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130화>
태호채의 산적들은 지금 멧돼지 사냥을 나왔다가, 우연히 노인을 발견하고는 이렇게 다가온 참이었다.
“길을 좀 묻자꾸나. 이 길로 쭉 가면 항주가 맞느냐?”
“길도 모르고 여길 지나가? 크헤헤. 반쯤 미친 영감이었군 그래.”
“형님. 이러다 멧돼지 놓치겠습니다. 빨리 쓱싹해서 털어먹고 가죠.”
“그래. 자. 가진 걸 다 내놔라. 그럼 목숨은 살려 주마.”
태호채의 산적들은 노인이 허리춤에 찬 검을 보고 무림인인가 싶었지만, 너무나 낡은 상태인 것을 보고 속으로 안도했다.
뛰어난 고수일수록 무기의 관리를 철저히 한다.
노인의 낡은 검을 보건데, 필시 고수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수적으로 완전히 우위에 있는 자신들이 유리했다.
“항주로 가는 길이 맞느냐고 물었다.”
“크흐흐흐흐. 길이 맞기는 맞지.”
“그래? 잘되었구나.”
“그냥 가려고? 가진 건 다 내놓고 가라. 크크크.”
스윽.
허리춤에 있는 박도를 꺼내어 드는 산적들.
그들은 살기등등한 기세를 피워 올리며, 노인을 압박해 들어갔다.
이정도만 해도 웬만한 자들은 겁먹고 가진 것을 몽땅 내놓는다.
하지만 노인은 아무런 동요도 없이, 그저 주변의 산적들을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말로는 못 알아먹나 보군.”
산적은 아무래도 노인에게 위협을 한번 줄 필요는 있다고 생각했다.
휙.
빠르게 노인을 향해 날아가는 산적의 발.
나름 힘이 가득 실린 발차기였다.
뚝.
그런데 그 발차기가 노인에게 닿기도 전에 갑자기 허공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모든 산적들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마치 시간이 멈추어 버린 듯한 모습.
그 가운데 노인만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도 길을 알려주었으니, 목숨은 살려 두마.”
스슥.
말과 함께 사라지는 노인의 신형.
그리고 노인이 사라지고 한참 후에나 산적들이 그대로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모두 눈을 뒤집고 입에 거품을 물고 기절해 있는 모습.
노인은 그저 기운만으로 일순간에 산적들을 모두 기절시켜 버린 것이다.
휘이이이잉.
그렇게 기절한 산적들 위로 부는 바람.
과연 산적들을 이렇게 만든 노인의 정체는 무엇일까?
* * *
월영루의 최상층.
남궁거악은 부하의 보고를 들으며, 인상을 한껏 썼다.
“그래서 가서 일방적으로 얻어맞고 왔다는 거냐?”
“그, 그것이…….”
“변명은 집어 치워라!”
퍽!
“크헉!”
냅다 발로 부하를 차버리는 남궁거악.
갑작스러운 발길질에 부하는 미처 대비하지도 못한 채로 그대로 배를 맞았다.
고통스러운 신음과 함께 배를 부여잡고 바닥을 구르는 부하.
남궁거악은 그런 부하를 마치 벌레를 보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남궁세가의 망신을 시키다니. 쓸모없는 놈!”
“커, 컥. 죄, 죄송합니다.”
자신들이 어찌할 수 없는 고수인 남주학에게 당한 것이지만, 여기서 변명을 더 해 봐야 매질만 늘어난 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곧 이곳으로 이 장로님이 오신다. 이 장로님께서 현소월 그년을 원하셨으니, 당장 현소월 을 데리고 와라.”
“하지만 저희만으로는…….”
부하는 결코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어떻게 할 수 가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름 남궁세가에서 실력을 갈고 닦아 왔지만, 남주학 한 명에게 모두 검이 잘렸다.
지금 자신들이 또 가봐야 또 다른 굴욕을 받을 뿐일 터였다.
“내가 최근에 데려온 놈들을 데리고 가라.”
“예?”
“그놈들이라면 충분할거다.”
“하지만…….”
퍼억!
“커억!”
“감히 사족을 달 생각 말고, 명령을 따라라.”
“쿨럭. 예, 예…….”
다시 한 번 더 발길질을 당한 부하는, 무언가를 말하려던 것을 집어삼켰다.
이번에 남궁거악이 데리고 온 자들.
그들은 부하가 보기에 너무나 위험해 보이는 자들이었다.
하나같이 강렬한 투기를 감추지 않고 풍기고 있었다.
남궁거악의 외가에서 보낸 자들이라고 하였는데, 결코 정도의 길을 걷는 무인들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래서 괜히 그들을 데리고 갔다가, 남궁세가에 대해 좋지 않은 이야기가 나올까 싶어 이야기를 하려했는데, 강행하라고 하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
드르륵. 탁.
빠르게 방을 빠져나가는 부하.
남궁거악은 부하가 완전히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는 조용히 방안에 있는 침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꺼내는 화려한 문양의 상자 하나.
누가 보아도 그 안에 든 것이 범상치 않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화려한 상자.
남궁거악은 그 상자를 조심스럽게 열었다.
달칵. 끼이이익.
화아아아아악.
상자를 열자 안에서 엄청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안에 보이는 새빨간 단약 하나.
단약이라고 하기에는 꽤나 크기가 커다란 것이었다.
어른의 주먹보다 조금 더 큰 단약.
남궁거악은 그 단약을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이제 마지막 단약이군. 이제 이것만 먹으면, 나는 남궁세가의 주인이 될 것이다.”
‘그’에게 받은 이 ‘천혈단(天血丹).’이라는 이름의 이 단약.
남궁거악은 ‘그’와 오래전부터 거래를 하였다.
그리고 최근 ‘그’에게 받은 이 천혈단.
그는 자신이 지금까지 만들어낸 단약 중 가장 좋은 것이라 하였다.
이전 단약들의 수 배는 넘는 효력을 보장한다며, 이것만 먹으면 남궁태산을 넘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라고 했다.
‘그’에게 총 4개의 천혈단을 받았는데, 앞서 이미 3개는 흡수한 남궁거악이었다.
남궁거악은 1개를 섭취할 때마다 몸 안을 휘몰아치는 막대한 양의 내공의 양을 느끼고 깜짝 놀랐었다.
그리고 ‘그’가 말한 대로, 남궁태산을 넘는 것이 가능할 것이란 걸 몸소 느꼈다.
스르르르륵.
남궁거악이 단약을 입가로 가져가자 단약이 물처럼 녹아 버리며, 그대로 남궁거악의 입 안으로 흘러들어갔다.
화아아아아아아악.
모든 단약이 입 안으로 들어간 뒤, 곧바로 운기행공을 하는 남궁거악.
그의 몸에서 핏빛 기운이 흘러나오며, 일순간 주변을 가득 매우기 시작했다.
자욱이 주변을 잠식하는 핏빛 기운.
사아아아악.
방안에 있던 화병에 담겨있던 꽃이 핏빛 기운에 닿자마자 완전히 시들어 죽어 버렸다.
후우우우우우웁.
방안을 안개처럼 자욱이 잠식하던 핏빛 기운이 일순간에 남궁거악의 몸으로 다시 빨려 들어갔다.
번쩍!
“크하하하하하!!! 그래 이게 그 힘인가!”
엄청난 안광과 함께 눈을 뜨는 남궁거악.
그는 월영루가 떨릴 정도로 크게 웃으며,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온몸에 넘쳐흐르는 엄청난 힘.
지금이라면 모든 것을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남궁태산이 아니라, 천무제가와도 이길 수 있을지 모르겠어. 하하하.”
남궁거악은 자신이 이미 남궁태산쯤은 넘어섰다고 생각했다.
가득차서 이제는 넘쳐흐를 정도로 충만한 힘.
‘이번에 이 장로와 함께. ’그‘도 온다고 하였으니 그 전까지 확실히 힘을 키워 둬야겠어.’
단약을 섭취한 후, 며칠간은 운기행공을 통해 기운을 완전히 흡수할 필요가 있었다.
남궁거악은 비열한 미소를 진하게 지으며, 다시금 운기행공에 빠져 들어갔다.
남궁세가의 가주가 되어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말이다.
* * *
객잔이 문을 닫은 후의 백리세가.
백리화와 곽휘운이 가주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앞으로 백리세가를 천하제일 세가로 만들 거야.”
“네?”
백리화는 곽휘운의 너무나도 큰 목표에 일순 반문을 하였다.
천하제일 세가라니?
지금 항주에 이런저런 일들이 생기면서 많은 문파들이 사라지고, 백리세가가 항주제일 세가로 우뚝 서기는 하였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곽휘운의 힘 때문일 뿐, 실제 백리세가의 힘은 턱없이 부족했다.
고수의 보유수만 보자면, 크게 밀리지는 않을지 몰라도 절대적인 무인의 수가 부족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천하제일 세가로 만든다니?
그 거대한 세가인 남궁세가도 아직 천하제일 세가로 불리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인데 말이다.
백리화는 아무리 곽휘운이라도 힘든 일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였다.
“조금 크게 욕심이 생겼거든.”
곽휘운은 이번에 어머니인 신혜설을 만나 오해를 풀고 난 후, 더 이상 인정을 받기위해 발버둥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사로잡혔었다.
휘운객잔과 백리세가를 항주제일로 올려놓으려는 것도 다 그것 때문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열심히 노력하는 백리화의 모습과 자신을 바라보는 객잔 식구들을 보며 생각을 고쳤다.
‘내가 이렇게 나태해지면 안 돼.’
곽휘운은 자신이 약해지고 나태해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목표가 사라져 나태해진 지금, 곽휘운은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기로 하였다.
이왕이면 아주 높은 목표를 말이다.
‘천하제일.’
그래서 세운 목표가 휘운객잔과 백리세가를 천하제일로 만드는 것이었다.
솔직히 곽휘운도 이 목표를 실현할 수 있을지는 장담치 못했다.
하지만 충분히 시도해볼 만한 가치와 상황은 주어졌다고 생각했다.
‘마교의 무림 진출.’
천마신교의 무림 진출로 세상은 난세가 되었다.
거기에 수없이 곳곳에서 터지는 사건과 사고들.
이런 혼잡한 난세 속에서 언제나 기회는 꽃피우는 법이었다.
곽휘운은 이것을 기회로 잡아 볼 생각이었다.
“저는 휘운 오라버니만 믿고 따를게요.”
“하하. 나를 너무 믿지는 말고, 적당히 따라와 줘.”
곽휘운은 따뜻한 눈으로 백리화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해도 될 이야기를 하였는데, 신뢰를 보여 주는 백리화.
곽휘운은 그런 백리화가 고마웠다.
휘이이이익.
그때 객잔 쪽에 제갈중천이 설치해둔 진법에서 누군가 객잔에 나타났음을 알려왔다.
곽휘운은 소리를 듣자마자 곧바로 객잔으로 몸을 날렸다.
그렇게 빠르게 몸을 날린 곽휘운의 눈에 보이는 여섯 개의 인영.
그들이 객잔으로 막 들어가려던 그 순간.
그들 앞을 곽휘운이 딱 막아섰다.
“남궁세가의 분께서는 무슨 일로 이 야심한 시간에 저희 객잔을 찾아 오셨습니까?”
그들은 떡하니 남궁세가를 상징하는 푸른 무복을 입고 있었는데, 한 명을 제외하고, 남은 다섯은 남궁세가의 무인이라기에는 지나친 살기를 풀풀 풍기고 있었다.
“현소월을 찾으러 왔다.”
“현 총관님은 이미 저희 객잔의 식구라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우리 공자님께서 원하신다. 크게 다치고 싶지 않다면, 어서 내 놓아라.”
곽휘운은 그러면 그렇지 라고 생각했다.
아침에 있던 정도로 저들이 곱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것쯤은 알고 있었다.
“싫다면 힘을 쓰시겠다는 겁니까?”
“그렇다.”
“그럼 이건 남궁세가가, 아니, 남궁거악이 저희 객잔을 상대로 선전포고하는 것이라 판단해도 되겠지요?”
알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곽휘운.
날이 어두웠기에 그 미소를 본 이는 없었다.
“일개 객잔의 점주 따위가 알량한 실력 좀 가졌다고 오만방자하군.”
그때 약간 뒤에 서 있던 살기가 강한 다섯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