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132화>
검마가 바라보는 곽휘운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분명 아직 한창 젊은 무인이었는데, 느껴지는 힘은 이미 하늘을 넘어섰으니 말이다.
천외천(天外天).
저토록 젊은 나이에 하늘 위의 하늘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어떻게 그 나이에 그런 경지에 발을 들였는지 궁금할 정도구나.”
검마가 평생을 검을 잡아 겨우 발을 담근 경지다.
그런데 지금 곽휘운은 검마의 반의반도 안 되는 나이일 터.
세상에 아무리 기인이사가 많다지만, 이건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체질과 기연. 이 두 가지가 잘 맞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천신지체라는 체질과 축령신공이라는 기연.
이 두 가지가 지금의 곽휘운을 만들어 낸 가장 큰 힘이었다.
“손을 보니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겠구나.”
“하하…….”
검마가 보는 곽휘운의 손.
아무리 경지가 올라 환골탈태를 한다고 해도, 손에 새겨진 노력의 흔적은 사라지지 않는다.
검마는 곽휘운의 손이 수십 년 동안 검을 잡아 온 자신과 비교해서도 크게 모자라지 않다는 것을 파악했다.
‘쉬지 않고 검을 휘둘렀겠구나.’
무인이 검을 들고 실질적으로 수련을 하는 시간은 그리 길지는 않을 것이다.
하루에 두 시진에서 세 시진 정도나 휘두를까?
하지만 곽휘운의 손과 나이를 생각해볼 때 하루에 최소 여덟 시진은 휘두른 듯싶었다.
그렇다는 것은 밥 먹는 시간도 줄이고, 잠자는 시간도 줄이며 검을 휘둘렀다는 것이다.
노력.
재능에 이 노력이란 것이 없다면, 그저 그런 무인으로 끝이 난다.
하지만 재능에 노력이란 것이 겹쳐진다면, 종종 상식을 뛰어넘는 무인들이 나타나게 된다.
지금 곽휘운이 바로 그 상식을 뛰어넘는 무인의 좋은 표본이었다.
“당장이라도 검을 섞어 보고 싶지만……. 오늘은 날이 늦었으니, 다음을 기약하도록 하마.”
“감사합니다.”
곽휘운은 다음을 기약하겠다는 검마에게 감사하다고 하였다.
지금 여기서 검마와 싸운다면, 주변에 있는 휘운객잔과 백리세가는 멀쩡할 수가 없다.
최소 반 이상은 파괴될 것이다.
그만큼 검마는 상상을 뛰어넘는 강자였다.
그런 검마가 곧바로 검을 뽑지 않았으니, 검마에게 감사할 수밖에.
“그런데 내가 머무를 방하나 내어 줄 수 있겠느냐?”
“물론입니다.”
방을 하나 내어달라는 검마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는 곽휘운.
아니, 들어줄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게 맞을 수도 있었다.
“자. 여기 값이다.”
주머니 하나를 곽휘운에게 건네는 검마.
안에는 묵직한 금화가 한가득 들어 있었다.
“이건 너무 많은 값입니다.”
“어차피 나에게 쓸모없는 것이다. 남는 값은 나중에 내 이름으로 찾아오는 이가 있거든, 그때에 마저 쓰도록 해라.”
“예. 알겠습니다.”
곽휘운은 더 이상의 질문 없이 금화 주머니를 품에 갈무리했다.
그리고는 검마를 객잔으로 안내했다.
당연히 값에 맞는 가장 좋은 곳으로 말이다.
“이곳입니다.”
“좋은 곳이구나.”
특별히 신경을 써서 만든 휘운객잔의 별실.
따로 떨어져 있어 주변에 시끄러운 것도 없고, 작은 마당도 있는 곳.
평소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검마에게는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내가 기억하기로 네가 예전에 천살교를 만난 적이 있었다고 기억하는데 맞느냐?”
“예. 맞습니다.”
곽휘운이 별실을 나가려던 그때.
검마가 질문을 해 왔다.
예전에 청해성에서 천살교와 싸운 적이 있던 곽휘운이었다.
“그렇구나. 그때 완전히 마무리를 짓지 못했었지?”
“예. 교주를 비롯한 일부가 도망을 쳤습니다.”
“그렇구나. 알았다. 그만 가서 일을 보거라.”
“그럼.”
곽휘운은 그대로 인사를 하고, 별실에서 물러났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천천히 백리세가로 발걸음을 옮기는 곽휘운.
지금 머릿속에는 검마에 대한 것보다, 천살교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들이 다시 나타난 것이군.’
오래전 청해성에서 천살교가 준동했을 때 일망타진하였지만, 결국 핵심적인 인물들 몇을 놓쳤었다.
무림맹에서는 완전히 천살교를 소탕한 것으로 공표했지만, 핵심 인물들이 살아 있는 이상 분명 돌아올 것이라 예상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이 다시금 나타난 것이다.
‘흠. 그런데 남궁거악과 천살교가 연관이 있을 줄이야.’
아무리 남궁거악이 남궁세가에서 버려 놓은 자식이라 해도, 명문 정도세가인 남궁세가의 직계이다.
그런데 그런 남궁거악이 천살교와 연관이 있다니?
남궁세가에서 안다면 아마도 눈이 뒤집힐 내용이었다.
‘어쩌면 이게 더 큰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군.’
무림에겐 크나큰 위협이 될지 모르는 천살교의 재등장.
하지만 다시 생각하면, 이건 큰 기회이기도 하였다.
천마신교의 무림 진출에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천살교를 막아 내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더 많았다.
천살교는 무림맹과 천마신교 두 곳 모두에게 공적으로 낙인이 찍힌 곳.
천살교가 무림에 나타났을 때 백리세가가 활약한다면, 곽휘운이 생각하는 목표에 더욱 빠르게 도달할 수 있을 터였다.
‘일단은 남궁거악부터 해결해야겠군.’
* * *
남궁거악은 지금 부하의 믿을 수 없는 보고를 듣고, 반쯤 이성이 날아갔다.
“그들이 모두 죽었다고? 그걸 나보고 믿으라는 것이냐!”
“저, 정말입니다.”
“어떤 놈이 그랬지?”
“과, 곽휘운 그자 혼자서…….”
“그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냐!!”
“하지만 정말입니다.”
창!
남궁거악은 자신의 검인 자령신검(紫靈神劍)을 뽑아 들었다.
지이이이이잉.
자령신검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 소리에 부하의 얼굴은 단번에 사색이 되었다.
자령신검이 울린다는 것은 남궁거악이 내공을 불어 넣었다는 것이고, 그것은 곳 누군가를 죽이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이었다.
“고, 공자님! 살려 주십시오!”
“거짓을 말하는 놈을 살려 둘 수는 없지.”
“아, 아닙니다! 정말 입니다! 곽휘운 그자…….”
서걱.
부하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이미 목이 잘렸으니 말이다.
치이이이익.
목이 잘린 부하에게서 불에 지지는 듯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목이 잘렸음에도 피한방울 흘리지 않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부하.
잘린 곳을 보니, 불에 지져진 것처럼 변해 있었다.
남궁거악이 익힌 무공은 극양(極陽)의 무공.
가공할 열기로 벤 부분을 바로 태워 버린 것이다.
“뭐 이놈 말고도 쓸 만한 놈은 많으니까. 치워라.”
“예.”
스륵.
남궁거악의 말에 바닥에서 그림자하나가 대답을 하며 솟아올랐다.
그리고는 재빠르게 바닥에 쓰러진 부하의 시체를 치워 사라졌다.
남궁거악에게 쓸 만한 부하는 아직 많았다.
철혈오악은 분명 매우 아까운 자들이었지만, 어차피 그들도 남궁거악에게는 소모품일 뿐이다.
“쯧. 내 부하들을 보내기는 아까운데.”
남궁거악은 ‘그’에게 철혈오악을 받은 뒤, 자신만의 부하들을 새로 키웠다.
남궁세가에 있는 젊은 무인들을 데려다가, 철저히 자신의 소모품으로 단련시켰다.
‘그’에게 그들에게 줄 단약을 요구했고, ‘그’도 흔쾌히 더 많은 단약을 내어 주었다.
그렇게 단약으로 키운 부하들이 있었다.
이번에 당연히 월영루로 데리고 왔는데, 벌써 쓰게 될 줄은 몰랐다.
“문제는 철혈오악을 죽인 놈이 누구냐는 건데…….”
분명 철혈오악의 힘은 남궁세가의 장로들과 비견될 정도로 대단하다.
그런 그들을 죽인 자라면 자신의 부하들을 보내도 개죽음을 당할 공산이 컸다.
다짜고짜 다시 휘운객잔으로 부하들을 보낼 수는 없었다.
남궁세가를 차지하기도 전에 이곳에서 쓸데없이 전력을 깎아 먹을 수는 없었다.
“뭔가 일이 잘 안돌아 가나 보군 그래?”
남궁거악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그때였다.
갑자기 남궁거악이 머무르는 영월루 최상층에 누군가 나타났다.
그리고 들려오는 젊디젊은 목소리.
남궁거악이 익히 알고 있는 목소리였다.
“아. 오셨습니까?”
“그래. 여기에 재밌는 놈이 있다고 해서 보러올 겸해서 왔다.”
“아주 좋은 때에 오셨습니다.”
“크크크. 그래 내가 봐도 좋은 때에 온 것 같다. 뭔가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 같아.”
남궁거악은 젊디젊은 목소리와 등을 지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제야 몸을 돌려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
거만한 자세로 남궁거악의 침상에 반쯤 누워있는 청년 한 명.
제멋대로 풀어헤쳐진 새하얀 무복에 길게 늘어트린 머리카락, 살짝 아래로 처진 눈매는 청년을 묘한 색감이 들게 만들었다.
모습만 봐서는 남궁거악보다도 어려 보였는데, 남궁거악은 그를 마치 어른을 대하듯 대하고 있었다.
이 청년이 바로 남궁거악이 말하는 ‘그’였다.
“제게 힘을 좀 나눠 주십시오.”
“힘? 크크크. 좋지. 나는 힘을 나눠 주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거든.”
휘익.
청년은 말과 함께 남궁거악에게 무언가를 품안에서 꺼내어 던졌다.
금색 자수가 들어간 고급스러운 주머니.
남궁거악은 주머니를 받자마자 곧바로 열어보았다.
화악!
진하게 풍겨오는 혈향(血香).
비위가 상할 만큼 역한 혈향이었는데, 남궁거악은 오히려 짙게 미소 지었다.
주머니 안에 들어있는 작은 단약들.
이것이 바로 자신이 원하던 것이었다.
“급하게 만든 것이라 안정성은 떨어져도, 급하게 쓰기에는 최고일거다.”
“감사합니다.”
“크크크. 그래 한번 잘 해봐라. 나는 조금 더 여기 머물러야겠다. 귀찮은 자가 그곳에 와 있다는 소식이 들려와서 말이야.”
“마음대로 하십시오.”
지금 남궁거악에게 청년의 목소리 따위는 들리지도 않았다.
눈은 오직 단약들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런 남궁거악을 뒤에서 즐겁다는 듯이 바라보는 청년.
청년의 입가에는 비릿한 미소가 걸려 있었고, 눈에는 진한 혈광이 스쳐 지나갔다.
* * *
검마가 머무르기 시작한 휘운객잔.
물론 크게 다른 점은 하나도 없었다.
검마는 별채에서 딱히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나온다 하더라도 홀로 잠시 나갔다가 돌아올 뿐 다른 기색은 없었다.
그런데 그런 휘운객잔이 떠들썩해지기 시작했다.
“곽휘운! 내가 왔다.”
“어서오게.”
“오랜만에 보는 건데 인사가 그게 다냐?”
“그럼 뭐 어떤 인사를 바라나?”
휘운객잔에 남궁태산 그가 다시 돌아왔다.
강서천가에 머무르던 남궁태산은 그쪽 상황이 정리가 끝나고, 남궁세가로 돌아갔다가 지금 이곳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었다.
“됐다. 그보다 여기 거악이 그놈이 왔다며.”
“그러네.”
“집에서 그놈을 지켜보라고 해서 내가 이렇게 돌아온 거거든.”
남궁태산에게 남궁거악을 지켜보라고 지시했다는 것은, 남궁세가도 남궁거악에게서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챘다는 것일 터였다.
“뭐 이상한 낌새 없었냐?”
“있었네. 아무래도 그가…….”
곽휘운이 남궁태산에게 천살교에 대해 말을 하려던 그때.
“흠. 남궁의 아이도 꽤나 괜찮구나?”
별채에 머무르고 있던 검마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