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143화>
남궁태산은 검마의 무형검법을 보고 순식간에 깨달음의 영역에 빠져들었다.
남궁태산의 눈에 보이는 검마의 움직임은 정말 새로운 세상이었다.
자신이 이제 거의 완성이라고 생각했던 무적제왕검강이, 조금도 완성에 다가가지도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저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
남궁태산은 자신이 검에 대해서 꽤나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곽휘운도 자신보다 검에 대해서만큼은 부족하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검마의 검을 보고 자신이 했던 모든 것들이 전부 오만이고 자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나는 나 스스로 검을 가두고 있었구나.’
남궁태산은 무적제왕검강을 자유롭게 만들기 위해 스스로 바꾸었다.
그런데 그렇게 바꾸려고 했던 것이 오히려 스스로 검을 가두는 꼴이었다.
“저는 자유로움을 보았습니다.”
“흘흘. 그래 너는 자유로움을 원하였구나.”
검마는 자유로움을 보았다는 남궁태산의 말에 흡족하게 웃었다.
무형검법은 아무런 형식이 없는 만큼, 그것을 배우는 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
남궁태산이 보았다는 자유로움.
검마도 최근에야 무형검법에서 자유로움을 보았다.
무형검법이 형식이 없다고 해서 자유로울 것이라 생각하는 자가 많았다.
하지만 무형검법을 실제로 익혀 보면, 생각처럼 자유로운 무공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음대로 자유롭게 검을 휘두르면 이 무형검법은 삼재검법만도 못한 무공이 된다.
형식이 없지만, 또 그 안에 있는 형식을 찾아내어 자유로움을 발휘해야 진정한 무형검법이 완성된다.
“자. 그럼 이번에 제대로 가르쳐 주마.”
“예!”
그렇게 시작된 검마의 무공 전수.
남궁태산은 검마가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앞서 나갔다.
검마는 정말 가르치는 재미가 있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흘흘. 이러다 금방 밑천 다 털리겠구나.”
검마는 남궁태산이 보면 볼수록 탐이 났다.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천마신교로 데리고 돌아가고 싶을 정도였다.
“자. 이제 네가 깨달은 것을 나에게 한번 보여 주거라.”
“알겠습니다. 후우.”
남궁태산은 검마의 말에 크게 숨을 내쉰 후 검을 고쳐 잡았다.
스으으으윽.
남궁태산의 기세가 일변했다.
전에는 모든 것을 잘라 낼 것만 같은 날카로움이었다면, 지금은 그저 자유롭게 불어오는 바람과도 같았다.
“가겠습니다!”
스슥.
남궁태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야에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움직임.
물론 검마에게는 모두 보였다.
캉!
남궁태산의 검을 막아 내는 검마.
그런데 남궁태산의 일검을 막은 검마는 조금 놀랐다.
‘위력이 엄청나게 늘었구나.’
검마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위력이 강했다.
물론 단순히 위력만 강해진 것이 아니었다.
일검에서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져오는 검격.
아무런 형식도 없이 그저 중구난방으로 찌르는 것 같았지만, 모든 공격이 모두 위협적인 길로 공격해 들어왔다.
자유로움.
지금 남궁태산이 보여 주는 검은 자유로웠다.
그리고 그 자유로움 속에 또 형식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검마의 무형검법과, 남궁태산의 남궁태산 류 무적제왕검강이 만난 검법.
‘무형제왕검강(無形帝王劍罡).’
남궁태산은 이제 막 익힌 이 무형제왕검강을 능숙하게 다루며, 검마에게 그 힘을 보여 주고 있었다.
“더, 더 보여 보거라.”
검마는 정말 오랜만에 흥분이라는 감정을 표출했다.
검을 맞댈 때마다 조금씩 더 진화하는 남궁태산.
검마는 이런 남궁태산과 검을 겨루는 것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즐거웠다.
- 무형제왕검강. 극의. 무형낙일(無形落日).
팔형낙일의 수가 바뀌었다.
이름은 무형낙일.
남궁태산이 만들어 내는 신형의 수가 여덟에서 그 수가 줄었다.
지금 나타난 신형의 수는 넷.
수는 줄었지만, 그 힘은 오히려 강해졌다.
카캉! 캉! 카가가강! 카카캉!
연신 불을 튀기며 공방을 계속하는 검마와 남궁태산.
그리고 그 계속되는 공방을 할 때마다 남궁태산의 신형의 수가 계속해서 바뀌었다.
여덟이었다가, 둘이었다가, 열여덟 개로 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모든 공격에는 자연스럽게 ‘공간참’의 수가 접목되어져 있었다.
“좋구나. 좋아.”
검마의 검에도 어느새 강기가 둘러져 있었다.
강기를 두르지 않으면 그대로 검이 잘려 나갈 테니 말이다.
카가강! 쾅!!
네 개의 신형으로 사방에서 조여 오는 남궁태산의 검을 막은 검마.
강렬한 소리와 함께 아주 잠깐 둘의 거리가 벌어졌다.
“정말 익히는 것이 빠르구나. 자. 그럼 이번에는 내가 움직여 보마.”
이번에는 검마가 먼저 움직이기로 하였다.
가볍게 검을 늘어트린 채로 한 발을 내딛는 검마.
그저 가벼운 한 발이었는데, 어느새 남궁태산의 코앞에 당도한 검마.
당황할 수도 있을 정도의 움직임이었는데, 남궁태산은 당황치 않고 차분하게 검을 움직였다.
캉!
‘흐읍!’
검마의 일검을 막은 남궁태산은 속으로 깜짝 놀랐다.
가볍게 휘두르는 검마의 일검에 말도 하지 못할 만큼 무거운 힘이 실려 있었다.
자유로움에 힘, 부드러움, 빠름 등 검에 담을 수 있는 모든 묘리가 검마의 검에 담겨져 있었다.
‘아직 나는 배고프다.’
남궁태산은 배움에 대한 탐욕으로 눈을 빛내며 검마의 공격을 막아 나갔다.
그리고 그런 남궁태산의 눈을 보고, 검마도 더욱 즐거워 자신의 모든 것을 담은 검을 뻗어나갔다.
* * *
툭.
남궁태산에 의해 이번에는 검을 들고 있던 남궁거악의 오른 팔이 잘려 나갔다.
결국 양팔이 모두 잘려 나간 남궁거악.
이렇게 되면 이미 이 싸움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검객이 양팔을 모두 잘려 검을 쓰지 못하는 것이니 말이다.
“이 노오옴!!!”
무작정 남궁태산을 향해 달려드는 남궁거악.
양 팔은 잘렸지만, 아직 남궁거악에게는 두 다리가 남아 있었다.
쾅! 쾅! 쾅! 쾅!
쉴 새 없이 계속되는 남궁거악의 각법.
나름 강맹한 위력을 담은 각법이었지만, 남궁태산은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차분하게 남궁거악의 공격을 막고만 있었다.
“검을 잃은 검객에게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고 달려드는 거냐?”
푸욱.
결국 남궁태산의 검이 남궁거악의 목을 꿰뚫었다.
“끄르륵……. 크크크크크…….”
목에 검이 박혀 피가 목에 끓어오르는데도 웃는 남궁거악.
피처럼 붉게 물든 남궁거악이 입에서 피를 쏟아 내며 웃는 모습은 기괴함을 넘어 공포스러울 정도였다.
“내……. 목을 쳤어야……. 했다…….”
쿠드드드득. 쿠드드득. 쿠득.
기괴하게 몸이 부풀어 오르는 남궁거악.
남궁태산은 이 모습을 보고 남궁거악이 몸을 폭발시키려 한다는 것을 알아채었다.
완전히 지근거리에 있는 남궁태산의 신형.
이대로라면 그대로 폭발에 휘말리고 말 터였다.
‘같이 죽자!’
남궁거악은 마지막 최후의 수로 자신의 몸을 폭발시키는 것을 택했다.
대장로에게 이미 들어서 알고 있는 ‘혈마폭천공(血魔爆天功)’을 발동시킨 것이었다.
대장로가 남궁거악을 활강시로 만들면서 그의 몸에 심어 넣은 술법이었다.
천살교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몸을 폭발시키는 모든 술법 중 단연 제일의 위력을 자랑하는 술법.
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내공과 활강시만이 익힐 수 있다는 제약 때문에 익힌 이가 거의 없는 술법이었다.
몸속의 진원지기까지 모조리 끌어올려 몸을 터트린다.
위력은 당연히 벽력탄 수십 개가 한 번에 터진 것과 같은 위력을 자랑하는 그야말로 금단의 마공이었다.
쿠드득.
남궁거악의 몸이 거대하게 부풀어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서걱. 서걱. 서걱. 서걱. 서걱…….
뒤늦게 울려 퍼지는 무언가 잘려나가는 소리.
도무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투둑. 투둑. 투두두두두두둑.
그리고 한껏 부풀어 올랐던 남궁거악의 몸이 아주 잘게 조각나며 그대로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어딜 마음대로 동귀어진을 하려고.”
찰칵.
남궁태산은 그대로 검을 다시 검집으로 집어넣었다.
남궁거악의 몸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그 찰나의 순간.
남궁태산은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쾌검으로 남궁거악의 몸을 완전히 조각내어 버렸다.
터지기 전에 조각내어 버리면 터지지 못할 테니 말이다.
“괴물은 되지 말았어야지.”
남궁태산은 조금은 씁쓸한 표정으로 뒤돌며 말하였다.
결국 자신의 손으로 배다른 동생이라도, 혈육을 베어 버린 것이니 씁쓸할 수밖에 없었다.
“야 곽휘운. 너 언제부터 지켜보고 있었냐?”
“자네가 새로운 검법을 보여 줄 때부터 지켜보고 있었네.”
“어쩌면 너가 진짜 제일 괴물일지도 모르겠다.”
“이왕이면, 그냥 천재정도로 해 주게.”
“이제는 지입으로 천재라고 하네.”
“하하하.”
* * *
곽휘운의 상대는 다섯 구의 강시.
철마와 향초아는 이미 싸워본 적이 있는 자들이었고, 권왕, 천유객, 마전살 이 셋은 직접적으로 싸워 본 적은 없는 자들이었다.
다만, 그들 셋도 저 철마와 향초아와 비견될 만큼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강자들이라는 것을 피부로 알 수 있었다.
그들은 피부가 따가울 만큼의 기운을 내뿜고 있었으니 말이다.
“제 이야기가 들리지는 않으시겠지만, 제가 다시 영면에 들게 해 드리겠습니다.”
강시술은 정파에서 가장 금하는 술법 중 하나였다.
이미 죽은 고인을 능욕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술법이었으니 말이다.
평생을 칼끝에 선 것과 같이 위태로운 삶을 살다가 죽음으로 안식에 들어갔는데, 그것을 다시금 깨워서 강제로 다시금 칼끝에 세우는 것이었으니 당연히 지탄받아 마땅한 짓이었다.
슈와아아아아악.
어느새에 주변을 장악한 곽휘운의 휘운.
곽휘운은 처음부터 곧바로 힘을 쓸 예정이었다.
“갑니다.”
곽휘운의 말이 신호탄이 되는 듯, 다섯 강시도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으으으윽.
곽휘운의 검이 천천히 움직이고, 그에 따라 휘운도 천천히 움직였다.
카가가각. 카각. 카가가가각!
곽휘운의 휘운에 공격당한 강시들의 몸에서 거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장로가 꽤나 공을 들여 만든 강시들이기에 그 몸은 이미 평범함을 아득히 벗어날 정도로 단단했다.
“흠.”
곽휘운은 이정도로는 저들을 벨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는, 입가에 진한 미소를 피워 올렸다.
곽휘운도 얼마 전에 새로운 것을 하나 깨달은 것이 있었다.
지금이 그것을 시험해 보기에 가장 좋은 때라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