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186화>
검마의 만류로 싸움을 멈춘 곽휘운과 천마.
그리고 둘은 말없이 서로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마지막 검을 부딪치지 않았어도 서로의 실력은 확실하게 보았다.
‘대단한 자다.’
‘역시 천마는 다르구나.’
서로를 인정할 수밖에 없던 짧은 대련.
곽휘운은 이 대련으로 그래도 확실하게 천마의 인정은 받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곳에 온 목적은 달성한 것이었다.
“좋네. 아주 좋아.”
“하하. 감사합니다.”
“자, 그러면 이제 천마신공에 대해 들어볼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곽휘운은 자신이 어떻게 천마신공을 익히게 되었는지 설명을 시작하였다.
거짓을 말해봐야 통하지 않을 상대이니, 있는 그대로 사실을 말해 주었다.
그리고 서로 간에 의심이 없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곽휘운은 자신의 몸에 과거 천마였던 천홍이 같이 깃들어 있음을 이야기해 주었고, 그가 온전한 천마신공을 자신에게 알려 주었다고 말하였다.
“그렇군. 분명 가능한 이야기야.”
천마는 다소 허황될 수도 있는 곽휘운의 이야기를 수긍해 주었다.
천마신교에 수없이 많은 무공과 술법들이 있으니 가능한 이야기였다.
거기에 더해 천홍에 대해서는 천마도 알고 있었다.
천마신교의 역사 속에서도 첫손에 꼽힐 만큼 강했던 천마.
하지만 그가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하고, 온전한 천마신공이 전해지지 못하게 되어서 불명예스러운 명성도 함께 가지게 된 천마였다.
그런 자가 곽휘운에게 천마신공을 알려 주었다면 이해는 되었다.
“흠. 알겠네. 이야기해 줘서 고맙네.”
천마는 더 이상 캐묻거나 하지 않았다.
곽휘운이 과거의 천마에게 천마신공을 배웠다면 그의 천운이자 그의 능력이었으니 말이다.
“제가 오늘 천마님을 뵙기 위해 온 이유가 하나 있는데 들어주시겠습니까?”
“음? 뭔가. 말해 보게.”
곽휘운은 오늘 이곳에 천마의 인정을 받기 위해 온 것 말고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천마신공을 써 둔 책자를 드리기 위해 왔습니다.”
“천마신공을 준다?”
천마는 곽휘운을 다시 가만히 바라보았다.
완전한 천마신공을 그냥 준다는 것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론 천마신공이 본래 천마신교의 무공이라지만, 곽휘운이 그것을 돌려줄 의무 따위는 없었다.
천마도 닥히 그것을 바라지 않았고 말이다.
지금의 천마신공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굳이 필요 없네.”
“물론 지금으로도 충분하시다는 것을 잘 압니다. 하지만 본래 천마신교의 것이니 돌려드리려는 것뿐입니다. 천살교를 상대하려면 준비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흐음…….”
천마는 곽휘운의 의중을 가늠해 보았다.
분명 천마신교와 곽휘운 사이의 큰 접점은 없었다.
천마신공이라면 돈을 받고 팔아도 억만금을 챙길 수 있는 무공이다.
이렇게 그냥 준다는 것은 의심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원하는 것이 있군 그래.”
“하하. 이거 속일수가 없군요. 맞습니다. 제가 천마님에게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곽휘운이 천마신공을 천마에게 그냥 넘겨주는 이유.
당연히 이유가 있었다.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천마신교의 것이라고 줄 필요는 없었으니 말이다.
주는 것이 있다면 받는 것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천마는 천마신공이 필요 없다고 말했지만, 사실 필요 없지는 않을 터였다.
온전한 천마신공이 있다면 훨씬 더 힘이 강해질 것은 분명하고, 후에 천마가 될 자에게도 힘이 될 터이고 말이다.
“무엇을 원하나?”
“무림맹과의 확고한 동맹을 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천마신교는 무림맹과는 다르게 천마의 명령이 곧 법이다.
천마가 무림맹과의 확고한 동맹을 명한다면, 천마신교의 무인들은 더 이상 무림맹 무인들과 다투지 않을 것이다.
“우리만 한다고 그것이 된다고 생각하나?”
물론 천마의 말처럼 천마신교만 확고한 동맹을 말한다고 해도 무림맹이 문제였다.
무림맹은 무림맹주가 말을 한다고 해도 강제성이 크게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천마신교 측만 확고한 동맹을 한다 해도, 분명 문제가 터져 나올 터였다.
“무림맹측은 백리세가와 제갈세가에서 막을 겁니다.”
곽휘운은 당연히 무림맹을 억제할 방법을 가지고 있었다.
일단 무림맹주와 무림맹 수뇌들을 설득하기 위해 백리화와 위하윤이 떠난 상태였고, 그들을 지원하기 위해 제갈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쪽 일이 잘 풀린다면, 무림맹과 천마신교간의 화합은 문제가 없을 터였다.
“좋네. 내가 그리 말해 주지.”
“감사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내가 명령해도 듣지 않는 놈들이 있을 걸세. 싸움에 미친것들이 많으니 말이야.”
천마가 명령한다면 절대 다수의 천마신교 무인들은 따를 것이다.
하지만 어디서든 그렇듯 명령을 따르지 않는 자들이 있을 터였다.
특히나 실력에 자신이 있는 무공광들이 문제였다.
그들은 지금 싸움을 하고 싶어서 몸이 달아오른 상태였고, 명령으로 묶어 둔다고 해도 분명 문제를 일으킬 터였다.
“그것도 저희가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백리세가에는 강한 무인이 많으니 말입니다.”
천마신교의 무공광들이 원하는 것은 새로운 무공과의 싸움일 터.
그렇다면 백리세가에 있는 이들이 그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 터였다.
백리세가에는 그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 만큼의 실력자들이 있었으니 말이다.
“하하하. 좋네. 조금 거칠 수 있으니, 그것은 알아주게.”
“물론입니다.”
* * *
무림맹의 항주 본부.
천마신교와의 동맹을 위해 항주로 본거지를 옮긴 무림맹.
새롭게 자리를 잡은 곳에, 무림맹의 주요 인사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들 앞에 서있는 두 명의 여인.
바로 백리화와 위하윤이었다.
둘은 무림맹의 수뇌들을 설득하기 위해 이렇게 앞에 선 것이었다.
“천마신교와의 확고한 동맹을 하셔야 합니다.”
백리화는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수뇌부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많은 이들 앞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처음이었는데, 지금 이곳에 있는 이들 면면하나하나가 다들 엄청난 이들이었기에 긴장감은 더했다.
예전의 자신이었다면, 얼굴조차 보지 못했을 사람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자들 앞에 나서서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정말 내 모든 것이 달라졌어.’
백리화는 조금 마음을 침착하게 먹으며 곽휘운을 생각했다.
곽휘운을 만나고 난 뒤부터 자신의 인생이 완전히 송두리째 바뀌었다.
그저 꿈만 꾸던 일들이 현실이 되었고, 지금은 그 꿈조차 넘어서 버렸다.
‘내가 더 잘해야 해.’
지금도 곽휘운은 백리세가를 위해, 무림을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자신도 그에 부흥해 주어야만 했다.
그래야만 조금이라도 곽휘운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으니 말이다.
“우린 이미 천마신교와 동맹을 하지 않았나?”
무림맹 수뇌 중 한 명이 백리화의 말에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
지금 분명 천마신교와 무림맹은 동맹 관계였다.
그런데 어떤 확고한 동맹을 말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으니 말이다.
“동맹은 하고 있지만, 그들과 보이지 않는 반목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흠.”
백리화의 말처럼 겉으로는 동맹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들을 동맹으로 생각하고 있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무림맹과 천마신교은 오랜 시간동안 서로 반목해 온 사이.
동맹을 한다고 하여도 그것이 짧은 시간동안 아물어질 것은 아니었다.
“지금 무림은 천살교라는 강력한 공동의 적을 두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천마신교와 반목을 하고 계시는 겁니까?”
“그들이 우리의 아군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있는가? 그리고 천살교를 힘을 합쳐 물리친 후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때는 서로 다시 적이 될 것 아닌가.”
무림맹의 수뇌부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천마신교측도 현재 무림맹과 보이지 않는 반목을 보여 주고 있었고, 거기에 더해 그들이 언제든 배신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염두 해 두어야 했다.
지금까지 오랜 역사에서 천마신교는 호시탐탐 무림을 노렸었으니 말이다.
지금은 천살교라는 거대한 공동의 적 앞에서 일단 하나로 손을 잡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임시적인 동맹일 뿐이었다.
“그럼 천마신교가 먼저 확고한 동맹을 제안해 온다면 받아 주실 수는 있습니까?”
“그들이 먼저 다가온다면 잠시간 손을 잡아 줄 수는 있겠지.”
여기 모인 무림맹 수뇌부들은 천마신교를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그들이 먼저 손을 내밀어 온다면 아주 잠시는 손을 잡을 의향들은 있었다.
천살교는 지금 무림맹 혼자서 막기에는 분명 벅찬 적이었고, 천살교를 막지 못하면 천마신교에게 당하는 것보다 더욱 큰 피해를 볼 것이니 말이다.
“백리세가의 가주님께서는 천마신교의 확고한 동맹을 받아 올 자신이 있으십니까?”
수뇌들 사이에서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무리맹주 위강천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이 자리는 위강천이 마련해 놓은 자리였기에, 위강천은 그저 듣고만 있던 것이었다.
그가 앞서 나선다면 오히려 수뇌들이 반목할 것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 슬슬 결론에 도달할 때가 되었고, 백리화의 말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해 적절할 때에 입을 연 것이었다.
“물론입니다. 아마 천마신교측에서 곧 확고한 동맹을 발표하고, 새로운 제안을 해 올 겁니다.”
백리화의 확신에 가득찬 대답.
그것은 곽휘운에 대한 믿음이기도 했다.
곽휘운이 천마신교의 확고한 동맹을 받겠다고 하였으니, 분명 그렇게 될 터였다.
“흐음. 일단 다들 의견을 모아 보지.”
무림맹의 주축을 이루는 수뇌들은 각자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의견은 좁혀지지 않았고, 정확히 반으로 나뉘었다.
천마신교와 확고한 동맹을 맺자는 의견과 그들이 배신할지 모르니 지금과 같은 정도가 좋다는 의견.
쉽사리 결정이 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드르르륵.
그때 회의실의 문이 열렸다.
일순 수뇌들의 시선이 그곳으로 쏠렸다.
“제갈세가의 가주님이 입장하십니다.”
문을 연 무인의 목소리가 회의실을 울렸고, 이 목소리에 조금 복잡했던 백리화의 얼굴이 활짝 피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회의실로 들어오는 한 인영.
“급히 처리할 것이 있어 늦었소.”
제갈중천이 회의실에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