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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운객잔-193화 (193/203)

<휘운객잔 193화>

이장로는 가만히 곽휘운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수많은 제자를 키운 그녀였지만, 지금 눈앞의 곽휘운만 한 제자는 단연코 없었다.

물론 그를 제자라고 하기에는 이미 자신보다 실력이 뛰어났지만, 무공을 가르친다는 것 자체로 제자라고 부를 수는 있을 터였다.

“너에게 내 무공이 필요하느냐?”

“많은 것을 알수록 좋지 않습니까?”

“그래. 맞는 말이구나.”

이장로는 천천히 검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너라면 보는 것으로도 어떤 것일지 알 수 있을 터.”

평소와는 다르게 아주 천천히 무공을 펼치기 시작했다.

곽휘운이 자세히 볼 수 있도록 말이다.

지금 곽휘운이라면 그저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이 무공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을 터다.

화류환원공.

곽휘운의 무극과도 비슷한 무공.

곽휘운은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이장로의 무공을 지켜보았다.

‘역시나, 역사와 세월은 무시할 수 없구나.’

곽휘운 자신의 깨달음으로 만들어 낸 무극.

물론 그 자체로 이미 훌륭한 초식이었지만, 이장로의 화류환원공을 보자 무극의 잘못된 점들이 보였다.

아주 오랜 세월 수많은 이의 손에 의해 다듬어진 화류환원공은 더없이 매끄럽고 깔끔했다.

곽휘운은 과연 역사와 세월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란 걸 느꼈다.

그리고 이 화류환원공을 평생토록 수련한 이장로도 무시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자, 어떠냐?”

“감사합니다.”

“그럼 한번 보여 보거라.”

이장로의 말에 곽휘운이 백화빙검을 손에 쥐어 들었다.

그리고 조금 전 본 것을 흡수한 무극을 펼쳐 내었다.

- 휘운신공(輝雲神功). 진 오의. 무극(無極).

곽휘운의 검이 움직이자 주변의 모든 것들이 그의 검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이장로는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검기를 곽휘운에게 날렸다.

슈왁!

빠르고 날카롭게 곽휘운을 향해 날아드는 검기.

가볍게 날린 검기라기에는 그 힘과 속도가 무시무시했다.

마치 무방비처럼 보이는 곽휘운이 그대로 검기에 갈라질 것만 같을 정도.

스으으으윽.

하지만 곽휘운의 근처에 도달한 이장로의 검기가 그대로 곽휘운에게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는 마치 아무것도 없다는 듯이 완전히 소멸한 듯 보였다.

하지만 그저 소멸한 것은 아니었다.

곽휘운의 백화빙검의 주위에 기운으로 변해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조금의 흘림도 없이 완벽히 이장로의 검기를 담아내는 곽휘운.

‘어쩌면 제자로 들이지 않는 것이 나았겠구나.’

이장로는 터무니없는 곽휘운의 흡수력을 보고는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평생을 이루어낸 것을 그저 보는 것으로 완벽히 흡수해 내었다.

만약 곽휘운이 정식 제자였다면, 회의감이 들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라, 자신이 평생토록 고생해서 이룬 것을 누군가가 그저 보는 것만으로 완전히 흡수한다면 회의감이 들지 않겠는가?

그래서 이장로는 곽휘운을 제자로 삼지 않은 것이 나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었다.

“너의 깨달음을 한번 보여 주겠느냐?”

“물론입니다.”

곽휘운은 자신이 검으로 보았던 가장 최고의 깨달음을 이장로에게 보여 주기로 하였다.

그녀가 자신에게 무공을 가르쳐 준 보답이라고 할까?

- 휘운신공(輝雲神功). 진 극의. 태극(太極).

무극으로 인해 곽휘운의 검에 돌던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도 이장로가 날렸던 검기와 똑같은 형태로 말이다.

게다가 그 검기에 곽휘운의 힘까지 더해져 있었다.

이장로는 이 일격을 보고는 그대로 검을 내렸다.

‘막을 수 없다.’

곽휘운의 검은 지금 자신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검기와 완전히 똑같아 보였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것이 달랐다.

곽휘운의 모든 깨달음이 더해진 검기.

이장로는 뛰어난 무인이기에 곽휘운의 검기에 담긴 힘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것이었다.

지금 이장로의 눈에는 곽휘운의 검기엔 검으로 담을 수 있는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서걱.

이장로의 뒤에 있던 돌기둥이 깔끔하게 반으로 잘렸다.

격참(隔斬).

검기로 격공의 수를 쓴다?

이장로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어떻습니까?”

“내가 왜 검을 잡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이장로의 솔직한 대답이었다.

지금 자신이 검을 잡았던 것이 모두 허망하게 느껴졌다.

곽휘운 앞에서는 자신의 모든 깨달음이 부질없어 보였다.

“검에는 끝도, 정답도 없지 않습니까?”

“호호호. 그래. 네 말이 맞다.”

곽휘운의 말에 웃으며 대답하는 이장로.

이장로는 방금 곽휘운의 말에 큰 깨달음을 얻었다.

검의 길에는 끝남도, 정답도 없었다.

서로 동시에 검을 집어넣는 곽휘운과 이장로.

더 이상의 대련은 필요 없다는 표시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얼추 대련은 끝난 듯싶었다.

“이제 서로 상대를 바꿔서 해 보시겠습니까?”

“흘흘. 좋지.”

곽휘운의 말에 동의하는 검마.

아직 시간은 조금 남아 있었다.

그동안 최대한 서로의 실력을 두루두루 알아보는 것이 좋을 테니, 서로의 상대방을 바꾸어가면서 대련을 계속해서 이어 갔다.

* * *

천살교의 준동.

웅크리고 있던 천살교가 드디어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다시 일어섬과 동시에 그들을 지지하던 모든 문파들이 천살교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무림맹으로 돌아선 곳들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지 천살교를 따르는 문파들은 무림에 많이 산적해 있었다.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로 뭉치는 천살교 세력.

그들은 마치 그것을 과시하려는 듯 숨기지도 않고, 오히려 무림에게 크게 공표를 하기 시작했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오늘부터 무림을 새롭게 정화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무림맹과 천마신교 연합을 치우는 것부터 시작이다.’

그들은 당당하게 전쟁을 선포했다.

목표는 무림맹과 천마신교의 연합, 이른바 정마연합이었다.

물론 정마연합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당연히 모든 전력을 소집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규모의 대 전쟁의 시작.

이로 인해 지금 항주는 그 어느 때보다도 수많은 무인으로 북적이고 있었다.

이정도 무인들이 모인다면 관에서도 좌시하지는 않지만, 곽휘운의 힘으로 모든 것을 무마시킬 수 있었다.

절상성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자랑하는 절강성주 서무제가 곽휘운의 요청에 용인을 해 준 것이다.

물론 그 대가로 곽휘운은 모종의 부탁을 들어주어야 했지만 말이다.

어찌되었건 정마연합은 항주에 공식적으로 모든 세력들을 불러 모을 수 있었고, 그 수는 무림에 전례가 없을 정도였다.

특히나 정마가 연합을 한 것은 무림사를 전부 뒤져도 없는 일이었다.

한자리에서 보기 힘든 정마 고수들이 항주에 가득했다.

“후아. 정말 이렇게 많은 무인들을 한자리에서 볼 줄은 몰랐어요.”

지금 항주에는 무인들이 머물 만한 곳이 부족했기에, 머물 수 있는 모든 곳에는 무인들이 존재했다.

그래서 휘운객잔과 백리세가도 지금 무인들로 꽉 차 있는 상태였다.

백리화는 사방 어느 곳을 보아도 무인들만 있는 이 광경이 생소했다.

물론 이런 광경은 그 누구에게도 생소한 광경이기는 했다.

곽휘운마저도 이런 광경은 처음이었으니 말이다.

무림맹에서 봐 왔던 무인들보다 지금 보고 있는 무인들이 훨씬 더 많았다.

“하하. 이 기회에 친목도 더 다지고 해 봐.”

“네. 그러긴 해야죠.”

확실히 지금처럼 이렇게 많은 무인이 모이는 상황은 흔치는 않을 터.

이 기회에 다른 문파나 무인들과 이런저런 친목을 만들어 두면 좋을 터였다.

물론, 천살교와의 싸움에서 진다면 아무런 소용도 없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 참에 좋은 남자도 찾아보고.”

“네, 네? 그건…….”

백리화는 곽휘운이 좋은 남자를 찾아보라는 말에 크게 당황하며 대답을 했다.

그리고는 슬쩍 곽휘운을 원망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내 마음을 알면서…….’

곽휘운은 백리화의 마음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이렇게 대놓고 다른 남자를 찾아보라는 것.

이것은 어쩌면 완곡한 마음의 거절이었다.

그렇기에 백리화의 두 눈에 원망이 담긴 것이다.

“계속해서 말하지만, 나는 분명 좋은 남자가 아니야.”

“그래도 좋아요.”

“…….”

이제는 직접적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백리화.

백리화는 지금 뜸을 들였다가는 곽휘운을 영원히 놓칠 것이란 직감이 들었다.

그래서 부끄러움을 이겨 내고 직접적으로 나선 것이다.

“이 이야기는 모든 일이 끝나면 다시 하자.”

“절대 놓치지 않을 거예요.”

곽휘운은 슬쩍 미소만 지을 뿐 대답은 하지 않았다.

백리화는 일단 곽휘운이 더 이상 부정하면서 자신을 밀어내지 않은 것에 만족했다.

“야, 곽휘운!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그때 무인들을 헤치면서 아주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마어마한 기세를 내뿜으며 등장하는 인영.

바로 검성 남궁태산이었다.

남궁태산은 보란 듯이 엄청난 기세를 흘렸고, 그 때문에 주변 무인들의 시선이 모두 남궁태산에게로 향했다.

“그렇게나 주목이 받고 싶은 겐가?”

“그래. 이렇게 안하면 아무도 나한테 관심을 안 주거든.”

“하하. 그럴 리가.”

남궁태산이 자신의 기운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드러내면서 나타난 이유.

그것은 자신의 건재함과 힘을 주변 사람들에게 인식시킴으로, 곽휘운과 백리화에게 힘을 실어 주기 위해서였다.

백리세가가 무림의 중심축이 되었지만, 당연히 아직까지 여기 있는 이들 모두에게 인정을 받은 것이 아니었다.

이들 중에는 백리세가와 그 구성원들에 대한 불신을 가지고 있는 이들도 꽤나 많았다.

그래서 남궁태산이 이렇게 건재한 힘을 가진 검성과 각별한 사이라는 것을 알린다면, 분명 백리세가의 평가에 도움이 될 터였다.

“그동안 많이 강해진 것 같네만.”

“그래 그랬지. 그런데 널 보니까, 아닌 것 같다.”

남궁태산이 그 사이에 수많은 벽을 뛰어넘은 것을 바로 알아보는 곽휘운이었다.

지금 남궁태산이 보여 주는 기운은 그가 깨달은 힘의 일부일 뿐이었다.

천재 중의 천재.

분명 남궁태산은 그런 천재였다.

하지만 그런 남궁태산도 곽휘운에 비해서는 부족했다.

남궁태산이 열 걸음 나갔다면, 곽휘운은 천 걸음을 나갔다.

“거기다, 옆에 가주님도 장난 아니시네.”

남궁태산은 곽휘운에 더해 백리화도 말도 안 되게 강해졌다는 것을 느꼈다.

“아주 쌍으로 괴물일세.”

“숙녀에게 괴물이 뭔가?”

“어이구. 같은 괴물이라고 감싸는 거냐?”

“후우. 그만 하세.”

“크크크. 그래. 이것보다는 더 건설적인 이야기를 하자고, 이번에 정마연합을 이끌 새로운 지도자가 필요하거든?”

“……?”

“그걸 네가 좀 맡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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