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196화>
전쟁을 위해 떠나기 전날 밤.
이번 전쟁을 위해 백리세가의 모처에 모든 식구가 모였다.
제갈중천, 남주학, 위하윤, 주연희까지 모두 모인 상태였다.
“마지막 싸움이자, 백리세가의 시작이 될 싸움이 될 거예요.”
그들 앞에 서서 천천히 말을 시작하는 백리화.
백리화는 지금 충분히 한 세가를 이끌어가는 가주와 같은 분위기를 보여 주고 있었다.
“어쩌면 다시 못 만날 수도 있고, 어쩌면 이렇게 웃는 얼굴로 보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하지만 제가 가장 앞장서서 여러분과 싸우고, 죽는 다면 가장 먼저 죽을게요.”
“아무도 안 죽을 테니 걱정 마세요.”
남주학의 말에 분위기가 확실히 풀어졌다.
아니, 애초에 분위기는 그리 딱딱하지 않았다.
큰 싸움을 앞두고 있음에도 모두들 지나친 긴장은 하고 있지 않은 모습.
이들은 지금 자신들의 실력을 믿었고, 백리화와 곽휘운을 믿었다.
“이번 모든 싸움이 끝나면 다들 여기 모여서 성대하게 잔치를 해요. 도움주신 모든 분들을 불러서요.”
“음. 그거 좋은 생각이야.”
이번 천살교와의 전쟁이 끝나면 분명 서로들 바빠질 것이다.
이렇게 다들 모일 기회가 얼마나 있을지 모르니, 모두 모여 잔치를 한번 하는 것은 좋은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 말은 곧, 이번 전쟁에서 모두 살아 돌아올 것이란 걸 믿는다는 말과 같았다.
백리화는 이번 전쟁에서 모두가 살아남을 것이라 믿었다.
“다들 저희가 없는 동안 세가와 객잔을 부탁할게요.”
그리고 백리화는 이곳에 남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하였다.
아직 무공실력이 부족한 이들과 무인이 아닌 이들은 당연히 이곳에 남아 있기로 하였다.
그들은 전쟁에 나서 봐야 죽음만 앞당길 뿐일 터.
그래서 이곳에 남아 세가와 객잔을 지키기로 한 것이었다.
“걱정 마세요.”
“맞아요!”
추삼, 춘삼, 소정, 소윤이 힘차게 대답했다.
전쟁에 나서지 않는다 해도 지금 그들도 충분히 불안한 상태일 것이다.
이 전쟁이 어떻게 끝날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몰랐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전쟁에 나서는 이들이 더 불안하고 힘들 것이라 생각해, 씩씩하게 대답을 하였다.
“성대한 요리를 준비하고 기다릴 테니, 걱정 말게.”
황중식이 씨익 웃으며 호탕하게 말을 하였다.
그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다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눈으로 말을 하고 있었다.
서로 믿고 있다고 말이다.
“그럼 오늘은 이만 각자 쉬도록 해요. 다들 생각이 많으실 테니까요.”
백리화의 말에 다들 자리를 옮겼다.
분명 서로 생각할 것들이 많을 터였다.
그들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자. 화아, 아니. 가주님도 이만 쉬러 가시지요.”
“네. 내일 봬요.”
예전이라면 불안함에 곽휘운에게 뭐라 이야기를 했을 백리화지만, 지금의 백리화는 그러지 않았다.
믿음과 자신감.
지금의 백리화에게는 그것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해준 사람은 바로 곽휘운이었다.
‘정말 감사해요.’
백리화는 속으로 곽휘운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말로 꺼내면 아니라고 손사래를 칠 곽휘운이었으니 말이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 곽휘운.
그러더니 갑자기 몸을 돌려 백리화를 바라보았다.
“내가 모두 지켜줄게. 너도 식구들도 말이야.”
“아니요. 제가 모두 지켜 보일게요.”
“하하하. 그래. 그럼 믿고 있을게.”
곽휘운은 시원하게 웃음을 흘리며, 다시금 발걸음을 재촉해 나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백리화는 짙은 미소를 지었다.
어찌될지 모르는 앞날이지만, 곽휘운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좋았다.
‘이번 일이 끝나면…….’
백리화는 이번 일이 끝나면 제대로 마음을 표현하기로 하였다.
주연희와 위하윤, 현소월이라는 경쟁자가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그저 이 깊은 마음을 전하고 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다들 나랑 같은 생각이겠지?’
하지만 백리화는 분명 다른 여인들도 자신과 같은 생각일 것이라 확신했다.
그녀들도 이번 일이 끝나면 곽휘운에게 마음을 표현할 터였다.
‘그 싸움에서는 절대로 지고 싶지 않은데…….’
백리화는 그 싸움에서 만큼은 절대로 지고 싶지 않았다.
물론 이 모든 생각들은 천살교와의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가정 하에 이루어지는 것들이었다.
패배한다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절대로 이기겠어.’
* * *
정마맹의 출정.
모든 준비를 끝마친 정마맹이 전쟁을 치룰 곳으로의 출정을 시작했다.
따로 거창한 출정식은 하지 않았다.
그저 승리만을 다짐하고 출발을 하였다.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저벅. 저벅. 저벅. 저벅.
마차와 말들이 움직이는 소리와 발걸음 소리만 울려 퍼지는 행렬.
행렬을 이루는 무인들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비장했다.
무림의 모든 것을 건 전쟁.
절대로 질 수 없는 이 전쟁에 다들 비장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어찌 될 것 같은가?”
곽휘운의 곁에 다가와 이 싸움이 어찌될 것 같은지 묻는 위강천.
말을 하는 위강천의 표정이 조금 굳어 있었다.
계속해서 들려오는 정보원들의 이야기 때문이었다.
‘천살교의 세력이 생각보다 거대합니다. 거기에 더해 알 수 없는 초고수들도 새롭게 나타났습니다.’
천살교에 합류한 문파들이 많은 것도 있겠지만, 천살교 자체의 전력이 엄청났다.
정말 수없이 많은 무인을 거느린 그들.
정보에 의하면 무인들의 대부분이 강시라는 듯싶었다.
강시라면 꽤나 상대하기 힘든 적이었다.
특히나 실력이 부족할수록 강시의 단단한 몸체는 그 어떤 무기보다도 위력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새롭게 나타난 초고수들.
그 수는 모두 일곱이었는데, 하나같이 흉흉한 기세를 숨기지 않고 뿜어대고 있다고 하였다.
천살교가 준비한 자들이니 필히 범상치 않은 실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 뻔하였다.
무인들간의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가장 큰 요소는 바로 초고수들의 승패였다.
정도와 마도가 손을 잡음으로 초고수의 수가 늘어나 다행이었지만, 문제는 천살교 초고수들의 실력을 정확히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얼마나 강한지, 어떤 것을 숨기고 있는지 전혀 몰랐으니 말이다.
“모든 일은 지나봐야 아는 것 아니겠습니까? 다만…….”
“다만?”
“저희가 이길 것이란 건 확신할 수 있습니다.”
말을 하는 곽휘운의 두 눈이 확신으로 빛나고 있었다.
보는 사람마저 절로 확신이 들게끔 하는 두 눈.
위강천은 그 두 눈을 보고 옅게 미소 지었다.
“내 딸을 부탁하마.”
“걱정 마십시오.”
위하윤을 부탁한다는 말에 자신 있게 대답하는 곽휘운.
위강천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금 본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위강천이 떠나고 이번에는 검마가 곽휘운에게 다가왔다.
“흘흘흘. 다들 조금은 긴장을 하는 것 같군 그래.”
“당연할 겁니다. 많은 것이 걸려 있는 싸움이니 말입니다.”
“흘흘. 그렇지. 많은 것이 걸려 있지.”
검마도 그 사실을 잘 알았다.
그래서 검마 그마저도 조금은 긴장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긴장된 와중에도 조금 다른 이들이 있었다.
바로 백리세가에서 온 이들이었다.
그들은 다른 이들과 다르게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없었다.
검마는 그 이유가 곽휘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이 아이를 믿는다는 것이겠지.’
절대적인 믿음.
백리세가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곽휘운이라면 그런 믿음을 보여도 될 만한 자라고 생각했다.
“모든 일이 끝나면 이제 무얼 할 건가?”
“하하. 객잔 주인이 무얼 할 것이 따로 있겠습니까? 객잔을 운영을 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객잔 주인이라……. 흘흘. 재미있구나.”
검마는 곽휘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미 천하제일의 힘을 가지고 있는 아이였다.
원한다면 정말 무림을 손에 쥘 수도 있을 터.
그런데 그런 힘을 가지고, 객잔 주인을 한다고 한다.
보통의 무인들과는 다른 아이.
곽휘운은 검마에게 신선한 재미를 주었다.
“이제 다 온 것 같구나.”
“예. 저곳입니다.”
곽휘운과 검마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전쟁을 치룰 곳에 도착했다.
주변의 나무하나 찾아보기 힘든 넓은 평야.
정마맹 무인들은 평야에 도착하자마자 빠르게 주변을 정찰하고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전쟁에서 조금이라도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였다.
척. 척. 척. 척. 척. 척. 척.
그때 멀리서부터 무언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칠 것없이 흉흉한 살기를 내뿜으며 다가오는 거대한 행렬.
굳이 그들이 누구인지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천살교.
저 거대한 행렬은 바로 천살교였다.
* * *
가장 거대한 마차에 앉아 바깥 상황을 바라보는 신종악.
신종악은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보고에 천천히 마차를 빠져나왔다.
“저들인가.”
“예. 그렇습니다.”
어느새 대장로가 다가와 신종악의 옆에 붙어 섰다.
그리고 그 옆으로 다른 칠혈제와 혈뇌, 그리고 천살교에 들어온 문파의 수뇌들이 늘어섰다.
그들을 한번 훑어보고는 정마맹의 진영으로 눈길을 돌리는 신종악.
그의 두 눈에는 혈기가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별 볼일 없는 놈들이군.”
정마맹을 본 신종악의 평가였다.
그는 특히 천마와 무림맹주를 보고는 조소를 머금기까지 하였다.
지금의 자신에게 턱없이 부족한 자들.
“저 놈이 곽휘운이라는 놈이냐?”
“예. 맞습니다.”
정마맹의 가장 앞에 서 있는 젊은 무인.
신종악은 그가 곽휘운이라고 짐작했다.
정마맹에 있는 이들 중 유일하게 제대로 힘을 측정할 수 없는 자.
그렇다는 것은 꽤나 실력이 있다는 것일 터였다.
“저놈만 내가 죽이면 끝나겠군.”
하지만 신종악은 자신이 질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이곳으로 오는 동안 이 몸에 적응을 하고, 원하던 수준을 모두 이루어 내었다.
이 힘을 이루어 낸 이상 자신은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천홍이 다시 돌아온다고 해도 말이지.’
과거 자신이 넘지 못했던 자.
그가 다시금 살아 돌아온다고 해도, 지금의 힘이라면 어렵지 않게 이길 수 있을 터였다.
그만큼 지금 신종악은 자신의 힘을 믿었다.
“자, 그럼 천천히 간부터 봐볼까. 너무 빨리 이 흥을 끝내기는 싫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