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141화>
쿠우우우우우웅.
곽휘운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느껴지는 기운에 곧바로 올 것이 왔음을 느꼈다.
일부러 자신의 위치를 드러내는 듯한 기운.
아마도 자신들을 불러내는 신호일 터였다.
“저와 태산만 움직이겠습니다. 다른 분들은 객잔과 세가를 부탁드립니다.”
곽휘운은 다른 이들이 이 싸움에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 다들 충분히 강하지만, 만에 하나라는 가능성도 만들 필요는 없었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다.’
백리세가와 휘운객잔이 천하제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 식구들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았다.
혹여 지금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모든 계획에 차질이 생길 터.
곽휘운은 그래서 남궁태산하고만 움직이기로 하였다.
‘거기에 검마님은 벌써 가셨으니, 문제는 없을 거야.’
검마는 이미 그곳을 향한 뒤.
곽휘운은 검마, 남궁태산 그리고 자신.
이렇게 셋이면 충분한 전력이라고 생각했다.
“가세.”
“그래.”
탓.
곽휘운과 남궁태산이 곧바로 발걸음을 움직였다.
엄청난 속도로 바람을 가르며 달려가는 둘.
그리고 금방 목적한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검마를 제외하고, 일곱 인영이 눈에 보였다.
‘하나같이 쉽지 않군.’
정말로 하나같이 쉽지 않은 자들이었다.
곽휘운은 특히 그중 가장 젊은 청년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들을 부르기 위해 기운을 뿜은 장본인이라는 것을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검마님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으로 강하겠군.’
물론 검마도 그렇고, 지금 눈앞에 있는 자도 그렇고, 정확한 힘을 가늠하기는 힘들었다.
그저 저 둘을 상대할 수 있는 무인이 무림에 몇 명 없을 것이란 것 정도만 짐작할 뿐.
“아아. 네가 곽휘운이라는 아이구나. 맞지?”
“예. 맞습니다.”
“나는 독마……. 아니지, 천살교의 대장로다.”
눈앞의 청년이 천살교의 대장로라는 것에 조금 놀랐다.
독마, 그러니까 천살교의 대장로라면, 지금 나이가 적어도 검마와 비슷한 나이일 터다.
그런데 눈앞의 대장로의 모습은 아무리 보아도 자신과 비슷한 정도로밖에 안보였다.
‘반로환동인가.’
곽휘운은 대장로가 반로환동의 경지에 다다른 무인이라고 생각했다.
곽휘운도 반로환동의 경지에 다다른 무인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저렇게 젊어진 무인은 본 적이 없었다.
“호? 철마를 죽였다더니, 진짜였군. 좋아. 아주 좋아. 교주의 말이 거짓은 아니었군.”
곽휘운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흡족해하는 대장로.
대장로는 지금 이곳 항주에 온 것이 절대로 헛된 걸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곽휘운은 자신이 생각한 그 이상이었다.
“자, 그럼. 바로 시작해 보자고.”
딱.
대장로가 가볍게 손을 튕기자,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다섯 인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르륵.
뒤덮었던 천을 벗어던지는 다섯 인영.
그리고 그 다섯 인영의 정체를 확인 하고, 곽휘운과 남궁태산 모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권왕, 철마, 향초아, 천유객, 마전살.’
철마와 향초아는 곽휘운의 손에 쓰러진 천마신교 측의 인물들.
그리고 권왕과 천유객, 마전살은 무림맹 측의 인물들이었다.
물론 이들의 소속 때문에 곽휘운과 남궁태산이 놀란 것은 아니었다.
둘이 놀란 것은 저들 다섯이 모두 이미 죽은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강시군.”
남궁태산의 말처럼 지금 저들은 모두 강시였다.
살아있는 인간이라면 느껴지는 생기가 저들에게서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을 반증해 주듯 초점이 없는 두 눈까지.
‘저쪽도 강시군,’
곽휘운은 남궁거악을 바라보았다.
이들 다섯과는 다르게 눈에 초점은 확실했지만, 생기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남궁거악은 예전에 만났던 시귀라는 자와 같은 활강시라는 것일 터였다.
“남궁거악 저놈은 내가 맡는다.”
“그러게.”
“빨리 끝내고 바로 합류할게.”
“알겠네. 천천히 해도 되네.”
남궁태산이 일단 남궁거악을 맡고, 남은 다섯은 곽휘운 혼자 맡기로 하였다.
혼자서 다섯을 막는다?
아무리 그저 명령에 의해 움직이는 강시라지만, 다섯 모두 살아 있을 때 모두 엄청난 실력을 가졌던 무인들이다.
강시로 만들어 져서 실력이 조금 떨어졌더라도, 다섯이라면 엄청난 전력이다.
그들을 혼자서 막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터.
그래서 남궁태산은 최대한 빠르게 남궁거악을 처리하고, 곽휘운을 도우려고 생각했다.
“저쪽은 검마 어르신께서 맡으실 것 같으니 됐네.”
대장로는 검마와 대치 중이었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될 터.
곽휘운에게 다만 걱정이 하나 있다면, 저 둘의 싸움의 여파가 얼마나 거대할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저 둘이 마음먹고 싸운다면, 객잔에서 멀리 떨어졌다고 해도, 여파로 인해 피해가 갈지도 몰랐다.
‘내가 빨리 끝내야겠군.’
곽휘운은 자신이 빨리 싸움을 끝내고, 여파를 막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했다.
“준비는 끝난 것 같은데, 시작해 보자고.”
딱.
대장로의 손이 다시금 튕겨졌고, 그 소리와 함께 일제히 싸움이 시작되었다.
* * *
남궁태산은 가만히 남궁거악을 노려보았다.
어릴 때부터 잔뜩 엇나가던 남궁거악.
하지만 그것이 다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저 모른척하며 넘어가 주었다.
그런데 결국 그것이 썩고 썩어 결국 이지경이 되고 말았다.
“천살교와 손을 잡아? 미쳤냐?”
“미쳤다라……. 크크크. 그래 나 미쳤다. 어차피 세가에서 버려진 신세. 미쳐서라도 날 버린 걸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어.”
두 눈이 피처럼 붉게 변한 남궁거악.
몸에서는 요사스러운 혈기가 마구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가히 공포스러운 존재감을 보여 주는 남궁거악.
“크흐흐흐. 예전의 나로 생각하지 마라.”
“그럴 생각 없으니 걱정 마라. 널 내 동생인 남궁거악이 아니라, 그냥 미친 괴물자식으로 생각해 줄 테니까.”
“크크크. 그 허세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보는 것도 즐겁겠어.”
남궁거악은 지금 온 몸에서 거침없이 끓어오르는 힘을 주체할 수 없었다.
모든 것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힘.
눈앞의 남궁태산쯤은 얼마든지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자. 이제 더 이상 나눌 이야기도 없으니까, 곧바로 시작하자고.”
“그래.”
스릉.
남궁태산이 먼저 검을 뽑아 들었다.
미려하게 뽑혀 나오는 푸른 검신.
일견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검이란 것을 알 수 있을 만큼의 모습이었다.
“제왕검!!”
제왕검(帝王劍).
남궁세가의 가주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남궁세가의 가보.
보통의 검과 다른 푸른 검신 때문에 청룡검(靑龍劍)으로 불리기도 하는 검이었다.
당연히 남궁세가의 가보인 만큼 엄청난 예기를 자랑하는 신검으로, 무림에서 가장 좋은 검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검으로 등장하는 검이었다.
남궁세가의 가주에게 전해져 오는 검이 지금 남궁태산에게 있다는 것은, 남궁태산이 차기 가주로 낙점 받았다는 이야기였다.
“그래……. 정말 나는 버린 것이었군.”
남궁거악은 자신이 확실히 버림받았다는 것을 느꼈다.
이 공자인 자신이 있는데도 벌써 남궁태산에게 저 검을 주었다는 것은, 애초에 자신은 가주 후보로 고민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일 터였다.
스릉.
남궁거악도 자령신검을 꺼내어 들었다.
화르르르륵.
자령신검에서 가공할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주변의 나무들이 말라버리고, 이미 마른 나뭇잎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인간이길 포기하고 힘을 얻었나 보구나.”
“그래. 네놈과 남궁세가를 벌하기 위해 얻은 힘이다.”
“재미는 있겠네, 예전 네 실력이었으면 재미없었을 텐데.”
팡!
갑작스럽게 남궁거악이 남궁태산에게 달려들었다.
공기가 터져나갈 정도의 속도.
순식간에 남궁거악의 검이 남궁태산의 목 옆에 당도해 있었다.
“쯧. 급하기는.”
캉!
하지만 남궁태산은 아주 여유롭게 남궁거악의 자령신검을 쳐내었다.
분명 엄청난 열기가 남궁태산을 향해 날아갔지만, 남궁태산은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 듯했다.
그 이유는 남궁태산의 실력이 높아진 탓도 있겠지만, 제왕검의 힘이 있어서였다.
제왕검은 소지자에게 한서불침(寒暑不侵)의 능력을 전해 주는 검이었다.
남궁태산의 내공과 제왕검의 능력이 합쳐지니, 제아무리 뜨거운 남궁거악의 열기도 남궁태산을 침법하지 못했다.
“힘이 겨우 이 정도가 다는 아니지?”
“당연하다!”
남궁거악도 지금 공격이 큰 위협을 주지 못할 것이란 것쯤은 알았다.
남궁태산도 그간 놀고 있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화르르르르르륵.
치이이이이익.
더욱 더 강렬해진 열기.
그 열기는 이제 자령신검을 만나 엄청난 화기로 바뀌었다.
이 화기에 주변에 있던 모든 것들이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주변에 나무가 많지는 않아서 불길이 번질 일은 없다는 것이었다.
- 무적화룡검강. 오의. 화룡탐일(火龍貪日).
무적제왕검강을 바탕으로, 남궁거악에 맞게 조금 바꾸어서 만들어 낸 검법인 무적화룡검강.
무적제왕검강에 대한 성취가 빠르지 않던 남궁거악을 위해 남궁세가에서 고심해서 만들어 낸 무공이었다.
콰아아아아아.
엄청난 크기의 화기가 용의 형상을 한 채로 남궁태산에게 쇄도했다.
아가리를 쫙 벌리고 남궁태산을 향해 쇄도하는 화룡의 위엄은 상당했다.
“이게 용이냐?”
서걱.
퍼펑!
남궁태산의 검이 그대로 날아오는 화룡을 갈랐고, 화룡이 정확히 반으로 갈라지며 그대로 중간에서 소멸해 버렸다.
너무나도 간단하게 남궁거악의 화룡을 갈라버린 남궁태산.
남궁거악은 이 모습에 살짝 인상을 썼다.
이렇게까지 쉽사리 갈라버릴 줄은 예상치 못했으니 말이다.
“거악아 가진 힘을 다 꺼내라. 네가 힘을 숨길 처지냐?”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다.”
투둑. 툭. 투두둑. 투둑.
괴기한 소리와 함께 남궁거악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온몸은 피처럼 붉게 물들어버렸고, 온몸의 근육이 터질 것처럼 커졌다.
지이이이이잉.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남궁거악의 자령신검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제 시작이군.’
남궁태산은 이제야 진짜 싸움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았다.
모습이 변하며 기운이 더욱 강해졌고, 자령신검에서 소리가 울려 퍼질 때가 남궁거악의 무공이 진짜 힘을 드러낼 때라는 것을 알았으니 말이다.
퉁.
아까보다는 훨씬 가벼운 소리와 함께 남궁거악의 신형이 사라졌다.
촤악.
치이이익.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남궁태산의 어깨가 베이며 그 주변이 그대로 타들어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