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휘운객잔-163화 (163/203)

<휘운객잔 163화>

“허어…….”

사람들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 나왔다.

바람이 불어 흙먼지가 걷힌 비무대 위.

패존과 권마 둘 모두 서로에게서 조금 떨어진 상태에서 똑바로 서 있었다.

그런데 둘 모두 상태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쿨럭. 쿨럭.”

권마는 연신 피를 토하고 있었는데, 그의 오른쪽 얼굴은 불에 완전히 타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타 버렸고, 오른팔은 완전히 짓이겨진 것처럼 너덜너덜거리고 있었다.

다만 그래도 숨은 붙어 있는 상태였다.

휘이이이이잉.

또 다시 비무대 위를 지나는 바람.

패존은 이 바람에도 조금의 미동도 없이 가만히 비무대 위에 서 있을 뿐이었다.

겉으론 멀쩡한 듯 보였지만, 그는 칠공에서 모두 피를 흘리고 있었고, 가슴의 정중앙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절명(絶命).

패존은 지금 상태 그대로 절명한 것이었다.

“끝이 났군.”

권마의 승리로 첫 대결이 끝이 났다.

물론 권마가 다시금 본래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일 정도로 심하게 다쳤지만 말이다.

딱.

상석에서 이를 지켜보던 천살교의 대장로가 손을 튕기자 어디선가 천살교도들이 튀어나와 절명한 패존의 시체를 들고 사라졌다.

그리고 쓰러지기 직전의 권마는 제선화가 얼른 뛰어나가 부축하였다.

“어르신 괜찮으시옵니까.”

“클클. 그래. 괜찮다.”

목이 상했는지 쇳소리와 같은 목소리가 나왔지만, 그래도 권마는 웃어 보였다.

그 모습에 제선화는 조금은 마음을 안도하면서 재빠르게 의원을 찾았다.

하지만 이곳에 천마신교에게 손을 내밀 만한 의원은 거의 없다고 무방했다.

“저희가 치료해 드리겠소.”

그때 먼저 나선 것은 제갈중천이었다.

제갈세가는 당연하게도 의술에도 꽤나 조예가 깊었다.

그들이 어릴 때부터 읽는 서책에는 의학서도 다수 있었으니 말이다.

“감사하옵니다.”

권마는 그렇게 제갈세가에 신세를 지게 되었다.

워낙에 상태가 위중했기에, 제갈중천이 직접 나서서 치료를 개시하였다.

순식간에 완전히 권마의 치료에 집중하는 제갈중천.

“두 번째는 무존(武尊)과 나천괴가 싸우겠다!”

그렇게 제갈중천과 제갈세가 무인 몇이 권마를 치료하는 동안 두 번째 대결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권마와 패존의 싸움으로 완전히 초토화된 비무대는 어느새 수많은 천살교도가 나타나 정리를 마친 상태.

미리 준비를 하였는지 굉장히 빠른 일처리 속도를 보여 주었다.

스슥.

새롭게 단장한 비무대 위에 올라선 사람 한 명.

등에는 창과 거대한 도끼가, 허리춤에는 검 한 자루와 도 한 자루를 차고 있는 모습.

키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체구가 굉장히 단단해 보였다.

딱 보아도 엄청난 수련을 거친 듯이 몸에는 이리저리 상처도 꽤나 많았다.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도 처음 보는 모습의 무인이었다.

그렇다면 저 사람이 바로 무존이라는 사람일 터였다.

“게으르군.”

나천괴가 아직까지 비무대 위에 나타나지 않자 묵직한 저음으로 말하는 무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귀에 똑똑히 들리는 목소리.

그의 내공 수준을 단편적으로 보여 주었다.

“하아암. 졸리군.”

그때 늘어지는 하품소리와 함께 나천괴 설무룡이 비무대 위에 나타났다.

세상 늘어지는 목소리와 그보다 더 늘어져 있는 자세.

설무룡은 정말로 졸린듯 연신 하품을 해 대고 있었다.

“나태하고 나태하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싸우려고 하다니.”

“내 흥미를 끌면, 마음가짐을 바꿔 주지.”

“흥미를 느끼기 전에 죽을 거다.”

스윽.

창을 꺼내어 손에 쥐는 무존.

그의 기세가 순식간에 일변하기 시작했다.

저릿. 저릿. 저릿.

지켜보는 이들의 피부가 따가울 정도의 기운.

하지만 그럼에도 설무룡은 여전히 반쯤은 졸린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설무룡은 자신이 흥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면, 만사 모든 것을 귀찮아했다.

설무룡에게 흥미를 갖게 하는 것은 오로지 강한 무공뿐이었다.

탓.

그때 무존이 곧바로 설무룡에게 달려들었다.

허공을 격하며 순식간에 설무룡을 찔러 들어오는 무존의 창.

푹. 푹. 푹. 푹. 푹.

순식간에 설무룡의 신형에 구멍이 뚫렸다.

이대로 허망하게 싸움이 끝난 것일까?

하지만 공격을 성공시킨 무존의 표정이 썩 좋지는 않았다.

“뭐하냐? 하아암.”

무존의 뒤쪽에서 들려오는 설무룡의 목소리.

조금 전 무존의 창이 꿰뚫은 것은 설무룡의 잔상이었다.

설무룡은 여전히 나른한 목소리로 서 있었다.

이 정도로는 설무룡의 흥미를 끌 수는 없었다.

“도망치는 재주는 있나보군.”

무존도 물론 진심을 다한 공격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설무룡의 움직임을 보기위해 슬쩍 찔러 본 것일 뿐이었다.

쿠구구구구구구.

무존의 기운이 폭발할 듯이 터져 나오고, 주변의 작은 돌들이 하늘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가공할 기운.

그저 기운의 힘만 보자면 분명 패존보다도 한 수 위였다.

슈콰아악!

무존의 창이 아무런 사전 동작도 없이 순식간에 설무룡을 향해 찔러서 들어왔다.

아무런 동작도 없었기에, 대비할 수도 없는 일격.

이 공격에 드디어 설무룡의 손이 움직였다.

카앙!

설무룡이 수도(手刀)로 무존의 창을 쳐내었다.

물론 여기서 그치지 않고, 무존의 창이 갑자기 휘면서 다시금 설무룡에게 쇄도해 왔다.

끈질기게 집요하게 설무룡을 쫓는 무존의 창.

설무룡은 계속해서 쳐내도 따라붙는 창에 고개를 절래 저었다.

“귀찮군.”

귀찮음을 떨쳐 내기 위해 다른 방법을 써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릉.

설무룡의 허리춤에 있던 검이 뽑혀져 나왔다.

그러더니 그대로 무존의 창을 향해 내리그어졌다.

서걱.

무존의 창의 창대가 그대로 동강 잘렸다.

워낙에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일에 지켜보던 이들도 표정이 벙쪘다.

무존의 힘은 직접 겪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만큼이었다.

그런데 너무나도 손쉽게 설무룡이 그런 무존의 창을 잘라 낸 것이다.

“오오오오!”

무림맹을 지지하는 무인들은 설무룡의 일검에 기쁨의 탄성을 흘렸다.

과연 무림 이천의 일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무룡은 중년의 나이에 무림 이천이라는 명성을 얻은 무인이었다.

보통 무림 팔왕 이상의 무인들은 대체로 나이가 꽤 있는 편이었다.

그런데 중년의 나이에 천무제 위강천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무림 이천의 반열에 올랐다는 것은, 나천괴 설무룡이 얼마나 압도적인 재능을 가졌는지 보여 주었다.

설무룡은 한번 익힌 무공을 순식간에 최고 수준으로 펼쳐 내는 것에 아주 능했다.

지금까지 그가 익힌 무공의 수가 이미 수백이 넘을 것이라 알려져 있을 정도였다.

물론 설무룡이 그저 많은 무공을 익혔다고 무림 이천에 오른 것은 아니었다.

설무룡은 그 무공들을 서로 조합하여 자신의 것들로 만들었고, 상황과 상대에 딱 맞는 무공을 사용할 줄 알았기에, 그가 무림 이천의 반열에 든 것이었다.

‘단병수검식(斷兵修劍式).’

병장기를 자르기 위해 만들어진 무공.

단병수검식은 주로 군에서 쓰는 무공이었다.

물론 이런 위력을 보여 주는 무공은 아니었지만 설무룡의 압도적인 내공과 합쳐지자, 무존같은 고수가 뻗은 창도 잘라 낼 수 있게 변한 것이다.

“자, 다음 거 보자.”

설무룡은 무존에게 다음 무기를 꺼내라고 말하였다.

반쯤 잘린 창을 한번 바라보고는 곧바로 멀리 던져 버리는 무존.

그리고는 거대한 도끼를 꺼내어 들었다.

“거부(巨斧)라……. 그건 좀 더 재미있기를 바라지.”

“그래.”

휘익. 후우우우웅.

무존의 거부가 휘둘러지자 엄청난 풍압과 함께 강기 다발이 쏟아져 나왔다.

거대한 도끼의 크기만큼이나 거대한 강기들.

이번에는 설무룡의 검이 검은 강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 암흑무신검(暗黑武神劍). 오의. 흑신벽(黑神壁).

설무룡의 바로 앞에 펼쳐지는 검은 벽.

그 벽은 그대로 무존의 강기들을 모조리 흡수하듯이 빨아들이며 막아 내었다.

팟.

무존은 공격이 흡수되는 것을 보자마자 곧바로 다시금 설무룡에게 달려들었다.

후우웅.

지근거리에서 휘둘러지는 거부.

이 거리라면, 무공을 펼칠 틈도 없을 터였다.

“이제 장난감들은 버리지 그래.”

까아앙!!!

설무룡이 슬쩍 몸을 틀어서 무존의 거부를 피한 뒤, 그대로 발로 거부의 옆면을 때렸다.

주변을 울려 퍼지는 강렬한 소음.

무존은 곧바로 손에 들었던 거부를 손에서 던져 버렸다.

“흠.”

가늘게 떨리고 있는 무존의 손.

조금 전 설무룡의 발에 거부가 강타당한 뒤, 엄청난 진동이 거부를 통해 손으로 전해져 왔다.

급하게 거부를 던지지 않았다면, 아마 그 진동에 온몸이 피해를 입었을 것이었다.

“내가 너무 얕봤나 보군. 인정하지.”

무존은 자신이 설무룡을 얕본 것을 인정했다.

솔직히 무존은 무림 측 다섯 중에서도 설무룡이 가장 약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잠깐 붙어보니, 그것은 큰 오판이었다.

설무룡은 분명 자신과 대등하게 싸울 실력이 있는 자였다.

스릉.

이번에는 무존의 도가 뽑혀져 나왔다.

도를 꺼낸 무존의 기세가 한층 더 강렬해졌다.

무존에게 창과 도끼는 그저 상대를 가늠해 보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도와 검.

이 두 가지가 무존의 주 무기였다.

“이제 좀 재미있으려나?”

“그래.”

그저 무존이 도를 든 것뿐인데, 설무룡의 두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설무룡이 드디어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것이었다.

둘의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 * *

위강천은 눈을 반짝이는 설무룡의 모습을 정말 오랜만에 본 것 같았다.

예전에는 곧잘 저런 눈을 하고는 하였지만, 최근에는 좀처럼 눈을 빛낸 적이 없었다.

아마 가장 최근에 보인 것이 곽휘운이 무림맹에 있을 때 곽휘운과 비무를 할 때였을 것이다.

그 이후로는 언제나 반쯤 졸린 모습으로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설무룡이 오랜만에 두 눈을 빛내고 있는 것이다.

‘진짜 실력을 보는 건 오랜만이니, 한번 지켜볼까.’

천살교가 얼마나 설무룡에 대해 조사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제대로 조사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는 위강천이 본 후로 단 한 번도 모든 실력을 다 꺼낸 적이 없는 괴물이었으니 말이다.

이것은 위강천도 그의 실력의 전부를 보지 못했다는 소리였다.

‘그런데 저놈들이 겨우 이 정도를 준비하고 우리를 도발한 것일까?’

위강천의 두 눈은 너무나도 여유로운 표정을 하고 있는 천살교 수뇌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이 의심스러웠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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