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191화>
무림맹과 천마신교가 서로 확고한 동맹을 발표했고, 이를 어기는 자는 무림의 공적으로 선포하며, 무림맹과 천마신교가 동시에 벌을 주기로 하였다.
이것으로 천살교와의 싸움의 준비가 되었다.
이렇게 무림은 전례 없는 정마동맹이 시작되었고, 이 정마동맹의 중심은 하나의 세가가 맡게 되었다.
‘백리세가.’
무림맹과 천마신교 두 세력 모두의 동의로 백리세가가 중심이 되었다.
다 망해가는 세가에서 순식간에 무림의 중심이 되어 버린 백리세가.
온 무림이 지금 백리세가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휘운객잔까지 같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현 항주 제일의 객잔이자, 백리세가의 비호를 받는 곳.
거기에 더해 점주가 소신성 곽휘운인 곳.
당연히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객잔에 무인들만 가득하네.”
“그래도 다들 조용해서 다행이에요.”
곽휘운과 백리화는 무인들로 꽉 차 있는 객잔을 지켜보며 대화를 나누었다.
천살교가 문을 닫아 걸어 버린 상태로 움직이지 않고 있으니, 정마동맹도 섣불리 움직이지는 않고 일단은 지켜보고 있는 상태였다.
이미 수많은 눈과 귀가 천살교가 있는 천살궁 주변에 배치되어 있었으니, 그들이 조금만 움직여도 곧바로 이곳에서 알 수 있을 터였다.
그때에 곧바로 움직일 수 있도록 지금 이곳에서 다들 만반의 준비를 하며 대기를 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다들 각자의 세력이 있는 곳에 식당이 있음에도 휘운객잔에 온다는 것이었다.
특히나 가장 큰 문제는 이 객잔에 들어오는 무인들의 면면이었다.
‘천마, 무림맹주, 검마, 적화현녀님 까지……. 이래서는 일반인들은 근처에도 못 오지.’
다들 기운을 숨기지도 않고 드러내 놓은 채로 이 객잔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서로 딱히 무슨 말을 나누지는 않지만, 그저 저들이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이 객잔은 범인들은 접근조차 힘든 곳이 되어 버렸다.
“이대로라면, 오히려 소문이 안 좋게 나겠어요.”
백리화는 항주 주변에 소문이 좋지 않게 날까를 걱정했다.
객잔의 주 고객은 주변 관광객들과 상인들이다.
지금이야 무인들이 그들 이상의 매출을 올려 주지만, 이 상황들이 모두 끝난다면 다시금 관광객들과 상인들을 상대로 장사를 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무인들이 잔뜩 몰려있어서 흉흉한 기세를 내뿜어 댄다면, 필히 주변에 소문이 좋게 나지는 않을 터였다.
휘운객잔이 원하는 것은 백리세가가 커져서 그들의 비호를 받는다는 정도의 소문이었지, 이렇게 무인들이 잔뜩 몰려 있다는 소문은 아니었다.
“하하. 잠깐일 테니까. 그때까지 만이라도 지켜보자고. 내가 말씀드린다고 움직일 분들도 아니고 말이야.”
곽휘운도 백리화와 같은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일단은 그냥 놓아 두기로 하였다.
아직까지 저들에게 가까워질 시간이 필요했는데, 이렇게 같은 곳에서 식사를 한다면 조금이라도 가까워질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저들이 자신이 말을 한다고 들을 위치의 사람들이 아니었다.
“오라버니.”
“응?”
백리화가 조심스럽게 곽휘운을 불렀다.
무언가 고민이 가득한 눈빛의 백리화.
백리화는 곽휘운을 조금 떨리는 눈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 모두가 이번 일이 끝나고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천살교와의 커다란 싸움이 기다리고 있는 지금.
백리화는 무림맹과 천마신교간 동맹의 중심이 되었다는 것에는 큰 걱정은 없었다.
하지만 백리화에게는 다른 걱정이 하나 있었다.
바로 지금 백리세가와 객잔 식구들이 모두 무사히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라는 것이었다.
상대가 너무나도 강한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분명 수많은 이가 목숨을 잃을 것이고, 그 사람들 중에 식구들이 없을 것이란 보장이 없었다.
그리고 문제는 또 있었다.
이번 싸움이 끝나면 과연 이곳에 남아 있을까? 라는 문제였다.
위하윤, 주연희, 남주학, 독고영 등…….
지금은 모두 이곳에 있지만, 다들 다른 곳을 떠날지도 모르는 이들이었다.
이미 정이 너무나도 들었기에, 그들과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 내가 아무도 죽지 않게 할 테니까. 그리고…… 시간을 내서 다 같이 모이는 날을 만들면 되지 않겠어?”
곽휘운의 말에 그제야 백리화의 떨림이 멈추었다.
백리화는 곽휘운의 말에 안심이 되었다.
묘하게 곽휘운이 말을 하면 안심되고, 꼭 그렇게만 될 것 같이 믿어졌다.
그리고 실제로 지금까지 항상 곽휘운의 말대로 이루어져 왔고 말이다.
‘나도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어.’
백리화는 자신도 모두를 지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할 것을 다짐했다.
이제 자신에게는 그럴 수 있을 힘이 생겼다.
곽휘운만큼은 할 수 없겠지만,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모든 힘을 동원할 것이었다.
‘할 수 있어! 백리화!’
백리화는 작게 주먹을 불끈 쥐고 다짐을 하였고, 곽휘운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백리화가 성장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언제나 즐거웠다.
지금 백리화라면 자신이 없더라도 충분히 제 몫을 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처음 봤을 때, 내 눈이 틀리지 않아서 다행이야.’
백리화는 그녀를 선택한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계속해서 증명시켜 주고 있었다.
곽휘운은 커다란 무림에서 이런 사람을 만났다는 것이 자신에게 너무나 큰 행운이라 생각했다.
덕분에 생각했던 것들을 이루어 나갈 수 있었고, 이런 상황에서도 이렇게 즐거울 수 있었으니 말이다.
“곽 대주. 이리로 와서 같이 먹지.”
그때 무림맹주인 위강천이 곽휘운을 식사 자리로 불렀다.
지금 위강천이 자리한 커다란 식탁에서는 천마와 검마, 도마 그리고 나천괴와 적화현녀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무림맹과 천마신교 수뇌 중의 수뇌들이 자리.
그 자리로 곽휘운을 부른 것이었다.
“백리 가주님도 오시지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위강천은 백리화도 자리로 초대했다.
수뇌들이 모인 자리에 초대를 받은 백리화.
예전이라면 당연히 어찌할 바를 몰랐을 테지만, 지금은 당당히 자리로 나섰다.
여기서 자신이 허둥대면 그것이 백리세가 식구 전체를 욕보이는 것이니 말이다.
특히나 곽휘운에게 큰 민폐이고 말이다.
“다들 한배를 탄 사이인데, 식사하면 좋을 것 같아 불렀습니다.”
이제 곧 다 함께 큰 싸움을 해야 할 때.
위강천은 서로가 조금 더 친목을 다져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에 이렇게 모두를 모은 것이다.
아직은 서로가 어색한 사이였으니 말이다.
“무림맹주님과 같이 자리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재밌군.”
천마가 객잔에 들어오고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는 자신이 이렇게 무림맹주와 마주 앉아 식사를 할 줄은 정말 몰랐다.
그와 만난다면 치열한 전장에서 서로 적으로 만날 것이라 생각했었으니 말이다.
“저도 천마님과 이렇게 식사를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위강천도 천마와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던 상황.
그래서일까? 이런 상황이 조금 웃기기도 하였다.
“참으로 재미있는 상황이군 그래,”
물론 그것은 이 자리에 있는 검마, 도마, 나천괴, 적화현녀도 마찬가지였다.
서로를 바라보며 신기해하는 인물들.
그 사이에서 곽휘운과 백리화는 그들 사이의 중앙에 앉아서, 천천히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두 세력의 사이에 접점이라고는 곽휘운과 백리화뿐이었으니 말이다.
특히 곽휘운은 두 세력 모두와 이야기가 잘 통했으니 중간에서 이 식탁의 분위기를 이끌어 나갔다.
“이렇게 만난 것도 운명이라고 생각하는데, 다들 검이나 한번 섞는 건 어떻습니까?”
이야기를 하던 도중 천마가 검을 섞자고 제안하였다.
다들 무공에 미쳐있는 사람들이니만큼 천마의 제안에 눈을 반짝였다.
그리고는 백리화와 곽휘운을 바라보았다.
이 동맹의 중심은 어찌 되었건 백리세가이니, 둘에게 의중을 물은 것이었다.
“검을 섞는 것만큼 빨리 서로를 아는 것도 없으니 좋은 생각이신 것 같습니다.”
대답은 백리화가 하였다.
이런 모든 결정은 백리화가 하기로 하였으니, 곽휘운은 살짝 고개를 끄덕여 동의만 해 주었다.
무인들끼리 모였을 때, 사실 무공을 겨루는 것만큼 서로를 빠르게 알아가는 것도 없었다.
그렇게 서로 이야기가 끝이 나자마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건 또 색다른 재미가 있겠군 그래.”
천마의 만족스러운 말과 함께, 식탁에 있던 이들의 신형이 꺼지듯 사라졌다.
* * *
천살궁의 깊숙한 지하.
그곳에 있는 돌 침상에는 지금 제석종이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 있는 수없이 파여 있는 글자들과 홈에 붉디붉은 피가 모두 채워져 있는 상태.
‘혈혼강신대법(血魂降神大法)’
드디어 이것을 실행하기에 모든 조건이 충족된 상태인 것이었다.
“이제 시작될 것이니, 운기를 시작해라.”
대장로의 말에 제석종은 가만히 누워 운기를 시작했다.
우우우우우웅.
제석종이 운기를 시작하자 붉은 피들이 빛을 내기 시작했고, 주변이 공명하듯 떨기 시작했다.
파아아아앗!
주변을 가득 메우는 엄청난 양의 기운.
그리고 한계에 다다른 듯한 기운에 붉은 피들이 솟구쳐 올라 그대로 돌 침상에 누워있는 제석종에게 빨려 들어갔다.
“커어억!”
온몸에 갑작스럽게 들어오는 피에 제석종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었고, 등이 들어올려졌다.
눈이 뒤집히고, 입에서는 검은 피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주 조금씩 공중으로 떠오르는 제석종의 몸.
대장로는 그런 제석종의 모습에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좋아. 잘되어 가고 있군.”
대장로는 혈혼강신대법이 순조롭게 잘 진행되고 있음에 만족했다.
사실상 이 혈혼강신대법은 대장로도 처음 해 보는 것.
혹여나 실패를 할 수도 있었기에 꽤나 속으로는 마음을 졸이고 있었던 상태였다.
하지만 지금 모습을 보았을 때에는 아주 순조롭게 대법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크아아아악!”
제석종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비명이 터져 나왔고, 그와 동시에 바닥에 있던 모든 피가 그의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스으으으윽. 투욱.
공중에 떠있던 제석종의 몸이 다시금 돌 침상으로 내려왔다.
죽은 사람처럼 아무런 미동도 없는 제석종의 몸.
대장로도 이때는 혹여나 대법이 실패한 건 아닌지 조금 걱정했다.
“이런, 실패인가?”
대장로가 급히 제석종을 향해 달려가던 그때.
“크흐으음. 별로 좋은 기분은 아니군.”
제석종이 입을 염과 동시에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무언가 평소의 제석종과는 다른 말투.
“진정한 혈주님을 뵙습니다.”
제석종을 향해 달려가던 대장로가 갑자기 몸을 납작 엎드리며, 평소와는 완전히 다르게 제석종에게 인사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