되이 쓰면 안 되었다.
‘더 이상은 쓸모없는 소모일 뿐이다.’
사진혁은 모든 무인들을 뒤로 물렸다.
생각이 바뀌었다.
저들의 힘을 빼려고 하였는데, 직접 나서서 죽이는 것이 훨씬 나을 것 같았다.
“가서 장로님을 모셔 와라.”
“명.”
사진혁은 일장로를 부르기 위해 부하를 보내 놓고, 직접 곽휘운 일행 앞으로 나섰다.
생각처럼 되지는 않았지만, 저들이 자신의 손에 죽는다는 것은 변함없을 터다.
지금의 자신에게는 그럴 힘이 있었으니 말이다.
“내가 직접 상대해 주마.”
사진혁이 검을 뽑아들었다.
그와 함께 터져 나오는 진득한 기운.
아주 기분 나쁘고, 어두운 느낌을 지니고 있었다.
분명 보통의 방법으로 얻은 힘은 아닐 것이란 느낌이 들었다.
“그럼 내가 상대하지.”
곽휘운이 사진혁의 앞을 막아섰다.
사진혁은 곽휘운이 상대하기로 한 것이었다.
위무악은 일장로를 상대해야 했으니 말이다.
위하윤, 선우소소, 남주학은 주변을 경계하며 혹여나 무인들이 끼어들 것을 방지하였다.
“딱 좋은 무대가 있군.”
그때 일장로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압도적인 기운을 사방에 흩뿌리는 일장로.
과연 위무악이 이길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얼른 끝내고 도와야겠어.’
곽휘운은 사진혁을 빠르게 처리하고, 위무악을 도울 생각을 하였다.
물론 중간에 끼어든다면 위무악이 난리를 치겠지만, 그것은 나중 문제였다.
이곳에서 누구하나 잃고 싶지는 않았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다 죽여 줄 테니, 기다리고 있어라. 거기 여자들은 죽이지는 않을 테니 안심하고. 크흐흐흐.”
넘치는 자신감을 표출하는 사진혁.
사진혁의 눈에는 이미 곽휘운은 들어오지 않았다.
곽휘운은 그저 그가 밟아야 할 발판 정도에 지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사실 사진혁은 위무악도 자신이 밟아버리고 싶었지만, 일장로가 그와 싸우니 자신에게 기회가 돌아오지는 않을 터.
그래서 일단은 눈앞의 곽휘운부터 밟기로 하였다.
그리고 그 후 사진혁은 선우소소와 위하윤을 취할 생각이었다.
“자, 그럼 이제 시작해 볼까?”
“마음대로.”
엄청난 기운을 풍기며 곽휘운에게 다가오는 사진혁.
하지만 그런 사진혁의 기운에도 곽휘운은 크게 동요치 않았다.
싸움에 들어가면, 어떤 상황에서도 동요치 않는 것이 가장 중요했으니 말이다.
“네놈의 얼굴이 고통에 일그러지면, 참 재미있겠어.”
팟.
말과 동시에 사진혁이 곽휘운에게 달려들었다.
놀라울 정도의 속도.
곽휘운이 무언가 움직이기도 전에 곽휘운의 앞에 도달한 사진혁.
그의 검이 그대로 곽휘운의 목을 찔러 왔다.
카각.
하지만 사진혁의 검은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곽휘운의 바로 앞에서 막혔다.
어느새 곽휘운의 앞을 막아선 구름.
휘운검법의 묘가 제대로 발휘되기 시작한 것이다.
“시간 없으니 빨리 끝내지.”
곽휘운은 사진혁의 검을 막으면서도 슬쩍 일장로와 위무악을 바라보고 있었다.
벌서부터 상황이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으니, 얼른 이 대결을 끝내야 했다.
“건방지기는!”
사진혁은 곽휘운의 말과 한눈을 파는 행동에 불같이 분노했다.
자신을 앞에 두고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 말이다.
사아아악.
사진혁의 검이 붉게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
정말로 기분 나쁜 기운을 뿌리는 사진혁의 검.
물론 기분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확실히 그 힘도 증가했다.
카가가가각!
사진혁의 검이 곽휘운의 구름을 뚫고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자신의 검이 곽휘운의 구름을 뚫자, 사진혁은 이제 됐다 싶었다.
성가신 구름을 뚫는다면, 곽휘운은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진혁의 오판이었다.
서걱. 촤아아악!
이제 되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사진혁의 가슴팍이 베이며 피가 솟아올랐다.
꽤나 많은 양의 피가 터져 나온 사진혁.
“커헉.”
사진혁은 뒤로 빠르게 물러나 가슴팍을 확인했다.
쫘악 벌어져 있는 가슴팍.
그런데 조금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스륵. 스르륵. 스르륵.
벌어졌던 가슴팍이 순식간에 아물기 시작한 것이다.
분명 상식적으로는 말도 되지 않는 일이었다.
“크크크큭.”
사진혁은 일장로가 주었던 단약의 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힘이라면 겁내지 않고, 싸울 수 있었다.
‘이런, 시간이 끌리겠어.’
곽휘운은 사진혁의 가슴팍이 아무는 모습을 보고 시간이 생각보다 더 걸릴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 위무악의 상황이 녹록치 않아 도와주어야 했는데 말이다.
“제대로 가보자. 크큭.”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다.”
곽휘운의 구름이 한층 더 진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그에 따라서 사진혁의 기운도 훨씬 더 진해졌다.
서걱. 서걱. 서걱.
곽휘운은 빠르게 끝을 내기 위해 사진혁을 연신 베었는데, 사진혁은 그 공격들을 몸으로 받으며 그대로 곽휘운에게 쇄도했다.
캉!
처음으로 곽휘운의 검과 사진혁의 검이 부딪쳤다.
사진혁이 곽휘운의 구름을 완전히 뚫어낸 것이다.
“크크큭.”
사진혁은 자신이 정말로 이겼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보지 못했다.
곽휘운의 두 눈이 더없이 싸늘하게 변했다는 것을 말이다.
스윽.
지나치듯 사진혁을 스쳐 지나갔다.
“무슨!”
사진혁은 갑자기 자신을 지나가는 곽휘운을 향해 소리를 치다가 말을 멈추었다.
아니,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보이는 이질적인 광경.
분명 보이지 않아야할 자신의 등이 눈에 보였다.
그리고 그것이 사진혁이 살아서 본 마지막 광경이었다.
촤아아아악!
목이 잘릴 상태로 바닥에 쓰러지는 사진혁.
아무리 몸을 순식간에 아물게 할 수 있어도, 목이 잘릴 것을 아물게 할 수는 없었다.
곽휘운은 그런 사진혁을 바라보지도 않은 채로 곧바로 위무악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곽휘운은 조금 늦고 말았다.
푸욱. 촤악!
위무악의 단전어림을 꿰뚫어 버리는 일장로의 검.
“안 돼!!!”
“이런!”
바로 주변에서 무인들을 막아서고 있던 선우소소가 비명을 질렀고, 곽휘운도 당황의 소리를 내뱉었다.
파앙!
곽휘운이 모든 힘을 짜내어 움직여 그대로 위무악을 안아들고 뒤로 물러났다.
툭. 툭. 툭. 툭.
곽휘운은 빠르게 위무악의 상태를 본 후에 곧바로 응급처치를 시작했다.
주변에는 어느새 선우소소, 남주학, 위하윤이 둘러싸고 보호하고 있었다.
“어차피 다 죽을 것인데, 그런 것이 무슨 소용인지 모르겠군. 천천히 해라 지금은 기다려 줄 테니 말이야.”
일장로는 위무악을 살리려는 곽휘운을 보고 비웃음을 흘리며 말을 하였다.
곽휘운은 그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은 채로 일단 응급처치를 끝내었다.
응급처치 덕에 다행히 생명은 유지할 수가 있는 상태인 위무악이었다.
하지만 아마 이제 더 이상 무인으로는 살 수 없을 터였다.
내공을 담는 그릇이 단전이 완전히 파괴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그것은 곽휘운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죽기는 하겠지만, 지금은 아닐 겁니다.”
처치를 마친 곽휘운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담담한 표정과 정중한 말투의 곽휘운.
남주학은 지금 곽휘운이 매우 분노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무인의 단전을 파괴하는 것은, 죽음보다도 더한 일이었다.
그리고 곽휘운은 일장로가 일부러 위무악을 죽이지 않고 단전을 파괴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지금 재미를 위해 위무악을 가지고 논 것이었다.
“하하. 좋아. 제대로 해 보도록 하자.”
일장로는 일부러 위무악을 죽이지 않았다.
더욱 재미있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무인들이 단전을 목숨 이상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알고, 이렇듯 일을 벌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정확히 적중했다.
휘우우우웅. 사아아아악.
어디선가 바람이 크게 불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 사이에 곽휘운과 일장로의 신형이 동시에 사라졌다.
쾅! 쾅! 카각! 쾅! 쾅!
그리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허공에서 엄청난 충격음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속도로 움직이며 싸우는 둘.
확실히 지금 이곳에 있는 다른 이들과는 차원이 다른 싸움이었다.
그 누구도 끼어들 수 없는 싸움.
하지만 이런 싸움마저도 곽휘운과 일장로에게는 몸 풀기에 지나지 않았다.
이 싸움은 지금 서로의 강함을 확인하는 몸 풀기였다.
카아앙!!
엄청난 소리와 함께 곽휘운과 일장로가 서로 거리를 벌리고 떨어져 섰다.
서로 실력의 확인은 되었다.
“젊은 나이에 대단하군.”
“나이는 아무 소용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이는 아무 소용없다?
나이는 분명 꽤나 큰 소용이 있었다.
나이만큼 수련을 더 했다는 것이고, 그것은 곧 내공의 양과 무공에 대한 이해가 높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니 말이다.
세월의 힘은 결코 작지 않았다.
“그렇지만 젊은 무인 중에서 조금 놀라울 뿐이다.”
콰콰콰콰콰콰.
마치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일장로의 기운.
그것은 분명 곽휘운도 지금까지 경험해본 적 없을 정도의 거대한 기운이었다.
꾸우욱.
곽휘운은 손에 검을 강하게 쥐었다.
그리고 입가에는 아주 진한 미소를 피워 올리기 시작했다.
휘우우우우욱.
곽휘운을 중심으로 구름들이 휘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더 색이 진해지고, 양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끝없이 계속해서 휘도는 구름.
그럴수록 힘은 더더욱 강해졌는데, 마치 한계가 없는 듯 계속해서 강해져만 갔다.
“이건 솔직히 저도 쓰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곽휘운이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쓰기 싫은 힘이었다.
이것을 쓴다면 자신에게도 큰 충격이 올 뿐 아니라, 이것을 본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바라보는 눈길이 바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가릴 때가 아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빠르게 꺼낼걸 그랬다.’
바닥에 누워 있는 상태로 아직까지 깨어나고 있지 못한 위무악.
곽휘운은 자신이 미리 모든 힘을 꺼내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일은 벌어졌고, 후회는 뒤로 밀어둔 채 지금에 최선을 다하기로 하였다.
용서와 후회는 나중에 모두 구할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