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135화>
퉁.
가볍게 활 튕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슉.
푹. 푹. 푹.
휘운시가 날아가는 소리와 동시에, 무언가에 깊숙이 박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망치던 악봉단 셋의 가슴에 박혀있는 휘운시.
단 한 번 활을 튕긴 것으로, 각기 다른 방향으로 도망치던 이들의 가슴팍을 꿰뚫은 것이다.
놀라운 궁술 실력.
“하. 무림에 절대 고수인 궁사 한 명 납셨네.”
남궁태산은 어이없다는 눈으로 곽휘운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의 곽휘운이 보여 준 궁술.
남궁태산은 온 몸에 털이 곤두설 정도의 위력을 느꼈다.
곽휘운이 활을 배웠다기에 어느 정도의 위력은 낼 것이란 건 짐작했다.
하지만 지금 직접 본 곽휘운의 궁술 위력은 남궁태산의 짐작을 아득히 벗어나 있었다.
애초에 강기로 만들어 낸 화살을 날리는 것에서부터 짐작을 벗어났다.
“그나저나. 이 놈을 당장 족치러 가야 하나?”
남궁태산은 남궁거악을 곧바로 벌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지금 이 정도만 하여도 이미 증좌는 충분했다.
하지만 문제는 남궁거악이 숨긴 수가 더 존재할 수 있다는 것.
지금 이 악봉단도 남궁태산은 전혀 모르고 있던 남궁거악의 수였다.
“너무 성급하게 움직일 필요 있겠나? 조금 더 기다리면, 확실하게 잡을 기회가 올 걸세.”
곽휘운은 성급하게 움직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괜히 남궁거악을 들쑤셔 봐야 얻을 것이 없을 터다.
완벽한 때에 그를 잡아야 했다.
그래야 백리세가가 더욱 더 무림에 이름을 날릴 테니 말이다.
“돌아가세.”
* * *
월영루의 상층.
남궁거악과 남궁평세, 그리고 전의 그 청년이 앉아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분이 공자가 강해질 수 있도록 만들어 준 분이란 말이오?”
“그렇습니다.”
“허허.”
남궁평세는 청년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청년에게서 특별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기생오라비처럼 생긴데다가 몸도 약해 보였다.
‘도대체 누구일까?’
또 다른 의문은 청년의 정체였다.
단 한 번도 이런 인상의 무인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남궁거악이 말한 대로라면, 무림에 이름이 알려지고도 남았을 터인데 말이다.
“내 정체가 궁금한가보군.”
“하하. 이거 표정에 다 드러났나 봅니다.”
“후후. 뭐, 딱히 숨길 필요 없으니 알려 주지. 독마(毒魔). 지금까지는 그렇게 불렸었다.”
“독마!!!”
남궁평세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독마가 누구인가?
천마신교의 팔마 중 하나이지 않은가?
지금 무림이 마교의 진출 때문에 혼란스러운 이때, 남궁세가의 공자가 마교의 팔마와 내통을 하고 있다니.
무림에 알려지면, 단숨에 공적으로 찍힐 만한 일이었다.
‘그런데 독마가 이리 젊다니?’
분명 독마가 무림에 이름을 알린 것은 수십 년도 더 전의 일이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독마는 아무리 보아도 아직 청년이었다.
앞뒤가 맞지 않는 상황.
“내가 젊어 보여서 그러는가?”
“맞습니다.”
“좋은 것을 많이 먹다보니, 이렇게 변하더군 그래.”
독마는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종류의 독과 약을 다루었다.
그리고 수많은 ‘작품’들을 만들어 내었다.
그 중 성공적인 작품들은 자신이 모조리 섭취했다.
그러다 보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내공을 가지게 되었고, 반로환동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정말 독마라면, 이건 정말 상상 이상이군.’
남궁평세는 정말 독마인지는 아직 의심스러웠지만, 일단은 믿어 두기로 하였다.
남궁거악이 독마라는 자에게 보내는 신뢰를 보자면, 독마이든 아니든 실력이 엄청나다는 것은 확실한 듯싶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이라는 말은……?”
“아아. 이제 그 이름은 버릴 거거든.”
“??”
남궁평세는 독마가 말했던 지금까지는 그렇게 불렸다는 말이 걸렸다.
그렇다면 지금은 다르게 불린다는 말인가?
“이제는 천살교의 대장로라고 불리거든.”
“!!!!!!!”
남궁평세는 자신이 놀랄 수 있는 최대한의 놀람을 느꼈다.
천마신교를 넘어서 천살교라니?
남궁평세는 고개를 돌려 남궁거악을 바라보았다.
알고 있었냐는 눈빛.
남궁거악은 그 눈빛을 받고도 태연히 술을 입에 털어 넣었다.
‘알고 있었군.’
남궁거악은 독마, 아니 대장로가 천살교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알고도 계속해서 도움을 받은 것이었다.
“천살교면 어떻고, 마교면 어떻습니까? 어차피 그 둘은 같은 곳입니다.”
“걸린다면 목이 달아날 걸세.”
“걸리지 않으면 그만 아닙니까?”
“세가에서 이미 자네가 수상하다는 것을 알고 있네.”
“그럼……. 아예 전부 다 갈아엎어야겠습니다.”
혈기가 강하게 휘도는 남궁거악의 두 눈.
남궁평세는 그 두 눈을 보고는 소름이 돋았다.
‘내 생각 이상으로 미쳐 있구나.’
남궁평세는 남궁거악이 완전히 천살교에 의해 미쳐 버렸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남궁거악을 따라온 이유는 필히 숨겨둔 힘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세가에서는 막나가는 망나니 정도로 평가하고 있지만, 남궁평세가 본 남궁거악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이무기 같은 자였다.
그래서 그것을 생각하고, 남궁세가 무인들을 모조리 베어버리면서까지 이렇게 남궁거악을 따라온 것인데, 어쩌면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살교가 어떤 곳인지 아는가?”
“물론입니다.”
“아는데도 그들과 손을 잡는다는 말인가?”
“강력한 힘을 주는데, 손을 잡지 않을 이유가 있습니까?”
남궁평세와 남궁거악의 대화.
대장로는 그런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래서 이대로 돌아가실 겁니까?”
“그래야겠네.”
“이미 남궁세가의 무인들을 죽인 공범이 되시지 않았습니까? 과연 세가에서 가만히 있을 것 같습니까?”
“그래도 천살교와 손을 잡은 것보다는 처우가 낫겠지.”
“후우. 어찌 그렇게 멍청하십니까?”
남궁거악은 고개를 흔들며 남궁평세를 멍청하다고 하였다.
“이미 세상은 바뀌었습니다. 힘이 있는 자가 모든 것을 취하는 세상이 온 것이지요. 지금 천살교는 힘이 있고, 무림맹과 마교는 속빈 쭉정이일 뿐입니다.”
“천살교는 마교 보다도 더 위험한 자들이네. 그들은 그저 피에 미친 자들일 뿐이야!”
“틀렸습니다. 그들은 평등한 세상을 만들 선구자들입니다. 그 증거로 저에게 이렇게 힘도 주었고 말입니다.”
남궁평세는 남궁거악을 더 이상 돌이킬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그는 힘과 피에 완전히 취해있는 상태였다.
“자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사악.
남궁평세는 말을 하다가 말고, 급하게 검을 뽑아 가만히 있던 대장로에게 검을 날렸다.
부지불식간에 벼락같이 찔러 낸 남궁평세의 일 검.
남궁평세는 대장로가 피해내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 자를 죽이면, 남궁거악도 포기를 할 것이고, 내 죄도 탕감을 받겠지.’
남궁평세는 두 가지를 동시에 이룰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탁.
“헛!”
대장로를 향해 찔러 들어가던 남궁평세의 검이 멈추었다.
아니 멈춤 당했다.
“어설프군. 어설퍼.”
태연한 목소리로 말을 하는 대장로.
그는 지금 손에 들린 젓가락으로 남궁평세의 검을 잡고 있었다.
젓가락으로 검을 막는다니?
엄청난 실력의 격차가 있지 않고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자는 어차피 쓸모없을 것 같은데, 내가 좀 써도 되겠지?”
“마음대로 하십시오.”
“좋아. 이 정도면 그래도 쓸 만한 걸 하나 만들 수 있을 것 같으니, 완성되면 자네에게 주지.”
“감사합니다.”
뜻 모를 말을 나눈 남궁거악과 대장로.
그동안 남궁평세는 검을 빼어내 보려 안간힘을 썼지만, 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탓.
남궁평세는 과감하게 검을 버리고, 도주를 택했다.
지금 자신의 실력으로 대장로를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말이다.
“판단은 빠르군.”
남궁평세가 도망침에도 평온한 대장로.
탁.
대장로는 태연하게 반대 손에 들고 있던 잔을 탁자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동시에 들려오는 신음.
“컥.”
월영루를 벗어나기 위해 달리던 남궁평세가 고통에 찬 신음과 함께 갑자기 바닥에 주저앉았다.
“판단은 빨랐는데, 내가 누구인지 잊은 모양이군 그래.”
어느새 쓰러진 남궁평세의 바로 옆에 다가와 있는 대장로.
그는 아무런 감정이 담겨있지 않은 눈으로 남궁평세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네가 나를 만난 그 순간부터, 자네에게 기독(氣毒)을 심어 놓았네.”
“커컥.”
“조금 고통스럽겠지만, 걱정은 말게. 아직은 죽이지는 않을 거니 말일세.”
스륵.
대장로가 손을 움직이자, 남궁평세의 몸이 두둥실 떠올랐다.
직접 손을 대지도 않고, 오로지 내공으로만 사람을 띄워 올렸다.
다른 이가 보았다면, 눈이 찢어져라 경악을 하고 있을 상황이었다.
가공할 내공의 힘이 없다면, 절대로 불가능한 모습이니 말이다.
“커어억.”
“자. 그럼 자리를 옮겨 볼까?”
대장로는 그렇게 남궁평세를 들고는 어디론 가로 사라졌고, 남궁거악은 그 자리에서 계속해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왜 아무런 소식도 없지?”
한참 술잔을 기울이던 남궁거악은 휘운객잔으로 떠난 악봉단의 소식이 없자 조금 의아해졌다.
지금쯤이면, 무언가 싸움이 낫다는 이야기라도 들려와야 할 것인데, 아무런 소식도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공자님.”
그때 드디어 무언가 소식을 가지고 부하 하나가 나타났다.
남궁거악은 예상보다 조금 늦었지만, 그래도 일이 잘 처리되었다고 생각했다.
물론 부하의 보고를 듣기 전까지 말이다.
“악봉단 전원이 사망. 휘운객잔의 근처도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뭐라!”
“남궁태산과 곽휘운 단 둘이서 악봉단 모두를 죽였습니다.”
“이이!!!”
대장로에게 받은 단약을 먹여 기하급수적으로 힘을 키운 악봉단이다.
겨우 두 명이서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정말 그 둘뿐이냐?”
“예. 그 마저도 남궁태산 혼자서 거의 대부분을 죽였습니다.”
“미친!”
남궁거악이 알고 있는 남궁태산의 실력으로는 결코 불가능한 일이다.
남궁태산이 분명 젊은 무인들 중에서는 단연 압도적인 실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하나, 하나가 남궁세가의 장로급인 악봉단 전원을 상대로 이길 실력은 아니다.
‘그 놈도 누군가 뒤에서 봐주는 것인가?’
남궁거악은 남궁태산도 자신처럼 누군가 뒤에서 힘을 주는 자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강해질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세가에서는 이미 나를 버리고, 남궁태산에게 모든 것을 준 것이군.’
남궁거악은 자연스레 그 힘을 준 곳이 남궁세가라 생각했다.
세가 말고는 그 남궁태산에게 힘을 줄 만한 곳은 없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 생각을 하자마자, 분노가 온몸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애초에 버림 받은 것이었어.’
남궁거악의 두 눈이 완전히 붉게 물들어 가기 시작했고, 그의 몸 주위에서는 짙은 혈기(血氣)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