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189화>
백리화의 검에서 환한 빛이 터져 나오고, 백과강기들이 주변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뽐내는 백과강기.
이장로는 눈을 빛내면서 백과강기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정말 예쁜 무공이구나.”
이장로가 지금까지 보았던 수많은 무공 중에도 단연 첫손에 꼽힐 만큼 아름다운 무공이었다.
그리고 이 아름다움만큼 위력도 대단할 것이란 것이 느껴졌다.
저것 하나, 하나가 모두 강기의 덩어리였으니 말이다.
휘익. 쾅! 쾅! 쾅!
백리화의 검이 움직이고, 그와 함께 백과강기가 따라 움직였다.
마치 밤하늘의 별들처럼 하늘을 수놓으며 이장로를 압박하는 백과강기.
이장로의 검이 움직이며 백과강기들을 갈라 내었는데,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가를 때까지는 분간할 수 없었지만, 가른 후에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토록 완벽한 환영이라니.’
환영을 이용한 무공은 당연히 많았다.
그중 실체와 다름없을 정도로 정교한 무공 또한 존재했다.
하지만 이런 위력을 가지면서도 이토록 완벽한 환영을 가진 무공은 없었다.
백과강기 하나를 없앨 때마다 엄청난 힘을 소모해야만 하는데, 어느 것이 진짜인지 알 수 없었다.
‘흐음. 속전속결만이 답인가.’
이장로는 빠르게 이 대련을 끝내는 것이 상수라고 생각했다.
오래 싸워서는 이쪽의 내공이 먼저 소모될 것 같았으니 말이다.
“그 나이에 대단하구나.”
“감사합니다.”
“자, 이제 진짜로 움직여 볼 테니 너도 대비를 하거라.”
“네!”
지금까지 그저 막기만 하던 이장로가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뿐사뿐 걷듯이 움직이는 이장로.
그녀는 어느새 백리화의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다.
백과강기가 마치 그녀를 피해 움직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의 보법.
그리고 백리화의 지척에 다가온 이장로의 검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마치 한 마리의 나비와도 같은 움직임.
“허어…….”
백리화와 이장로의 대련을 지켜보던 이들은 모두 입을 벌리고 구경을 하고 있었다.
백리화가 만들어낸 백과강기와 그 사이를 유려하게 움직이는 나비와도 같은 이장로의 검.
이것은 마치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쉬이익. 카캉! 캉! 캉! 카가캉!
그렇게 나비처럼 움직이던 이장로의 검이 급작스럽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나비와도 같던 움직임이 갑자기 날카로운 벌처럼 쏘아오기 시작했다.
조금의 틈도 주지 않는 재빠른 검격.
엄청난 속도의 검격을 날리는 와중에도 이장로의 표정은 너무나도 평온했다.
마치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한 표정.
물론 백리화의 표정도 아직은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백리세가의 앞날이 아주 밝구나.”
“과찬이십니다.”
“아니다. 분명 백리세가는 너 때문에 다시금 무림에 이름을 날릴 거다.”
이장로는 백리화의 검을 보고 백리세가가 앞으로 눈부시게 빛날 것임을 확신했다.
검에서 느껴지는 모든 것들이 그렇게 될 것임을 알려 주었으니 말이다.
“이것마저 훌륭하게 막으면 내 패배로 하자꾸나.”
이장로의 검이 원을 그리듯 움직였고, 그 둥근 원으로 백과강기들이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대로 소멸해 버리는 백리화의 백과강기들.
강기를 완전히 소멸하는 무공.
이장로의 무공인 ‘화류환원공(花流還元功).’이었다.
모든 것을 처음의 상태로 돌려 버리는 무공.
이 화류환원공 앞에서는 그 어떤 강기도 무용지물이었다.
완전히 사라져가는 백리화의 강기.
그리고 백과강기를 없애 버린 이장로의 검이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 이장로의 검 주위에는 붉은 꽃잎과 같은 강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적화강기(赤花罡氣).
이장로를 적화현녀라고 불리게끔 만든 강기였다.
사아아아악.
이장로의 검에 서려 있는 엄청난 양의 적화강기.
화류환원공의 무서움이 바로 이것이었다.
화류환원공으로 없앤 강기의 기운이 역으로 화류환원공의 힘이 되어 되돌아온다는 것이었다.
어마어마한 기운을 머금고 있던 백과강기를 흡수한 상태이니, 지금의 위력은 그야말로 상상이상이었다.
“하아압!”
백리화도 이장로의 검에 담긴 적화강기의 힘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기에, 기합성까지 내지르며 만반의 대비를 갖추었다.
번쩍.
순간 백리화의 검이 반짝 빛을 내었고, 세상 모든 것이 하얀 빛에 가려졌다.
그리고 그 사이에 이장로의 검이 백리화에게 닿았다.
푸우욱.
그리고 이장로의 검이 그대로 백리화의 몸을 꿰뚫었다.
주변에서 지켜보던 이들 모두가 깜짝 놀랐다.
찬반을 가리기 위한 대련이었는데, 지금 모습으로 보아서는 백리화가 너무나 큰 부상을 당한 것 같으니 말이다.
하지만 정작 백리화에게 검을 찔러 넣은 이장로는 조금 놀란 표정과 함께, 무언가 즐거운 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대단하구나.”
“봐주셔서 그렇습니다.”
이장로의 말에 갑자기 이장로의 뒤편에서 백리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다면 지금 이장로의 검에 꿰뚫린 이는 누구란 말인가?
“훌륭한 환영이었다.”
이장로의 검에 꿰뚫린 것은 바로 백리화의 환영이었다.
조금 전 백리화의 검이 번쩍 빛이 났을 때에 이미 환영이 나타난 것이었다.
이장로와 주변 사람 모두의 감각을 속일 정도의 환영.
이제 백리화의 경화환영은 완벽하다고 해도 무방했다.
“정말로 싸웠다면 내가 질수도 있었겠구나.”
“그럴 리가 있습니까? 현녀께서 봐주셔서…….”
“아니다. 너도 모든 걸 다하지는 않았지 않느냐.”
“…….”
백리화는 대답치 않았다.
이장로의 말처럼 백리화는 모든 것을 다하지 않았다.
아직 숨겨둔 수가 있었다.
“내 패배다.”
“가, 감사합니다.”
“모든 일이 끝나면 그때 천천히 이야기를 해 보고 싶구나.”
“그, 그렇다면 영광입니다.”
“호호. 그래.”
이장로는 웃음과 함께 자리를 벗어났고, 백리화는 지금 자신이 적화현녀와 대련을 하였고, 그녀에게 이겼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 잠시 멍하니 자리에 서있었다.
“찬성 측의 완벽한 승리이니, 천마신교와의 확고한 동맹을 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찬성측이 모두 승리를 했으니, 반대 측에서도 더 이상의 말은 없었다.
무림맹 측의 일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으니, 이제 천마신교 측만 잘 되면 되었다.
‘오라버니가 갔으니, 문제없을 거야.’
현재 천마신교 측에는 곽휘운이 가 있는 상황.
곽휘운이라면 무조건 성공할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터였다.
* * *
선호전은 지금 멍하니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완전히 찢겨나간 손바닥.
지금까지 수많은 싸움을 해왔지만, 이렇게 손바닥이 찢겨진 적은 처음이었다.
“더 하실 거요?”
“내가 졌다.”
선호전은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
지금 더 싸워봐야 승산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말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무공이란 말인가?’
선호전은 패배의 충격보다도, 장도웅이 보여 주었던 무공에 대해 생각하느라 멍하니 서 있었다.
도법임과 동시에 음공인 무공.
도대체 정체를 알 수 없는 조합의 무공.
어울리지 않는 두 무공이었지만, 장도웅의 손에서는 너무나도 잘 어우러졌다.
“다음 시작하지.”
천마의 말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선호전이 자리를 벗어났고, 다음 사람이 연무장에 나타났다.
곽휘운 측에서는 당연히 독고영이 나왔다.
그리고 천마신교 측에서는 붉은 머리가 인상적인 거대한 덩치의 인영이 한 명 나섰다.
“안녕하신가. 나는 서열 7위의 염마라고 하네.”
독고영의 상대는 바로 천마신교 서열 7위이자 팔마 중 일인인 염마였다.
독고영은 상대를 보고는 속으로 만족했다.
상대하기에 전혀 부족한 자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독고영이라 합니다.”
“알고 있네. 교마의 꼭두각시 노릇을 했던 자라는 것을 들었으니 말일세.”
“…….”
염마는 별다른 생각 없이 말한 것이겠지만, 교마와의 일은 독고영에게 역린과도 같은 일이었다.
조금은 표정이 굳어 버린 독고영.
물론 마음의 정리를 했기에 금방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과거의 일일 뿐입니다.”
“그렇지. 뭐,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지. 얼마냐 강한 사람이냐는 것일 뿐.”
화르르르륵.
염마의 몸에서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주변의 사람들이 모두 느낄 정도로 뜨거운 불길.
하지만 정작 그 불길을 일으킨 당사자인 염마는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앞에 서있는 독고영도 아무렇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휘이이이잉.
독고영의 몸에서 차가운 한기가 뿜어져 나오며 염마의 불길을 밀어내고 있었다.
화기(火氣)와 한기(寒氣)의 대결.
주변에 있는 이들 모두가 지금의 이 대결에 주목했다.
‘재미있겠군.’
곽휘운 마저도 지금의 이 대결이 흥미로웠다.
극한의 한기와 극한의 화기의 대결.
분명 좀처럼 보기 쉬운 대결은 아니었다.
그것도 이런 수준의 무인들이 겨루는 것은 더욱더 보기 힘들었다.
“아주 재미있는 상대를 만난 것 같군 그래.”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를 향해 투지를 불태우는 독고영과 염마.
그리고 그 투지가 절정에 달했을 때.
둘이 동시에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사라락.
독고영의 신잠사가 펼쳐 나왔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신잠사가 너풀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에 맞서 염마도 자신의 애병을 꺼내어 들었다.
키이잉. 키이잉.
염마의 두 손에 쥐어진 두 개의 륜.
염마의 애병인 겁화륜(劫火輪)이었다.
겁화륜이 엄청난 속도로 불길을 뿜어내며 화전하고 있었다.
사(絲)와 륜(輪)의 대결.
화기와 한기의 대결보다도 보기 힘든 기형병기간의 대결이 시작된 것이었다.
카가가가가가강!
신잠사와 겁화륜이 충돌할 때마다 엄청난 소리와 함께 화기와 한기가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정말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치열한 대결.
이대로라면 승부가 나지 않을 것만 같은 치열함이었다.
밤새 싸울 수도 있는 둘이지만,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둘이기에, 이 대련을 끝내기 위해 좀 더 힘을 꺼내기로 하였다.
“제대로 가 보세.”
“물론입니다.”
염마의 화기가 폭발적으로 터져 올랐고, 그에 맞서 독고영의 한기도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화르르르르륵.
쩌저저저저적.
염마의 뒤에 있던 것들이 타오르기 시작했고, 독고영의 뒤에 있던 것들은 얼어붙기 시작했다.
둘을 기점으로 반으로 나뉜 기세 싸움.
그 중 먼저 움직인 것은 독고영이었다.
독고영의 신잠사가 움직여 염마를 완전히 뒤덮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