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156화>
제갈중천은 제선화와 마주섰다.
전각 내부에 있는 넓은 곳에 서로를 바라보고 서 있는 둘 사이에는 긴장된 공기가 흘렀다.
서로가 상대가 쉽지 않은 상대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 제갈중천은 제선화가 상상이상의 고수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오늘 앓아눕겠군.’
제갈중천은 자신의 미래를 어렴풋이 느꼈다.
오늘 제선화와 대련을 하고 나면 분명 몸이 성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반갑소. 제갈중천이라 하오.”
“반갑사옵니다. 제선화라 하옵니다.”
사람들은 둘이 굉장히 특이한 말투로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꽤나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두 사람은 서로 전혀 특이하다고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럼 시작하겠소.”
“얼마든지 오시옵소서.”
둘에게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 없었다.
탓.
탓.
내공을 제한했기에 내공을 끌어올리지는 못하였지만, 충분히 빠른 몸짓으로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팍! 파파팍! 캉! 캉!
서로 만나자마자 치열한 육탄전을 펼치는 제갈중천과 제선화.
제선화의 검과 제갈중천의 주먹이 연신 강렬한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오로지 초식의 형과 육체의 힘으로 부딪치는 둘.
그럼에도 그 기세는 사뭇 대단했다.
“꽤 하시옵니다.”
“고맙소. 그쪽은 굉장하오.”
“호호. 감사하옵니다.”
서로를 칭찬하는 이야기를 나누는 둘.
하지만 그 순간에도 대련은 멈추지 않고 있었다.
연신 계속되는 대련.
처음에는 대등해 보였지만, 점점 제갈중천이 밀리고 있었다.
“흡!”
확실히 제선화가 힘과 기술에서 제갈중천을 앞서고 있었다.
제갈중천이 새롭게 깨달음을 얻어 ‘천성금강권’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면, 지금까지 버티고 있지도 못했을 터였다.
쾅! 카캉! 쾅! 쾅!
제갈중천이 최대한 부드럽게 흘려내려 하였지만, 그러기에는 제선화의 힘이 너무 강했다.
“제가 졌소.”
결국 제갈중천은 패배를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예상대로 온몸이 정상이 아니었다.
양 팔은 이미 금이 간 듯 고통이 밀려왔고, 내장도 정상이 아닌 듯 속이 울려왔다.
“조금만 더 다듬으면 아주 훌륭한 무공이 되실 것 같사옵니다.”
“조언 감사하오.”
지금 제선화의 두 눈은 무공에 대한 열기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제갈중천의 천성금강권은 충분히 제선화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부드러움과 강함이 공존하는 무공.
분명 찾아보기 쉬운 무공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조금 더 자세히 보고 싶사온데…….”
“이번에 일이 무사히 끝난 뒤에 하는 것이 좋겠소.”
“그럼 약속한 것이옵니다.”
그렇게 제갈중천과 제선화의 대련이 마무리되었다.
이번 일이 끝나면 다시 대련을 하자는 약속을 하고 말이다.
‘상황이 좋군.’
곽휘운은 지금 상황이 아주 좋게 흘러간다고 생각했다.
제갈중천의 무공에 제선화가 관심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아주 상황이 좋다는 반증이었다.
급하지 않게 지금 이정도의 관계만 유지하며 지나면 충분히 곽휘운은 자신이 생각한대로 흘러갈 것이라 생각했다.
“자자. 선화는 잠깐 쉬고, 이제 나와 대련을 하지.”
“예. 알겠습니다.”
곽휘운이 이리저리 생각하는 동안 권마가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곽휘운을 향해 대련을 요청했다.
곽휘운도 생각을 멈추고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섰다.
‘천마신교는 확실히 괴물들의 소굴이군.’
내공을 끌어올리지도 않은 권마이건만, 느껴지는 기운이 상상 초월이었다.
그저 마주보는 것만으로도 피부가 따가울 정도의 기운.
곽휘운은 입가에 진한 미소를 피워 올렸다.
상황이 상황이지만, 이런 대련은 싫지는 않았다.
“가볍게 실력 좀 볼까?”
“양껏 보여드리겠습니다.”
스릉.
곽휘운은 오랜만에 검을 직접 뽑아 손에 쥐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곽휘운의 기운이 일변하였다.
갑자기 변한 곽휘운의 기운에 권마의 표정도 변하였다.
“호오? 정말 난 놈일세.”
권마는 곽휘운이 정말 상상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처음에 검마의 말을 들었을 때, 검마가 오랜만에 쓸 만한 젊은 놈을 만나 과장되게 말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곽휘운과 마주서자 검마의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거, 힘 조절이 될까 모르겠어.”
“하하. 살살 부탁드리겠습니다.”
“그건 늙은 내가 부탁할 말이지. 자, 와라.”
“그럼 사양 않겠습니다.”
탓.
곽휘운이 먼저 선공을 시작했다.
가볍게 발을 구르며 권마에게 쇄도하는 곽휘운.
내공을 제한했음에도 엄청난 속도였다.
어느새 권마의 코앞에 당도한 곽휘운.
휙. 카앙!!
가볍게 휘두른 곽휘운의 검을 주먹으로 쳐 내는 권마.
이 단순한 일합에 곽휘운과 권마 둘 다 속으로 조금 놀랐다.
‘자칫 잘못하면 검이 부러지겠군.’
‘조금만 늦었으면, 그대로 명줄이 끊길 뻔했다.’
곽휘운은 검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떨림에 검이 부러질까 걱정했고, 권마는 빠르고 날카로운 곽휘운의 일 검에 자칫 반응이 늦었으면 목이 잘릴 뻔 했다는 것에 놀랐다.
“날 죽이려고 그러는 것이냐?”
“이 정도는 쉽게 막으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걸 고맙다고 해야 하는 것이냐?”
“하하하.”
말을 하면서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곽휘운의 검.
곽휘운의 검에는 쾌, 환, 강, 유 등 검으로 담을 수 있는 모든 묘리가 담겨져 있었다.
내공을 제한하고 이렇게 검을 펼쳐 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자. 나도 슬슬 움직여 보마.”
“예.”
권마가 한발 앞으로 내딛으며, 주먹을 뻗어 나왔다.
곽휘운은 순식간에 면전에 다가온 권마의 주먹을 보고, 머리를 살짝 틀어 흘려내었다.
후웅.
귓가를 스치는 강렬한 소리.
그 공기의 압력만으로도 살이 찢어질 것만 같을 정도의 강렬함.
‘맞으면 뼈도 못 추리겠군.’
내외공의 경지가 이미 하늘을 넘어선 권마다.
내공이 제한되었어도, 지금 권마의 주먹에 맞으면 그대로 저승행이 될 터였다.
휘. 휘휘휘휘. 휙.
곽휘운의 검이 화려한 변화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어느 것이 허이고 어느 것이 실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의 변화.
제한된 내공으로도 엄청난 변화를 보여 주고 있었다.
“재밌구나.”
스으윽. 쾅!!
권마가 힘을 모아 앞으로 일 권을 강하게 뻗었고, 순식간에 곽휘운이 펼친 변화들이 모조리 사라졌다.
변화를 힘으로 제압해 버린 권마였다.
탁. 팡!
그때 곽휘운의 손바닥이 그대로 내뻗어진 주먹에 맞닿았고, 그대로 권마의 주먹을 타고 전해지는 반발력에 권마의 소매 끝이 조금 터져 나갔다.
“허. 장법도 쓸 줄 아는 것이냐?”
“하하. 예.”
권마는 곽휘운이 분명 검을 쓰는 검객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듯 장법까지 쓸 줄은 몰랐다.
“내가 조금 안일했군 그래.”
권마의 주먹이 다시금 뻗어 나왔다.
이번에는 권마의 주먹에도 수많은 변화가 담겨 있었다.
곽휘운의 앞을 완전히 뒤덮은 권마의 주먹.
‘이건 조금 쉽지 않군.’
곽휘운은 오른 손의 검과 왼팔의 주먹을 동시에 움직였다.
하나의 몸에서 발현되는 다른 무공.
무당파가 보면 깜짝 놀라 까무러칠 모습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무당파의 절세무공인 ‘양의공(兩意功)’을 익힌 듯한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사사사사사삭.
검이 권마가 만들어 낸 변화를 모두 없애 버렸고, 단 하나 남은 권마의 진짜 주먹에는 그대로 주먹으로 맞섰다.
쿠웅!!
묵직한 충격음이 주변에 울려 퍼졌다.
곽휘운의 주먹과 권마의 주먹이 맞닿아 있는 모습.
이 모습을 보고 가장 놀란 건 천마신교 측 사람들이었다.
권마에게 주먹으로 맞서다니?
보통의 무인이라면, 그대로 주먹이 부서지거나, 팔이 날아가 버릴 터였다.
그런데 곽휘운은 지금 대등하게 맞서고 있었다.
“권법도 익혔나?”
“예. 그렇게 되었습니다.”
“미쳤군.”
권마는 진심이 담긴 목소리로 곽휘운을 미쳤다고 평했다.
검법에 장법, 권법까지 구사하는 곽휘운.
권마가 보기에 분명 이것 말고도 더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당대 무림에 이렇게 많은 무공을 익힌 이가 몇이나 있겠는가?
그것도 천외천의 수준으로 말이다.
지금 권마가 머리에 떠오른 이가 둘이 넘지 못했다.
“아직 멀쩡합니다.”
“하하하. 그래. 그렇다고 해 두지.”
권마는 세상 시원하게 웃으며 천마신교 일행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는 지금 정말로 기분이 좋았다.
곽휘운과 내공을 제한한 상태로 싸운 것이었지만, 새로운 세상을 또 본 것 같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지금 권마와 곽휘운의 대련을 본 모든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특히나 곽휘운을 바라보는 눈빛 자체가 달라졌다.
‘흐음. 내가 너무 주목받는 것 같기는 하군.’
곽휘운이 이번에 이곳에 온 이유가 백리세가를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모든 주목이 자신에게 쏠리고 있었다.
물론 자신도 백리세가의 일원이니 상관없는 것이지만, 이대로라면 백리세가의 이름보다 곽휘운이라는 이름이 무림에 퍼질 듯싶었다.
‘아무래도 이것에 대해서도 고민을 조금 해 봐야겠군.’
곽휘운은 이 문제에 대한 방법을 찾아야 할 필요를 느꼈다.
물론 이 문제만 빼면, 지금 상황은 좋은 상황이었다.
* * *
둥. 둥. 둥. 둥. 둥.
모든 문파들이 이래저래 현 상황에 대해 고민을 하던 때.
어디선가 거대한 북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 북소리에 문파들은 모두 전각을 빠져나와 북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지속되던 북소리가 뚝 멈추었다.
“모든 무인들은 들으라!”
그때 북소리가 멈추어진 곳에서 북소리보다도 큰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 거대한 천살궁의 끝까지 울려 퍼지는 목소리.
목소리 주인의 내공을 짐작케 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삼 일 뒤 정오! 대전을 시작하겠다! 모두들 준비하라!”
목소리가 알려 주는 것은 오 대 오 대전의 시일에 관한 것이었다.
대전의 실시는 삼 일 뒤의 정오.
시간이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일까?
이 소식에 갑자기 모든 문파들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과연 천살교가 노리는 것이 무엇인가?
이 대전의 향방은 어떻게 될 것인가?
수없이 많은 경우의 수를 놓고, 문파들은 고심과 저울질을 하기 시작했고, 저울질이 끝나고 몰래 움직이는 곳들도 다수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 거대한 천살궁이 하나의 작은 무림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런 모습을 천살교의 무인들은 조소가 섞인 모습으로 조금 멀리서 바라보고 있었다.
‘멍청한 놈들. 네놈들 덕분에 우리가 원하던 세상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