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198화>
정마맹 측이 준비 중이었던 작전.
다섯이 싸움을 하고 있는 사이, 백리세가의 식구들과 검마를 비롯한 무인들이 천살교의 뒤쪽으로 움직였다.
전쟁은 전략의 싸움이다.
정정당당한 싸움?
그런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이다.
이기느냐 지느냐, 이것만이 전쟁의 의미였다.
그래서 곽휘운은 전력을 둘로 나누어 뒤로 따로 보낸 것이다.
자칫 천살교가 먼저 알아차린다면, 각개로 격파 당해 버릴 수 있었지만, 다행이도 아무런 방해 없이 목표하던 곳까지 당도할 수 있었다.
“자, 도착한 것 같군 그래.”
검마의 말에 다들 움직임을 멈추었다.
멀찍이 보이는 천살교의 진영.
그들은 뒤쪽은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고 그저 앞만 바라보며 모여 있었다.
“자, 신호를 보내 주게나.”
“네!”
곽휘운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은 백리화의 몫이었다.
백리화는 품에서 작은 구슬 같은 것을 꺼내었다.
영롱한 빛을 내는 푸른색의 구슬.
공명주(共鳴珠).
두 개가 한 쌍인 구슬로, 한쪽에서 내공을 주입하면 멀리 떨어져 있어도 동시에 빛이 나는 물건이었다.
이번 일을 위해 곽휘운이 백연상단의 상단주 정구영에게 특별히 부탁해 얻어 온 것이었다.
위잉.
백리화의 내공이 주입되자 환하게 빛을 내는 공명주.
그리고 백리화가 내공을 거두자 빛을 잃었던 공명주가 다시금 빛을 내기 시작했다.
반대쪽에서 곽휘운이 신호를 보내온 것이다.
“지금 가면 될 것 같아요.”
“그럼 빨리 가세.”
이들은 지체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정확한 때가 중요한 작전이었다.
자칫 한쪽만 먼저 움직였다가는, 어이없게 격파 당할 수 있으니 말이다.
“뒤 쪽에…….”
검마를 보고 소리를 내려던 무인의 목이 그대로 달아났다.
그것을 시작으로 방심하고 있던 천살교 측 무인들을 베어 나가는 정마맹 무인들.
실력자들 위주로 구성한 이들이기에 실력들이 모두 뛰었는데, 그중 단연 검마와 백리세가 식구들의 실력이 빛이 났다.
검마의 검이 움직일 때마다 수 명의 천살교 무인의 머리가 떨어졌다.
가볍게 휘두르는 검마의 검을 막아 낸 이는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그 근처.
백리화도 검마 못지않은 위용으로 적들을 베어 나갔다.
백리화의 백과강기가 지나간 후 서있는 천살교 무인은 없었다.
“뒷 물결이 빨라도 너무 빠르군. 흘흘.”
검마는 장강의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낸다고 하지만 이것은 너무 빠른 것 아닌가 싶었다.
백리화가 강해지는 속도는 그야말로 파죽지세(破竹之勢)였다.
지금의 모습은 검마가 처음 보았을 때와 비교하자면, 하늘과 땅 차이였다.
이 상태라면 자신을 뛰어넘는 것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터였다.
이 전쟁에서 살아남는다면 말이다.
“준비들 하게. 이제 진짜 싸움이 될 테니.”
검마의 말이 아니더라도 다들 긴장을 하고 있었다.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 거대한 기운들.
이제 천살교도 자신들의 습격을 알았으니, 당연히 고수들을 파견할 것이었다.
아주 진한 살기와 함께 등장한 혈의인 일곱.
그리고 그들의 가장 앞에 서 있는 인물.
바로 천살교 대장로였다.
“뒤통수를 칠 것이라 생각은 했는데, 생각보다 조금 빨랐군 그래.”
* * *
신종악이 막 몸을 일으킬 때.
정마맹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그러자 천살교는 곧바로 후방으로 무인들을 보낼 준비를 하였다.
정마맹이 후방으로 병력을 나눌 것이라 예상했으니 말이다.
“크악!”
하지만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는 정마맹의 후방 공격에 급히 무인들을 움직였다.
상대의 정확한 실력을 모르기에 아무나 보낼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대장로가 직접 장로들을 이끌고 움직였다.
앞쪽은 신종악과 일제, 이제가 맡으면 되니 말이다.
“아아, 검마. 오랜만이군.”
“요상한 팔을 달고 있군 그래.”
“하하하. 곧 당신 목을 뜯어낼 팔이오.”
뭐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 없었다.
서로에게 다시금 달려드는 두 세력.
검마는 대장로에게 달려갔고, 백리화는 그 옆에 있던 장로 중 하나에게 달려갔다.
“젊은 여인이 상대라……. 쯧. 꽝인가.”
“그 말, 후회하실 거예요.”
“후회라? 그러면 좋겠군.”
백리화를 상대하는 장로.
짙은 눈썹과 부리부리한 안광.
그리고 그의 얼굴을 가로지르는 수많은 흉터.
그가 바로 현 천살교의 일장로였다.
대장로 바로 밑의 실력자.
확실히 엄청난 기운을 뿜어대고 있었다.
“와라.”
“합!”
하지만 백리화는 일장로의 기운에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일장로의 말에 곧바로 달려드는 백리화.
백리화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쏟아 내어 공격해 들어갔다.
일장로의 주변을 감싸는 백과강기.
그 수는 이미 눈으로 세기도 힘들 정도로 많았다.
“환영이 굉장하군.”
일장로는 백리화의 이 백과강기들의 대부분이 환영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렇게나 많은 양의 강기를 아직 한창 젊은 백리화의 내공으로 만들어 낼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파훼는 그리 어렵지 않을 터였다.
“정면 돌파지.”
쾅!
강렬한 진각과 함께 일장로가 그대로 백리화에게 돌진하였다.
그의 무공은 파산혈갑공(破山血鉀功).
일장로의 온 몸이 혈갑에 둘러싸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혈갑으로 그대로 백리화의 백과강기를 몸으로 받아내었다.
이중 진짜가 있다고 하여도, 몇 번 정도는 충분히 버텨 낼 수 있으니 말이다.
쾅! 쾅! 쾅! 쾅!…….
하지만 일장로가 부딪치는 모든 백과강기가 전부 진짜였다.
계속해서 일장로에게 전해지는 엄청난 충격.
결국 달려들던 일장로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쿠헉!”
입에서 피를 한 움큼 토해 내는 일장로.
그리고는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백리화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전부 진짜는 아니지만, 환영을 진짜와 바꾸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주변에 있는 백과강기가 전부 진짜는 아니지만, 환영과 진짜 강기를 얼마든지 마음대로 바꿀 수 있었다.
결국 모든 환영이 진짜와도 같다는 말이었다.
“그런가. 좋군.”
이것이 일장로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너무나도 허망하게 죽은 일장로.
그의 방심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백리화는 어렵지 않게 일장로를 이기고, 다음 상대를 찾았다.
이런 엄청난 강자를 이겼다는 것을 기뻐할 틈도 없었다.
“다음은…….”
“오랜만이군.”
“이장로!”
“그래. 기억하고 있군.”
백리화의 앞에 나타난 새로운 상대.
그는 바로 천살궁에서 만났던 천살교 이장로인 무치였다.
그 뒤로 소식이 없었는데, 이렇게 전쟁터에서 만나게 되었다.
“저를 막으실 건가요?”
“으음. 나도 그러고 싶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 놈들을 막아야 더 재밌는 무림이 될 것 같거든.”
퍽!
백리화와 대화를 하던 무치의 주먹이 순식간에 옆에 있던 천살교 무인의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가장 혼란스러울 때에 무치는 천살교를 등진 것이다.
신종악이 다시금 부활하면서 천살교의 목표가 지나치게 위험해져 버렸다.
그렇게 되면 이 무림은 재미없는 곳으로 변할 터.
강자들과 계속되는 싸움을 위해서는 천살교가 져야만 했다.
“자. 해 보자구.”
“네!”
* * *
백리화가 일장로와 만났을 때.
검마도 천살교 대장로와 마주 보며 섰다.
“흘흘. 난 운이 좋군 그래. 배신자를 직접 죽일 수 있으니 말이야.”
“배신자? 내가? 그럴 리가.”
서로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는 둘.
검마는 실력에 자신이 있었기에 여유로웠고, 대장로는 신종악이 맞춰 준 극혈마수의 힘을 믿었기에 여유로웠다.
‘이거면 검마라도 충분하다.’
괴물 중에 괴물인 검마지만, 지금이라면 넘어설 수 있을 터였다.
이곳에 오기 전 실험했을 때에 자신도 놀랄 정도의 위력을 보여 주었으니 말이다.
“바로 죽여 주지!”
콰아악!
대장로의 극혈마수가 엄청난 속도로 검마에게 쇄도했다.
아무런 전조 동작도 없이 튀어나온 극혈마수.
쾅! 추우우욱.
검마가 검을 들어 막았는데, 그대로 검마의 신형이 뒤로 조금 밀려났다.
강렬한 위력.
이 위력을 보고 대장로는 미소 지었다.
‘이거면 이길 수 있다.’
대장로는 쉬지 않고 계속해서 극혈마수를 움직였다.
이 파상공세에 수세에 몰린 듯 검마는 연신 방어만하기 바빴다.
“확실히 귀물은 귀물이야.”
수세에 몰려있는 사람이라고는 생각지 못할 만큼 여유로운 목소리의 검마.
대장로는 이 목소리에 곧바로 일이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귀물 구경은 다 했으니, 이제 제대로 가 보지.”
사아악.
검마의 기세가 일변했다.
그리고 이 기세를 보고 대장로가 급하게 극혈마수를 거두어들였다.
‘거두어들이지 않았으면 잘렸다.’
“좋은 판단이다.”
방금 대장로가 극혈마수를 거두어들이지 않았다면, 그대로 검마의 검에 잘렸을 것이다.
카르르르르륵.
극혈마수가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극혈마수.
촤아아아악!
극혈마수가 네 갈래로 쪼개지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기에 더해서 엄청난 기운은 덤이었다.
천마신공의 힘까지 담긴 극혈마수.
사방을 점하며 날아오는 공격에 피할 곳은 없었다.
“구경은 끝났다고 하지 않았나.”
서걱. 서걱. 서걱. 서걱.
검마의 근처에 다가간 극혈마수들이 모조리 잘렸다.
너무나도 깔끔하게 잘려버린 극혈마수.
대장로는 허망한 표정으로 잘린 극혈마수를 바라보았다.
무려 천마신공의 힘까지 더한 극혈마수였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잘리다니?
“젠장!”
대장로가 극혈마수를 다시금 거두어들이려고 할 때였다.
서걱. 서걱. 서걱. 서걱. 서걱. 서걱…….
대장로의 몸이 순식간에 수도 없이 많은 검격에 잘려 나갔다.
“내가 예전부터 말하지 않았나. 힘의 가늠을 좀 잘하라고 말일세. 그리고 그런 것들에 의존하지 말라고도 말해 주었던 것 같군 그래.”
검마의 충고를 이제는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대장로.
그렇게 손쉽게 대장로를 정리한 검마는 다음 목표를 향해 움직였다.
대장로가 죽음으로 후방으로 왔던 천살교 무인들의 사기가 꺾여 버렸다.
그리고 이어서 일장로가 죽어 버렸고, 이장로는 정마맹 측으로 붙어 버렸다.
승산이 없는 싸움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도 도망칠 곳도 없었다.
뒤로 도망친다면, 어차피 신종악의 손에 죽을 테니 말이다.
“자. 얼른 움직이세나. 저쪽도 도와야 할지 모르니.”
“네!”
백리화는 검마의 말에 힘차게 대답했다.
그리고 힘찬 대답만큼 힘차게 움직이는 백리화였다.
얼른 이곳의 일을 끝내고, 곽휘운을 도우러 가야했다.
물론, 그전에 그쪽의 일이 끝날지도 몰랐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