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162화>
곽휘운은 극한의 대치를 하고 있는 권마와 패존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둘 다 지금 자신의 진신절학을 펼쳐 내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다들 그저 둘의 기운이 강해진 것만 보고 있을 테지만, 곽휘운이 보는 것은 조금 달랐다.
‘기운의 질이 달라졌다.’
두 사람의 기운이 강해진 것뿐 아니라, 기운이 가지고 있는 성질이 달라졌다.
패존의 기운은 무거운 중(重)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가, 몸이 붉어지면서 확실히 화(火)의 성질이 더해졌다.
두 가지 기운이 합쳐진 패존.
물론 이런 경우는 꽤나 흔한 일이기에 아주 놀랍지는 않았다.
하지만 권마의 경우는 곽휘운도 꽤나 놀랐다.
‘완전히 성질이 달라졌다.’
권마의 경우는 뿜어지고 있는 기운의 성질이 완전히 달라졌다.
조금 전에는 분명 패존과 같은 중(重)의 성질을 내뿜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폭(暴)의 성질을 보여주고 있었다.
곽휘운도 이렇게까지 기운이 순식간에 갑자기 싹 바뀌는 경우를 본 적은 없었다.
‘역시 천마신교는 천마신교란 말인가.’
천마신교 무인들의 강함은 이미 온 무림이 다 알고 있는 사실.
권마는 그들 중에서도 세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고수이니, 당연히 상식외의 강함을 보여 주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닐지 몰랐다.
‘야수와 같은 기운.’
사납게 날뛰는 권마의 기운은 마치 야수(野獸)의 것과 같았다.
패존이라는 먹이를 잡아먹기 위한 야수.
물론 패존은 아무리 권마라도 쉽게 잡을 수 있는 먹이는 아니었다.
어쩌면 사냥하는 야수를 잡아먹을 지도 모르는 또 다른 야수였다.
[확실히 본좌가 있을 때보다 재미있는 아이들이 많구나.]
천홍은 자신이 살아있을 때보다 확실히 무림의 무공이 다양해졌다고 생각했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예전의 무공들로부터 다양한 무공들이 새로 창조된 탓일 터였다.
물론 그렇다고 꼭 위력이 더 뛰어나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저 녀석이 쓰는 무공은 어디선가 본 것 같다.]
천홍은 패존이 붉게 물들며 열기를 뿜어내는 것을 보고는 무언가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어디선가 분명 본적이 있는 무공과 비슷했다.
[아! 그래 그 녀석의 무공이랑 비슷하군.]
천홍의 머릿속에 한 명의 모습이 떠올랐다.
‘멸화마군(滅火魔君)’
멸화마군은 부교주였던 신종악과 함께, 자신을 지키던 천마수호대(天魔守護隊)의 일인이었다.
몸에서 화기를 뿜어내며 무자비하게 상대를 파괴시켰던 무인.
물론 그때와 달리 몸에서 불꽃이 일지는 않았기에 대번에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 화기는 생명을 태우는 것이었으니, 바꾼 것이겠군.]
멸화마군이 몸에서 뿜어내던 엄청난 화기는 내공뿐 아니라 자신의 생명까지 태우며 피워 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천홍도 지나가는 말로, 너무 남발하지는 말라고 한 적이 있었다.
명을 재촉할 뿐이니 말이다.
[흠. 뭔가 이상하군.]
천홍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근래 들어 자신과 관련된 것들이 계속해서 나타나는 것 같았다.
‘조금 더 지켜보면 뭔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흠. 그래.]
천홍은 곽휘운의 말처럼 조금 더 지켜보면 확실히 무언가 잡힐 것 같았다.
천홍과 곽휘과 이야기를 나누던 그때.
비무대 위의 권마와 패존이 드디어 서로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쾅! 쾅! 쾅! 쾅! 쾅!
패존을 향해 거침없이 주먹을 내뻗는 권마.
마구잡이로 뻗는 것처럼 보였지만, 주먹과 주먹 사이에 조금의 틈도 없을 정도로 짜임새가 훌륭한 공격이었다.
패존은 이제는 감히 직접 몸으로 막을 생각은 하지 못하였고, 마주 주먹을 마주 내뻗으며 받아치기 바빴다.
“흡.”
패존의 입에서 당황스러운 기합이 터져 나왔다.
지금 광열강혈공까지 운용하는 자신의 주먹이라면, 눈앞에 있는 권마의 주먹쯤은 가볍게 부셔버려야 했다.
그런데 지금 권마와 주먹을 부딪칠 때마다 자신의 주먹에 금이 가는 것이 느껴졌다.
‘뼈에 금이 가? 이 내가?’
몸의 단단함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 패존이었다.
내가중수법이 통하지 않을 만큼 내장까지 전부 금강불괴와 같이 만들어 낸 몸이었다.
뼈에 금이 간 것은 그가 무공을 익힌 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패존은 권마에 대해서는 이미 대장로에게 지겨울 만큼 당해 보고 들어보아서 알고 있었다.
당연히 권마의 무공인 구궁파혼권의 약점도 잘 알고 있었다.
구궁파혼권은 무거운 중(重)에 요체를 둔 권법.
그보다 더 무거운 중의 힘으로 찍어 누른다면, 파훼하기 어려운 무공은 아니었다.
실제로도 대장로와 실험을 하였을 때, 어렵지 않게 파훼를 하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자신이 완전히 찍어 눌리고 있었다.
‘숨겨둔 수가 있었다는 거군.’
패존은 상대도 숨겨둔 수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도 생각하고 수련을 하였으니, 문제될 것은 없었다.
조금 놀랐을 뿐, 자신이 이긴다는 것에는 변함은 없었다.
화르르르르륵.
패존의 몸에서 푸른 불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 광열강혈공(洸熱鋼血功). 극의. 멸화현신(滅火現身).
보통의 화기와는 차원이 다른 열기가 주변을 뒤덮기 시작했다.
엄청난 열기에 앞에서 지켜보던 무인들은 급히 내공을 끌어올린 것도 모자라, 뒤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버틸 수 있을 열기가 아니었다.
“뜨끈하군 그래.”
“흥. 지옥으로 보내 주지.”
뜨끈하다고 말하는 권마지만, 사실 지금 엄청난 열기에 온몸이 타들어 가는 듯했다.
한서불침의 경지에 발을 들인지 오래인데, 이렇게 뜨거운 열기는 처음이었다.
‘피차 오래 끌 수는 없겠어.’
권마는 이 싸움을 오래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패존도 똑같은 입장이었다.
이정도 화기를 온몸으로 내뿜는 무공을 오래지속을 할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탓.
이번에는 권마가 먼저 움직였다.
순식간에 패존의 앞에 당도한 권마.
타닥. 타다닥. 타닥.
근처에 다가가자 옷자락이 불에 타기 시작했다.
내공을 둘렀음에도 막을 수가 없었다.
- 구궁파혼권(九宮破魂拳). 오의. 구궁압천(九宮壓天).
권마의 주먹에서 거대한 기운이 꿈틀거리더니, 그대로 패존의 모든 방위를 점하며 그대로 찍어 눌렀다.
쿠구구구구구궁.
마치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패존을 짓누르는 권마의 공격.
일순 가해지는 엄청난 압력에 패존의 한쪽 무릎이 접혔다.
쿵.
“으득.”
패존은 이를 악물고는 천천히 몸을 다시금 일으켰다.
물론 그 틈을 권마가 놔둘 리 없었다.
쉬익. 퍼억!! 우드득.
일어나려는 패존의 복부에 작렬한 권마의 일권.
엄청난 소리와 함께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분명 뼈가 부서지는 소리였는데, 패존은 표정조차 일그러지지 않은 채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대로 온몸을 권마에게 날렸다.
온몸을 이용해 공격해 들어오는 패존.
쾅! 쾅! 쾅!!!
그대로 달려드는 패존을 저지하기 위해 주먹을 뻗은 권마지만, 패존은 권마의 공격을 맞으면서도 계속해서 달려들었다.
쾅!
결국 권마의 몸에 그대로 작렬한 패존의 거대한 몸.
권마가 급하게 뒤로 몸을 빼면서 최대한 충격을 줄였지만, 모두 줄일 수는 없었다.
내장이 뒤흔들리며, 입으로 울컥 피가 솟구쳐 올라왔다.
“크흡!”
치이이이이이익.
그리고 거기에 더해 패존의 화기에 살이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호신강기로도 막지 못하는 화기.
푸른 불꽃이 얼마나 뜨거운지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쿨럭!”
물론 공격을 성공시킨 후 패존도 멀쩡하지는 못하였다.
패존도 배를 움켜쥐고는 시커멓게 죽은피를 한 사발 뱉어 내었다.
권마의 공격에 내장이 전부 짓이겨진 상태였다.
‘그렇게 내가중수법을 경계했건만…….’
외공을 익히게 되면 분명 속을 파괴하는 내가중수법에는 취약해진다.
아마 무림에 있는 모든 외공들의 문제일 것이다.
그래서 패존은 내가중수법에 쉽사리 당하지 않기 위해, 대장로의 힘으로 내장을 단련했다.
분명 피부만큼 강하게 단련을 한 상태인데, 권마의 공격에 완전히 짓이겨졌다.
권마의 내력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었다.
“퉤! 쓰벌. 네놈 때문에 피부가 더 새카매지겠다.”
권마는 입안에 남아있던 피를 뱉어내며, 패존의 화기에 타 버린 몸을 바라보았다.
아마 치료를 받는다고 해도 본래의 피부색으로는 돌아올 수 없을 만큼 타 버렸다.
“그대로 뼈까지 태워 주지.”
패존은 다시금 거세게 화기를 피워 올렸다.
화르르르르르륵.
치이이이이익.
그 거센 화기에 주변에 있던 비무대가 녹아내릴 정도.
패존은 지금 자신의 생명까지 도외시한 상태로 진원지기까지 끌어올린 상태였다.
동귀어진.
지금 패존은 권마와 함께 죽는 것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같이 죽자라……. 그럴 수는 없지. 아직 좀 더 살아야겠거든.”
물론 권마는 여기서 같이 죽어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콰가가가가가가각!
권마의 기운이 거칠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변을 장악해 오는 패존의 화기를 그대로 찢어 버렸다.
“이쪽도 크게 걸어야겠지.”
권마는 패존이 목숨까지 걸었다는 것을 알았으니, 자신도 그만큼의 것을 걸아야 하지 않겠는가?
권마는 몸 안에 있는 모든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그의 몸에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마기(魔氣).
천마신교의 무인이라면 모두들 이 마기를 지니고 있었다.
마기의 힘이 곧 무공의 힘일 정도로 이 마기가 지닌 힘은 엄청났다.
천마신교의 무인들이 강한 것도 다 이 마기의 힘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정도.
하지만 그만큼 이 마기는 모으기도 힘들뿐더러, 제대로 다루기도 힘들었다.
조금만 삐끗하는 순간 이 마기는 주인을 집어삼키고, 그대로 사람을 폐인으로 만들어 버리니 말이다.
그래서 다들 이 마기를 쌓고 쓰는 것을 조심스러워 했다.
권마는 아주 오랫동안 이 마기를 쌓았기에, 몸 안에 쌓인 마기의 양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았다.
권마도 오랜만에 이렇게 많은 양의 마기를 한 번에 쓰는 것이기에, 꽤나 모험을 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제 그만 끝을 내자고.”
“죽어라!”
패존과 권마가 서로를 향해 무시무시한 기세로 달려들었다.
모두들 이것이 둘의 마지막 일합이라는 것을 느꼈다.
퉁. 쾅!!!
파아아아아아아악!
둘이 서로 부딪쳤다.
굉음이 터져 나오고, 비무대의 바닥이 터져 나갔으며, 흙먼지가 사방을 휩쓸었다.
완전히 차단된 시야.
사람들은 과연 누가 이겼을지 알아보기 위해 안력을 최대한으로 돋우며 둘이 부딪친 곳을 바라보았다.
휘이이이이잉.
그때 바람이 불어와 주변의 흙먼지를 걷어내기 시작했고, 패존과 권마의 상황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