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151화>
호남성의 천살궁.
그곳에는 지금 속속들이 수없이 많은 문파의 행렬이 들어오고 있었는데, 다들 표정이 매우 좋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 이곳저곳 다친 상태로 도착한 이들이 태반이었다.
당장 칼부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흉흉한 기세가 천살궁에 가득 찼다.
“천살교는 당장 이번 습격에 대해 설명하시오!!!”
그들은 천살교에 이번 습격에 대한 입장을 요구하였다.
그들이 입고 있는 붉은 혈의는 분명 천살교 무인들의 옷이었으니 말이다.
그때 그들 앞에 마치 거대한 석상같은 큰 키의 사내가 나타났다.
사내는 가까이 있던 이의 귀청이 떨어져 나갈 듯이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그건 일종의 시험이었다. 이곳 천살궁에 올 자격이 있는 자들인지 말이다.”
“뭐라?!”
초대를 해 놓고 시험이라니?
그것도 비겁하게 습격을 하면서 말이다.
이 말에 피해를 입은 문파들이 발끈해서 모두들 무기를 뽑아들었다.
당장이라도 출수를 할 것 같은 모습.
하지만 큰 키의 사내는 입가에 조소를 머금고 그들을 그저 바라만 볼 뿐이었다.
“어디, 한번 날뛰어봐라. 이 패존(覇尊)이 친히 모두 죽여 주마.”
“패존!!!”
그렇다 지금 앞에 있는 큰 키의 사내가 바로 파력왕을 죽인 사내인 패존이었다.
패존이라는 말에 일순 문파들의 몸이 멈칫하였다.
그리고 어느새 그들의 주변에는 천살교의 교도들이 둘러싸고 있었고, 그 뒤에는 천살교에 가담한 문파들이 지키고 있었다.
“너희들은 그냥 닥치고, 우리의 힘을 보면 되는 것이다.”
패존의 말에 피해를 입은 문파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확실히 자신들이 약자들이었다.
습격을 당해 전력이 꽤나 줄어들었으니 말이다.
아마 천살교가 습격을 한 이유 중에 이것도 있을 터였다.
“멍청한 것들. 명문정파라는 체면 때문에 범의 아가리로 스스로 들어오다니.”
패존은 거침없이 말을 내뱉었다.
그가 보기에 지금 눈앞에 있는 문파들은 전부 머저리들이었다.
체면을 따지며 싸우는 족속들.
오랜 시간 전장을 누비던 패존에게는 이해가 가지 않는 한심한 모습이었다.
전쟁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이기는 것이 중요할 뿐이었다.
죽은 뒤에 체면 따위를 따져 봐야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세상은 오로지 승자만을 기억할 뿐이다.
“그래도 당장 죽이지 말라고 하였으니, 빈곳을 찾아 알아서 쉬도록 해라. 우리가 다섯을 모조리 죽일 때까지는 말이다.”
휙.
말을 마치고 패존은 그대로 자리를 떠나 사라졌다.
분노가 가득했던 문파들은 모두 반쯤 벙찐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지금 자신들이 범의 아가리에 제 발로 들어왔다는 것이 실감나서였다.
“흠. 생각했던 대로 일이 흘러가고 있소.”
문파들 사이에 섞여 있던 제갈세가.
제갈중천은 습격을 받은 후 생각했던 대로 일이 흘러감을 느꼈다.
천살교는 지금 무림의 암묵적인 법도대로 싸울 생각이 없었다.
그들은 그들이 유리한 무림의 법도대로 무림의 정복을 꿈꾸고 있었다.
“그렇겠지. 저들은 무림의 법도대로 싸운다면, 싸움에서 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세력들이 무림의 정복을 외치며 나타났지만, 그 어느 곳 하나 성공한 곳이 없었다.
그 강성한 천마신교조차도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들은 온갖 방법으로 무림을 뒤흔들었지만, 결국 무림의 법도라는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무림의 암묵적인 법도.
결국 정정당당하게 힘으로 싸우는 것.
독을 뿌리고, 강시를 만들고, 야습을 하는 것은 결국 싸움을 위한 구실에 불과했다.
그 싸움으로 고수를 자극하고, 결국 몇 명의 고수들 간의 싸움으로 결정되는 무림의 승패.
이것이 그간의 싸움이었다면, 이번 천살교는 조금 달랐다.
어떻게 보면 이 무림의 암묵적인 법도에 맞게 싸우는 것 같았지만, 주변 모든 것을 자신들이 유리한 환경으로 만든 뒤 싸운다는 것이 달랐다.
‘이곳 천살궁 또한 많은 것들이 준비되어 있겠지.’
천살교는 아마도 이 천살궁이란 곳에 많은 것들을 준비해 놓았을 것이다.
만에 하나 천혈오존이 졌을 때를 대비해서 말이다.
곽휘운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저들이 당장에 여기 있는 모두를 죽일 생각은 없다는 것이라 생각했다.
아마도 아직은 살려 둘 이유가 있는 듯 싶었다.
‘아마 천살교 그들은 인정받고 싶은 것이겠지.’
모두를 죽인 뒤 무림의 정점에 서는 것은 의미가 없을 터.
천살교는 이들을 살려두고, 이들이 자발적으로 자신들에게 굴복하는 것을 바랄 것이다.
‘물론 수가 틀리면, 죽일 테지만.’
굴복을 하지 않는다면 아마 가차 없이 죽이려 들 터였다.
죽이지 않고 남겨두면 분명 나중에 입엣 가시가 될 테니 말이다.
“우리도 자리를 일단은 잡는 것이 좋겠소.”
제갈중천이 일단 자리를 잡을 것을 제안했다.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겠지만, 다시금 여기서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지금 천살궁의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그리고 그 앞을 수많은 천살교 무인들이 지키고 서있었다.
다시금 돌아가지는 못한다는 일종의 경고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저곳으로 하자.”
다행인 점이라면, 이 천살궁이 엄청나게 넓다는 것에다 빈 전각도 많다는 것이었다.
이들이 애초에 이런 상황을 목적으로 지었으니 당연하다고 할 수는 있었다.
‘돈이 엄청나게 들었겠군.’
이정도 규모로 지었다면 정말 천문학적인 돈이 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짓는데 걸린 기한도 길지 않았다.
그렇다면 정말 돈을 쏟아 부었다는 뜻.
이 천살교의 힘이 도대체 어디까지 뻗어있는 것인지 짐작하기 힘들 정도였다.
‘이정도면 상단 수십 개는 보유하고 있겠어.’
한 두 상단을 굴려서는 이걸 지을 정도의 금력은 나오지 않는다.
정말 수십 개의 상단은 굴려야 할 터였다.
물론 꼭 상단만 돈을 벌어오는 것은 아니겠지만, 가장 확실한 자금줄은 상단이다.
“흠. 꽤나 깔끔하게 지었구나.”
“그러게 말이오.”
쉬기로 한 전각에 들어서기 전에 이런저런 점검을 한 후 입장을 하였다.
그들이 건물에 무슨 수작을 부렸을지 모르니 말이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딱히 건물자체에는 무슨 수작을 부리지는 않은 듯 했다.
‘물론 그렇다고 안심은 금물이지.’
화탄이나, 완전히 새로운 진법 등.
천살교가 쓸 수단이 너무나 많았기에, 긴장을 늦추지 말고 있어야만 했다.
“일단 주변을 한번 둘러보고 오마.”
“알겠소.”
곽휘운은 백리화, 주연희, 위하윤 셋을 놔두고 독자적으로 움직였다.
혼자 움직이는 것이 훨씬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으니 말이다.
스윽. 슥.
곽휘운은 자신이 아는 은신술을 최대한으로 운용하며, 거대한 천살궁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전각들의 배치가 꽤나 특이하구나.]
천홍이 갑자기 말을 꺼내었다.
‘무슨 말씀입니까?’
[본좌가 보기에 이 전각들이 꽤나 익숙한 방위를 점하고 있거든.]
익숙한 방위를 점하고 있나니?
[물론 전부를 본 것이 아니니 정확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분명 이건 본좌가 만들어낸 ‘살선신마진(殺仙神魔陣)’이랑 같은 형태다.]
살선신마진(殺仙神魔陣).
천홍이 죽기 전, 진법에 푹 빠져 있을 때 만들어 낸 것이었다.
일단 진법이 발동되면 신선도 죽일 수 있는 위력을 보여 주는 진법.
일단 살선신마진의 영향을 받는 순간, 몸 안에 있는 모든 내공이 흩어지고, 기혈들이 모조리 뒤틀려 버린다.
하지만 이런 엄청난 위력의 진법임에도 무림에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 진법이었다.
[살선신마진은 아주 작은 크기의 진법을 펼쳐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내공이 소모된다.]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 이유.
그것은 천신지체를 가졌던 천홍조차도 유지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양의 내공을 소모하기 때문이었다.
살선신마진은 시전자의 내공을 바탕으로 유지되는 진법이었는데, 일장 크기의 진법을 유지하는 데에도 초절정 고수 셋만큼의 내공을 소모할 정도로 많은 내공이 소모된다.
[이렇게 거대한 살선신마진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흠…….’
천홍이 불가능에 가깝다고 했지만, 곽휘운은 천살교가 분명 방도를 찾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들이 아무런 방도도 없이 이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니 말이다.
“뭐 하는 놈이냐?”
그런데 그때 누군가 엄청난 속도로 곽휘운을 향해 다가왔다.
생각에 집중하고 있던 곽휘운은 미처 도망치지 못하였다.
‘나를 저 멀리서 봤어?’
지금 곽휘운은 최대한의 은신술을 펼친 상태.
웬만한 무인이라면, 가까이에 있어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런데 저 멀리서 곽휘운을 발견해서 다가오고 있었다.
“길을 잃어서 말입니다.”
“길을 잃었는데 은신술을 펼치고 있나?”
곽휘운의 앞까지 당도한 상대.
치렁치렁 제멋대로 자랑 머리카락에 아무렇게나 대충 입은 듯한 회색 무복을 입은 사내.
그저 겉보기에는 지나가는 한량 같은데, 곽휘운이 본 사내는 절대 한량이 아니었다.
분명 아까 보았던 패존이라는 자 이상의 실력자였다.
“길을 잃은 모습이 부끄러워 그랬습니다.”
“흐음. 그래? 오늘은 피를 보지 말라는 명령이 있었으니까……. 저리로 돌아가면 된다.”
“감사합니다.”
곽휘운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그가 가리킨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 여기서 이 자와 엮여서 좋을 건 없으니 말이다.
“아참. 잠깐만.”
“무슨 용무가 남아 있으십니까?”
“이름이 뭐지? 난 무치(武痴)라고 하는데.”
“곽휘운이라 합니다.”
“곽휘운. 좋아. 기억했어. 잘 가라.”
곽휘운이 상대를 알아본 만큼, 상대도 곽휘운을 알아보았다.
여유롭게 미소를 지으며, 다시 사라지는 무치라는 사내.
곽휘운은 벌써 좋지 않은(?) 인연을 하나 만들어 버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이대로 돌아가야겠군.’
곽휘운은 더 이상 돌아다니는 것은 위험하다 판단했다.
조금 전 무치와 이야기를 나눈 사이에 벌써 감시자가 여럿 따라붙었다.
물론 곽휘운의 능력이라면 저들을 따돌리고 움직일 수 있겠지만, 곽휘운이 사라지는 순간 분명 보고가 들어갈 것이고, 이래저래 주변 감시가 훨씬 강화될 것이다.
‘아예 얻은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니까.’
천홍 덕분에 이곳의 전각들이 살선신마진이라는 진법의 형태로 위치한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아무것도 모르면 모를까, 이렇게 단서가 하나라도 있다면 대처를 할 수 있을 터였다.
곽휘운은 그렇게 제갈세가와 곽휘운 일행이 자리를 잡은 전각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전각 안이 꽤나 시끄러웠다.
“우린 이 자리가 마음에 든다고 하지 않았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