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195화>
“어디서 맞이하는 것이 좋겠는가?”
정마맹의 모든 주요인물이 모인 회의.
다들 모여서 천살교를 어디에서 맞이하여 전쟁을 치러야 하는지를 의논하는 중이었다.
아무리 관의 묵인이 있다고 해도, 민가가 있는 곳에서 싸운다면, 그들도 좌시하지 않을 터.
결국 인적이 없는 곳에서 싸워야만 하였다.
천살교가 오는 길을 보았을 때, 여러 후보지가 있었는데, 그중 어느 한곳을 딱 정하기가 힘들었다.
결국 모든 결정은 정마맹의 맹주인 곽휘운에게 향했다.
‘이런.’
곽휘운은 이런 중대한 결정을 하는 것이 어려워 이런 자리가 싫었는데, 결국 이런 상황이 오고 말았다.
자신의 결정에 따라 정말 많은 것이 달라질 터였다.
어쩌면 승패가 좌우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결정에 너무나 많은 무인들의 목숨이 달려 있기도 하였다.
‘어렵군.’
추려진 몇 곳의 후보지.
모두 장단점이 확실한 곳들이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천살교도 그곳들을 분명 격전지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무언가 장난을 쳐 놓았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정마맹의 선발대가 후보지를 정찰하러 떠난 후에 연락이 다시금 되돌아오지 않고 있었으니 말이다.
중간에 연락책들만 죽인 것일지 몰랐지만, 그럼에도 그냥 나아가기에는 너무나 찜찜한 상황이었다.
‘차라리 이곳 항주에서 맞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어.’
곽휘운은 정마맹의 본거지인 이곳 항주에서 그들을 맞이하는 것이 나을지 모르겠다는 판단을 하였다.
항주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넓은 지역이 존재했다.
주변에 민가가 없는 아주 넓은 평야지역.
분명 한바탕 싸움을 하기에는 적합한 곳은 맞았다.
문제는 천살교가 그곳으로 와 주냐는 것이었다.
“제 생각에는 이곳 항주에 있는 곳에서 맞이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음?”
“아무래도 이곳 항주 주변은 그들이 손을 쓰지 못했을 테니 말입니다.”
“그렇군. 분명 일리가 있는 생각일세.”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과연 그들이 저희 뜻대로 움직여 주냐는 것입니다.”
“천살교는 우리가 있는 곳으로 반드시 올 것이네.”
곽휘운의 말에 대답하는 이는 바로 천마였다.
천마는 곽휘운이 과연 천살교가 이곳으로 오냐는 물음에 확신을 가지며 이곳으로 올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런 걸 보내왔거든.”
천마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었다.
작은 크기 쪽지 하나.
곽휘운은 그 쪽지를 받아들고 바로 읽어 보았다.
- 감시병들은 그만 보내라. 네놈들을 죽이는 것에 술수는 부리지 않을 거니까. 네놈들이 불안하다면, 네놈들이 원하는 곳에 자리를 잡아라. 찾아가서 모두 피로 씻어 줄 테니 말이다.
천살교에서 온 쪽지.
바로 방금 전 정찰을 나갔다가 살아 돌아온 천마신교 무인이 가지고온 것이었다.
아마도 이 쪽지의 전달을 위해서 일부러 살려 보낸 것일 터였다.
‘자신만만하군.’
천살교는 지금 자신들의 힘에 자신감이 넘치는 듯싶었다.
분명 최근까지 그들이 큰 사건들을 일으키기는 했어도, 모두 제대로 된 힘을 보여 주지 못한 그들이다.
그래서 분명 앞선 사건들만 보았을 때 천살교가 이렇게 자신감을 드러내는 것은 어찌 보면 우스울 수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곽휘운은 이번에는 확실히 천살교가 달라졌다고 느꼈다.
그 이유는 최근 들려오는 정보들 때문이었다.
‘천살교의 혈주 제석종이 달라졌다.’
천살교가 웅크렸던 몸을 일으키고 전진을 시작한 뒤, 수많은 감시자들과 세작들이 활동을 하며 정보를 수집했는데, 그들이 모두 공통적으로 제석종의 변화를 얘기했다.
예전의 제석종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는 것이었다.
예전의 제석종은 혈주의 자리에 있었기는 했지만, 혈주다운 모습을 보여 주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의 제석종은 마치 각성이라도 한 듯이 천살교를 완전히 휘어잡으며, 그야말로 혈주다운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갑자기 사람이 달라졌다? 아마도 소혼대법일거다. 신종악 그놈을 불러 온 것이겠지.]
천홍은 갑자기 제석종이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말에 소혼대법을 이야기하였다.
소혼대법(召魂大法).
혼을 불러오는 일체의 술법을 소혼대법이라 불렀다.
과거 천마신교에도 수많은 소혼대법들이 있었고, 신종악이라면 분명 준비를 했을 것이라 천홍은 생각했다.
물론 다른 혼이 깃들었을 수 있지만, 천홍은 신종악이라 확신했다.
얼마 전 자신의 혼이 떨리는 느낌을 느꼈으니 말이다.
천홍은 아마 곽휘운을 만나고, 자신이 깨어난 것도 다 이번을 위한 것이라 생각했다.
과거 신종악과의 악연을 정리할 기회 말이다.
[네가 신종악을 막는다면, 아마 본좌도 완전히 성불하겠지.]
‘반드시 성불을 시켜 드리겠습니다.’
[좋아.]
곽휘운은 천홍의 성불을 약속했고, 천홍은 그것으로 만족했다.
이제는 천홍도 그만 쉬고 싶었으니 말이다.
“그럼. 항주에 있는 곳으로 자리를 잡는 것으로 괜찮겠습니까?”
“좋네.”
“그렇게 하겠네.”
천마와 위강천의 동의가 떨어지고, 다른 수뇌들의 동의도 떨어졌다.
그리고 위치가 정해지자마자 다들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나의 거대한 세력이 움직이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들이 생각보다 많았으니 말이다.
* * *
“흐음.”
모든 것들이 정해지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곽휘운.
곽휘운은 자신의 침상에 가만히 앉아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거대한 전쟁.
이 싸움으로 무림의 향방이 결정될 것이다.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싸움.
그렇기에 곽휘운은 자신에게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모든 것이 완벽해야만 하였다.
그래야만 자신을 바라보는 모두를 지킬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단 한 사람도 죽게 하지 않겠어.’
곽휘운은 정마맹의 모두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구할 수 있는, 구해야만 하는 사람들만을 확실하게 구할 생각이었다.
그 사람들은 휘운객잔과 백리세가의 식구들.
그들을 완벽하게 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힘이 필요했다.
지금의 실력보다도 더욱 더 강한 힘이 필요했다.
[더 강해질 생각이냐? 조심해라. 그러다가 우화등선한다.]
‘하하. 저 같은 놈이 우화등선이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곽휘운은 자신의 손에 뭍은 피가 너무나 많기에 우화등선은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긴. 우화등선은 산속에 틀어박혀서 혼자 검만 휘두르는 놈들이나 하는 것이지.]
‘맞습니다.’
곽휘운은 천홍의 말에 동의를 하며, 천천히 무아지경에 빠져 들어갔다.
깊숙한 곳으로 흘러가는 곽휘운의 정신.
그리고 그 속에서 곽휘운은 자신을 마주했다.
검을 들고 가만히 서있는 자신.
‘자. 과연 나의 검은 어떤 것인지 보여다오.’
마치 다른 사람을 지켜보듯 자신을 바라보며 말을 하는 곽휘운.
그러자 가만히 서있던 무의식속의 곽휘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휙. 휘익. 휙. 휙.
아주 기초적인 검의 움직임을 보여 주는 자신.
그리고 차례로 지금까지 곽휘운이 배웠던 모든 무공을 펼쳐 내기 시작했다.
검(劍), 권(拳), 장(掌), 각(脚), 궁(弓) 등…….
쉴 새 없이 펼쳐지는 수많은 무공.
곽휘운은 스스로 바라보며 자신이 이토록 많은 무공을 익혔다는 것을 새삼 다시금 느꼈다.
그리고 이것들을 하나로 모은 휘운신공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백화빙검이 자유롭게 움직이더니, 순식간에 활로 변하기도, 창으로 변하기도 하였다.
모습마저 자유롭게 바꾸는 백화빙검.
그리고 이렇게 모습이 변하던 백화빙검이 갑자기 사라지기 시작했다.
촤아아아악.
아니, 사라진 것이 아니라 가루가 되어 사방을 흩날리기 시작했다.
마치 구름과도 같은 모습인 휘운(輝雲)의 형태.
휘운에서 백화빙검의 형태로 굳어졌다가, 다시금 휘운의 형태로 돌아간 것이다.
그리고 이 휘운의 형태에서 백화강기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치 새하얀 구름이 타오르는 것처럼 변하더니, 더없이 밝은 빛을 보여 주며 곽휘운의 주변을 휘돌기 시작했다.
백화휘운(白火輝雲).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곽휘운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백화휘운.
백화휘운은 검이자, 창이고, 궁이자, 권이었다.
모든 것이 될 수 있고, 모든 것을 동시에 펼칠 수 있는 형태.
‘아직 부족하다.’
곽휘운은 이 백화휘운을 만들어 내고도 계속해서 무공 수련을 계속했다.
이제 천살교와의 전쟁이 정말 코앞으로 다가왔으니, 시간이 있을 때에 조금이라도 더 강해져야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무의식에 빠져 수련하는 곽휘운의 몸 주변에는 어느새 백화휘운이 휘돌고 있었고, 그의 몸에서는 은은한 광채마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다른 이가 보았다면, 곽휘운이 우화등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만한 모습이었다.
다행인지(?) 지금 곽휘운의 모습을 보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천홍만이 알고 있을 뿐이었다.
[성불은 문제없겠구나.]
* * *
“혈주님. 정마맹이 움직인다는 보고입니다.”
“그래? 좋군, 우리도 움직이자.”
“존명.”
정마맹이 움직였다는 부하의 보고에 신종악은 잠시 멈춰 있던 행렬을 움직였다.
그는 일부러 그들을 기다려 주고 있었다.
그들이 최상의 노력을 다하여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말이다.
완전한 절망.
이것이 바로 신종악이 노리는 것이었다.
“지금 정마맹이란 놈들 중에 쓸 만한 놈들이 누가 있다고 했지?”
“천무제와 나천괴, 천마와 검마, 도마 그리고 정마맹 맹주 곽휘운 정도입니다.”
신종악은 대장로에게 정마맹 전력 중 최고 실력자들을 물었다.
그들은 자신이 직접 죽일 생각이었으니 말이다.
“그중 지금 정마맹 맹주인 곽휘운이 가장 요주의 인물입니다. 정확한 힘을 측정하지 못하였으니 말입니다.”
“호오? 그래? 내 듣기로는 젊다고 들었는데, 재미있겠군. 그런 무림의 영웅이 있어 줘야 재미있지.”
신종악은 재미있겠다면 미소를 지었는데, 미소라기에는 너무나도 섬뜩한 미소였다.
“그런데 네 그 팔은 아무래도 극혈마수인 것 같은데, 제대로 쓰지를 못하는 것 같군.”
“죄송합니다.”
“나름 쓸모는 있으니, 내가 제대로 쓰게 만들어 주마.”
우드드드득.
“끄아아악!!!”
신종악이 대장로의 극혈마수를 잡더니 그대로 비틀어 버렸다.
신종악의 내공과 함께 극혈마수가 비틀리자 엄청난 고통이 대장로에게 찾아왔고, 대장로는 비명을 질렀다.
“흠. 됐다. 이제는 좀 더 쓸 만할 거다.”
신종악이 손을 놓자 고통이 사라졌고, 대장로는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자신의 극혈마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극혈마수가 완전히 자신의 몸과 하나가 되어버린 것을 느꼈다.
마치 자신의 본래 팔처럼 말이다.
“가, 감사합니다.”
“감사보다는 쓸모를 다해라.”
“존명!”
대장로는 아직까지 고통이 가시지는 않았지만, 신종악의 힘을 또다시 본 것에 감격했다.
대장로가 보았을 때 신종악은 정말로 무림의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