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180화>
묵객(默客) 장도웅.
그는 최근 묵도라는 별호에서 묵객(默客)이라는 별호로 바뀌었다.
아무래도 몇 차례 항주에서 활약을 하였으니, 다른 후기지수들과 동일선상에서 놓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특히나 그가 무림 십객의 칭호를 받은 것은 이유가 있었다.
곽휘운 일행이 천살궁이 있는 곳으로 떠났을 때의 일이었다.
그 당시 무림 십객 중 한명인 염객(炎客)이 휘운객잔에 방문을 했었다.
그는 곽휘운과의 대련을 원한다면서 곽휘운을 데리고 오라고 소리를 쳤었는데,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마찰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곽 객주님은 지금 이곳에 계시지 않습니다.’
‘뭐라고 하였느냐? 없으면 어서 가서 데리고 오거라.’
말도 안 되는 염객의 억지.
염객은 본래 그런 사람이었다.
정사중간에 걸쳐있는, 싸움에 미친 미치광이.
그의 이름은 무림 십객에 올려져 있었지만, 사실은 정확한 실력은 측정할 수는 없었다.
무림의 고수들이 모두 그와 싸우는 것을 꺼려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힘이 너무나 위험한 것도 있었고, 그와 싸워서 얻을 것이 하나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세간에는 염객이 무림 팔왕 정도의 힘을 가졌을 것이라 말하기도 하였다.
‘말로 해서는 안 듣겠군.’
화르르르륵.
염객은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인물.
그는 순식간에 몸에서 화기를 내뿜었고, 그대로 객잔에 옮겨 붙고 있었다.
‘이런.’
독고영이 재빨리 한기를 일으켜 불을 제압하고 나섰지만, 염객의 화기가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며 계속해서 객잔을 태우려하고 있었다.
그때 나선이가 바로 장도웅이었다.
장도웅은 객잔의 불을 제압하고 있는 독고영을 대신해서 앞으로 나선 것이다.
키이이이이잉.
콰가가가가각!!
장도웅의 도가 순식간에 염객에게 쇄도했고, 그대로 염객을 객잔 밖으로 밀어 버렸다.
객잔 밖으로 나온 염객과 장도웅.
이 소란에 이미 주변은 사람들로 가득 찬 상황.
다들 이 상황이 어떻게 끝날까 기대하는 눈빛이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염객이 아니고, 그렇다면 분명 싸움이 일어날 것이니 말이다.
‘나부터 쓰러트려라.’
장도웅은 염객에게 자신부터 쓰러트리라고 말했다.
염객은 그런 장도웅을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염객에게 최근 이름을 떨치고 있는 곽휘운이 아니라면 다른 무인은 관심이 없었다.
‘그래. 몸 풀기 정도로는 알맞겠구나.’
염객은 장도웅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다.
물론 진짜로 무시하는 것은 아니었고, 염객의 상대를 도발하는 수였다.
도발당한 쪽은 훨씬 상대하기 수월하니 말이다.
‘간다.’
물론 장도웅에게는 도발이 조금도 통하지 않았다.
장도웅은 침착하게 도를 움직이며 염객을 향해 나아갔다.
키이이이이이잉!
장도웅의 도에서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 소리에 내공이 없는 일반 사람들은 괜찮았지만, 무공을 익히고 있는 무인들은 속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음공(音功).
장도웅의 음공은 이미 수준을 넘어섰기에, 염객도 쉽게 넘기지 못할 정도였다.
‘잔재주가 있구나!’
화르르르르르륵.
염객의 몸에서 강렬한 화기가 사방을 휘감기 시작했다.
땅이 타오를 정도의 화기에 주변에서 구경하던 이들이 모두 멀찍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서야 둘의 싸움이 진짜로 시작되었다.
‘간다 애송아!’
염객의 두 손에서 타오르는 불길.
그의 독문무공인 ‘염화류신권(炎火流神拳)’의 발현이었다.
극강의 화기를 내뿜는 권법.
염객은 이 무공 하나로, 무림 십객의 반열에 올랐다.
내공이 형편없다면 그저 뜨거운 열기 정도가 나오는 것에서 그칠 무공이지만, 염객은 압도적인 내공으로 끊임없는 화기를 내뿜는 것이 가능했다.
키이이이이잉!
화기에 대항해서 장도웅의 도가 더욱 크게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염객의 화기가 장도웅의 근처에 다가오지도 못하고 있었다.
화기가 통하지 않는 상대.
염객은 조금 당황했지만, 그럼에도 자신은 있었다.
화기가 아니라도 자신의 권법은 무림 일절이었으니 말이다.
쾅! 쾅! 쾅! 쾅! 쾅!
연신 장도웅을 몰아붙이는 염객의 두 주먹.
짐짓 장도웅이 밀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멀찍이서 지켜보고 있던 객잔의 식구들, 특히 황혜린은 조금도 장도웅을 걱정하고 있지 않았다.
지금 장도웅은 조금도 불리한 상황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를 반증하듯이 장도웅의 두 눈은 조금의 미동도 없이 염객을 바라보고 있었다.
- 진천거령도(振天巨靈刀). 극의. 진천파(振天波).
음공이 더해진 파천거령도의 이름을 진천거령도로 바꾸었다.
그리고 초진공 상태에서 곧바로 이어지는 진동파.
그것이 바로 진천파였다.
퐈하아아아아악!
순식간에 사방을 휘감고 있던 모든 화기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계속해서 주먹을 휘두르고 있던 염객의 몸도 그대로 멈추었다.
홀로 시간이 정지된 것과 같이 멈춰 있는 염객.
푸확!
그리고 갑자기 염객의 칠공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커헉!”
그제야 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지는 염객.
생명에는 큰 지장이 없는 듯 해 보였지만, 염객은 쓰러져서 일어나지를 못하였다.
바닥에 쓰러진 채로 숨만 내쉬는 염객.
장도웅은 그런 염객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다신 객잔에 오지 마라.”
휘릭 몸을 돌리고 객잔으로 돌아가는 장도웅.
그렇게 장도웅은 무림 십객의 한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 * *
“부탁이 있어서 왔다.”
곽휘운을 찾아온 장도웅이 부탁이 있다고 하였다.
곽휘운은 대충은 무슨 부탁일지 짐작은 갔다.
“무엇을 부탁하시려고 합니까?”
“새로운 힘을 시험해 보고 싶다.”
“하하. 알겠습니다.”
곽휘운이 생각했던 대로 역시나 무공을 봐달라는 것이었다.
장도웅 뿐 아니라 지금 백리세가에 있는 모든 이가 새로운 무공을 익힘에 따라 그것을 봐줄 것을 부탁해 왔다.
지금까지 곽휘운에게 부탁을 해 오지 않은 사람은 독고영과 장도웅 둘뿐이었는데, 드디어 오늘 장도웅이 도움을 요청해 온 것이었다.
곽휘운은 장도웅의 부탁에 기분이 좋아졌다.
곽휘운에게 부탁을 했다는 것은 그만큼 장도웅이 실력을 쌓았다는 반증이었고, 그것은 모두 휘운객잔과 백리세가의 힘이었으니, 당연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모든 상황들이 끝을 향해 내달리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한명의 고수라도 더 있는 것은 더없는 복이었다.
“그럼 연무장에서 뵙지요.”
“알겠다.”
곽휘운은 가볍게 몸을 풀면서 연무장으로 향했다.
물론 객잔이 문을 닫을 시간이었으니, 객잔 식구들에게도 보고 싶은 사람은 오라고 일러두었다.
예전이었다면 반드시 참여해서 지켜보게 하였겠지만, 이제는 다들 그런 수준은 벗어났다.
이제는 혼자서 명상을 하는 것이 더욱더 나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런. 이거 다들 오셨군요.”
연무장 주변에는 이미 객잔 식구들이 모두 자리해 있었다.
다들 이런 흥미진진한 대결을 놓칠 수 없었으니 말이다.
곽휘운은 그들의 빛나는 눈을 보고 밝게 미소 지었다.
세상이 꽤나 흉흉하게 돌아가고 있었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저들이 너무나 고마웠다.
‘내가 모두 지켜 보이겠어.’
곽휘운은 이들 모두를 지킬 것이라 다시 한번 더 다짐했다.
쩌저저저저저적.
곽휘운은 손에 백화빙검을 쥐었다.
너무나도 찬란하게 빛나는 백화빙검.
활활 타오르는 하얀 불꽃이 너무나도 성스러워보였다.
“자. 시작해 보죠.”
“그래.”
시이이이이이이잉.
장도웅의 도가 울기 시작했다.
전과는 조금은 다른 이 울음은 순식간에 주변을 장악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느껴지는 살이 떨리고, 속이 터져나가는 느낌.
염객과 싸울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의 강한 위력을 보여 주었다.
곽휘운이 전해 준 무공인 ‘진혼곡령공(鎭魂曲靈功)’이 더해진 결과였다.
진혼곡령공은 천홍이 알고 있는 최고의 음공이었다.
이 진혼곡령공과 진천거령도가 합쳐져 장도웅은 무림역사에 다시없을 만한 음공과 도법이 결합된 무공을 만들어 내었다.
‘진혼거령도(鎭魂巨靈刀).’
장도웅은 스스로 이 무공을 만들어내고 아직까지 제대로 시험해 보지 못하고 있었다.
본인이 만들었기에 이 무공이 어떤 위력을 낼지 잘 알고 있어서였다.
장도웅이 아는 무인 중에 이 진혼거령도를 제대로 막아 낼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곽휘운뿐이었다.
“조심해.”
“알겠습니다.”
장도웅은 제대로 움직이기 전에 곽휘운에게 경고를 하였다.
아무리 곽휘운이라도 힘들 수 있을지 몰랐으니 말이다.
시이이이이이이잉.
장도웅의 도가 움직일 때마다 이상한 울음이 같이 움직였다.
‘호오?’
곽휘운은 그저 주변을 움직이는 것뿐인데도, 내공과 기혈이 제멋대로 꼬이는 느낌을 받았다.
장도웅이 정말 사람을 죽이기 위해 마음을 먹는다면, 정말 놀라운 위력을 보여 줄 터였다.
“제대로 모든 힘을 내셔도 됩니다.”
곽휘운은 지금 장도웅이 혹시나 싶어서 힘을 적게 내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제대로 모든 힘을 내라고 하였다.
모든 힘을 내야만, 제대로 된 평가를 해 줄 수 있으니 말이다.
“알겠다.”
여유로운 곽휘운의 표정을 본 장도웅은 모든 힘을 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곽휘운이라면, 모든 힘을 보여도 괜찮을 것 같았다.
시이이이이…….
장도웅의 도에서 울리는 소리가 작아졌다.
소리는 작아졌지만, 그 위력은 더욱더 강해졌다.
그리고 곽휘운을 향해 내리쳐 오는 장도웅의 도.
카캉!!
곽휘운의 백화빙검을 통해 전해져 내려오는 묵직한 힘.
음공이 더해졌다지만, 애초에 장도웅이 익힌 도법은 강을 기반으로 한 무공이었다.
결코 힘이 부족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힘이 강해졌다.
장도웅의 진혼거령도를 상대하는 이들은 음공에 더해서 강렬한 도법까지 함께 상대해야만 했다.
한번에 전혀 결이 다른 두 무공을 상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주 좋은 무공입니다.”
곽휘운은 순수하게 장도웅의 무공을 칭찬했다.
물론 장도웅은 곽휘운의 칭찬에 그리 기뻐할 수많은 없었다.
“좋긴. 쉽게 막으면서.”
곽휘운이 너무나도 여유롭게 자신의 공격을 막아 나갔으니 말이다.
이 모습에 장도웅은 더욱더 힘을 끌어올렸다.
곽휘운에게 무언가를 보여 주고 싶었다.
“너도 힘을 보여줘라.”
그리고 장도웅은 곽휘운에게 힘을 보여 줄 것을 부탁했다.
곽휘운의 진짜 힘을 보고 싶었으니 말이다.
최근에 더욱 강해진 곽휘운의 제대로 된 힘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알겠습니다. 대신. 무르기 없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