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휘운객잔-166화 (166/203)

<휘운객잔 166화>

검존과 도마의 기운이, 그야말로 폭발하기 직전까지 모이기 시작하였다.

이미 비무대를 넘어서 주변으로 퍼지는 기운.

모든 사람들이 침 삼키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하면서 둘을 지켜보았다.

다들 알고 있었다.

단 일 합으로 이 싸움이 끝날 것이라는 걸 말이다.

콰아아아아아!

콰아아아아아!

서로 한 치의 밀림도 없이 팽팽한 상태.

하지만 이 팽팽함이 조금씩 깨지기 시작했다.

도마의 기운이 검존의 기운을 밀어내고 있었다.

아주 느렸지만, 검존의 기운이 조금씩 밀려났다.

“하압!”

검존의 기합성과 함께, 검존의 기세가 다시금 강렬해졌다.

순식간에 밀리고 있던 형세를 뒤집고, 오히려 도마의 기운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투둑. 투둑. 툭. 툭.

검존의 몸에서 힘줄들이 튀어 나오기 시작했고, 그의 몸이 붉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특히나 그의 두 눈은 금방이라도 피를 흘릴 듯 붉게 물들어 있었다.

“혈라화(血羅化)에 도달했군.”

멀찍이서 검존을 바라보던 천살교 대장로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검존의 성취가 빠름에 만족한 미소였다.

혈라화(血羅化).

대장로가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실험을 거쳐 만들어 낸 단약으로 강해진 무인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상태.

천마신교에 있을 때부터 수많은 무인에게 실험을 해 오며 조용히 진행해 온 결과의 결정체가 바로 혈라화였다.

조금씩 단약이 개량될 때마다 천혈오존에게 가장 먼저 제공해 주었는데, 그간 쌓인 단약의 기운들을 모두 합쳐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만 혈라화에 도달할 수 있었다.

대장로가 알고 있는 검존은 분명 아직 혈라화의 단계까지 도달하지 못했었는데, 오늘 혈라화에 도달했음을 보여 주고 있었다.

‘좋아. 시일이 조금 더 앞당겨지겠어.’

대장로는 검존이 혈라화에 도달함으로 인해, 계획하고 있는 일에 조금 더 빠르게 도달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스윽.

대장로는 슬쩍 고개를 움직여 옆에 앉아 있는 혈주 제석종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아무도 모르게 아주 작은 웃음을 입가에 피어올렸다.

* * *

검존이 혈라화에 도달하고, 도마의 기운이 밀리기 시작할 그때였다.

지금까지 별다른 표정을 하지 않고 있던 도마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 이 정도는 나와야 재미있는 거지.”

도마는 지금 온몸에 피가 도는 것이 느껴졌다.

강자를 만났을 때에 분출되는 이 묘한 느낌.

도마는 이 느낌을 얻기 위해 강자와의 대결을 좋아했고, 그렇게 강자들과 싸우다 보니 천마신교 서열 2위에 오를 수 있었다.

파악!

도마의 눈에서 엄청난 안광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지금까지 멈춰있던 그의 도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보고 있자면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리게 움직이는 도.

하지만 검존은 도마의 지금 기세가 위험하다는 것을 느꼈다.

검존의 검도 드디어 침묵을 깨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칠매신검(七梅神劍).’

일곱 매화가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진한 매화향이 온 천지에 퍼지기 시작했다.

팽팽한 대치의 끝을 알리는 움직임이었다.

“끝이다!!!”

검존의 검이 그대로 도마를 향해 휘둘러졌다.

일곱 매화들이 그대로 도마를 휩싸며, 완전히 도마의 신형을 뒤덮어 버렸다.

마지막으로 보이는 도마의 모습은 다시금 도집에 도를 집어넣는 모습이었다.

철컥.

천천히 움직이던 도가 미쳐 다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다시금 도집에 들어가다니?

검존의 일곱 매화가 완전히 도마를 뒤덮었고, 사람들은 이대로 도마의 패배로 끝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들의 생각일 뿐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도마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낭낭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여전히 검존의 매화가 도마를 감싸고 있는 상황.

퍼퍼퍼퍼퍼펑!!!

잠시 뒤 검존의 매화들이 모조리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도마를 감싸던 모든 매화가 사라졌다.

그리고 보이는 그 자리에 오연히 서서 검존을 바라보고 있는 도마.

“놈! 그저 공격 한 번을 막았…….”

도마를 향해 소리치던 검존의 입이 갑자기 멈추었다.

스르르르륵. 푸와아아악!!

검존의 가슴팍이 갈라지며, 피가 솟구쳐 올라왔다.

털썩.

검존이 그대로 무릎을 꿇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사람들은 도대체 언제 도마가 검존을 벤 것인지 보지 못하였다.

도마가 검존을 베는 모습을 제대로 본 이들은 장내에 다섯이 넘지 않을 터였다.

‘도가 움직이기 시작한 그 순간, 이미 이 대결은 끝이 났다.’

도마의 도가 하품이 나올 듯 천천히 움직일 때.

그때 이미 도마의 도는 검존의 가슴팍을 베어 내었다.

그리고 다시 도집으로 도가 들어갈 때, 검존이 뿜어낸 모든 매화를 갈라 버린 것이다.

극쾌(極快).

도마의 도법인 ‘신쾌낙뢰도(神快落雷刀)’는 극쾌를 추구하는 도법이었다.

도마는 이미 이 신쾌낙뢰도의 끝을 보고, 그 다음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었다.

단 일 합의 싸움이라면, 도마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싸움이었다.

“그런가. 내가 멍청했군.”

검존의 자신의 멍청함을 인정했다.

일 합의 승부를 건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멍청한 짓이었다.

“쿨럭!”

피를 한 움큼 토해내는 검존.

그러더니 검존은 상석에 위치한 천살교 대장로를 바라보았다.

여유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대장로.

검존은 그 미소를 보고는 자신이 그에게 끝까지 이용당했다는 것을 느꼈다.

‘뭐, 그래도 나쁘지는 않지만.’

이용당한다는 것을 알고도 그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가 주는 단약은 너무나 달았고, 그가 자신의 복수를 이루게 해줄 힘을 주었으니 말이다.

사실 검존은 아주 어릴 때에 화산파의 제자였었다.

그는 분명 재능이 있는 아이였지만, 워낙에 폭력적인 성정 때문에 결국 화산파에 내쳐졌고, 그는 그 일 이후 화산파를 끔찍이도 싫어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가 화산파에게 복수를 할 기회 따위는 당연하게도 조금도 주어지지 않았다.

혼자서 화산파라는 거대한 세력을 어찌할 만큼의 힘 따위는 없었으니 말이다.

‘눈이 마음에 드는군. 내가 힘을 주마.’

그때 그에게 손을 내밀어온 자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지금 천살교의 대장로였다.

그는 자신의 말만 잘 따르면, 화산파를 응징할 힘을 주겠다고 하였다.

이미 앞뒤를 가릴 처지가 아니었던 검존은 고민도 없이 대장로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의 손에 이끌려 간 곳에서 시작된 지옥.

‘강해지고 싶으면, 이곳에서 살아 나와라.’

검존이 대장로를 따라간 곳은 어디인지도 모를 산속에 있는 동굴이었다.

동굴 안에는 검존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이 수없이 많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주변을 지키고 있는 혈의를 입은 무인들.

그들은 아이들에게 혈색의 단약과 무기, 그리고 무공서를 전해 주었다.

아주 기초적인 무공서.

어렵지 않은 내공심법과 간단한 검법, 권법, 도법 등이 적혀 있었다.

‘지금부터 한 달 준다. 그 뒤에 미달자는 모두 죽는다.’

진득한 살기와 함께 말하는 혈의 무인들.

검존을 포함한 아이들은 잠시간 겁에 질렸지만, 각자가 원하는 것이 있었기에 죽어라 무공을 익혔다.

그로부터 정확히 한 달 후.

혈의 무인들은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아이들을 가차 없이 모조리 죽였다.

공포.

그것은 정말 어린 나이의 아이들이 감당하기 힘든 공포였다.

그들은 그것을 머릿속에 선명하게 각인시키려는 듯 모두가 보는 앞에서 행했다.

살아남은 아이들은 더욱 더 가열차게 무공 수련에 힘을 썼다.

‘다음은 서로 싸워서 죽여라.’

무공 수련을 하는 아이들에게 떨어진 가혹한 말.

하지만 아이들은 이미 살아남기 위해 모든 것을 할 생각으로 가득했다.

푸욱. 푸욱. 푸욱. 푸욱.

결국 또 다시 반절의 아이들만 살아남았다.

하지만 또 그중에서도 깊은 상처를 입은 아이들은 그대로 버려졌다.

순식간에 살아남은 아이들은 몇 남지 않았다.

‘너희는 선택받은 아이들이다.’

그때 대장로가 모습을 나타내어 살아남은 아이들을 흡족하게 바라보며 이야기를 했다.

모두들 눈빛이 맹수처럼 날카로워져 있었다.

툭,

그리고 그들 앞에 또 다른 단약들이 떨어졌다.

차원이 다른 빛깔을 자랑하는 단약.

아이들은 고민도 하지 않고 단약을 입으로 직행했다.

콰아아아아아!

그들이 단약을 먹자마자 폭발하듯 늘어나는 내공.

그들이 잠시 뒤 다시금 눈을 떴을 때는 단약을 먹기 전과는 확연히 다른 이들이 되어 있었다.

‘그럼 여기 무사들을 모두 죽여라. 살아서 밖으로 나오는 것들만 데리고 가겠다.’

대장로는 그 말과 함께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아이들은 독하게 눈을 빛내며 곧바로 혈의 무인들에게 쇄도했다.

그동안 자신들에게 했던 그들의 처사에 대해 복수하듯이 말이다.

단약으로 폭발적으로 강해진 아이들은 결국 모든 혈의인들을 죽여 낼 수 있었다.

‘좋아 다섯이면 딱 좋군.’

그렇게 살아남은 아이의 수는 총 다섯.

그들이 지금의 천혈오존이 된 것이었다.

그렇게 천혈오존이 되었지만 당연히 그들 사이에서도 격차는 존재했다.

검존 자신을 포함해서 무존과 패존은 확실히 앞의 둘과는 격차가 있었다.

‘버려질 수 없다.’

검존은 이대로 뒤처지면, 분명 버려질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까지 그런 이들을 천살교에서 숱하게 봐 왔으니 말이다.

그래서 몰래 죽어라 노력을 해서 혈라화에 도달했다.

그런데 지금 대장로의 미소를 보니, 자신이 어떻게 하든 결국은 버려질 운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들은 게 헛소리가 아니었군.’

검존은 아주 우연히 대장로가 계획하고 있는 일에 대해 단편적으로 엿들을 수 있었다.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계획이기에 검존은 자신이 들은 것이 피곤해서 잘못들은 헛소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대장로를 보니 그 계획이 헛소리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나만 말하지. 너희가 이겨도, 너희가 질 거다.”

검존은 알 수 없는 말을 마지막으로 하고는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또 다시 천살교 무인들이 나타나 검존의 시체를 들고 사라졌다.

앞선 두 번의 대결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일방적인 싸움.

도마는 멀쩡한 모습으로 비무대를 벗어날 수 있었지만, 머릿속은 굉장히 복잡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무슨 뜻이지?’

검존의 마지막 말.

그것은 분명 천살교가 숨겨 둔 무언가가 있다는 암시였다.

도마는 천살교 측을 바라보았지만, 그들의 표정이 여유롭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무언가 더 알아낼 것은 없었다.

‘결국 일이 터져야 알 수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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