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휘운객잔-136화 (136/203)

<휘운객잔 136화>

무림에 퍼지기 시작한 하나의 이야기.

‘지금 백리세가에 마교 팔마 중 하나인 검마가 머무르고 있다.’

이 이야기는 무림에 꽤나 큰 반향을 몰고 왔다.

현재 무림맹과 천마신교와의 싸움이 멈춰있는 상황이었지만, 이미 천마신교에 의해 당한 정파 무인들이 다수 있었다.

그들은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불같이 타오르며, 백리세가를 향해 압박을 가해 오기 시작했다.

‘백리세가는 어서 해명을 하시오.’

그들은 백리세가에 어째서 검마가 머무르는지, 그리고 머무는데 왜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는지에 대해 해명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들의 그런 요구에도 백리세가는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압박은 점점 더 거세졌지만, 백리세가는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았다.

* * *

“내가 이곳을 나가는 것이 맞겠구나.”

검마는 지금 상황을 알고 있었다.

천마신교에게 당한 이들이 자신이 이곳에 머문다는 이유로, 이곳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떠나겠다고 곽휘운에게 말을 하였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검마님이 이곳에 머무시는 것이 저희에게 훨씬 더 좋으니 말입니다.”

“흘흘. 무슨 생각이냐?”

검마는 곽휘운의 생각이 궁금했다.

백리세가는 분명 정도의 길을 가는 곳이다.

그렇다면 천마신교의 사람인 자신이 이곳에 있는 것은, 그들에게 분명 큰 손해일 터.

그런데 이곳에 머무는 것이 훨씬 더 좋다니?

“검마님께서는 이번에 천살교 때문에 이곳에 오신 것 아닙니까?”

“맞다.”

“그렇다면, 검마님과 함께 천살교를 세상 밖으로 드러내면, 백리세가는 더욱 이름이 퍼질 것 아니겠습니까?”

“흘흘. 천마신교와 함께하는 곳이라는 것을 원하는 것이냐?”

“예. 맞습니다.”

곽휘운이 원하는 것은 물질이 아니었다.

곽휘운이 원하는 것은 백리세가가 천마신교와 함께 하는 곳이라는 이야기가 퍼지는 것.

천살교라는 새로운 적이 나타나면, 필히 무림맹과 천마신교는 일단 싸움을 멈출 것이다.

그리고 일시적이지만, 결국 서로 손을 잡게 될 터다.

곽휘운은 그때 바로 검마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검마를 통해, 백리세가가 무림맹과 천마신교를 잇는 교두보가 될 것이다.’

짧은 싸움이지만 이미 앙금이 깊은 무림맹과 천마신교의 관계.

아무리 공동의 적인 천살교가 나타난다고 하여도, 무림맹과 천마신교가 갑자기 손을 잡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필히 무림맹과 천마신교 사이를 연결할 교두보가 될 곳이 필요할 터였다.

곽휘운은 그 교두보의 역할을 백리세가가 맡게 할 계획이었다.

그리고 천마신교 측으로 다리를 놓아 줄 사람이 바로 검마였다.

“재미있구나. 그런데 만약 천살교가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강한 힘을 지닌 곳이 아니라면 의미 없는 짓 아니더냐?”

검마의 말처럼 천살교의 힘이 생각보다 약하다면, 곽휘운이 생각한 모든 계획은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릴 터였다.

천살교의 힘이 약하다면, 천마신교와 무림맹이 손을 잡지 않고서도, 충분히 천살교를 처리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검마께서 직접 이곳까지 오시고, 천마신교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것은, 그만큼 지금 천살교의 힘이 강하다는 증거 아닙니까?”

“흘흘.”

대답대신 웃음을 흘리는 검마.

지금 곽휘운의 말처럼 천마신교는 천살교의 힘을 고평가 하고 있었다.

이미 발견해 낸 힘만으로도 충분히 큰 위협을 줄만 했는데, 많은 정보력을 투자했음에도 아직 모든 힘을 발견해 내지 못했다.

그래서 천마신교는 숨겨진 힘들까지 고려해, 천살교가 지금 가지고 있는 힘이 굉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내가 이번에 그 자를 만나보면, 그들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조금 더 알 수 있을 거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자이기에 검마께서 직접 오신 것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곽휘운은 궁금했던 점을 검마에게 물어보았다.

천마신교에서도 검마의 위치는 특별했다.

교주인 천마조차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사람.

그런데 그런 검마가 직접 몸을 움직인 것이다.

만나야 할 자가 결코 평범한 자가 아니라는 뜻.

당연히 곽휘운은 그 자가 어떤 자인지 궁금했다.

“독마. 그 놈이 아무래도 천살교의 핵심 인물인 것 같아, 내가 직접 왔다.”

검마와 같은 팔마 중 일인인 독마.

팔마 중 무림에 가장 정보가 적은 인물이기도 하였다.

워낙에 드러난 행적이 없기에, 인상착의는 물론 어떤 무공을 쓰는지 조차 알려져 있지 않은 자였다.

“천마께서야 이미 알고 계셔도 뭘 하든 신경을 쓸 분은 아니지만, 나는 조금 신경이 쓰여서 말이야.”

천마는 이미 천마신교 내의 몇몇 인물들이 천살교에 가담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천마는 그것 또한 재미있는 여흥이라고 생각하고 있기에, 지금까지 그냥 방관하고 있었다.

하지만 검마는 천마처럼 그냥 가만히 방관만 할 수는 없는 입장이었다.

천살교가 어떤 곳이지, 얼마나 위험한 생각을 가지고 움직이는 자들인지를 잘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번에 그들의 머리로 추정되는 독마의 움직임이 포착되자마자, 다른 이들을 두고 직접 몸을 움직였다.

“흠. 왠지 독마 그자가 검마님을 이곳을 유인한 것 같다는 생각이듭니다.”

검마의 이야기를 들은 곽휘운은, 독마가 일부러 자신의 행적을 노출 시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지금까지 은밀하게 활동하던 독마의 행적이 이렇듯 갑자기 나타날 리 없으니 말이다.

“흘흘. 그렇다고 한들, 안 올 수는 없지 않겠느냐?”

검마의 말처럼 그들이 일부러 행적을 노출했다고 해도, 이 미끼를 물지 않을 수는 없을 터였다.

“그 놈들이 무엇을 준비했든, 그 이상을 보여 주면 될 일이다.”

“하하. 맞는 말씀입니다.”

곽휘운은 검마의 말에 동의했다.

그들이 무엇을 준비하였든, 그 이상의 힘을 보여 주면 크게 걱정할 것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실행하기에 자신과 검마 그리고 남궁태산.

이 셋이면 충분할 터였다.

곽휘운에게는 그만한 자신감이 있었다.

* * *

월영루의 어느 객실.

남궁거악은 지금 대장로의 앞에 바짝 엎드려 있었다.

“저에게, 저에게 힘을 주십시오!”

“힘을? 아직도 부족한가?”

“예. 남궁태산을 죽이기에, 남궁세가를 벌하기에 힘이 부족합니다.”

말을 할 때마다 남궁거악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가공할 살기와 혈기.

그것을 보고 대장로는 아주 흡족한 표정을 하였다.

“좋아. 이렇게 간절히 부탁하는데, 내가 들어줘야지.”

“감사합니다.”

쿵.

남궁거악은 머리가 부셔질 듯 강하게 땅에 머리를 박으며 대답했다.

남궁거악은 지금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분노로 머리가 가득 찬 상태였다.

그래서 자신을 버린 남궁세가와 남궁태산에게 복수를 할 수 있다면, 마귀에게도 혼을 팔 수 있었다.

“자. 일단 이걸 먹어라.”

휙.

남궁거악에게 전해지는 검붉은 색의 단약.

그것은 지금까지 남궁거악이 보았던 그 어떤 단약보다 혈향이 진했고, 사특한 기운을 뿌려대고 있었다.

꿀꺽.

남궁거악은 일말의 고민도 하지 않고, 대장로가 건넨 단약을 삼켰다.

이미 수차례 대장로가 건네어 준 단약을 먹어왔고, 이 단약또한 그것들과 같이 엄청난 내공을 증진시켜 줄 것이라 생각했으니 말이다.

“커어억!! 컥!”

하지만 다른 단약들과 다르게 먹자마자 엄청난 고통과 함께 온 몸의 기혈들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거기에 더해 남궁거악의 칠공에서 피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끄륵. 끄르륵.”

남궁거악은 입안에 가득 찬 피로 인해 말도 하지 못하면서도 이게 어찌된 일이냐는 눈으로 대장로를 바라보았다.

“원하던 대로 힘을 주는 것이니, 그리 원망 말거라. 내가 아주 좋은 활강시(活僵尸)로 만들어 줄 테니.”

“끄르르륵…….”

툭.

온몸의 피를 전부 쏟아 낸 것일까?

바닥이 피로 흥건하게 잠김과 동시에, 남궁거악의 몸이 힘없이 쓰러졌다.

“쓸모없는 피는 전부 뽑아내었으니, 이제 내가 새로운 피를 주마.”

대장로는 숨이 끊어진 남궁거악의 입에 새로운 단약을 하나 집어넣었다.

사르르르륵.

남궁거악의 입에 들어간 단약이 저절로 녹아서 남궁거악의 몸으로 흘러들어갔고, 대장로는 그와 함께 남궁거악의 혈도들을 쉴 새 없이 누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혈도들을 한참을 누르고 나서야, 대장로의 손이 멈추었다.

“흐음. 좋아. 이제 몇 번만 더 반복하면 되겠군.”

한번 가지고는 원하는 수준의 활강시를 만들 수는 없다.

수차례 반복을 하여야 쓸 만한 수준의 활강시가 탄생할 터였다.

“내가, 네놈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게 만들어 주마. 하하하.”

* * *

백리세가의 연무장.

그곳에는 지금 두 인영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 명은 남궁태산이었고, 다른 한 명은 바로 검마였다.

“나와 검을 섞고 싶다고 들었다. 맞느냐?”

“예. 맞습니다.”

남궁태산은 곽휘운을 통해 검마에게 대련을 요청하였다.

검마는 검의 극의를 이룬 사람.

같은 검객으로서 검마와 대련을 꼭 해 보고 싶었으니 말이다.

“흘흘. 그래 그럼 한번 솜씨를 보자꾸나.”

검마는 흔쾌히 남궁태산의 대련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에게 남궁태산이 정파의 사람이란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한창 젊은 나이인 남궁태산이 자신에게 대련을 요청해 왔다는 것이 중요한 검마였다.

자신의 명성에 지레 겁을 먹고는, 고개 숙이고 피하려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랐으니 말이다.

‘그것도 남궁의 아이가 이렇게 요청을 해오다니.’

검마는 무림에서 천하오대세가라 불리는 정도 세가인 남궁세가의 아이가, 그들에게 마교도라 불리는 자신에게 대련을 요청해 올 줄은 몰랐다.

정도와 마도를 떠나서 배우려는 남궁태산의 자세에 검마는 속으로 꽤나 즐거웠다.

스릉.

검마는 진심으로 남궁태산을 상대해줄 생각이기에,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쿠우우우우우웅.

사아아아아악.

검마가 검을 뽑자마자 말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기운이 사방을 짓누르기 시작했고, 그대로 몸이 베일 듯한 예기가 함께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압도적인 존재감.

지금 검마에 비교해 보자면, 전에 보았던 철마는 귀여운 아이 수준일 정도였다.

“자. 오거라.”

“예.”

검마의 말에 남궁태산은 바싹 마르는 입을 떼어 대답했다.

스릉.

검을 마주 뽑아드는 남궁태산.

그의 손은 미세하지만 조금 떨리고 있었다.

스윽.

그리고 그 떨리는 손과 함께 자세를 잡은 남궁태산은 살짝 눈을 감고, 몸 안의 내공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공을 끌어올리자, 이내 남궁태산의 손이 떨림을 멈추었다.

그리고 손의 떨림이 멈추자, 남궁태산은 눈을 번쩍 떴고, 두 눈에서 푸른 안광이 터져 나왔다.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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