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153화>
제갈중천은 제갈세가가 완전히 난리가 난 뒤, 곽휘운과 떨어진 휘 제갈세가를 복구하는 것에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무림맹에 파견을 나가 있던 제갈세가의 식구들을 최대한 불러들였고, 멀쩡히 남은 것들을 최대한 찾아내어 복구를 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당연히 복구가 쉽지는 않았다.
정천맹에게 습격을 당했을 때에 수많은 서책들이 불타고, 도난당해 버렸다.
거기에 건물들은 화탄에 의해 부서지고, 진법들도 모조리 깨져 버린 상태.
‘일단 정리부터 시작하겠소.’
제갈중천은 낙심하지 않고,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 차근차근 해 나갔다.
제갈세가의 식구들은 모두들 머리가 좋으니, 서로 의논을 하며 일을 하자 복구의 진척 속도가 상당히 빨라졌다.
아직 남아 있는 서책들을 다시금 정리해 모아두고, 꼭 필요한 전각들만 우선적으로 복구를 완벽히 해 두었다.
‘크기를 키우지는 않겠소.’
제갈중천은 제갈세가의 규모를 키우지 않기로 하였다.
인원이 줄은 만큼 규모를 작게 할 필요가 있었다.
규모가 크면 오히려 이런저런 방비를 할 때 불편할 뿐이었다.
제갈중천은 실리를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제갈세가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을 때.
제갈중천은 그때부터 무공을 다시 재정립하기 시작했다.
제갈중천은 제갈세가를 너무나도 사랑하지만, 너무나 딱딱한 세가에 대한 반항으로 제갈세가에서 가장 외면 받는 무공 중 하나인 ‘거력금강권’을 익혔었다.
하지만 이제 제갈세가의 가주라는 위치에 앉게 되었으니, 무공을 다시금 재정립할 필요가 생겼다.
‘대천성검법(大天星劍法)’
제갈세가의 가주들에게 전해지는 검법.
제갈중천은 어릴 때에 이미 이 대천성검법을 익혔었다.
제갈세가의 직계혈통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하지만 거력금강권을 익힌 후, 이 대천성검법은 완전히 봉인했었다.
다시는 쓸 일이 없을 것 같았는데, 이렇게 다시금 꺼내게 될 줄은 스스로도 몰랐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기억하고 있는 것과 실제로 쓰는 것은 너무나 큰 차이가 있었다.
분명 제갈중천은 모든 초식과 운용법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이미 거력금강권에 익숙해진 몸은 생각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검법과 권법.
완전히 다른 무공인데다가, 대천성검법과 거력금강권이 추구하는 것도 완전히 달랐다.
거력금강권이 강함을 추구하는 무공이라면, 대천성검법은 부드러움을 추구하는 무공이었다.
강함과 부드러움.
둘은 분명 한 번에 공존하기 힘든 길이었다.
‘할 수 있다. 못 할 건 없지.’
제갈중천은 두 무공을 합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곽휘운을 지켜보면서 배운 것이 많았는데, 그 중 하나가 불가능은 없다는 것이었다.
곽휘운이라면 분명 이 두 무공을 합치고도 남았을 것이다.
‘흠.’
제갈중천은 깊은 명상에 들어갔다.
전혀 다른 두 개의 무공.
하나로 합치기 위해서는 무공의 근간부터 찾아야 했다.
두 무공 모두 제갈세가에서 만들어낸 무공.
결국 무공의 근간은 동일할 터.
제갈중천은 그 근간에 대해 끝없이 명상하고 또 명상했다.
번쩍.
그리고 제갈중천의 눈이 번쩍 떠졌고, 제갈중천은 곧바로 서책에 무언가를 적어 나가기 시작했다.
엄청난 속도로 적어나가는 제갈중천.
그렇게 수 권의 서책이 글씨로 빽빽해졌을 때.
제갈중천은 그대로 서책들을 던져 두고, 밖으로 나섰다.
‘천성금강권(天星金剛拳)’
조금 전 완성시킨 무공.
제갈중천은 이 무공을 직접 펼치기 위해 연무장 위에 섰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제갈중천.
스으으으윽. 팡!
스으으으윽. 팡!
천천히 가볍게 뻗는 주먹의 끝에서 공기가 터져나갔다.
겉보기에는 강렬한 힘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 안에는 엄청난 거력이 담겨져 있었다.
부드러움과 강함.
이 두 가지를 하나로 합친 무공.
제갈중천은 몸을 움직이면서, 생각했던 것과 다른 부분들을 빠르게 고쳐나갔다.
형이 잡히기 시작하는 천성금강권.
그리고 천성금강권이 완성되어 갈수록 제갈중천은 이 무공이 자신을 새로운 경지로 이끌어 줄 것임을 확신했다.
* * *
- 천성금강권(天星金剛拳). 오의. 유성락(流星落).
유성락의 초식은 하늘을 흐르는 별이 떨어지듯 유려하면서도 강력한 위력을 자랑한다.
푸른 강기 맺힌 주먹이 그대로 신종보의 검에 작렬했다.
쾅!!!
전각 전체가 무너질 것 같은 큰 소리가 터져 나왔다.
“쿠억!”
신종보가 고통에 찬 신음과 함께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가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이럴 수가!!!”
주변에 있던 철해문 문도들의 입에서 경악성이 튀어나왔다.
문주인 신종보가 단 일합에 쓰러졌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더 놀라운 것은 신종보의 검이 그대로 부셔졌다는 것이었다.
강기를 머금은 검이 부셔졌다는 것.
그것은 압도적인 힘의 차이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신종보가 제갈중천에게 압도적인 힘의 차이로 졌다는 소리였다.
“이제 어떻게 하시겠소?”
제갈중천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으로 철해문 문도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계속 이곳에서 싸움을 할 것인지, 아니면 이대로 돌아갈 것인지를 묻는 것이었다.
“커어억. 컥. 컥.”
아직까지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신종보를 바라보던 철해문 문도들은 말도 없이 재빠르게 신종보를 챙긴 뒤 전각을 벗어났다.
신종보가 진 이상 자신들에게 딱히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 말이다.
“많이 강해졌구나.”
“아직 멀었소.”
제갈중천은 정말로 자신이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했다.
곽휘운의 발끝이라도 따라가려면, 이정도로는 아직도 한참 부족했다.
“그나저나, 천살교가 준비한 것 치고는 너무 허술하구나.”
“그러게 말이오.”
분명 철해문은 천살교의 사주를 받고 이렇게 시비를 건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런 방법은 너무나 허술한 방법이었다.
그저 싸움이 일어나기만을 바란다니?
거기에 만약 싸움이 일어난다고 해도, 이미 천살교의 사주인 것이 너무나 티가 나는데, 서로 분열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도 이상했다.
“다른 목적이 있겠군.”
* * *
천살궁의 가장 심처.
그곳에는 지금 교주인 제석종과 혈뇌 그리고 대장로가 모여 있었다.
“팔이 아주 멋있어 지셨습니다.”
“하하. 고맙네. 자네 덕분에 아주 좋은 팔을 얻었어.”
제석종은 대장로의 극혈마수를 바라보며 눈을 빛내었다.
천마의 핏줄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에 보관된 극혈마수를 꺼내온 장본인이 바로 제석종이었다.
“그런데 혈뇌. 뭔가 재밌는 일을 하는 것 같던데?”
“흘흘. 예. 작은 여흥을 하나 해 보았습니다.”
혈뇌가 하는 작은 여흥.
그것은 바로 이미 포섭한 문파들을 포상으로 꾀어서 싸움을 일으키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짓을 해보아야 아무런 소득도 없지 않나?”
“흘흘. 그게 이번 여흥의 핵심입니다.”
“음?”
대장로는 무슨 뜻이냐는 표정으로 혈뇌를 바라보았다.
아무런 소득이 없는 것이 핵심이라니?
“말 그대로입니다. 이번 일로는 아무런 소득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저들은 다르게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혈뇌가 이번 일을 시도한 것은 그저 아주 작은 혼란을 주기 위함이었다.
지금 이곳에 모인 무림맹 소속 문파들은 지금 극도로 예민해져 있는 상태.
이 상태에서는 무언가 작은 변화만 있어도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고민하느라 스스로 자신들을 옭아맬 것이다.
“그들이 서로를 의심해도 좋고, 그렇지 않아도 좋습니다.”
“하하하. 재미있군.”
“그래서 제 작은 여흥이라고 한 것입니다.”
지금 천살교의 힘은 별다른 작전이 필요 없을 정도로 완성이 되어있었다.
이번 일이 끝나면, 곧바로 모든 무림을 손에 넣기 위한 진격을 시작할 것이었다.
“그보다 진은 다 완성 되었습니까?”
“아. 구할 이상 완성 되었네.”
제석종이 혈뇌에게 진법이 모두 완성 되었냐고 물었다.
이번 일에서 오대 오 대전보다도 중요한 것이 바로 이 진법이었다.
이번 일이 모두 뜻대로 풀리면, 이곳에서 무림의 팔 할 이상을 차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될 터였다.
“솔직히 저는 이 작전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흘흘. 그래도 어려운 길을 돌아갈 필요는 없지 않은가.”
“맞네. 그리고 대법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네.”
제석종은 이번에 진법을 사용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진정한 힘으로 무림을 정복해야 더욱더 성취감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혈뇌와 대장로는 생각이 달랐다.
힘으로 충분히 무림을 장악할 수 있겠지만, 이곳에서 진법으로 이들을 정리한다면, 훨씬 쉽게 무림을 장악할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준비하고 있는 대법의 완성을 위해서는 이곳에서 많은 피가 필요했다.
그러니 진법의 사용은 필수불가결 했다.
“알겠습니다.”
“나는 가서 천살오존에게 힘을 더 주고 올 테니, 혈뇌 자네는 마저 진법을 끝내 놓게.”
“흘흘. 알겠습니다.”
* * *
천살궁 이곳저곳에서 제갈세가와 같이 이런저런 싸움이 일어났다.
다만 그들도 이것이 천살교가 사주한 일이라는 것을 짐작하고는 최대한 크게 싸움을 번지게 하지 않았다.
때문에 약간의 소란만 있었을 뿐 상항 자체는 금방 정리가 되었다.
하지만 겉과는 다르게 다들 머릿속은 굉장히 복잡해졌다.
이 상황으로 천살교가 얻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기 바빴으니 말이다.
“어차피 우리가 고민한다고 무언가 나오지 않지 않느냐. 우린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곽휘운은 고민을 하는 제갈중천에게 크게 고민하지 말라고 하였다.
지금 이것이 천살교의 어떤 작전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알아낼 방도가 없었다.
그렇다면 일단은 이 일은 조금 밀어 두고,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 상황에 맞았다.
“전각 전체로 진법을 구성한다면, 어떻게 하면 깰 수 있겠느냐?”
곽휘운은 천홍의 기억을 빌려서 제갈중천에게 살선신마진의 진법도를 그려 주었다.
제갈중천은 그것을 토대로 지금 살선신마진의 파훼를 연구하고 있었다.
‘천홍은 파훼법을 모르십니까?’
[커험험. 만들기만 하고, 파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천홍은 살선신마진을 만들 때 파훼를 하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만들었다.
어차피 본인은 살선신마진에 빠질 일이 없을 것이라 판단했고, 또 빠진다 하여도 힘으로 부수고 나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으니 말이다.
결국 파훼는 진법에 일가견이 있는 제갈중천이 맡을 수밖에 없었다.
“전각이 문제가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진석(陣石)이 문제이오. 그것을 찾아내어 부수지 않으면 진법은 파훼가 안 되오.”
보통 전각으로 진법을 구성하면, 그 전각 안에 있는 진석이라 불리는 진법의 주축이 되는 돌이 문제였다.
보통 건물의 기초에 깔아두는 돌임으로 찾아내어 부수기도 힘들었다.
가장 빠른 방법은 당연히 전에 정천맹이 제갈세가에 썼던 방법인 화탄으로 날려 버리는 것이었다.
그것이 아니라면, 일일이 진석을 다 찾아내어 부숴야만 하였다.
하지만 이렇게 큰 규모의 진법이라면, 아무 진석 몇 개를 부순다고 파훼되지는 않는다.
핵심적인 진석을 찾아내어, 수 개는 부셔야 아마 진법이 파훼될 터였다.
그래서 제갈중천이 지금 이 살선신마진을 파훼하면서 핵심적인 곳을 찾아내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그 작업이 쉽지는 않았다.
“이렇게 복잡한 진법은 처음 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