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171화>
천살교 측에 이번에 붙었던 이들도 예외 없이 살선신마진에 의해 죽어 나가고 있었다.
결국 그들은 천살교에 의해 놀아난 것일 뿐이었다.
“끄아아악!!”
주변에서 사람들의 고통에 찬 비명이 끊임없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곽휘운 일행을 따라나선 이들도 있었지만, 따라나서지 않은 이들이 훨씬 더 많았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움직이고 있었지만, 내공이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 기혈까지 뒤틀리니 금방 피를 토해 내며 쓰러져 나갔다.
물론 그것을 참아 내고 움직이는 이들이 있었지만, 그들 앞에는 여지없이 천살교에서 보낸 듯한 인영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촤아악! 촤악!
거침없이 사람들을 베어 넘기는 인영들.
그들은 마치 이 살선신마진의 영향을 받지 않는 듯싶었다.
“강시다!!!”
천살교에서 보낸 인영들의 정체는 강시였다.
그들은 강시였기에 살선신마진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었다.
지금이라면 평범한 강시도 위협이 될 상황인데, 이 강시들은 꽤 강력한 강시들이었다.
그러니, 살선신마진에 영향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상대가 될 리 없었다.
일방적인 학살.
지금 이 천살궁은 마치 지옥도로 변해, 바닥에 피가 강을 이루는 지경이 되었다.
퍽. 퍽. 퍽. 퍽. 퍽.
사람들을 공격하던 강시들의 머리가 무언가에 의해 그대로 터져 나갔다.
사람들의 고개가 단번에 그쪽으로 향했다.
“다들 저쪽을 따라가십시오.”
활을 들고 강시들의 머리를 날린 인물은 바로 곽휘운이었다.
곽휘운은 말을 하면서도 연신 쉬지 않고 휘운시를 날려 강시들을 부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런 곽휘운의 모습에 감탄할 시간도 없이 급하게 일정하게 움직이며 빠져나가고 있는 사람들의 행렬에 합류했다.
“끝이 없군.”
강시들이 끝도 없이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었다.
곽휘운 혼자서 막기에는 아무리 곽휘운이라도 한계가 있었다.
서거거거걱.
“저희도 돕겠사옵니다!”
그때 제선화가 앞으로 나타나서는 강시들을 거침없이 베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녀를 따라서 검마와 도마도 나서서 강시들을 부셔 나가기 시작했다.
셋이 합류하자 엄청난 속도로 강시의 수가 줄어들어 나갔다.
“괜찮으십니까?”
“네. 저희는 괜찮사옵니다.”
천마신교의 인물들은 이 살선신마진에 영향을 받지 않는지, 자유롭게 내공을 쓰고 있었다.
[아마 마기가 충분하면, 살선신마진에 영향을 제대로 받지 않을 것이다.]
천홍이 살선신마진을 만든 것은 오로지 천마신교의 무인이 아닌 이들을 대상으로 해서였다.
그래서 일정 이상의 마기를 가진 자들에게는 큰 위협이 되지는 못하였다.
‘그걸 왜 이제야 알려 주시는 겁니까?’
[험험. 본좌도 잠시 잊고 있었다.]
어떻게 되었든, 천마신교측의 인물들이 도와주는 것은 아주 좋은 상황이었다.
그렇게 강시들이 거의 다 정리가 되었을 때 쯤.
곽휘운은 또다시 몸을 움직이려 하였다.
아직 남아 있는 일이 있었으니 말이다.
“혹시 제석종을 만나러 가는 것이라면, 제가 같이 가도 되겠사옵니까?”
“예. 괜찮습니다.”
그때 제선화가 곽휘운이 움직이려는 것을 보고, 갑자기 자신이 같이 가도 되냐고 물어왔다.
곽휘운은 오래 고민할 시간도 없었고, 따라오는 것을 막을 명분도 없었으니, 당연히 괜찮다고 하였다.
“흘흘. 여긴 우리가 정리할 테니, 움직여 보게.”
검마가 남은 강시들을 모두 처리한다고 했으니, 안심하고 먼저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가시지요.”
곽휘운은 그렇게 제선화와 함께, 한곳으로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생문이 아닌 길.
엄청나게 드넓은 천살궁이기에 가장 빠른 길로 일직선으로 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곽휘운과 제선화의 앞에 제석종을 비롯한 천살교 수뇌들이 모습을 나타내었다.
* * *
제석종은 일부러 곽휘운이 알아볼 수 있도록 기운을 흘리고 있었다.
그가 자신을 찾아오도록 말이다.
“일의 진척은 얼마나 되었습니까?”
제석종은 혈뇌에게 일의 진척이 얼마나 되었는지 물었다.
이번 일의 가장 핵심이었으니 말이다.
“예상보다는 적기는 하지만, 대계를 진행시키기에는 충분합니다.”
진석이 부셔져 생문이 생기고, 제갈세가의 인원들이 그곳을 통해 사람들을 인도하는 바람에 생각보다는 적은 양이 모였지만, 지금 이것만으로도 준비하고 있는 대계를 시작하기에는 충분했다.
“혈주님. 여기에 그자의 피까지 들어간다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노력해 보겠습니다.”
천살교가 원하는 것.
그것은 무인들의 피였다.
애초에 무림 최고수 다섯을 초대한 것은 그들의 실력을 정확히 가늠해 보는 것도 있었지만, 그들의 피를 조금이라도 얻으려는 목적도 있었다.
도마와 검마의 피는 얻지 못했지만, 다른 셋의 피는 얻어 내었다.
특별히 만든 비무대 아래에는 아주 조금의 피도 흡수하는 진법이 설치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곽휘운의 피를 아주 조금이라도 얻기 위해 이렇게 기다리는 것이었다.
현재 곽휘운과 싸울 수 있는 것은 혈주 제석종뿐이었다.
대장로는 대계를 위하여 먼저 약속한 장소로 떠났으니 말이다.
휘이익.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곽휘운이 나타나자 제석종은 일단은 정중하게 인사를 하였다.
곽휘운은 그가 인정한 수준의 무인이니 말이다.
그리고 제석종의 시선이 곽휘운의 옆에 있는 제선화에게 향했다.
“오랜만이구나.”
“배신자에게 인사를 받을 생각은 없사옵니다.”
“하하. 그래. 내가 생각이 짧았다.”
제석종은 조금은 쓰게 웃으며 대답하였다.
제선화의 말대로 자신은 지금 천마신교의 입장에서 보면 최악의 배신자였으니 말이다.
그런 상태에서 혈육이라도 인사를 주고받는 것은 어불성설일터였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으셔서 이렇게 저를 기다리신 겁니까?”
곽휘운은 그들이 자신을 유인하면서까지 기다린 이유가 궁금했다.
그저 자신과 싸워보겠다고 이렇게 기다리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일은 어느 정도는 뜻대로 풀렸습니다. 다만, 이렇게 초대를 드렸는데, 주인인 제가 움직이지 않으면 실례라 생각해 기다렸을 뿐입니다.”
말을 마치고 자세를 잡는 제석종.
곽휘운도 곧바로 손에 빙검을 쥐었다.
곽휘운의 빙검을 보고는 제석종이 눈을 빛내었다.
예전에 제갈세가에서 만났을 때는 보지 못한 것이니 말이다.
“하하. 새로운 무공입니까?”
“예. 깨달은 것들이 좀 있어서 말입니다.”
그렇게 곽휘운이 제석종에게 달려가려고 할 때였다.
“제가 싸우겠사옵니다.”
제선화가 곽휘운의 앞에 섰다.
곽휘운은 아주 잠깐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하였다.
‘제선화가 제석종과 싸울 수 있는 수준일까?’를 판단하는 게 가장 우선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제선화의 불타는 두 눈을 보고는 일단은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이들을 묶어 놓는 것이 목표니까.’
곽휘운이 제석종의 기운을 따라 이곳에 온 이유는 저들의 발을 이곳에 묶어 두기 위해서였다.
저들이 지금 움직인다면 상당히 골치가 아파질 테니 말이다.
아마도 저들도 그것을 알기에 이렇게 자신이 올 것이라 예상했을 것이다.
물론 제선화가 같이 오는 것은 예상치 못한 것 같지만 말이다.
“그래. 오랜만에 네 솜씨를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구나.”
제석종이 수락의 뜻이 담긴 말을 하자, 옆에 있던 혈뇌의 표정이 아주 잠깐 찌푸려졌다.
물론 아주 찰나의 시간이기에 그것을 본 것은 곽휘운뿐이었지만 말이다.
제선화와의 싸움은 그들의 계획에 없는 것이 분명했다.
“시간이 많은 것은 아니니 바로 시작하자.”
제석종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제선화가 말도 없이 곧바로 움직였다.
그녀의 검에 맺혀있는 거대한 멸화강기.
제선화의 천마멸화신공(天魔滅火神功)이 발휘된 것이었다.
제석종도 제선화의 멸화강기에 눈을 빛내었다.
분명 자신이 천마신교에 있을 때는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좋은 깨달음을 얻었구나.”
“배신자를 처단하기 위한 깨달음이옵니다.”
- 천마멸화신공(天魔滅火神功). 오의. 멸화폭뢰(滅火爆雷).
제선화는 시간을 오래 끌 생각이 없었다.
곧바로 멸화폭뢰의 초식을 펼쳐 내었다.
거대한 화탄과도 같은 멸화강기가 제석종을 향해 쇄도했다.
검마도 괜찮다고 인정했던 한 수.
“강렬하구나!”
제석종은 대번에 제선화의 멸화폭뢰가 가진 힘을 알아보았다.
스윽.
천천히 앞으로 내뻗어지는 제석종의 검.
그의 검에는 지금 아무런 기운도 서려 있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그대로 멸화폭뢰에 의해 당할 것만 같아 보였다.
서걱. 서거거거거걱. 서걱. 서걱.
그런데 제석종을 향해 다가오던 제선화의 멸화폭뢰가 도중에 수십 조각으로 잘려 나가기 시작했다.
스아아아아압.
그리고 그 잘려진 조각들이 그대로 허공에서 흩어졌다.
너무나도 허망할 정도로 쉽게 막힌 멸화폭뢰.
하지만 제선화는 멈추지 않았다.
제석종의 실력이 예전과는 분명 다를 것이라 생각했으니 말이다.
다시금 제선화의 검에서 멸화강기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전과는 다르게 크기 자체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안에 담겨있는 힘이 결코 적지는 않았다.
- 천마멸화신공(天魔滅火神功). 극의. 멸화소혼(滅火燒魂).
멸화강기가 한계까지 압축되어 뿜어내는 초식인 멸화소혼.
슈와악!
제선화의 검이 벼락같이 움직이며 제석종에게 쇄도했다.
이번에는 검 자체에 둘러싸인 것이기에, 도중에 잘려나갈 일은 없었다.
제석종은 옅게 미소를 지으며 마주 검을 뻗었다.
콰아아아아앙!
화탄 수 개가 동시에 터진 듯한 엄청난 굉음과 충격파.
주변에 있던 모든 이들이 호신강기를 펼쳐야만 할 정도였다.
그렇지 않으면 내상을 입을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스아아아아아아.
제석종과 제선화가 검을 맞부딪친 곳에서 바람이 일어나 흙먼지를 모두 날려 버렸다.
드러나는 주변의 모습.
바닥은 둘이 서있는 주변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땅이 터져나가 있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검을 맞대고 있는 제석종과 제선화가 보였다.
“대단하구나.”
제석종은 자신의 검을 바라보았다.
제선화의 검과 부딪친 검의 검날이 조금 파여 있었다.
물론 검날이 조금 날아간 정도가 무슨 대단한 일이겠냐만, 제석종은 도마 정도가 아니라면, 자신의 검에 상처를 낼 수 있는 무인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제선화가 지금 자신의 검에 상처를 낸 것이다.
“하지만 힘의 고하는 가늠하고 싸우도록 하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