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194화>
정마연합이 확고한 동맹을 맺은 뒤 떠오른 문제점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 연합을 지휘할 지도자가 없다는 것이었다.
무림맹주가 한다면 천마신교 측에서 불만이 나올 것이고, 천마가 한다면 무림맹 측에서 불만이 나올 터였다.
그렇다고 두 명의 지휘로 움직이기에는 연합을 실시한 이유가 옅어질 터.
그래서 두 세력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했다.
수많은 이가 거론되었지만, 결국 한 명으로 좁혀졌다.
양 측 수뇌부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인물이 있었다.
소신성 곽휘운.
물론 곽휘운을 잘 모르는 이들의 반대가 있었지만, 무림맹주와 천마의 적극적인 지지로 그가 연합의 지도자의 후보가 되었다.
물론 이것은 곽휘운의 동의는 얻지 않은 상황.
곽휘운이 거절을 한다면, 모두 없던 이야기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 그와 가장 가까운 사이인 남궁태산을 곽휘운에게 보낸 것이다.
“곽휘운, 네가 정마맹의 맹주 좀 맡아라.”
정마맹(正魔盟).
정마연합의 이름.
천살교를 없앨 때까지의 한시적인 동맹이었다.
그리고 곽휘운에게 정마맹의 지도자인 맹주(盟主)의 자리를 권하는 남궁태산이었다.
마치 귀찮은 물건 맡기듯 맹주 자리를 맡으라고 말하는 남궁태산.
곽휘운은 그의 말에 바로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런 자리는 맞지 않는 사람이네.”
“그런 놈이 멸마대 대주는 어떻게 했냐?”
“대주와 맹주는 다르지 않은가.”
“뭐가 다르냐? 대가리라는 건 똑같은데.”
곽휘운은 딱히 남궁태산의 말에 반박을 할 수는 없었다.
맞는 말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틀린 말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곽휘운은 맹주의 자리를 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그런 자리에…….”
“맹주님이랑 천마님이 네가 맹주를 맡으면 혜택을 주기로 하셨다.”
“음?”
혜택이라는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는 곽휘운.
남궁태산은 곽휘운의 반응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혜택에 곽휘운이 관심을 가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정확히 적중했으니 말이다.
“무림맹과 천마신교의 권역에서 휘운객잔의 분점을 열어 주고, 확실한 보호까지 해 주신다고 했다.”
“!!”
분명 거부하기에는 너무나 달콤한 제안이었다.
무림맹과 천마신교가 나서서 분점까지 지어 주고, 비호를 해 준다면 더할 나위 없는 호재이긴 하였다.
이대로만 된다면, 곽휘운이 생각했던 천하제일 객잔의 꿈에 빠르게 성큼 다가설 수 있을 터였다.
“거기에 더해서 백리세가에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지원까지 아끼지 않는다고 하셨다.”
“흐음.”
이번 천살교의 일이 끝나면 백리세가는 분명 무림에 아주 큰 관심을 받을 터였다.
지금까지 곽휘운과 식구들의 힘으로 이렇게까지 성장한 백리세가지만, 분명 이들 만으로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관심과 도전들이 다가올 터였다.
그때에 무림맹의 지원은 분명 아주 큰 힘이 될 터였다.
이것 또한 거절하기 힘든 혜택이었다.
“자, 어떻게 할래?”
“좋네. 내가 하지.”
“크크크. 그래. 그럴 줄 알았다.”
곽휘운은 크게 고민도 하지 않고 수락을 하였다.
천살교를 없앨 때까지 잠시만 유지되는 정마맹이다.
당연히 맹주의 자리도 그때까지만 일 테고, 잠시만 맡으면 그만인 일이다.
“그런데 내가 맹주를 맡는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넌 그냥 맹주라는 자리에 앉아 있기만 해도 될 걸?”
곽휘운이 맹주의 자리에 앉음으로 인해 정마맹은 그 자체로 힘을 얻는다.
이미 천살교는 곽휘운의 힘을 알고 있다.
곽휘운이 정마맹의 맹주가 되었다는 것을 듣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을 터였다.
본래 맹주란 자리는 그런 것이었다.
직접 일을 처리하기 보다는, 위엄을 보여 주는 자리 말이다.
“알겠네. 그럼 맹주를 하겠다고 일러 드리게나.”
“응? 지금 가서 연설해야 하니까 빨리 준비해.”
“……?”
곽휘운은 그것이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남궁태산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연설이라니?
“맹주가 됐는데 그냥 넘어 가냐?”
“하아…….”
곽휘운은 예상치 못한 연설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 서서 말을 하는 것.
곽휘운이 가장 싫어하는 일 중에 하나였다.
“뺄 생각하지 마라. 이미 다들 모여 있으니까.”
남궁태산은 곽휘운이 연설을 싫어하는 것을 알았기에, 사람들을 전부 모이게 한 뒤에 이렇게 이야기를 한 것이었다.
그래야만 곽휘운이 마지못해 연설을 할 테니 말이다.
“가세나.”
곽휘운은 내키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남궁태산을 따라 나섰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걸음을 옮길수록 수많은 무인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앞에는 커다란 단상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 단상에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네 사람.
무림맹주, 나천괴, 천마, 검마.
그리고 그들 사이의 중간 자리가 비어 있었다.
“자, 저기가 네 자리다.”
남궁태산이 일러주지 않아도 곽휘운은 저 자리가 자신의 자리임을 알 수 있었다.
곽휘운이 자리에 서자 모든 시선이 곽휘운에게 향했다.
그들 중 몇은 곽휘운의 힘을 알고 있는 자들이었고, 또 몇은 곽휘운의 힘을 소문으로만 들은 자들이었다.
그래서 신뢰와 불신의 눈빛이 동시에 곽휘운에게 향했다.
“안녕하십니까. 곽휘운이라 합니다.”
곽휘운은 모든 시선을 담담하게 받아 내며 말을 꺼내었다.
주변에 울려 퍼지는 곽휘운의 목소리.
맨 앞의 사람부터 가장 뒤에 있는 사람까지 모두에게 똑똑히 들리는 목소리.
이것만으로도 곽휘운의 내공이 범상치 않음을 알려 주는 것이었다.
“현 무림을 위협하는 천살교를 물리치기 위해 이렇게 힘을 모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곽휘운의 연설이 이어졌고, 사람들은 곽휘운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호소력 짙으며 신뢰감이 절로 생기는 목소리.
그렇게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곽휘운의 연설이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 제가 가장 앞에 서서 그들을 벌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저를 믿고 따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곽휘운이 말을 멈추고 백화빙검을 빼어 들었다.
그러자 수많은 백화빙검이 나타나 연설장 주변을 둘러쌌다.
우우우우우웅.
그리고 곽휘운의 머리 위.
정말로 전각 하나와 맞먹는 크기의 거대한 백화빙검이 나타났다.
“허어…….”
“이럴 수가……!”
사람들은 곽휘운의 힘을 보고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눈을 감지 못했다.
압도적인 모습.
곽휘운의 실력에 의문을 가졌던 이들도 지금 이 광경에 모든 의문을 접어 두었다.
스으으으윽. 푸우우우욱.
가볍게 움직인 거대한 백화빙검이 그대로 땅을 뚫고 들어가 땅에 박혔다.
너무나도 가볍게 땅을 뚫고 들어가는 백화빙검.
무인들은 이 모습에 또 한 번 놀랐다.
“이만 연설을 마치겠습니다.”
곽휘운은 자신이 힘을 보여 줘야 이들의 신뢰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일부러 과하게 힘을 쏟아 낸 것이었다.
곽휘운이 단상을 내려가는 동안 일순 주변에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아주 잠시 뒤 사람들의 입에서 큰 함성이 터져 나왔다.
“정마맹 만세!”
“이기자! 이기자!”
사기가 충천된 정마맹의 무인들.
이것이 바로 곽휘운과 같은 절대적인 무인이 가지는 힘이었다.
지금 정마맹 무인들은 곽휘운의 힘을 보고 자신들이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후우. 차라리 적과 싸우는 게 낫겠군.”
곽휘운은 싸울 때도 안 나던 땀이 손에 맺힌 것을 느꼈다.
역시나 자신에게 이런 자리는 어울리지 않았다.
“생각보다 잘하시네요.”
“잘하기는 무슨…….”
뒤쪽에서 지켜보고 있던 백리화가 재빨리 다가와 곽휘운을 칭찬했다.
곽휘운은 아니라고 했지만, 백리화가 보기에 곽휘운의 연설은 분명 훌륭했다.
“나는 네가 방금 그런걸 보여 주고, 숨 한번 거칠어지지 않은 게 놀랍다.”
이번에는 남궁태산이 다가왔다.
남궁태산은 조금 전 곽휘운이 엄청난 내공을 소모해서 보여 준 광경을 보고 솔직히 속으로 헛웃음을 흘렸다.
도대체 사람이 저 정도의 내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런 엄청난 광경을 보여 준 곽휘운은 숨 한번 거칠게 쉬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사람이지만 사람이 아님이 분명했다.
“이제 백리세가도 연설을 해야 하지 않겠어?”
“네에? 제가요?”
“그럼 누가 해? 화아 너가 가주인데.”
각 문파와 세가들도 이번에 천살교와의 전쟁 전에 다들 문주와 가주들이 일장 연설을 하였다.
그렇다면 백리세가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백리화는 당연히 연설을 해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곽휘운의 말에 매우 당황했다.
그런 백리화의 모습에 씨익 미소 짓는 곽휘운.
어린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웃음이었다.
“설마 오라버니가 당했다고 저도 시키시려는 건 아니죠?”
“하하. 그럴 리가.”
* * *
천살궁의 거대한 광장.
그곳에는 지금 수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흉흉한 기세를 풀풀 풍기며 서 있는 그들.
이들의 엄청난 투기와 살기에 일반 사람은 물론 동물들도 근처에 접근하지도 못했다.
“이제 우리는 무림의 정화를 시작한다.”
가장 위에서 입을 여는 이는 제석종의 몸을 차지한 신종악이었다.
신종학은 무시무시한 안광으로 자신의 아래에 있는 무인들을 훑어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
“너희의 뼈와 살이 부셔져도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목숨을 던져라.”
“존명!”
마치 집단으로 주술에 걸린 듯 대답하는 천살교도들.
그런 그들의 모습에 천살교에 가담했던 문파들은 소름이 돋았다.
이들은 분명 정상이 아니었다.
‘이미 도망치기에는 늦었다.’
하지만 이미 이들에게서 도망치기는 늦은 상황.
좋든 싫든 이들과 함께 하는 수밖에 없었다.
“문을 열고 나가라! 피의 길을 펼쳐 그들을 정화하라!”
“존! 명!”
“와아아아아!!”
신종악의 마지막 외침에 일제히 천살교도들과 가담한 무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그들의 첫 걸음이 시작된 것이다.
그들을 가로막는 모든 것들을 피로 씻어내 버릴 그 걸음이 말이다.
척. 척. 척. 척. 척. 척.
마치 잘 훈련된 군대처럼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전율 그 자체였다.
드디어 천살궁을 떠나 움직이는 천살교.
그리고 이 소식은 발 빠르게 퍼져나가 항주에 있는 정마맹에게도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