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159화>
백리화는 눈앞에서 곽휘운과 무치가 싸우는 모습을 보고, 꽤 큰 충격을 받고 있었다.
‘휘운 오라버니와 막상막하라니…….’
백리화는 이제 어느 정도 곽휘운의 진짜 실력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곽휘운을 상대로 무치라는 자가 막상막하의 실력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것은 지금 무치라는 자의 실력이 곽휘운과 대등하다는 것.
백리화는 그것에 충격을 받은 것이었다.
쾅! 쾅! 쾅! 쾅! 쾅!
무치의 엄청난 연타에 곽휘운의 신형이 조금 뒤로 밀렸다.
백리화가 곽휘운을 만나고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곽휘운이 뒤로 밀리는 것은 말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백리화는 혹시나 곽휘운이 잘못되진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정말 믿을 수는 없는 일이지만, 만에 하나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백리화는 지금 자신이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가만히 있어야 할지, 아니면 미약한 힘이라도 보태야 할지를 말이다.
그렇게 백리화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바쁘게 고민할 때였다.
“후우. 알겠습니다. 밑천을 한번 꺼내보겠습니다.”
짧게 숨을 내쉬고, 곽휘운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백리화가 무슨 상황일까 싶어서 바라보니, 싸움이 잠시 멈추어져 있는 상태였다.
서로 조금 떨어진 상태로 바라보고 있는 곽휘운과 무치.
그리고 점차 곽휘운의 기운이 커지기 시작했다.
쩌저저저저적.
곽휘운의 주변 모든 것이 얼어붙어 버리기 시작했다.
이 한기는 딱 백리화의 바로 앞에서 멈추었는데, 이런 엄청난 기운을 뿜어내는 와중에도 백리화를 생각하는 곽휘운의 배려였다.
“아주 좋아. 이제야 조금 제대로 할 마음이 생겼나보군.”
스으으으윽.
말과 함께 무치의 묵운강기가 더욱 커져, 이제는 무치의 온몸을 휘감을 정도가 되었다.
곽휘운의 몸을 휘도는 휘운과 무치의 몸을 휘도는 묵운.
마치 빛과 어둠의 대립과도 같아 보였다.
“가겠습니다.”
“그래.”
탓.
가볍게 발을 구른 것 같았는데, 곽휘운의 신형이 축지법을 쓴 듯이 무치의 앞에 당도했다.
- 휘운신공(輝雲神功). 오의. 휘룡장(輝龍掌).
곽휘운의 손바닥에서 휘몰아치는 휘운.
무치는 이 공격의 위험함을 알아채었고, 급하게 묵운강기를 주먹에 휘둘렀다.
팡! 콰과가가가각!
손바닥과 주먹이 부딪치자 굉음과 함께, 그 여파에 주변의 땅이 그대로 터져나갔다.
가볍게 교환한 일합인 것 같았는데, 그 위력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파팡! 콰가가가각! 콰각!
계속 주고받는 합.
그럴 때마다 계속해서 땅이 터져 나가고, 주변 나무들이 부러져 나갔다.
그렇게 계속해서 합을 주고받던 곽휘운과 무치.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무치의 대응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쾅! 쿠드드드드득.
곽휘운의 일 장이 그대로 무치의 허리춤에 작렬했다.
순식간에 뒤로 쭉 밀려 날아가는 무치.
“흠.”
강렬한 공격이었지만, 무치는 별다른 표정의 변화도 없었다.
그저 그는 왜 자신의 대응이 늦어졌는지에 대해서만 생각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금방 찾을 수 있었다.
“한기 때문이군.”
주변을 장악하고 있는 한기.
분명 강렬한 한기지만 자신에게 위협을 줄 수 있을 정도의 한기는 아니었다.
“무조건 차갑다고 능사는 아니지 않습니까?”
휘운신공으로 만들어낸 한기는 보통의 한기와 조금 달랐다.
주변의 모든 기운을 조종하는 천신지체의 힘을 이용한 한기였다.
보통의 한기가 그저 주변을 차갑게만 한다면, 휘운신공으로 만들어 낸 한기는 기운까지 모조리 차갑게 얼려 버렸다.
내공을 얼리는 한기.
그것이 휘운신공으로 만들어 낸 한기의 힘이었다.
“그렇군.”
무치는 자신의 몸속에 흐르는 내공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는 것을 느꼈다.
물론 그것 말고도 입고 있는 옷가지와 피부도 얼어 있었다.
내공을 그렇게나 흘렸음에도 말이다.
콰아아아아아!!
무치는 곧바로 내공을 폭발시키듯 끌어올렸다.
순식간에 한기를 몰아내고, 주변을 녹여 나가는 무치의 기운.
쿠르르르릉.
그리고 무치의 몸을 휘감은 묵운강기에서 뇌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런. 뇌기까지 더해지는 건가?’
곽휘운은 무치의 묵운강기에 뇌기까지 더해진다면 상당히 골치 아플 것이라 생각했다.
‘이렇게 되면…….’
곽휘운은 마음을 다잡으며, 손에 다시금 빙검을 쥐었다.
그런데 빙검의 모습이 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새하얗게 빛을 내고 있었고, 검신 부분은 보통의 검들 보다 조금 더 길었다.
새하얗게 빛이 나는 빙검을 들고 있는 곽휘운의 모습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인(天人)과도 같아 보였다.
“여기까지 하지.”
그때 무치가 갑자기 기운을 거두어들였다.
그렇게까지 싸우자더니 갑자기 여기까지 하자는 무치.
곽휘운은 정확히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더 이상 싸울 필요는 없었으니 말이다.
“알겠습니다.”
곽휘운의 빙검과 함께 한기가 모조리 사라졌다.
순식간에 고용해진 공터.
백리화는 얼른 뛰어와 곽휘운이 괜찮은지를 확인했다.
“괜찮으세요!”
“응. 괜찮아.”
곽휘운은 옷소매가 조금 뜯겨져 나간 것 말고는 다른 이상은 없었다.
“애정 행각은 거기까지 하고, 돌아가지. 너무 늦으면 안 되거든.”
“예?”
“돌아갈 때는 나와 같이 돌아가면 된다.”
무치는 곽휘운과 백리화와 함께 돌아가자고 제안하였다.
곽휘운과 백리화에게는 분명 좋은 제안이기는 하였다.
하지만 무치가 왜 이런 제안을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무치는 천살교의 사람.
자신들에게 이런 호의를 베풀 필요는 전혀 없는 사람이니 말이다.
“너희가 어디 소속이든 상관없다. 그저 내가 만족할 만한 싸움을 했다는 것이 마음에 들 뿐.”
무치가 곽휘운과 백리화를 챙기는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곽휘운이 자신이 만족할 만한 싸움을 했으니 말이다.
“어쩔 것이냐?”
“물론 같이 가 주신다면 저희야 감사할 뿐입니다.”
“좋아.”
* * *
천살궁으로 돌아가는 무치와 곽휘운, 백리화.
무치는 천살궁으로 돌아가는 길에 슬쩍 곽휘운을 바라보았다.
‘마지막에 보여준 그건 정말…….’
무치는 곽휘운이 마지막에 보여 준 빙검을 보고 싸움을 멈추었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패배를 직감하게 할 정도의 기운을 내뿜는 검.
그것을 막으려면 자신의 모든 힘을 꺼내야만 할 터이고, 그렇다면 절대로 가볍게 끝낼 수가 없었다.
‘잘못하면 천살궁에 있는 그자들에게 까지 알려질지도 모르니 말이야.’
무치는 천살교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인물.
당연히 천살궁안에 그의 개인 연무장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밤마다 밖을 나와, 이 공터에서 홀로 수련을 진행하였다.
그들에게 자신의 수련을 보이고 싶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들에게 모든 밑천을 보이면 위험하지.’
무치는 천살교에 몸을 담고 있지만, 그들을 전혀 신뢰하지 않았다.
그들은 언제든 틈이 보이면 뒤에서 칼을 찌를 자들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수련을 홀로 하는 것이었다.
‘흠. 이 자라면, 천살교를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무치는 곽휘운이라면, 천살교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까지 무치가 보아온 무림의 무인들로는 절대로 천살교를 막지 못한다.
무인의 수가 문제가 아니라, 절대적인 고수의 수가 부족했다.
무림 이천을 제외하고는 천살교의 장로들을 막을 수 있는 무인이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거기에 천살교의 교주와 대장로는 정말 천외천을 넘어선 수준의 괴물들.
정도 무림의 무인들 중에는 그 둘을 이길 수 있는 자는 없었다.
‘천마신교라면 모르겠지만.’
천마신교의 천마와 숨겨진 무인들이라면 모르겠지만, 솔직히 그들도 지금 천살교의 교주를 막을 수는 없을 터였다.
하지만 무치는 지금 옆에 있는 곽휘운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에 본 그 무공이라면 말이다.
‘거기에 그것도 힘을 다 꺼낸 것도 아닌 것 같고 말이야.’
마지막에 본 그 무공조차 분명 본 실력을 전부 꺼낸 것도 아닐 터였다.
분명 힘을 더 숨겨놓고 있었다.
다만, 무치도 곽휘운이 얼마나 힘을 숨겼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한 시대에 태양이 둘이라…….’
무치가 처음 본 태양은 교주인 제석종.
그리고 다른 태양은 바로 곽휘운이었다.
서로 다른 시대에 나타났다면, 무림의 고고한 태양이 되었을 이들이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 때문인지, 한 시대에 둘이 같이 태어나고 만 것이다.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는 없지.’
하지만 두 태양 중 제석종은 아직 완성된 태양이 아니었다.
천살교, 그들이 이번에 원하는 것을 모두 얻는다면, 제석종은 완성된 태양이 될 터였다.
무치는 지금 완성된 태양과도 같은 곽휘운과, 이제 곧 완성될 태양인 제석종과의 싸움이 너무나 궁금했다.
‘그 싸움 전까지는 이들을 조금 지켜볼 필요가 있겠어.’
무치는 곽휘운과 제석종이 최대한 대등한 상황에서 싸우기를 바랐다.
그래야만 더욱더 치열하고 재미있는 싸움이 될 것이니 말이다.
그는 직접 싸우는 것을 좋아했지만, 애초에 곽휘운과 제석종의 싸움에는 자신이 끼어들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그는 이 싸움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대규모의 아주 큰 전쟁이 될 테니까.’
일방적인 싸움은 좋아하지 않았다.
대등한 힘과 힘의 격돌.
무치는 그것을 위해 곽휘운 일행을 지켜보며 조금은 돕기로 하였다.
이번에 천살궁에서 천살교 그들이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이루면, 너무나 일방적인 싸움이 될 것이니 말이다.
‘이자가 힘을 내야, 무림맹과 천마신교가 살아남겠지.’
곽휘운이 힘을 내야만 이번 천살궁의 간계에서 무림맹과 천마신교가 살아남을 수 있을 터였다.
물론 그렇다고 대놓고 도와줄 수는 없었다.
대놓고 도와준다면 천살교에게 의심을 살 것이고, 그렇다면 그들은 또 다른 간계를 준비할 테니 말이다.
“도착했군,”
그렇게 무치의 생각이 계속되던 와중 천살궁의 정문에 도착했다.
정문을 지키고 있는 수많은 천살교의 무인들.
그런데 천살교의 무인들은 무치가 나타나자 모두들 화들짝 놀란 얼굴을 하였다.
그리고는 모두들 자세가 대번에 바로 잡히며, 큰소리로 무치에게 인사를 하였다.
“이, 이장로님 오셨습니까!”
천살교 무인의 인사에 곽휘운과 백리화의 표정도 놀람으로 바뀌었다.
무치가 높은 직책에 있는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천살교의 이장로까지는 생각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래. 문 열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