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160화>
끼이이이익.
아직 늦은 밤.
천살궁의 정문이 무치의 명령에 천천히 열렸다.
덕분에 정문으로 당당히 들어가는 곽휘운과 백리화.
곽휘운은 조금 앞서 걸어가는 무치를 바라보았다.
‘천살교의 이 장로라…….’
천살교의 장로가 몇이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천살교 장로들의 힘을 엿볼 수 있었다.
물론 이 장로라는 순서를 보았을 때, 그가 장로들 중에서도 강자일 가능성은 높았다.
“이만 돌아가라.”
“그런데 저희와 함께 온 것만으로도 이야기가 퍼지지 않겠습니까?”
곽휘운과 백리화를 데리고 무치와 함께 천살궁 정문으로 당당히 들어왔으니, 분명 이 천살교에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올 터였다.
그것도 정파의 인물 둘을, 특히나 지금 천살교에서도 주시하는 곽휘운을 데리고 들어왔으니 분명 천살교에서도 의심을 할 것이다.
곽휘운은 그 점이 의문이었다.
왜 천살교의 이 장로의 직책에 있는 사람이 이런 행동을 하는지 말이다.
“상관없다.”
무치는 천살교가 자신을 의심해도 큰 상관은 없었다.
애초에 자신과 천살교는 그런 관계였으니 말이다.
지금 당장 서로의 이해관계가 들어맞아 잠시 어울리는 관계.
서로를 전적으로 믿고 있는 관계는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말을 마치자 무치는 순식간에 신형을 돌려 사라졌다.
아직은 어두운 밤.
곽휘운과 백리화 둘이 덩그러니 남았다.
“이것 참. 별일이 다 있었네.”
“그러게요.”
무공을 시험해 보기로 한 것에서 시작해서, 천살교의 이 장로와 만난 뒤, 그의 배려로 정문을 통과해 들어왔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참으로 별일이 많은 시간이었다.
‘분명 이 장로는 우리에게 적대적이지는 않아.’
곽휘운은 무치에게서 조금의 살심(殺心)도 느끼지 못하였다.
조금이라도 적대적인 마음이 있다면, 응당 살심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살기(殺氣)는 특수한 무공 등으로 숨길 수는 있지만, 살심은 숨기지 못한다.
그런 살심이 조금도 두 눈에 들어있지 않았다.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겠군.’
곽휘운도 어째서 무치가 자신들에게 적대적이지 않은지는 알 수 없었다.
살심이 없다는 것만으로 완전히 그를 신뢰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가 분명 무언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흠. 적지에서 누구 하나라도 더 있다면 좋은 것이겠지.’
* * *
천살교가 말한 3일의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하지만 그동안 변화가 있었는데, 바로 수많은 문파가 세 가지 세력으로 나뉘었다는 것이다.
첫 번째는 바로 천살교에 복종을 맹세한 세력이었다.
그들은 저울질을 해 보고, 곧바로 천살교가 우위라 판단하고 지체 없이 그들에게 붙었다.
생각 이상으로 많은 세력이 천살교에 복종을 맹세하였고, 그 수가 삼분지 일을 넘어섰다.
이들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문파들은 평소 구파일방에게 불만이 많던 중소방파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예전 정천맹에게 붙었었던 문파들도 대다수였다.
이들은 과거 정천맹에 붙었었다는 이유로 은연중 무림맹에서 따돌림을 받고 있었기에, 이 기회에 또다시 천살교로 등을 돌렸다.
아마도 이들은 만약 이번 천살교의 상황이 무림맹의 승리로 끝난다면, 더 이상 무림에 예전처럼 자리를 잡을 수는 없을 터였다.
그리고 두 번째 세력은 끝까지 무림맹의 자리를 지키는 이들이었다.
이들은 무림맹의 이름을 걸고 끝까지 천살교에게 싸우겠다는 세력이었다.
정도 무림의 정신을 강조하며 그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굴복하지 않겠다는 이들이었다.
다만 문제라면, 이들은 천마신교와의 연합도 절대 거부한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무림맹의 힘만으로도 충분히 천살교를 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구파일방을 주축으로 구성된 이 세력은 소림사를 중심으로 뭉쳐 있었는데, 무림의 태산북두(泰山北斗)라고 불리는 소림사를 믿고 있었다.
분명 소림사의 힘은 아직 무림맹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정도였으니, 분명 일리는 있는 선택이었다.
마지막 세 번째 세력.
이들은 가장 수가 적었는데, 바로 신흥 문파들과 오대세가를 중심으로 뭉친 이들이었다.
이 세력은 무림맹을 지지하는 세력과 결은 비슷했지만, 천살교를 막기 위해서는 천마신교와의 합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세력이었다.
이들은 천살교의 힘이 이미 정마가 손을 합쳐도 이겨 내기 힘들 것이라 판단했다.
남궁세가와 제갈세가 그리고 백리세가가 중심이 되어, 이번에 천살궁에 온 천마신교 측 인물들과 함께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다.
천살교를 막기 위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하였지만, 정도와 마도 사이에 있는 감정의 골 때문에 많은 세력을 모으지는 못하였다.
* * *
둥. 둥. 둥. 둥. 둥.
또다시 천살궁을 울리는 거대한 북소리.
사람들은 이제 이 북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았기에 모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모든 무인들은 들으라!”
천살궁을 울리는 커다란 목소리.
“대전을 시작하겠다! 모두 연무장으로 모이라!”
이미 다들 알고 있는 것이었기에, 다들 지체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오대 오 대전이 있는 날.
어쩌면 무림의 흥망을 놓고 벌이는 최후의 대전일지도 모를 만큼의 싸움.
연무장으로 향하는 무인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진중하고 굳어 있었다.
이 상황에서 밝은 표정을 하고 있다는 것이 이상한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무인이 진중하고 굳어있는 것은 아니었다.
“자. 다들 움직이세.”
“예.”
“재미있을 것 같사옵니다.”
천마신교 일행은 여전히 표정이 밝았다.
마치 여행이라도 온 것 같은 모습.
그들의 모습에 진중한 표정을 하고 있는 제갈세가 무인들은 자신들이 바보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정도였다.
‘우리만 심각한 것인가?’
마치 지금 이 상황을 오로지 자신들만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건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천마신교와 손을 잡는다는 자신들의 판단이 혹시 틀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가주인 제갈중천의 말에 일리가 있기에 동의를 했지만, 여전히 제갈세가의 무인들은 천마신교에 대해 신뢰를 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하하. 다들 너무 인상을 쓰실 필요가 뭐있습니까? 그런다고 결과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때 곽휘운이 천마신교의 사람들처럼 밝은 모습을 하고 나섰다.
곽휘운은 지금 지나치게 긴장하고 있는 이들을 풀어주기 위해 오히려 더욱 밝은 모습을 보였다.
지금 제갈세가 사람들은 다들 이래저래 맡은 일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들이 지나치게 긴장을 하면, 제대로 일을 진행할 수 없을지 몰랐다.
그래서 곽휘운이 나서서 이들의 긴장을 조금 풀어주는 것이었다.
“맞소. 어차피 잘못 되어봐야 죽기밖에 더하겠소? 살아서 더러운 꼴 보느니, 그냥 편하게 여기서 죽는 것이 낫소.”
곽휘운처럼 긴장을 풀어주려 하는 제갈중천의 말.
물론 이 말이 긴장을 풀어주는 말이 맞나 싶었지만, 그래도 나름 효과는 있었는지, 제갈세가 무인들의 표정이 조금은 나아졌다.
“자자! 다들 가자고요!”
“오오!”
그때 주연희가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주연희는 그 짧은 시간동안 제갈세가의 사람들과도 친분을 쌓은 상황.
그녀가 밝게 외치자 제갈세가 무인들이 따라 소리를 외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좋아. 다들 표정이 훨씬 좋아졌어.’
지금 나서는 무인들의 표정이 전부 꽤나 밝아진 상태였다.
지나친 긴장이 아주 좋은 긴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대로 라면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그나저나 천마신교 사람들은 문제없겠지만, 맹주님이랑 나천괴님이 문제군.’
곽휘운은 이 장로인 무치와의 싸움 이후, 조용히 천마신교의 검마, 권마, 도마를 만났다.
그리고 그들의 실력을 보았다.
어찌 보면 굉장히 주제를 넘을 수 있는 행동.
하지만 검마가 흔쾌히 수락을 하였기에,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었다.
그렇게 셋의 힘을 보았는데, 곽휘운은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 모두의 힘을 확인했을 때 쉽사리 천혈오존이라는 자들에게 질 것 같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다만 문제는 천무제 위강천과 나천괴 설무룡이었다.
무림 이천이라 불릴 만큼 강한 둘이지만, 곽휘운은 둘의 실력을 알고 있었다.
곽휘운이 알고 있는 그대로라면 조금 위험할 수도 있었다.
‘더 강해지셨다고 믿을 수밖에.’
어차피 지금 당장 곽휘운이 둘에게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렇다면 그저 믿을 수밖에 없었다.
‘흠.’
곽휘운은 살짝 위하윤을 바라보았다.
조금은 표정이 편해진 다들과는 다르게, 위하윤의 표정은 아직도 굳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오대 오 대전에 나서는 위강천이 바로 그의 아버지였으니 말이다.
행여나 위강천이 잘못될까 위하윤은 걱정이 멈추지 않았다.
“하윤 소저.”
“응…….”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맹주님은 결코 약한 분이 아니니 말입니다.”
“나도 알아……. 하지만…….”
곽휘운은 살짝 떨리고 있는 위하윤의 손을 한번 꼭 잡아 주며, 따뜻한 기운을 흘려 넣어 주었다.
조금씩 잦아드는 위하윤의 떨림.
위하윤은 곽휘운의 말에 자신의 아버지를 믿기로 하였다.
그녀가 아는 아버지는 분명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었다.
‘그래. 믿자.’
분명 자신의 아버지는 결코 이런 곳에서 어떻게 되실 분이 아니었다.
“우리는 먼저 가 보마.”
“예. 건투를 빌겠습니다.”
오대 오 대전에 나서는 검마, 권마, 도마가 먼저 앞서 나갔다
대전에 참여하는 이들이 앉는 자리는 상석에 따로 마련이 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덕분에 제선화는 제갈세가와 곽휘운 일행과 함께 자리를 하게 되었다.
“민폐를 끼쳐 죄송하옵니다.”
“아니오. 괜찮소.”
괜히 자신 때문에 불편할까 제선화가 사과를 하였는데, 제갈중천이 먼저 나서서 아니라고 하였다.
곽휘운은 그런 둘의 모습을 보며 홀로 작게 미소 지었다.
‘내가 생각한 대로 가는군.’
제갈중천과 제선화가 가까워지는 것은 언제나 환영이었다.
억지로 엮을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최대한 엮으려 노력은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곽휘운은 그래서 일부러 자리도 제갈중천의 옆자리를 제선화에게 양보하였다.
나란히 앉은 제갈중천과 제선화는 딱 보기에도 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그럼 첫 번째 싸움을 시작하겠다!”
곽휘운이 그렇게 둘을 지켜보고 있을 때 연무장을 떨어 울리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