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192화>
혈혼강신대법은 제석종에게 설명했던 것과는 다른 대법이었다
강력한 힘을 주는 대법이 아니라, 과거의 영혼을 불러오는 대법.
그리고 이 대법으로 불러온 영혼은 바로, 천살교를 만든 최초의 혈주 신종악이었다.
대장로는 오래전 천마신교의 은밀한 곳에서 이 혈혼강신대법과 함께 그가 남긴 서책을 발견했다.
그 서책에는 천살교가 가지고 있던 수많은 힘에 대해 쓰여 있었고, 대장로는 그 힘에 곧바로 매료 되었다.
그렇게 천살교에 매료된 대장로는 천살교를 다시금 부흥시키기로 마음먹었고, 그 계획에 따라 지금의 천살교를 만들어 낸 것이었다.
그리고 이 천살교 부흥의 마지막은 바로, 신종악의 부활이었다.
“음. 확실히 훌륭한 몸이군.”
제석종의 몸을 완전히 장악한 있는 신종악.
신종악은 가볍게 내공을 돌려보며 몸을 점검해 보았다.
확실히 과거의 자신이 가지지 못했던 훌륭한 체질의 몸이었다.
이 몸이라면, 그때에 이루지 못했던 것을 이룰 수 있을 터였다.
“머리를 들고 일어나라.”
신종악이 자신의 앞에 엎드려 있는 대장로를 일으켜 세웠다.
천천히 고개를 드는 대장로.
대장로의 두 눈은 지금 감격으로 가득했다.
드디어 자신이 염원하던 일이 성공한 것이니 말이다.
“네가 나를 다시 부른 것인가?”
“예. 그렇습니다.”
“수고했다. 꽤나 쓸모 있는 놈인가 보군.”
“감사합니다.”
말을 마친 신종악은 천천히 몸을 일으킨 뒤,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 보기 시작했다.
모든 몸은 정상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스윽. 퍽!
파사사사사삭.
가볍게 뻗은 주먹에, 옆에 있던 벽이 그대로 가루가 되어 부셔져 내렸다.
그저 벽을 부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가루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대장로도 충분히 평범한 벽이라면 저렇게 만들어 버리는 것쯤은 가능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 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벽은 모두 만년한철로 만들어졌다는 것이었다.
만년한철은 무림에서 가장 단단한 것들 중 하나이다.
그런 만년한철을 가볍게 뻗은 주먹으로 가루로 만들어버린다?
그것은 극혈마수를 가진 대장로라고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역시 내 선택이 맞았다.’
대장로는 자신이 천살교를 부흥시키고, 신종악을 다시금 불러들인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했다.
이제 막 부활한 신종악이 이정도의 힘을 보여 준다면, 후는 어떻게 될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어쩌면 자신이 준비한 다른 것들은 의미가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종악 혼자로도 충분할 것 같았으니 말이다.
“준비한 것들을 보러 가자.”
“예. 혈주시여.”
대장로는 신종악을 이끌고 자신이 준비한 것들을 보여 주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거대한 지하에 수많은 무인이 무릎을 꿇은 채로 대기하고 있는 모습.
그리고 그들의 위에서서 바라보는 신종악과 대장로.
신종악은 그런 그들을 한번 훑어보고는 다시 대장로를 바라보았다.
“이런 쓰레기들이 다인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쿠구구구구궁.
한쪽 벽면이 요란한 굉음과 함께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일곱 인영이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무시무시한 혈기를 내뿜으며 나타나는 칠인.
“칠혈제(七血帝)들도 부활시켰군.”
“그렇습니다.”
신종악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칠혈제들을 바라보았다.
칠혈제七血帝).
자신이 천마신교를 배신하고 나왔을 때에 같이 뛰쳐나온 이들.
그 당시 천마신교에 있던 무인들 중, 천마를 수호하던 이들을 제외하고는 최고 수준의 무인들.
한 명, 한 명의 무공 수준이 이미 하늘에 닿아 있던 자들이다.
저들이라면 분명 쓸모가 있었다.
“좋다. 그럼 이제 오랜 숙원을 풀러 나가볼 때가 되었군.”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 * *
식사를 한 뒤의 대련.
거대한 연무장에는 지금 무림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의 전력들이 모여 있었다.
갑자기 성사된 대련이지만, 모두들 예상이라도 한 듯 준비만반의 상황이었다.
“서로의 힘을 알아야 믿고 등 뒤를 맡길 수 있을 테니 제대로 해 봅시다.”
천마가 당장이라도 검을 출수할 듯 한 기세를 뿜어대며 말을 하였다.
분명 천마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서로가 서로의 실력을 알아야 믿고 등 뒤를 맡길 수 있으니 말이다.
“따로 따로 각자 대련을 하기에는 시간이 없으니, 모두 동시에 시작하는 것이 낫겠습니다.”
곽휘운은 날이 저물어가는 것을 보고는 동시에 대련을 시작하는 것을 제안했다.
날이 저문다고 싸우지 못할 이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은 오랜 시간 자리를 비울 수는 없는 위치에 있는 이들이었다.
언제 천살교가 움직일지 모를 상황에서 말이다.
“떼 싸움이라……. 정말 오랜만이군.”
위강천이 즐겁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하였다.
무림맹주라는 자리에 오르고 나서 이렇게 동시에 떼로 싸움을 해본적은 없었다.
왜인지 과거에 전우들과 무리지어 무림을 활보하며 싸움을 했을 때가 떠오르는 위강천이었다.
“하암. 마침 졸렸는데, 빨리 끝나서 좋겠군.”
나천괴도 동시에 대련을 하는 것에 동의했다.
“나이 들어 오래 못자면 피부가 상하니, 나쁘지 않은 제안이구나.”
적화현녀까지 작은 미소와 함께 동의를 했다.
이로써 무림맹 측은 모두 동의를 하였다.
그리고 천마신교 측은 모두 천마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천마의 동의가 곧 그들의 동의였으니 말이다.
“떼 싸움도 재미있겠군.”
천마의 동의가 떨어졌다.
그렇게 위강천, 나천괴, 적화현녀, 천마, 검마, 도마가 동시에 대련을 하는 것이 정해졌다.
거기에 더해서 곽휘운과 백리화까지 가세하는 대련.
세 세력으로 나누어 조금 떨어져 대련의 준비를 하였다.
“자, 누굴 먼저 노려야 할까.”
천마는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주변을 바라보며, 처음으로 상대할 자를 찾았다.
탓.
성미급한 천마의 움직임을 시작으로 동시 대련이 시작되었다.
일제히 움직이는 여덟 명의 무인들.
그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이 점찍어 두었던 상대에게로 가장 먼저 달려갔다.
카앙! 캉! 카가가가강! 캉!
주변에서 쉴 새 없이 퍼져 울리는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
이 치열한 대련 속에서 그나마 다행이라면, 서로 상대할 짝이 딱 맞아떨어졌다는 것이었다.
위강천과 천마, 검마와 백리화, 나천괴와 도마, 적화현녀와 곽휘운.
서로는 먼저 정해 둔 상대와 부딪치며 무공을 논하기 시작했다.
“천마님과 이렇게 검을 섞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하하.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천마와 위강천은 만약 검을 섞는 다면 적으로서 만날 것이라 생각했지, 이렇게 우군이 되어서 섞을지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 옆, 나천괴와 도마 또한 그들과 같은 상황이었다.
“하암. 이렇게 싸울 줄은 몰랐는데.”
“저도입니다.”
두 사람도 적으로 싸울 줄 알았지, 이렇게 대련을 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대련을 하면서 상대를 완전히 인정했다.
‘강하다.’
도마는 나천괴가 왜 무림 이천이라 불리는지를 느낄 수 있었고, 나천괴는 도마가 왜 천마신교 서열 2위인지 알 수 있었다.
가볍게 주고받는 공방이지만, 서로의 실력을 확인하기에는 충분했다.
“흘흘. 다들 즐거워 보이는 구나.”
“하압! 넷. 그러네요!”
그리고 그들과 살짝 떨어진 곳에서는 검마와 백리화가 검을 주고받고 있었다.
백리화의 실력이 이미 적화현녀에게 인정받을 만큼 강해졌지만, 검마에게는 한참 부족했다.
그래서 이 둘의 대련은 검마가 백리화의 검을 받아주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하압!”
“좋구나. 정말로 좋아.”
정말 열심히 검을 움직이는 백리화.
그런 백리화를 보면서 검마는 아주 기분 좋은 목소리로 좋다를 연신 내뱉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백리화는 지금 대련을 하고 있는 이 와중에도 계속해서 몰라보게 발전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나를 가르쳐 주면 그 즉시 그것을 보완하고, 더욱 발전시켜 나가는데, 그것을 대련을 하는 와중에 모두 이룬다는 것이다.
‘무서운 재능이구나.’
정말로 무서운 재능이었다.
그리고 정말 탐이 나는 재능이었다.
검마는 남궁태산도 탐이 났었는데, 백리화는 그런 남궁태산보다도 훨씬 더 탐이 났다.
이대로 데리고 달아나서 당장 제자로 삼고 싶었다.
‘하지만 더 좋은 스승이 있으니, 포기해야겠지.’
검마는 슬쩍 옆쪽에서 대련을 하고 있는 곽휘운을 바라보았다.
지금 이 무림에서 곽휘운보다 뛰어난 무인이 있을까?
검마의 대답은 아니오였다.
그런 곽휘운이 백리화의 옆에 있으니, 제자로 삼겠다는 욕심은 포기하는 것이 맞을 터였다.
“자. 조금 더 네 힘을 보자꾸나.”
“네!”
검마와 백리화의 대련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 옆.
곽휘운과 적화현녀의 대련이 이어지고 있었다.
“우리가 대련을 하는 것은 처음이구나.”
“이장로께서 저를 썩 좋아하지 않지 않으셨으니 말입니다.”
적화현녀, 그러니까 이장로는 곽휘운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바로 곽휘운이 너무나도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곽휘운 때문에 자신의 제자가 한낱 평범한 범재로 변해버렸다.
곽휘운을 본 뒤로 그 어떤 제자도 아장로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오로지 곽휘운만이 생각날 뿐이었다.
그래서 이장로는 곽휘운을 좋아하지 않았다.
곽휘운 때문에 자신의 눈이 바뀌어 버렸으니 말이다.
“썩 좋아하지 않았다라……. 틀렸다.”
“예?”
“널 좋아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너를 너무나 좋아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이장로는 일부러 곽휘운을 피해다닌 것이다.
곽휘운을 보면 곽휘운을 향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을 것 같았으니 말이다.
제자로 삼고 싶은 마음 말이다.
이장로는 제자를 키우는 것에 굉장히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너는 내가 제자로 키우기에 너무 큰 사람이었다. 그래서 마음을 접기 위해 일부러 멀리한 것이다.”
“하하……. 이것 참.”
이장로는 애초에 곽휘운의 잠재력을 알아보아서, 제자로 삼지 않았다.
자신의 밑에 있기에는 너무나 큰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일부러 멀리한 것이었다.
곽휘운은 이런 이장로의 말을 듣고는 작게 웃음 지었다.
그녀의 말에 조금은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나 자신을 열렬히 원했다는 말을 들었으니 말이다.
“지금이라도 제자로 삼아 보는 것은 어떠십니까?”
“호호. 내 무공을 가르쳐 달라는 것이냐?”
“하핫. 들켰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