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150화>
곽휘운은 지금 주변에서 살기를 내뿜는 이들의 목표가 자신들이 아님을 깨달았다.
다만, 이 일대 모두를 뒤덮을 만큼 강하고 많은 살기에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저쪽이에요.”
백리화가 조금 떨어진 곳을 가리켰고, 일행은 조심스럽게 그쪽으로 움직였다.
캉! 카캉! 카가가가강!
가까이 다가가자 들리는 격렬한 싸움의 소리.
수많은 무인들이 서로에게 무기를 겨누며 싸우고 있었다.
한쪽은 혈의를 입은 이들이었고, 다른 쪽은 하얀 백의 무복을 입은 이들이었다.
그런데 그 백의를 입은 이들은 곽휘운에게 아주 낯익은 이가 있는 곳이었다.
‘제갈세가!’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지금 가장 앞에서 그들을 이끌고 있는 이는 곽휘운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자.
바로 제갈중천이었다.
“중천!”
“객주! 여긴 어쩐 일이오?”
“그건 이따가 이야기 나누자.”
탓.
곧바로 곽휘운이 싸움에 참전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백리화, 주연희, 위하윤도 싸움에 나섰다.
서걱. 서걱. 서걱.
촤자자자작.
쩌저저저저적.
순식간에 혈의인들의 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곽휘운 일행은 파죽지세로 혈의인들을 몰아붙였다.
곽휘운을 제외하고라도 세 여인의 실력이 정말 엄청났다.
“합!”
백리화는 백화환영검의 진수를 보여 주며, 혈의인들을 베어 나갔다.
백리화의 주변을 흩날리는 백화강기와 그보다 더 많은 백화강기의 환영.
혈의인들은 이 환영을 구분해 내지 못하며 그대로 진짜 백화강기에 꿰뚫려 죽었다.
“흐음.”
백발을 휘날리며 극한의 한기를 휘날리는 주연희.
그녀의 손길이 스친 곳에 있던 혈의인들은 그대로 얼음 조각이 되어있었다.
그녀는 마치 산책을 하듯 사뿐사뿐 걸으며 움직였는데, 그 누구도 그녀의 앞길을 막지 못하였다.
“…….”
그리고 위하윤은 아무런 말도 없이 제자리에 서서 칠연비천으로 혈의인들을 제거하고 있었다.
하늘을 자유롭게 노니는 칠연비천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일곱 마리의 제비와도 같았다.
이 제비와도 같은 움직임에 혈의인들은 속절없이 당하고 말았다.
“중천. 오랜만이다.”
거침없이 움직이며 제갈중천의 앞에 당도한 곽휘운.
곽휘운의 뒤에는 이미 쓰러진 혈의인들로 가득했다.
그들이 곽휘운의 휘운신공을 막기에는 턱없이 실력이 부족했다.
“오랜만이오.”
이미 혈의인들은 전부 정리가 된 상황.
제갈세가의 무인들은 갑작스레 나타나 자신들을 구해 준 곽휘운 일행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 준 넷.
그런 자들이 가주님과 친분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호남성에 가는 길이냐?”
“그렇소. 객주도 호남성으로 가시오?”
“그래.”
제갈중천은 이번에 제갈세가의 무인들과 함께 호남성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무림의 운명이 갈릴지도 모를 만큼 큰 사건이 일어날 곳이니 당연히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나름 천살교에서 정식으로 초청장도 왔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가는 도중 습격을 당할 줄은 몰랐다.
초청을 해놓고 습격이라니?
분명 무림의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었다.
“그들에게 예의를 바라지 마라.”
“아무래도 내가 너무 순진했던 것 같소.”
제갈중천은 일단 빠르게 사상자의 수를 파악하고, 다시금 대열의 정비를 시작했다.
다행히 사상자의 수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계속 갈 것이냐?”
“물론이오. 이런 일에 도망칠 수는 없지 않겠소?”
“그래. 그럼 같이 가자.”
“좋소.”
그렇게 곽휘운 일행과 제갈세가의 동행이 시작되었다.
곽휘운과 제갈중천은 떨어져 있는 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주학이 그놈이 그렇게나 강해졌소?”
“그래. 밤낮으로 죽어라 노력하더구나.”
“흠. 나도 질 수는 없는데 말이오.”
“하하. 너도 충분히 강해진 것 같구나.”
곽휘운은 은연중에 뿜어져 나오는 제갈중천의 기운을 통해, 제갈중천이 많이 강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갑작스럽게 제갈세가의 가주가 되었지만, 훌륭하게 해 나아가고 있는 듯싶었다.
‘소식은 간간히 들었지만, 직접 보니 훨씬 더 훌륭해졌군.’
곽휘운은 당연히 제갈세가와 제갈중천에 대해서 소식을 듣고 있었다.
제갈중천이 꽤나 훌륭하게 다시금 제갈세가를 복원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이렇게 직접 보니 한층 더 와 닿았다.
‘무공 수련도 게을리 하지 않았군.’
느껴지는 강대한 기운은 분명 무공 수련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증거일 터였다.
“그런데 객주는 꽤나 여복이 있는 것 같소. 예전에도 그렇게나 많은 여인을…….”
“내가 언제 그랬느냐?”
“발뺌하지 마시오. 객주를 좋다고 한 여인만 두 손으로 셀 수 없지 않소.”
제갈중천의 말에 순간적으로 세 여인의 눈빛이 달라졌다.
곽휘운을 향해 싸늘하게 쏟아지는 눈빛.
거기에 더해 주변 공기도 차가워졌다.
“농담이 지나치다.”
“농이라니. 물론 객주가 다 거절했지만, 거짓은 아니지 않소.”
그래도 곽휘운이 모두 거절하였다는 말에 공기와 눈빛이 조금은 돌아왔다.
물론 완전히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후우……. 그렇다고 하자.”
“하하하.”
곽휘운은 제갈중천의 농에 일부러 조금은 어울려 주었다.
조금은 무거운 제갈세가의 분위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절친한 세가의 식구들이 죽었으니 분위기가 좋지 않을 만했다.
제갈중천도 지금 속에서는 굉장히 슬프고 화가 났지만, 겉으로 표를 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었다.
한 세가를 이끄는 가주는 그런 자리였으니 말이다.
“정말 가주가 되었구나.”
“고맙소.”
* * *
천마신교 감숙성 본진.
그곳에는 지금 천마와 검마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랑 도마(刀魔), 권마(拳魔) 이렇게 셋만 가면 되지 않겠나?”
검마는 자신을 포함해 딱 셋만 천살교가 있는 천살궁으로 향하는 것을 제안했다.
더 이상의 인원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천살교가 원한 것은 천마신교 서열 상위 세 명.
검마 자신과 도마, 권마 이 셋이 맞았다.
“한명 더 가고 싶다는 이가 있습니다.”
“음? 누군가?”
천마가 직접 누군가를 이렇게 추천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누구를 추천하려고 하나?”
“선화가 가고 싶다고 합니다.”
천마의 입에서 나온 선화라는 이름.
그것은 천마의 딸인 제선화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선화? 그 아이가 폐관수련에서 나왔나?”
제선화는 검마가 인정한 무공광이었다.
자신의 처소에서 두문불출하며 폐관수련을 하는 제선화는 정말 얼굴보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제선화가 이렇게 밖으로 나가겠다고 하는 것은 정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직접 배신자를 처단하겠다고 하더군요.”
“흘흘흘. 분명 쉬운 길은 아닐 거네.”
“쉬운 길만 가는 것은 있을 수 없지 않겠습니까? 죽는다면 거기까지겠지요.”
어쩌면 잔인한 말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천마의 핏줄이 가는 길이었다.
타닷.
그때 누군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왔사옵니다! 아버님!”
너무나 명랑 쾌활한 목소리.
검마는 이 목소리를 듣자마자 입가에 작은 미소를 지었다.
“나는 보이지도 않나 보구나.”
“오! 검마 할아버님도 계셨사옵니까?”
“흘흘. 그래. 선화야 오랜만이구나.”
쾌활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제선화였다.
아무렇게나 뒤로 질끈 동여 묶은 머리카락에 조금 전까지 수련을 하고 온 듯 땀이 얼굴에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미모를 가리지는 못하였다.
천마의 핏줄은 미모로 정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녀는 아름다웠다.
“지금 바로 출발 하실 것이옵니까?”
“흘흘. 그래. 그전에 네 실력을 한번 봐야겠다.”
검마는 가기 전에 제선화의 실력을 한번 점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가는 곳은 천살교의 본진 한가운데.
만약 검마가 생각한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면, 아무리 천마의 부탁이라도 같이 데리고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좋사옵니다.”
“그래.”
천마는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작게 미소 지으며, 검마와 제선화를 따라서 연무장으로 나섰다.
연무장 위에 마주선 검마와 제선화.
“자. 와 보거라.”
“네. 그럼 사양 않겠사옵니다.”
탓.
가볍게 몸을 날리는 제선화.
어느새 제선화의 손에는 검이 들려있었다.
화르르르르륵.
제선화의 검에서 천마신공의 증거인 멸화강기가 나타났다.
거대한 크기의 멸화강기.
그 모습만으로도 제선화의 내공이 얼마나 많은지 단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 정도로는 부족할 게다.”
검마는 냉정한 말과 함께, 검을 움직였다.
사악.
검마의 단순한 일 검에 순식간에 멸화강기가 잘려 나갔다.
이미 경지를 넘어선 검마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은 예전 천마신공을 가지고 있다.”
천마에게는 이미 천살교가 예전의 완전한 천마신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완전한 천마신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모든 마공들을 지배한다는 이야기.
그것에는 불완전한 천마신공도 포함이었다.
물론 천마신공의 성취가 일정 경지를 벗어났다면 모를까, 지금 제선화가 보여 준 정도로는 부족했다.
“그럼 제대로 가겠사옵니다. 조심하시옵소서.”
“흘흘흘. 그래. 조심하마.”
솨아아아아아악.
제선화의 주변 공기가 변했다.
검마도 천마도 모두 눈을 빛내었다.
어릴 때부터 무공에 관해서는 천부적인 재능을 보여주었던 제선화다.
재능만큼은 제석종과 비교해도 조금도 뒤처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번에 새로 깨달은 것이 있어 천마신공에 제가 조금 접목해 본 것이옵니다.”
말을 하면 할수록 더욱더 강해지는 제선화의 기운.
그 힘이 심상치 않았다.
검마도 그것을 느끼고, 내공을 끌어올리기 시작하였다.
화아아아아아악!
제선화의 검에서 거칠게 타오르던 멸화강기가 더욱 더 거칠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멸화강기가 폭주하듯 넘실거리던 그때.
드디어 제선화의 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천마멸화신공(天魔滅火神功). 오의. 멸화폭뢰(滅火爆雷).
터질 듯 넘실거리던 멸화강기가 그대로 검마를 향해 날아왔다.
거대한 화탄과도 같은 모습.
검마는 이 화탄을 가르기 위해 검을 내리 그었다.
카각. 카가가가각.
하지만 방금 전과는 다르게 멸화강기로 이루어진 이 화탄은 잘리지 않았다.
그대로 계속해서 검마를 향해 날아오는 멸화폭뢰.
콰아아아아앙!!!!!
그리고 검마에게 당도한 이 멸화폭뢰는 그대로 폭발하며, 이 연무장을 모조리 날려 버릴 위력을 보여 주었다.
가공할 위력.
주변의 땅이 모조리 뒤집혀 버릴 정도의 위력이었다.
물론 주변이 터져나갔지만, 검마가 서있던 자리는 멀쩡했다.
“흘흘흘. 옛날부터 무식하게 힘만 쓰더니, 아주 너답게 바꾸었구나.”
“어떻사옵니까?”
“그래. 합격이다. 같이 가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