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휘운객잔-177화 (177/203)

<휘운객잔 177화>

“쿨럭. 쿨럭. 쿨럭.”

팽도혁은 거칠게 기침을 하면서 눈을 떴다.

눈꺼풀이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으음? 크으으.”

가슴팍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고통.

분명 자신은 곽휘운의 빙검에 의해 죽었는데, 고통이 느껴지다니?

‘저승에서도 고통이 느껴지나 보군.’

팽도혁은 고통에 인상을 쓰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승이 어떤 곳인지 보고 싶었으니 말이다.

“깨어나셨습니까?”

“곽 대주?!”

팽도혁은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인영에 지금 어안이 벙벙했다.

보여서는 안 될 사람이 눈에 보였으니 말이다.

곽휘운이 지금 저승에 온 자신의 앞에 있으면 안 되었다.

그렇다면 자신과 같이 죽었다는 말 아닌가?

“곽 대주가 저승에는 왜 있는가!”

팽도혁은 가슴의 아픔을 참으면서, 곽휘운의 어깨를 잡고 앞뒤로 흔들었다.

가만히 미소를 지으며 팽도혁의 손길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곽휘운.

팽도혁이 손길이 멈추었을 때 곽휘운의 입이 열렸다.

“부맹주님. 저승이 아닙니다. 주변을 보십시오.”

“응?”

곽휘운의 말에 그제야 주변을 둘러보는 팽도혁.

약간은 어두운 동굴.

햇빛이 들어오기에 주변의 분간은 가능한 정도였다.

그리고 주변에는 사람들이 주르륵 누워 있었다.

전부 팽도혁과 함께했던 이들이었다.

“이게 무슨…….”

“정말 죄송합니다. 시간이 짧고 경황이 없어서 더 좋은 방법은 찾지 못했었습니다.”

“……?”

팽도혁은 의문이 가득한 눈으로 곽휘운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설명해달라는 표정과 함께 말이다.

“다른 분들은 순식간에 몸의 모든 것을 얼려서 죽은 것처럼 만들었고, 부맹주님은 내공이 워낙에 많으시니, 직접 검을 찔러 넣지 않고는 불가능해서 어쩔 수없이 검으로 찔러서 죽은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곽휘운은 애초에 팽도혁과 무리들을 죽일 생각은 없었다.

어느 정도 그들이 천살교 때문에 움직일 수밖에 없던 것이라고 확신했으니 말이다.

그들이 무림맹에 저지른 일들은 분명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들이 지금까지 무림을 위해 얼마나 헌신했는지는 곽휘운이 잘 알았기에 그들에게 다시금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래서 어떻게 그들을 살릴까를 고민했다.

하지만 고민을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했고, 결국 죽은 것처럼 힘으로 만드는 방법 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사실 곽휘운도 완전히 성공할 것이라 장담할 수 없는 시도였다.

성공해서 다행이었다.

“그럼 전부 다 살아 있는 건가!”

“예. 다들 잠시 뒤에 깨어나실 겁니다.”

팽도혁의 두 눈에 안도라는 감정이 스쳐갔다.

자신을 따라서 기꺼이 무림맹을 배신한 이들.

무림맹을 배신해 공적으로 낙인찍히는 것도, 배신의 끝이 처참한 죽음이라는 것도 알면서 자신을 따라 주었다.

이들이 모두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하지만 이 안도와 감사도 잠시.

지금 상황에서 자신들은 살아남으면 안 되었다.

“우릴 살려서는 안 돼!”

“저는 살려 드린 게 아닙니다. 조금 전 그곳에서 모두 죽으신 겁니다.”

“……. 그런가. 그렇군.”

팽도혁은 곽휘운의 말뜻을 이해했다.

자신들은 조금 전에 모두 죽은 것이다.

팽도혁과 하북팽가의 사람으로는 말이다.

지금부터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고맙다! 고마워!”

“완전히 용서해 드린 것은 아닙니다.”

“알겠다!

곽휘운은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다.

이들을 살린 것은 잘한 선택이었다.

물론 말대로 이들을 완전히 용서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들에게 기회를 준 것일 뿐이었다.

‘역시 맹주님 말씀대로군.’

곽휘운이 이들을 이렇게 용서할 수 있는 이유.

그것은 무림맹주인 위강천의 쪽지 때문이었다.

이곳으로 출발하기 전, 무림맹의 무사가 곽휘운에게 전해 준 하나의 작은 쪽지.

‘그들을 용서해주었으면 한다. 하지만 결정은 너에게 맡기마. 그들을 만나보고 네가 결정하거라.’

곽휘운은 위강천의 생각에 동의했고, 그들을 용서하기로 했다.

물론 쪽지에 쓰여 있는 뒷내용 때문에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죽인 장로들과 무인들은 이번에 천살교에 붙었던 문파 소속이고, 북해의 궁주님은 깊은 잠에 빠졌을 뿐, 생명에는 조금의 지장도 없는 상태이시다.’

팽도혁과 하북팽가 무인들이 무림맹에 배신을 하면서 죽인 장로들과 무인들은 모두 천살교에 한번 붙었던 이들이었다.

그들은 천살교가 천살궁에서 일을 일으키자, 다시금 무림맹으로 돌아왔는데, 이미 힘이 약해진 무림맹은 그들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을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신뢰를 하지 않을 수도 없는, 굉장히 모순적인 상황에 처해있던 무림맹.

그러던 차에 팽도혁이 무림맹을 배신하면서, 죽인 장로와 무인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무림맹으로서는 그들 말고도 많은 문파들이 보고 있기에, 팽도혁과 그 무리들을 공적으로는 그들을 벌을 해야 할 상황.

하지만 위강천과 몇몇 무림맹의 수뇌들의 입장에서는 그들에게 고마워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래서 위강천은 쪽지를 써서 곽휘운에게 그들을 용서해 달라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이제 저는 돌아가겠습니다.”

“그래! 정말 고맙다!”

곽휘운은 이곳에 오래 머물면 혹여나 천살교에게 또 다른 의심을 살 수 있기에, 빠르게 자리를 벗어나려 하였다.

“아 참. 이건 제가 드리는 선물입니다.”

곽휘운은 품 안에서 책자 하나를 꺼내어 팽도혁에게 건네었다.

“음? 이게 뭔가!”

“역용술(易容術)을 적은 서책입니다.”

얼굴을 바꾸는 역용술이 적혀 있는 서책.

물론 평범한 역용술은 아니고, 곽휘운이 여러 역용술을 합쳐서 만들어 낸 역용술이었다.

내공이 모조리 사라지거나, 스스로 얼굴을 드러내기 전에는 알아챌 수 없는 수준의 역용술.

팽도혁과 무리들은 이미 무림에 얼굴이 파다하게 알려져 있는 상태.

지금 곽휘운이 살려준다고 하여도 금방 무림에 정체가 탈로나 변고를 당할 수 있었다.

그래서 곽휘운은 역용술을 전해 준 것이었다.

“모든 일이 끝나면 은혜를 갚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그럼.”

곽휘운은 지체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괜히 연희 소저만 속인 꼴이군.”

곽휘운은 무림맹으로 향한 주연희에게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결국 지금 이 모든 비밀을 알지 못한 이는 주연희뿐이었다.

주연희는 지금도 곽휘운이 팽도혁을 죽여 슬픔에 잠긴 것으로 생각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이래서 혼자 왔어야 했는데. 나중에 사과해야겠어.”

신혜설이 부상을 당했으니 주연희를 놓고 올 수 없었다.

곽휘운은 나중에 사과를 하기로 하고는, 다시금 팽도혁과 싸웠던 자리로 향했다.

‘그나저나 그들이 분명 다시 이곳으로 올 텐데.’

팽도혁과 무리들이 있는 동굴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싸움 장소.

곽휘운의 한기에 의해 꽁꽁 얼려져 있는 사방.

곽휘운은 그곳에 가만히 서서 사방에 기운을 퍼트리면 집중을 하고 섰다.

분명 그들, 천살교는 이곳으로 돌아올 것이다.

확인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스스스스스.

‘왔군.’

곽휘운의 감각에 은밀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기운들이 감지되었다.

* * *

팽도혁은 곽휘운이 전해 준 역용술 서책을 들고 가만히 바라보았다.

“속죄의 길인가!”

팽도혁은 자신이 아무리 무림맹에서 변절했던 장로와 무인들을 죽였다지만, 그 죄가 용서될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살아남게 해 준 이상, 악착같이 살아서 죄를 속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속죄의 방법은 바로 천살교를 막는 것일 터였다.

“으윽!”

“으으으으으…….”

그때 하나 둘씩 쓰러져 있던 무인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들 모두 이곳이 어디인지 둘러보기 바빴다.

그리고는 팽도혁을 보고는 이곳이 저승이라 생각하는 듯싶었다.

“여긴 저승입니까?”

“하하하! 맞네! 저승의 입구지!”

팽도혁은 이곳이 저승의 입구이며, 자신들이 모두 이미 한 번 죽은 것이라 말해 주었다.

이 말과 함께 대번에 무인들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들 모두 팽도혁의 말에 숨겨진 뜻을 알아채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살아나갈 것이네!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말이야!”

스릉. 스릉. 스릉. 스릉. 스릉.

모두들 허리춤이 도를 뽑아들었다.

스르릉.

그리고 팽도혁도 자신의 도를 꺼내어 들었다.

콰창!

그리고 거침없이 도를 내리쳐 반절을 부셔 버렸다.

팽도혁을 시작으로 주변 모든 무인도 도를 반으로 부쉈다.

반으로 부러진 도를 들고선 팽도혁과 무인들.

“무명대(無名隊). 오늘부터 우린 그렇게 불릴걸세!”

“예!”

무명대(無名隊).

팽도혁은 이 이름으로 움직일 생각이었다.

천살교를 막아나가는 독자적인 대대.

“자. 다들 이걸 익히세!”

팽도혁은 이들에게 모두 역용술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똑같은 얼굴로 역용술을 펼쳤다.

팽도혁과 무인들 모두가 똑같은 얼굴.

촤아악!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이라는 표식을 남기기 위해 모두 팽도혁과 같이 가슴팍에 상처를 내었다.

그들의 눈빛은 그 누구보다 거칠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무공도 변해야겠지!”

팽도혁은 더 이상 혼원벽력도를 쓸 수 없었다.

혼원벽력도를 쓴다는 것은 하북팽가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리고 다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말이다.

게다가 같이 온 무인들도 모두 하북팽가의 사람들이었다.

정체를 버리기 위해서는 무공부터 바꿔야만 하였다.

다행이라면 팽도혁은 새로운 무공을 창안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무인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미 생각해 놓은 무공도 있었다.

후에 하북팽가에 전해줄 생각이었지만, 이제 더 이상 하북팽가로는 돌아갈 수가 없는 몸.

그래서 그 무공을 이들과 함께 익힐 생각이었다.

“무명멸혈도(無名滅血刀)라고 하는 무공이네!”

무명멸혈도(無名滅血刀).

사실 생각해 놓은 이름은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 이름을 정한 무공이었다.

멸혈, 이것은 바로 천살교를 뜻하는 것이었다.

오로지 천살교를 멸하기 위해 쓸 무공.

“다들 반도(半刀)를 들게!”

“예!”

시간을 조금도 지체할 수 없었다.

팽도혁과 이들은 이 동굴에서 잠도 자지 않으며 수련을 시작하였다.

천살교에 복수를 다짐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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