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175화>
무림맹 부맹주 거도왕 팽도혁.
그가 지금 무림맹을 배신한 세력의 핵심 인물이었다.
그는 화통한 성격만큼 정의로운 자로 무림에 명성이 자자한 무인이었다.
평생을 무림맹을 위해 일해 온 사람.
그런데 그런 팽도혁이 무림맹을 배신했다니?
정도 무림은 그야말로 대 혼란에 빠졌다.
‘썩어 버린 무림을 내손으로 정화하겠다!’
팽도혁은 천살교가 내뱉은 것과 같은 말을 내뱉으며, 무림맹의 내부에서 갑자기 공격을 시작하였다.
그 누구도 팽도혁의 배신은 예상치 못했기에, 피해는 막심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더해 팽도혁의 실력 또한 알려진 것 이상을 보여 주었으니, 그 누구도 팽도혁을 막을 수 없었다.
다행히도 위강천이 나타남으로 팽도혁을 막았지만 이미 피해는 너무나도 컸고, 팽도혁은 배신을 한 이들과 함께 곧바로 종적을 감추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무림맹 말고도 또 큰 피해를 받은 곳이 있었다.
‘북해빙궁,’
북해빙궁은 계속해서 무림맹에 머물면서 이제는 천살교를 막는 것에 주력하고 있었다.
특히 빙궁의 궁주인 신혜설은 여전히 무림맹에 남아 있었는데, 그녀는 팽도혁의 배신의 희생양이 되어 큰 상처를 입고 쓰러졌다.
무림맹은 당장 최고의 의원들을 불러들여 그녀를 치료했지만, 큰 차도는 없었고 신혜설은 계속해서 병상에 누워서 깨지 못하고 있었다.
* * *
“당장 무림맹으로 떠나야겠어요.”
주연희는 신혜설의 소식을 전해 듣자마자 당장이라도 무림맹으로 향할 기세였다.
그도 그럴 것이 신혜설은 주연희에게 부모나 마찬가지인 사람.
그런 신혜설이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연희 소저. 잠시만 진정해 주십시오.”
곽휘운은 일단 주연희를 진정시켰다.
지금 주연희는 감정이 너무 앞서 있는 상태.
무턱대고 감정을 앞세워 움직인다면, 분명 득보다는 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저도 지금 굉장히 화가 납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머리를 차갑게 해야 합니다.”
곽휘운도 지금의 상황에 당연히 분노가 차오를 수밖에 없었다.
어떻든 간에 신혜설은 분명히 자신의 어머니였으니 말이다.
세상 어느 자식이 어머니가 공격을 당해 쓰러졌다는데 아무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곽휘운은 최대한 냉정하게 생각하기로 하였다.
보다 완벽하게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부맹주님이 배신을 할 줄이야.’
곽휘운도 팽도혁이 배신을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곽휘운이 아는 팽도혁은 분명 그럴 사람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도대체 언제부터 무슨 연유로 천살교에 가담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또 다시 혼란이 무림맹을 덮치겠군.’
무려 무림맹 부맹주의 배신이다.
당연히 혼란은 필연일 터였다.
일단 이 혼란을 잠재우려면 무림맹을 배신한 이들을 잡는 것이 우선일 터였다.
그들을 확실하게 잡아야 더 이상의 혼란을 야기 시키지 않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현재 무림맹에서 그들을 잡기 위해 움직일 만한 자들이 없을 터.’
무림맹의 전력이 현재 많이 줄어든 상태.
그렇다고 그들을 잡기 위해 위강천이 직접 움직이고 싶어도, 위강천이 지금 무림맹을 비우기에는 너무나 많은 잠재적 위협이 있었다.
설무룡은 지금까지도 요양을 하고 있는 상황.
더욱 강해진 거도왕 팽도혁을 막을 만한 무인이 없었다.
‘내가 직접 움직여야겠어.’
현재 객잔에 돌아온 지 며칠 되지 않은 시점.
객잔에 최대한 집중을 하려고 했지만, 이 사안을 이대로 넘길 수는 없었다.
객잔 식구들은 지금 새로운 무공을 익히는 것에 주력하는 시점.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다.
“급보입니다!”
곽휘운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또 다시 무림맹의 무사가 다급한 얼굴로 달려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헉헉……. 팽도혁과 그 무리가 이곳 항주로 오고 있다고 합니다!”
“!!”
곽휘운은 이 소식에 조금 놀랐다.
팽도혁이 왜 이곳 항주를 향해 오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 텐데?’
자랑은 아니지만, 팽도혁은 자신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터다.
그런데 이곳 항주로 향해 오다니?
팽도혁의 의중을 쉽사리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만나봐야 알 수 있겠군.’
곽휘운은 결국 직접 팽도혁을 만나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도 직접 찾으러 갈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직접 나타나 주니 번거로움은 덜 수 있었다.
“연희 소저도 저와 같이 움직이시겠습니까?”
“물론이죠.”
곽휘운은 주연희는 당연히 함께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가 어떻게 날뛸지 모르니 말이다.
차라리 자신이 보는 시야 안에서 날뛰는 것이 나았다.
“그럼 조금 먼저 나가서 맞이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곽휘운은 항주에 도착하기 직전에 먼저 맞이하기로 하였다.
무림맹에 물어보니 그들은 딱히 숨지도 않고 모습을 드러내면서 이곳으로 오고 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굳이 객잔이 있는 근처에서 싸울 필요는 없었다.
“도대체 무엇이 움직이게 하였을까.”
곽휘운은 팽도혁이 왜 배신했는가를 다시 한번 더 고민하면서 주연희와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 * *
팽도혁은 지금 항주를 향해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의 주위에는 수십의 하북팽가 무인들이 함께 하였는데, 그들 모두가 이번에 무림맹을 배신하고 뛰쳐나온 이들이었다.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모두 슬픔을 하고 있었는데, 배신을 한 이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표정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팽도혁은 그들을 바라보며 슬쩍 고개를 저었다.
자신과 이들이 무림맹을 배신한 이유.
그것은 모두 세가의 존속 때문이었다.
‘그들의 진면목을 보았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팽도혁은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깊게 천살교의 진면목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이 지금 무림에 보여준 힘은 겉껍데기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보여 준 것을 훨씬 상회하는 힘이 있었다.
가히 전율스러운 힘.
그 힘은 무림의 그 누구도 막을 수 있는 힘이 아니다.
무림맹과 천마신교가 손을 합친다고 해도 말이다.
‘하북팽가의 존속을 위해서는…….’
팽도혁은 그들의 힘을 바라보고 무림맹을 배신한 것이다.
천살교가 원하는 것을 해 준다면, 하북팽가의 존속을 약속받았으니 말이다.
그들은 이번에 무림맹을 배신해서 큰 혼란을 일으키기를 원했고, 팽도혁은 그대로 행한 것이었다.
이미 그들이 하북팽가의 많은 것을 틀어쥐고 있었으니 말이다.
‘나와 이들만 배신자로서 죽으면 되는 거다.’
팽도혁은 깔끔하게 자신들만 죽으면서 하북팽가와의 연은 끊어버리기로 하였다.
그리고 자신에게 죽음을 선사해줄 자로는 곽휘운을 택했다.
혹시나 천살교를 막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곽휘운이 유일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배신자인 자신이 그에게 죽음을 당함으로, 그에게 조금이라도 힘을 실어 줄 생각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그와 관계가 있는 신혜설을 공격한 것이고 말이다.
“이제 항주에 거의 다 왔습니다.”
그때 다른 무인이 팽도혁에게 다가와 항주 근처에 도착했음을 알려왔다.
조금도 쉬지 못한 너무나도 피곤한 여정.
하지만 이들은 이제 드디어 그 끝이 보인다고 생각했다.
하북팽가를 위해서라면, 자신들의 명예나 목숨쯤은 얼마든지 내던질 수 있었다.
사아아악.
갑자기 불어 닥친 바람과 함께 그들의 앞에 두 개의 인영이 나타났다.
일제히 걸음을 멈춘 팽도혁과 무리들.
팽도혁은 두 인영을 보고는 작게 미소 지었다.
“오랜만이구나!”
“예. 그런데 좋지 못한 일로 다시 봬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 * *
팽도혁 무리를 막은 두 인영은 바로 곽휘운과 주연희였다.
항주에서 출발하고 얼마 되지 않아 이렇게 팽도혁 무리를 마주한 것이다.
그리고 곽휘운은 팽도혁을 딱 마주친 순간 느꼈다.
그들이 정말 천살교를 위해서 무림맹을 배신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수도 없겠군.’
저들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고 해도, 그냥 없는 일로 넘어갈 수는 없을 듯 싶었다.
두 눈에 깃든 필사의 각오.
저들은 이곳에 죽기 위해 온 것이었다.
“자! 너도 알고 있겠지만, 우리는 무림맹을 배신한 자들이다! 너희도 무림맹의 소속이니 우리의 도를 면치 못할 것이다!”
팽도혁은 짐짓 살기를 피어 올리며 소리쳤다.
하지만 그의 살기에서는 진심을 찾을 수는 없었다.
곽휘운은 그런 팽도혁과 잠시간 두 눈을 마주쳤다.
[어찌하여 이런 선택을 하셨습니까?]
곽휘운은 팽도혁에게 전음을 보내었다.
그의 진짜 의중을 듣고 싶었으니 말이다.
[하하! 어쩔 수 없었다! 하나만 부탁을 하자!]
곽휘운에게 전해지는 팽도혁의 전음.
그 전음은 짐짓 밝아보였지만, 그 안에는 깊은 슬픔이 있었다.
[우리를 이곳에서 모두 죽여준 후, 나의 독단적인 배신이라고 해다오!]
[천살교에게 협박당하신 겁니까?]
[아니, 그건 아니다! 다만……. 다만……. 천살교를 조심하거라!]
무언가 갑자기 전음을 마무리 해버리는 팽도혁.
팽도혁은 더 이상의 대화는 하고 싶지 않은 듯싶었다.
[우리를 위한다면, 여기서 모두 죽여다오!]
팽도혁의 이 전음과 함께, 일제히 팽도혁과 무리들의 도가 뽑혀져 나왔다.
싸움을 알리는 신호.
곽휘운도 주연희도 준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곽휘운은 조금은 슬픈 눈으로 팽도혁을 바라보았다.
그를 위해서는 그를 벨 수밖에 없다는 것을 느꼈다.
‘정말 이렇게 해야만 하는 것인가…….’
곽휘운의 두 눈에는 더욱 짙은 슬픔이 걸렸고, 여느 때와는 다르게 그의 입가에는 조금의 미소도 피어오르지 않았다.
다만,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그저 압도적인 기운이 뿜어져 나올 뿐이었다.
‘너무나도 힘든 일이구나.’
저들을 이대로 모두 용서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모두 죽여야 하는 것도 마음이 아팠다.
수많은 무림맹 인사들을 죽인 이들.
거기에 더해 자신의 어머니인 신혜설까지 죽음에 가까운 곳으로 몰아넣은 이들.
죽음으로 단죄해도 될 만한 죄목이지만, 저들이 원해서 한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다.
‘결국 천살교가 문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