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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운객잔-165화 (165/203)

<휘운객잔 165화>

쉬익. 쉬익.

재빠르게 천살궁을 가로지르는 곽휘운.

곽휘운의 움직임은 지금 거침이 없었다.

최대한 몰래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것도 있고, 무치가 곽휘운에게 도움을 준 것도 많았다.

그는 슬쩍 곽휘운에게 이래저래 천살궁에 대한 정보를 주었다.

‘첫 번째 진석부터 차근차근 부수자.’

곽휘운은 지금 급하게 움직이는 것보다는 조용히 가장 중요한 몇 개만 부술 생각이었다.

수없이 많은 전각.

곽휘운은 그중 눈에 잘 띄지 않는 한 전각으로 슬쩍 들어갔다.

스윽.

전각 내부에는 다섯 정도의 천살교 무인들이 무언가를 지키고 있었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거대한 석상 하나.

곽휘운은 대번에 저것이 진석이라는 것을 알았다.

스으으윽. 슉.

아주 미세한 파공음.

곽휘운의 흑궁에서 휘운으로 만들어 낸 다섯 화살이 그대로 천살교 무인들의 머리에 박혔다.

툭.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쓰러지는 다섯 무인.

곽휘운의 휘운신공이 날로 발전하여 얻은 성과였다.

곽휘운은 아직도 쉴 새 없이 강해지고 있었다.

“어디 보자.”

곽휘운은 제갈중천이 전해 주었던 작은 석상 조각 하나를 품에서 꺼내었다.

“여기에 두면 되겠군.”

곽휘운은 진석이 있는 곳 바로 앞에 작은 석상 조각을 두었다.

제갈중천이 진석을 파괴하기 전에 이것을 먼저 올려둔 후에 파괴하라고 일러주었다.

이런 거대한 진법을 하였을 때, 분명 이런저런 장치를 해 두었을 것이라면서 말이다.

‘진석이 파괴되면 그들이 알아챌 수 있으니, 이것을 앞쪽에 먼저 두시오.’

진석이 파괴되어도 잠시 동안은 파괴되지 않은 것처럼 만들어 주는 석상.

제갈중천은 이것을 몇 개 만들어 곽휘운에게 전해 준 것이다.

탁. 퍼석.

곽휘운이 가볍게 진석을 때리자, 그대로 가루처럼 파괴되었다.

“다음으로 가자.”

곽휘운은 시간이 많지 않으니, 곧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 부셔야 할 곳들이 남아 있었으니 말이다.

스슥.

또 다시 은밀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곽휘운.

그렇게 곽휘운이 세 곳의 진석을 파괴했을 때였다.

이제 네 번째 진석을 파괴하려 전각에 곽휘운이 들어갔을 때였다.

“쥐새끼가 들어왔구나.”

마치 쇠를 긁는 것 같은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검은색의 누더기를 입고 있는 것 같은 인물 한 명이 진석 앞에 서 있었다.

“제가 쥐새끼치고는 좀 크지 않습니까?”

“클클클. 배짱이 좋구나.”

곽휘운은 이미 상대에게 들켰으니, 당당하게 몸을 드러내었다.

이미 자신의 움직임이 들켰다면, 도망쳐봐야 소용도 없을 것이다.

이럴 때는 차라리 드러내고 움직이는 것이 나았다.

“진을 파괴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 같은데, 더 이상은 움직일 수 없을 거다.”

곽휘운과 제갈중천이 놓친 것이 있었다.

바로 진석을 지키는 무인들도 특수한 무공으로 연결되어 있어, 혹여나 죽으면 신호가 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신호를 관리하는 자가 바로 곽휘운의 눈앞에 있는 자였다.

“네놈 이름이 뭐냐?”

“곽휘운이라 합니다.”

“좋다. 네 놈의 머리를 내 수집품으로 잘 간직해 주마. 클클클.”

“그쪽 이름도 알려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칠 장로. 그렇게만 알아라.”

칠 장로.

곽휘운의 눈앞에 있는 인영은 바로 천살교의 칠 장로였다.

음산한 기운을 풀풀 풍기는 칠 장로는 취미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자신이 죽인 사람의 머리를 모으는 것이었다.

지금 칠 장로는 곽휘운을 자신의 수집품에 둘 생각이었다.

스스스슷. 스스스슷.

칠 장로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며 주변을 장악해 나가기 시작했다.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나빠지는 아주 사이한 기운을 내뿜으며 말이다.

“흠. 사공(邪功)이라…….”

사공(邪功).

분명 무림에 널려있는 사파들이 사용하는 무공을 사공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들이 익히는 것은 사공의 수많은 갈래에서 뻗어 나온 것들 중에, 삼류 수준의 사공들이 대다수였다.

그래서 다들 사공이라고 하면, 아주 수준 낮은 무공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그것은 크나큰 오판이었다.

진짜 사공은 어느 절세의 무공과 비해도 절대 부족하지 않은 무공이었다.

‘귀찮겠어.’

사공의 가장 큰 힘은 바로, 예측할 수 없는 무공의 힘에 있었다.

무공이 어떤 힘을 보여 줄지 그것을 당하기 전에는 알 수 없었다.

보통의 무공과는 완전히 궤를 달리하는 모습을 보여 주니 말이다.

곽휘운은 칠 장로와의 싸움이 조금 길어질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사공을 익힌 것도 문제지만, 칠 장로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보통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자 얌전히 죽거라.”

스스스슷.

주변을 뒤덮었던 칠 장로의 사기(邪氣)가 곽휘운을 향해 일제히 다가왔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칠 장로의 사기.

이 모습에 곽휘운은 짙게 미소를 피워 올렸다.

슈와아아아악.

오랜만에 사방으로 휘운을 뿌려 내는 곽휘운.

휘운이 퍼져나가자, 칠 장로의 사기가 감히 접근하지 못하였다.

아니 오히려 휘운에 의해 뒤로 밀려 나가기 시작했다.

“흐으으읍!”

칠 장로는 예상치 못한 이 상황에 기합을 내지르며, 더욱 더 사기를 크게 내뿜었다.

칠 장로가 익힌 사공 ‘암영살연공(暗影殺煙功)’은 사기를 수족처럼 조종하여 상대를 죽이는 무공이었다.

특히 이 암영살연공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모든 방위에서의 공격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슈와아아아악.

하지만 곽휘운은 휘운으로 손쉽게 이 암영살연공을 막아 내며, 칠 장로에게 전진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칠 장로가 패배할 것임이 자명한 순간.

하지만 이런 상황임에도 칠 장로의 두 눈은 더욱 빛나고 있었다.

‘놈. 막았다고 방심하는 순간이 네놈의 끝이다.’

칠 장로는 이 암영살연공으로 그동안 수도 없이 많은 무인을 죽여 왔다.

막았다고 생각하고 방심한 순간, 그림자 속에 숨어있던 기운이 뛰쳐나와 상대를 죽인다.

칠 장로는 곽휘운이 자신의 코앞에 당도하는 그 순간을 기다렸다.

자신을 죽이기 위해 검을 움직이는 그 순간.

그때가 상대가 가장 방심하는 순간이었으니 말이다.

“끝입니다.”

“네 놈이 끝이다.”

곽휘운이 어느새 손에 빙검을 쥐고 칠 장로를 베려는 그 순간.

곽휘운의 등 뒤 쪽에서 암영살연공으로 만들어 낸 검은 강기가 솟구쳐 나왔다.

곽휘운의 휘운을 뚫고 안까지 들어온 암영살연공.

“이런 잔재주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칠 장로의 암영살연공으로 만들어 낸 검은 강기는 곽휘운의 등 뒤를 보호하는 휘운에 의해 완전히 막혀 버렸다.

서걱.

그대로 칠 장로의 목이 잘렸다.

곽휘운은 그래도 생각보다는 손쉽게 칠 장로를 이길 수 있었다.

암영살연공의 완벽한 상위호환 격인 무공이 바로 휘운신공이었으니 말이다.

애초에 칠 장로의 암영살연공으로는 곽휘운의 휘운신공을 넘을 수 없었다.

“돌을 파괴한다고, 완전히 파훼할 수 있는 진법이 아니다. 클클클.”

그때 잘린 칠 장로의 머리가 말을 하였다.

보통이라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칠 장로는 목이 잘려도 살아나는 사술을 익히고 있었다.

물론 그것도 오래는 지속할 수 없지만 말이다.

“그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곽휘운은 칠 장로의 모습에도 조금도 동요치 않았다.

그동안 곽휘운이 멸마대에 있으면서 몇 번 본적 있는 사술이었으니 말이다.

“어차피 이것은 그저 준비일 뿐입니다.”

칠 장로의 말처럼 살선신마진은 핵심적인 진석 몇 개를 파괴한다고 해도, 파훼가 가능한 진법이 아니었다.

곽휘운이 진석을 파괴하는 것은 아주 작은 틈을 만들기 위한 준비에 지나지 않았다.

거대한 댐이 아주 작은 균열에 의해 무너지듯.

곽휘운의 역할은 아주 작은 균열을 만들어 내는 것일 뿐이었다.

“…….”

곽휘운의 말이 마치고 잠시 뒤, 칠 장로의 숨이 완전히 머졌다.

곽휘운은 그런 칠 장로를 잠시간 바라보다가, 다시금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 몇 개의 진석을 더 부숴야 했으니 말이다.

“생각보다 조금 늦어지겠군.”

* * *

세 번째 대결을 위해 비무대 위로 오른 검존(劍尊)과 도마(刀魔).

검존은 깔끔한 백의를 걸치고 있었고, 도마는 새카만 흑의를 걸치고 있었다.

흑(黑)과 백(白)의 대립.

둘 다 성격이 깔끔한지 옷에 한점의 흐트러짐이 없었다.

“검존이라고 한다.”

“도마라고 합니다.”

조금은 상대를 내리 깔보듯 오연하게 말하는 검존과 예의를 잃지 않고 말하는 도마.

둘의 대화는 거기서 끝이었다.

그리고 말없이 서로의 무기를 꺼내어 들었다.

스릉.

스릉.

검존과 도마가 각자의 무기를 꺼내들자 순식간에 비무대 위의 공기가 달라졌다.

숨이 막힐 듯 날카로운 기운이 사방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간에서 만난 둘의 기운은 엄청난 반발을 일으키며, 사방으로 마구 흩날리기 시작했다.

카가각. 카각. 카가가가각.

그저 기운만 부딪쳤을 뿐인데, 비무대 바닥에 강기로 벤 것과 같은 상처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제법이군.”

“그쪽도 대단합니다.”

서로 한참을 대립하던 둘이 서로를 인정하는 듯이 입을 떼었다.

그저 기운만 보고서라도 서로의 실력을 알 수 있었다.

눈앞의 상대는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스슷. 사아아아악.

그때 검존의 검이 먼저 움직임을 취하기 시작했다.

첨예한 대립을 보여주던 기운을 가르며 다가오는 검존의 검.

유려하게 기운을 가르며 다가오는 검존의 검을 보고 도마도 빠르게 도를 움직였다.

그저 가볍게 움직이는 듯 싶었지만, 검존의 검에는 강렬한 기운이 담겨있었다.

카아아아앙!

가벼운 부딪침이지만, 그 소리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엄청난 소리에 가까이에 있던 무인들이 급하게 귀를 막고 내공을 끌어올려야만 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인 검존과 도마는 별다른 표정의 변화도 없었다.

아주 강렬한 공격이었지만, 둘에게는 인사와도 같은 공격일 뿐이었다.

“인사는 되었겠지?”

“예. 인사는 잘 받았습니다.”

검존과 도마의 싸움은 이제 시작인 것이었다.

탓.

탓.

다시금 서로의 거리를 벌리면 떨어졌다.

철컥.

착.

그리고 서로의 검과 도를 다시금 고쳐 잡았다.

둘의 생각이 지금 서로 일치했다.

이번 단 일 합으로 상대를 죽일 생각이었다.

서로 일격필살(一擊必殺)의 수를 준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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