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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운객잔-200화 (200/203)

<휘운객잔 200화>

“표정이 좋지 않군.”

다시금 몸을 되찾은 곽휘운은 신종악을 바라보며 말을 건네었다.

분노에 가득 차있는 신종악의 두 눈.

어차피 천홍의 말에 그가 교화될 것이라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내 기분을 더럽게 하기 위해서 천홍을 불러낸 거라면, 성공이구나.”

신종악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분노가 그대로 느껴졌다.

천홍의 모든 것을 증오하는 신종악.

지금 자신에게 한 천홍의 말은 그저 자신을 불쌍하게 쳐다보는 비참한 동정과도 같았기에 분노하고 있었다.

“너를 죽이면, 천홍도 같이 말끔히 사라지겠지. 크크큭.”

완전히 분노에 잠식된 신종악.

그의 두 눈이 피처럼 붉게 변하기 시작했고, 몸도 피처럼 붉게 변하기 시작했다.

사방이 비릿한 혈향으로 가득차고, 말도 못할 혈기가 곽휘운을 옥죄기 시작했다.

퉁.

신종악의 신형이 아주 가벼운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곽휘운은 그와 동시에 백화휘운을 몸 주변에 강하게 둘렀다.

퍼어엉!!!

백화휘운 위에 작렬하는 엄청난 위력의 공격.

그 위력에 일순간 백화휘운이 그대로 흩어져 버렸다.

그리고 그 사이를 파고드는 수많은 혈기.

뾰족한 창과도 같은 형태로 곽휘운을 꿰뚫기 위해 찔러 들어왔다.

“합!”

곽휘운은 기합성까지 내지르면서 손에 쥔 백화빙검을 휘둘렀다.

카가가가가가가각!!

그러자 순간 흩어졌던 백화휘운이 다시 나타나며 신종악의 혈기를 모조리 쳐 내었다.

곽휘운은 백화휘운을 타고 전해지는 충격에 조금 놀랐다.

‘마지막에 깨달음이 없었다면, 정말 위험했겠어.’

혈괴(血怪)가 되어 버린 신종악의 공격은 지금 곽휘운으로서도 힘들 정도로 강렬했다.

퉁.

계속되는 신종악의 움직임.

신종악은 자신의 공격이 곽휘운에게 제대로 먹히고 있음을 느꼈다.

“제법이었다만, 나를 분노케 한 것이 네놈의 실수다.”

“내가 모든 힘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곽휘운을 향해 파상공세를 퍼붓던 신종악은 곽휘운의 말에 갑자기 싸해짐을 느꼈다.

“허세 부리지 마라.”

신종악은 애써 곽휘운이 허세를 부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도 나이에 맞지 않은 엄청난 힘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었다.

어떤 체질을 타고났는지는 몰라도, 자신과 이렇게 대등하게 싸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숨겨 둔 힘이 더 있을 리가 없었다.

슈와아아아아아아.

하지만 그런 신종악의 생각과는 다르게, 곽휘운의 몸에서 엄청난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한계 없이 계속해서 강해지는 곽휘운의 기운.

“이런 말도 안 돼는!”

신종악도 재빠르게 모든 힘을 끌어올리며 그대로 곽휘운에게 쇄도했다.

거대한 혈기와 함께하는 신종악.

신종악은 지금 이 주변을 모두 뒤덮고 있는 혈기의 힘을 하나로 응축해 곽휘운을 향해 쇄도하고 있는 것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

신종악의 모든 힘을 담은 공격의 위용은 대단했다.

주변에서 싸움을 하고 있던 모든 무인들이 싸움을 멈추고 바라볼 정도로 말이다.

혈기에 감싸져 보이지 않던, 곽휘운과 신종악의 싸움에 모든 시선이 집중되어졌다.

“이건, 무인들의 대결이라 보기도 힘들군.”

“아니, 인간들의 대결이 아니지.”

누군가 둘의 대결을 바라보며 나눈 말이었다.

그리고 이 말을 들은 모든 무인들은 속으로 동의 하였다.

지금 곽휘운과 신종악의 대결은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형태였다.

“대결이 길어지면 그만큼 피해가 커질 테니, 이만 끝내야겠지.”

곽휘운의 기운이 백화휘운의 형태로 변하더니 이내 곽휘운의 앞으로 모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신종악의 거대한 혈기가 그대로 곽휘운에게 작렬 했다.

스으으으으.

하지만 그 거대한 혈기가 곽휘운의 백화휘운과 맞닿자 그대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 휘운신공(輝雲神功). 진 오의. 무극(無極).

“헛!”

신종악은 급하게 혈기를 거두어들이려고 하였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계속해서 곽휘운에게 흡수되는 혈기.

신종악은 혈기를 포기하고, 그대로 곽휘운에게 달려들었다.

주변의 혈기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혈기의 힘도 충분했으니 말이다.

쾅!

신종악의 주먹이 곽휘운의 바로 코앞에서 멈추었다.

요란한 굉음은 터져 나왔지만, 곽휘운은 아무런 타격도 입지 않았다.

그리고 아주 짙은 미소와 함께 곽휘운의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휘운신공(輝雲神功). 진 극의. 태극(太極).

파삭.

곽휘운의 무극으로 인하여 모두 흡수당한 혈기가 더해진 힘이 그대로 신종악에게 쏘아져 나갔다.

신종악의 팔부터 가루가 되어 흩날리기 시작했다.

“아직! 아직이다! 크아아아!!!”

한쪽 팔이 가루가 되어 흩날렸음에도 신종악은 포기하지 않았다.

진원지기까지 끌어올려 모든 것을 태우기 시작했다.

쿠득. 쿠득, 콰드득. 콰득.

더욱더 기괴하게 변해가는 신종악.

물론 기괴해지는 만큼 기운도 더 강해졌다.

퍼석. 퍼석.

하지만 몸이 가루가 되어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조금씩 조금씩 가루가 되어 버리는 몸.

신종악은 이 상태는 자신에게 승산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동귀어진.’

이 상태로 도망은 칠 수 없다.

그렇다면 동귀어진의 수를 쓸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영혼은 또다시 봉인해 훗날을 노리면 되었다.

이미 자신의 혼을 봉인할 준비는 끝마쳤다.

‘혹시나 싶어 대비하길 잘하였다.’

신종악은 혹시나 하는 상황에 대비하였다.

물론 이렇게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패배할 것이라 생각해 준비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자신도 예전의 천홍처럼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대비한 것이었다.

“봉혼술(封魂術)은 이미 깼으니, 혹시나 하는 생각은 하지 말라고.”

“뭣?!”

곽휘운이 봉혼술을 깼다는 말에 신종악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봉혼술을 알고 있다는 것도 놀라운데, 그것을 깨 버렸다니?

봉혼술은 영혼을 물건에 봉인시키는 술법이었다.

이 봉혼술을 깨기 위해서는 그 봉인시킨 물건을 완전히 없애야 한다.

하지만 이 봉혼술이 담긴 물건은 천살궁의 깊은 곳에 모셔 둔 상태.

지금 봉혼술을 깰 수는 없을 터였다.

‘어떻게 봉혼술을 알지? 그건 천홍도 모르는 것일 텐데?’

신종악이 알기로 봉혼술은 천홍도 모르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 곽휘운이 봉혼술에 대해 알고 있단 말인가?

사실 신종악은 몰랐지만, 천홍은 이미 봉혼술을 알고 있었다.

천마신교에 있는 거의 모든 무공에 대해 알고 있는 천홍이 봉혼술에 대해 모를 수가 없었다.

어쩌면 천홍이 축령신공의 서책에 남아져 있던 것도, 이 봉혼술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봉혼술이 발동해 남겨진 것일지 몰랐다.

“저쪽에 저분이 깨부숴 주셨거든.”

곽휘운이 눈으로 가리킨 곳에는 천살교 이장로인 무치가 서있었다.

그는 생각보다 천살교의 비밀들과 천살궁의 비밀 장소들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자였다.

그래서 곽휘운은 몰래 이장로에게 연락을 했었다.

전에 그와 만난 뒤 몰래 연락을 주고받을 방법을 이야기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장로는 조금 늦게 천살궁에서 출발하면서 천살궁을 이잡듯이 뒤져 결국 봉혼술의 매개가 되는 서책을 하나 발견해 완전히 태워 버렸다.

“끝이다.”

파사사사사삭.

“안 돼! 안 돼! 안 돼!!!”

신종악의 절규.

하지만 결국 그는 완전히 가루가 되어서 사라져 버렸다.

전 무림을 집어삼킬 야욕을 가졌던 이의 최후라기에는 너무나도 초라하고 허무한 말로.

신종악이 쓰러짐과 동시에 정마맹과 천살교의 싸움은 끝이 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천살교가 자랑하던 강시들은 모두 멈춰버린 채로 바닥에 쓰러졌고, 천살교 교도들의 사기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천살교에 가담했던 무인들도 모두 이 상황에 싸움을 포기하였다.

“허무하군.”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

그 말처럼 너무나도 허무한 전쟁이었다.

정마맹의 승리로 끝난 전쟁이지만, 어쩌면 그 누구도 승자가 아닐지도 모르는 전쟁.

이 천살교와의 전쟁으로 잃은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으니 말이다.

“일단 모두들 고생하셨습니다.”

피비린내 가득한 전장에 울려 퍼지는 곽휘운의 담담한 목소리.

무인들은 모두 무기를 내리고 곽휘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승리에도 웃을 수 없는 상황이지만, 우리는 승리했습니다. 각자 모두 다른 감정들을 가지고 계시겠지만, 일단은……. 적어도 오늘만큼은 모두들 편히 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싸움으로 희생된 분들을 위하여 잠시 인사를 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곽휘운의 말에 무인들은 모두 무기를 거두어들이고 가볍게 묵념을 하였다.

그리고 이 묵념이 끝나고, 정파와 마교 모두 힘을 합쳐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때만큼은 정말로 정도도 마도도 없이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움직였다.

* * *

천살교와의 전쟁이 끝나고 수 일이 지났다.

무림은 엄청난 격변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천살교에 가담했던 문파들에게는 당연히 그에 따른 죗값을 물었고, 천살교의 잔당들은 끝까지 찾아내어 응징을 가하였다.

수없이 많은 문파들이 사라졌고, 무림이천, 팔왕, 십객이라는 지위도 새롭게 개편되었다.

무림 일운(一雲), 구봉(九峰), 칠성(七星).

무림의 최고 고수라 불리는 일운.

천신운(天神雲) 곽휘운.

곽휘운은 천살교의 혈주인 신종악을 제압한 뒤, 천하제일고수라 불리며 일운이라는 위치에 올라섰다.

“오라버니! 또 어디 가세요?”

“응. 이번에 천마신교 쪽에 내는 분점에 가려고 하는데?”

“네에? 그럼 또 며칠이나 객잔을 비우시려고요?”

“하하. 화아. 네가 다시 객잔에 있는데 무슨 문제가 있겠어.”

“그게 아니라. 오라버니가 또 사라지시는 거잖아요…….”

모든 일이 끝난 후 휘운객잔은 정상적으로 영업을 다시금 시작했다.

무림맹에서 많은 자리를 주겠다고 하였지만, 곽휘운은 모두 거절했다.

다만, 묵객과 독고영 등 다른 이들을 무림맹에 남겨 두고 왔다.

특히 독고영은 자신의 손으로 혈뇌를 죽인 후 삶의 의미를 잃은 상태였는데, 곽휘운이 무림맹에서 그 의미를 찾으라고 하였고, 속죄를 위해 무림맹에 헌신하겠다는 생각으로 독고영은 무림맹으로 향했다.

그리고 독고영은 모르겠지만, 지금 독고영은 차기 무림맹주의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몇몇 이들이 각자의 자리로 향했고, 휘운객잔의 식구들은 조금 수가 줄었다.

그래서 백리화가 다시금 총관의 자리로 돌아와 휘운객잔을 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백리세가의 가주로서의 자리보다 이 백리세가의 총관 자리가 더 좋다면서 말이다.

“내가 없으면 안 돼?”

“그건 아니지만…….”

“하하. 걱정 마. 금방 다녀 올 테니까. 그리고 내일은 알지?”

“네. 다들 모이기로 한 날이잖아요.”

내일은 휘운객잔의 식구들이 모두 모이는 날이었다.

거기에 더해서 휘운객잔과 인연이 있는 이들까지 모두 모이는 날.

그야말로 성대한 잔칫날이었다.

그런 날을 잊을 수 있을 리가 있겠는가?

“근데 그럼 하윤 소저랑, 연희 소저도 다 오시겠네요?”

“음. 당연하지. 왜? 싫어?”

“아니요. 좋은데……. 그냥 두 분이 오시면…….”

백리화가 채 말을 끝내기도 전이었다.

쾅.

휘운객잔의 문이 거칠게 열리면서 두 명이 객잔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동시에 곽휘운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휘운! 나 왔어.”

“휘운 오빠!”

두 인영의 정체는 위하윤과 주연희.

귀신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곧바로 나타난 둘이었다.

그리고 두 여인은 휘운객잔에 도착하자마자 곽휘운에게 달려왔고, 그 모습을 보는 백리화의 표정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에휴. 정말 힘들다.”

“호호. 저런 분을 얻는 게 쉬운 줄 아니?”

그리고 근심가득한 백리화 옆으로 현소월이 슬며시 다가와 말을 건네었고, 현소월까지 나타나자 백리화는 초탈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나도 모르겠다.”

지금 이곳 휘운객잔에 있는 모든 이들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져 있었고, 앞으로의 미래를 보여 주듯 따사로운 햇살이 객잔 안을 비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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