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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운객잔-176화 (176/203)

<휘운객잔 176화>

현 무림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에는 천살교가 관여하고 있었다.

그들이 없어지지 않는 한, 지금과 같은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날 터였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곽휘운은 팽도혁의 앞에 섰다.

그리고 고민에 잠겼다.

여기서 팽도혁과 무리들을 죽이는 것은 솔직히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곽휘운 혼자라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곽휘운은 팽도혁을 죽이고 싶지 않았다.

‘허나, 분명 지켜보는 눈이 있을 것이다.’

팽도혁이 이렇듯 말하고 움직이는 것을 보면, 분명 이들을 지켜보는 눈이 있을 것이다.

팽도혁은 그 눈을 의식해 지금 여기서 죽으려는 것일 터였다.

곽휘운의 감각에도 걸리지 않는 눈.

‘방법이 없는 것인가…….’

딱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결국은 팽도혁을 벨 수밖에 없었다.

곽휘운은 팽도혁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결연한 의지로 빛나는 두 눈.

죽음을 각오한 눈이었다.

쩌저저저저저적.

곽휘운의 손에 백화빙검이 나타났다.

너무나도 찬란하게 빛나는 백화빙검.

모두의 시선이 곽휘운의 검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팽도혁은 백화빙검을 보고 입가에 진하게 미소를 지었다.

‘최고의 무공에 죽는다면 더없을 영광이지.’

팽도혁 자신이 하북팽가를 위해 무림맹에 벌인 일을 생각한다면, 명예롭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분명 사치였다.

하지만 곽휘운은 자신을 위해 최고의 무공을 발휘해 주고 있었다.

무인이 되어서 최고의 무공에 죽을 수 있다는 것은 더없는 영광이었다.

적어도 팽도혁은 그렇게 생각했다.

“죽여라!!!”

팽도혁의 거대한 목소리.

분명 살기가 가득해야 할 소리지만, 그 소리에는 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곽휘운이 움직였다.

‘후에 저승에서 찾아뵙겠습니다.’

곽휘운은 지금까지 중에 최고로 내공을 끌어올렸다.

휘이익.

바람이 한번 팽도혁과 무리들을 스쳐 지나갔고, 그대로 절반이 얼음 조각이 되어 버렸다.

보고 있음에도 믿겨지지 않는 모습.

“흐하하하하!!!”

이 광경을 보고 팽도혁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곽휘운은 진심을 다해 최대한 고통 없이 자신들을 보내 주고 있는 것이었다.

‘정말 고맙구나!’

팽도혁은 마지막이니 만큼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한번 쏟아 내고 싶었다.

곽휘운에게 자신의 인생을 보여 주고 싶었다.

팽도혁이란 사람의 모든 것을 말이다.

쿠구구구구구구구.

팽도혁의 몸에서 거대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땅이 흔들릴 정도의 거대한 기운.

그리고 그 기운은 모두 팽도혁의 도에 모이기 시작했다.

-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극의. 혼원멸뢰(混元滅雷).

쿠르르르르릉. 쿠르르르르릉!

팽도혁의 도에서 천둥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고, 형언할 수 없을 만큼의 거대한 도기가 곽휘운을 향해 날아왔다.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가르며 다가오는 팽도혁의 도기.

하북팽가에 전해오는 혼원벽력도의 모든 것이 담겨져 있는 일 도.

콰카가가가가각!!!

곽휘운은 팽도혁의 이 일 도를 막아 나갔다.

오로지 힘으로만 맞서는 곽휘운.

곽휘운은 이 일도를 막는 순간, 팽도혁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짐을 느꼈다.

[부맹주님은 분명 최고의 무인이었습니다.]

곽휘운의 전음을 들은 팽도혁이 미소를 지었다.

그 어느 미소보다 밝은 미소.

조금의 미련이 남지 않은, 후련함을 보여 주는 미소였다.

콰칵! 쾅!!!

푹. 쩌저저저적.

곽휘운은 그대로 팽도혁의 도기를 부셔 버리며 앞으로 쇄도했고, 단 일 검으로 정확히 팽도혁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가슴팍부터 천천히 얼어붙어 가는 팽도혁.

“고맙다.”

“별 말씀을.”

팽도혁은 마지막 말을 남기고 그대로 하나의 얼음 조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곽휘운은 슬퍼할 틈도 없이, 남은 사람들마저 모두 꽁꽁 얼려 버렸다.

휘이이이이잉.

뼈에 사무치도록 차가운 한기가 주변을 지나갔다.

팽도혁과 그 무리들 모두가 얼음 조각이 되어 있었고, 그들 한 가운데에 공허한 표정을 하고 있는 곽휘운이 서 있었다.

주연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다가가 그냥 가만히 곽휘운을 안아주었다.

“죄송합니다. 연희 소저.”

곽휘운은 주연희에게 사과를 하였다.

괜히 그녀를 이곳에 데리고 온 듯싶었으니 말이다.

신혜설이 팽도혁에게 크게 다쳤다는 이야기에 주연희를 데리고 오지 않을 수 없었던 곽휘운이었지만, 웬만하면 주연희를 이곳에 데리고 오지 않는 것이 맞았다고 생각했다.

‘조금 더 상황을 좋게 만들 수 있었을 것을…….’

곽휘운은 오히려 자신이 냉정하지 못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냉정한 척을 하였을 뿐, 신혜설의 부상과 팽도혁의 배신에 침착하지 못한 것은 자신이었다.

차분히 계획을 세우고 움직였다면, 훨씬 더 좋은 결과가 나왔을 것인데 말이다.

“이만 돌아갈까요?”

주연희가 곽휘운의 상태를 보고는 이만 돌아갈 것을 제안했다.

지금 주연희가 보기에도 곽휘운의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니요. 그전에 처리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곽휘운은 고개를 저으며, 해야 할 것이 있다고 말하였다.

주변을 한번 둘러보는 곽휘운.

얼음 조각으로 변해 버린 팽도혁과 무리들이 보였다.

이들을 이곳에 이대로 두고 갈 수는 없었다.

슈와아아아악.

곽휘운의 몸에서 휘운이 뿜어져 나오며 사방을 뒤덮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만큼 진한 휘운.

그리고 곽휘운은 그 휘운 안에서, 이들 모두가 들어갈 수 있는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제대로 묘비조차 적지 못한 무덤이지만, 이대로 두고 가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터였다.

‘죄송합니다.’

지금 곽휘운이 이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의 전부였다.

‘후에 사죄드리겠습니다.’

사죄는 나중에 하기로 하였다.

아직 해야 할 것들이 남아 있었으니 말이다.

“이제 일을 마저 처리하죠.”

“네? 이게 그 일 아니었어요?”

“이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지금 해야 할 건…….”

퉁. 솨아아악!

곽휘운의 손에서 순식간에 빙궁(氷弓)이 생기고, 그 위에 휘운시가 걸리며 쏘아져 나아갔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에 이루어진 일련의 과정.

공간을 격하듯 날아간 휘운시.

푹. 투우욱.

휘운시가 나무 위에 있는 무언가에 그대로 작렬했고, 나무에서 무언가 아래로 떨어졌다.

빠르게 가까이 다가보니, 두 눈을 제외하고는 모든 부분을 녹색 경장으로 위장하고 있는 인영이었다.

“이건……?”

“이자가 부맹주님들을 감시하던 천살교의 눈일 겁니다.”

조금 전 휘운으로 주변을 완전히 감쌌을 때, 곽휘운은 아주 미세한 움직임을 느꼈다.

아마도 무언가를 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몸을 움직였기 때문일 터.

주변은 이미 휘운이 모두 장악한 상태였으니, 아무리 특수한 무공을 익혔다고 해도 완벽하게 기척을 지울 수는 없었고, 결국 곽휘운에게 걸리고 말았다.

“하지만 이 자가 다가 아니었습니다.”

곽휘운은 동시에 세 가지 기척을 느꼈다.

그중에 제대로 감을 잠은 것은 지금 쓰러져 있는 이 인영뿐.

나머지 두 개의 인영은 완전히 기척을 놓쳤다.

하나의 인영을 방패삼아서 도망친 것이다.

동시에 셋을 꿰뚫으려고 하였는데, 거리가 멀고 워낙에 급하게 쏜 것이라 실패하였다.

‘수행 부족이다.’

곽휘운은 자신의 수행이 부족함을 탓했다.

천홍에게 천마신공까지 배우고 조금 자만했던 듯싶었다.

수행에는 끝이 없는 것인데 말이다.

곽휘운은 오늘부터 수행에 한층 더 힘을 쏟기로 하였다.

마음을 다잡은 뒤 곽휘운은 주연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연희 소저는 무림맹으로 가실 겁니까?”

“예? 그걸 어떻게…….”

주연희가 놀라며 곽휘운에게 되물었다.

사실 주연희는 복수를 한 뒤, 무림맹으로 곧장 떠날 생각이었다.

너무나도 신혜설이 걱정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무림맹으로 떠날 것이라 말한 적은 없었다.

괜히 자신이 떠난다고 하면 걱정할 것이 뻔하니 말이다.

지금과 같은 시기에 혼자서 떠나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이었다.

“저 혼자 조용히 다녀올게요.”

“음……. 연희 소저라면 충분하실 테지만…….”

곽휘운은 주연희라면 혼자서도 충분할 것이라 생각은 하였다.

하지만 곽휘운은 만에 하나의 경우도 생각했다.

천살교가 조직적으로 움직인다면, 혼자서는 힘들 수 있었다.

그렇다고 곽휘운이 직접 무림맹까지 따라가고 싶어도, 지금 객잔과 백리세가를 두고 떠날 수가 없었다.

“주학! 나와라.”

“네에~”

곽휘운의 목소리에 갑자기 남주학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연희는 갑자기 들려오는 남주학의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분명 주변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구나.”

“헤헤.”

남주학은 곽휘운이 천살궁에 가 있는 동안 쉬지않고 수련을 계속했다.

그리고 천살궁에서 돌아온 곽휘운이 전해준 무공까지 빠르게 익혀 나갔다.

‘귀혼신공(鬼魂神功)’에 더해진 무공은 ‘풍살마공(風殺魔功)’이었다.

이것도 천홍이 전해 준 무공이었다.

[저 아이가 풍살마공을 극한까지 깨우친다면, 아마 무림에서 너 정도 말고는 아무도 저 아이를 찾지도, 잡지도 못할 거다.]

천홍이 풍살마공을 남주학에게 전해 주었을 때 한 이야기였다.

곽휘운도 천홍의 말에 완전히 동의했다.

그리고 곽휘운은 머지않아 남주학이 그 경지에 도달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괜히 저 때문에 신경 써 주시지 않아도 돼요.”

“아닙니다. 주학이도 무림맹이 있는 곳에 갈 일이 있어서 가는 것입니다.”

“맞아요. 저도 볼일이 있거든요.”

곽휘운이 남주학을 주연희와 함께 보내는 이유는, 남주학이 마침 무림맹에 있는 곳에 볼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객주님. 바로 출발할게요.”

“그래. 연희 소저 조심이 다녀오십시오.”

“예. 그럼 다녀와서 봬요.”

남주학과 주연희가 떠나고 홀로 남은 곽휘운.

그리고 곽휘운은 조용히 눈을 감고는 온 사방으로 휘운을 펼치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기 위해 모든 감각을 동원해 휘운으로 주변을 훑은 곽휘운은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휘운을 거두어 들였다.

그리고는 조금 전 팽도혁과 그 무리들을 묻었던 곳으로 몸을 옮겼다.

“이걸 이제 또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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