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휘운객잔-123화 (123/203)

<휘운객잔 123화>

백리화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앞으로 나섰다.

이것은 생과 사가 오가는 싸움.

당연히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오. 그래. 기왕이면 예쁜 아가씨가 낫지.”

“백리화라고 합니다.”

“백리화라……. 좋아. 크큭. 나는 청랑(靑狼)이라고 한다.”

청랑은 비릿한 웃음으로 백리화를 바라보았다.

그에게 지금 앞서 죽은 다른 오패랑은 관심조차 없었다.

아니, 오히려 잘 죽었다는 생각까지 하였다.

청랑이 보기에 그들은 쓸모없는 자들이었으니 말이다.

‘창으로 여인을 꿰뚫어 죽였을 때가 가장 즐겁지.’

청랑은 사람을 죽인 뒤 자신의 창으로 꿰뚫어 들어 올리는 것을 즐겼다.

특히 젊은 여인을 죽일 때 가장 큰 희열을 느끼는 청랑이었다.

그는 확실히 정상적이 사고방식을 가진 자는 아니었다.

“자자. 시작해 보자고.”

스윽.

기다란 창을 앞으로 겨누는 청랑.

그의 몸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사아아아아아악.

압도적인 기운은 아니지만, 온몸에 소름이 돋게 만드는 기운.

백리화는 자연스럽게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이 느껴졌다.

꾸욱.

백리화는 지지 않기 위해 입을 꾹 다물며, 내공을 끌어올렸다.

스릉.

그리고 부드럽게 뽑혀 나오는 백리화의 검.

그리고 그와 함께 주위에 백화강기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사라락.

아름답게 피어나는 백화강기.

은은한 꽃향기가 청랑으로 인해 만들어진 기운을 사라지게끔 만들어 주었다.

“호오? 생각보다 대단한데?”

“가겠습니다.”

“얼마든지 내 품으로 오라고. 하하.”

가볍게 말하는 청랑인 듯 싶었지만, 조금의 방심도 하지 않고 있었다.

백리화의 백화강기에 담긴 힘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정말 즉일 맛이 끝내주겠어.’

아름다운 여인에 뛰어난 실력자.

청랑은 벌써부터 백리화를 꿰뚫어 죽일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타앗.

백리화가 먼저 선공을 취했다.

가볍고 빠르게 달려드는 백리화.

백화강기들도 따라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캉! 캉! 캉! 캉!

청랑은 창을 휘둘러 백화강기를 없애 나가기 시작했다.

쾌속무비한 청랑의 창.

순식간에 백화강기가 깨져 나가기 시작했다.

파사사사삭. 파사사삭. 파삭.

아직 남아있던 백화강기들도 갑자기 한순간에 모두 깨져 나갔다.

꽃잎이 되어 흩날리는 백화강기.

백리화는 이것을 위해 일부러 백화강기를 깬 것이었다.

“정말 위험한 아가씨군 그래. 크큭.”

백리화가 만들어낸 꽃잎들을 보고 청랑은 솔직히 감탄을 하였다.

수없이 많이 흩날리는 꽃잎.

도대체 어느 것이 진짜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훙. 후웅. 후우웅. 후우우우우우웅.

청랑은 창을 고쳐 잡더니 빠르게 돌리기 시작했다.

빠르게 달리는 마차의 바퀴처럼 돌아가는 청랑의 창.

‘사혼회륜창(邪魂回輪槍).’

청랑이 익힌 무공이었다.

창을 돌리는 것에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는 무공.

끼이이이이이.

사악. 사아아악. 사아악.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는 청랑의 창에서 소름끼치는 기운이 엄청나게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기운들은 괴상한 소리를 내더니, 그대로 백리화의 꽃잎에 부딪치며, 꽃잎들을 없애버리기 시작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모든 것을 없애버렸으니 말이다.

“자. 아가씨의 무공은 파훼되었다고.”

백리화를 바라보며, 다시금 비릿하게 웃는 청랑.

청랑은 자신이 완전히 승기를 잡았다는 것을 느꼈다.

사혼회륜창에서 뿜어져 나오는 ‘사혼기(邪魂氣)’는 다른 이의 내공을 무력화 시키는 힘이 있었다.

백리화가 만들어낸 꽃잎들도 결국 내공으로 만들어진 것.

당연히 사혼기에 의해 무력화 될 수밖에 없었다.

“더 보여 줄 게 없으면……. 끝을 내자고.”

팟.

청랑이 먼저 백리화를 향해 달려들었다.

빠르게 다가서는 청랑.

후우우우웅.

청랑의 창이 마치 모든 것을 갈아 버리겠다는 듯 쇄도해왔다.

백리화는 백화강기가 허망하게 사라졌음에도 크게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청랑의 공격에 대비했다.

카가가가가강!

촤아아아아악.

백리화의 검과 청랑의 창이 순간 맞부딪쳤고, 엄청난 소리가 연달아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뒤로 쭉 밀려나는 백리화.

확실히 힘의 차이가 보였다.

“오? 그래도 아직 멀쩡하네? 그 칼 좋은 건가봐?”

보통이라면 방금 그 공격에 검이 너덜너덜해지거나, 날아갔을 터였다.

그런데 검은 흠집 하나 없이 멀쩡했다.

다만, 다른 것이 멀쩡하지 못했다.

뚝. 뚝. 뚝. 뚝.

검을 잡은 백리화의 손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방금 전 청랑과의 부딪치면서 손아귀가 찢어진 것이다.

‘아얏.’

검을 쥔 손에서 따끔한 고통이 밀려오고, 손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단 한 번의 부딪침으로 얻은 상처.

‘절대로 부딪치면 안 돼.’

백리화는 청랑의 공격에 정면으로 부딪치면 안 된다는 것을 몸으로 깨달았다.

꾸우우욱.

백리화는 고통쯤은 참아 내고, 검을 더 강하게 쥐었다.

여기서 질 수는 없었다.

“후우!”

강하게 숨을 한 번 내뱉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은 백리화.

그녀의 두 눈은 꼭 이기겠다는 의지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눈 마음에 들어. 과연 어떻게 일그러질지 너무 기대되거든.”

팟.

다시 달려드는 청랑.

백리화는 일단 재빠르게 몸을 움직이며, 청랑의 공격을 회피했다.

청랑의 창에서 계속해서 뿜어져 나오는 사혼기 때문에 섣불리 백화강기를 펼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피하기만 할 수도 없는 상황.

“도망치는 건 아주 재빠르구나.”

그때 백리화의 신형이 멈춰섰다.

그리고 그녀의 검에서 터져 나오는 강렬한 백화강기.

- 백화환영검. 오의. 만개.

그 위력이 범상치 않아 보이는 꽃들이 활짝 피어났다.

“이런 건 나에게 통하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건 아닐 텐데?”

청랑은 백리화가 다시금 백화강기를 소환하자, 어이없다는 투로 말했다.

자신의 사혼기 앞에서는 이런 것은 통하지 않는다.

분명 그것을 조금 전에 깨달았을 터인데, 이렇게 또 다시 펼치는 것을 보면, 이것밖에 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정말 끝을 내야겠군.’

청랑은 이제는 이 싸움을 정말 끝을 낼 생각이었다.

후우우우우우웅.

- 사혼회륜창. 오의. 악룡탐천(惡龍貪天).

강렬하게 돌던 청랑의 창에서 검은 기운이 휘돌기 시작하더니, 그대로 백리화를 향해 쏘아져 날아갔다.

검은 기운은 사혼기가 극성에 다다랐을 때 나타나는 모습.

콰가가가가가각.

아까와는 다르게 백리화의 백화강기들은 쉽사리 사라지지는 않았다.

강렬히 저항하는 백화강기들.

하지만 청랑의 악룡탐천의 수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콰각! 쾅!!!

결국 모든 백화강기를 없애버리며 그대로 백리화에게 작렬하는 청랑의 공격.

슈우우욱.

먼지가 피어오르며, 시야가 완전히 가려졌다.

청랑은 짙게 웃으며 백리화가 서있던 곳으로 몸을 천천히 움직였다.

분명 방금의 일격으로 싸움은 끝이 났을 터.

이제는 창끝으로 백리화를 꿰뚫는 것만 남았을 뿐일 터였다.

“음?”

먼지가 완전히 가라앉았을 때.

청랑은 자신의 두 눈을 의심했다.

분명 백리화가 이곳에 쓰러져 있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푸우욱.

청랑의 심장을 뚫고 들어오는 검 하나.

청랑은 지금 이것이 무슨 상황인지 일순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분명 백리화가 자신의 악룡탐천에 공격당하는 것을 보았다.

손끝에 분명 공격에 성공했다는 감각이 전해져왔었다.

“환영(幻影)이었습니다.”

* * *

백리화는 백화환영검의 극의를 깨닫기 위해 정말 밤낮으로 고민했다.

주연희와 끝까지 승부를 내지는 않았지만, 분명 끝까지 갔으면 자신이 졌을 것이란 것쯤은 알고 있었다.

‘아직 많이 부족해.’

분명 주변 사람들은 지금 자신의 성취를 보고 대단하다고 해주었다.

하지만 백리화는 여기서 멈출 수 없었다.

백리세가가 지금 예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무림에 많은 명성을 얻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곽휘운 덕분이었다.

‘나 혼자서도 이 세가를 지탱할 수 있어야 해.’

백리화는 언제까지 곽휘운에게 의존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기에 자신이 더욱더 강해져야만 했다.

‘그리고 곽 객주님의 짐짝이 될 수는 없지.’

백리화는 곽휘운에게 자신이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자신은 계속해서 짐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줄 때였다.

“하아압!”

백리화는 계속해서 백화환영검을 펼치고 또 펼쳤다.

백화환영검은 분명 환(幻)에 가장 중점을 둔 무공이었다.

백화강기는 환에 중점을 두었다기에는 애매했다.

특히나 오의인 만개는 환의 묘미는 많이 사라진 초식이었다.

‘가장 완벽한 환영.’

백리화는 이것에 대한 해답으로 남궁태산의 ‘제왕이형’을 떠올렸다.

완전히 다른 분신을 만들어 내는 초식.

백리화는 이것처럼 분신을 만들어 내는 것을 생각했다.

‘상대의 모든 것을 속일 수 있어야 해.’

시각, 촉각, 후각, 미각, 청각.

거기에 더해 육감까지.

백리화는 이 모든 것을 담은 환영을 만들어 내기 위해 쉬지않고 노력했다.

짧은 시간, 조금도 쉴 시간은 없었다.

사르르르르륵.

그리고 백리화는 끝내 이 환영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 백화환영검. 극의. 경화환영(鏡化換影).

* * *

“쿨럭!”

청랑을 쓰러트린 백리화가 크게 피를 토하였다.

조금 전 청랑을 쓰러트린 초식인 경화환영은 아직 백리화도 완벽히 다룰 수 있는 초식이 아니었다.

억지로 내공을 끌어다 무공을 쓰니 당연히 탈이 날 수밖에 없었다.

휘청.

백리화의 몸이 크게 휘청였다.

“어이쿠. 가주님. 몸 생각도 좀 하게.”

그때 앞으로 나서던 독고영이 백리화를 가볍게 안아서 부축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자. 들어가서 쉬고 계시게.”

곽휘운의 옆으로 백리화를 데리고 간 독고영은 다시금 몸을 돌려 앞으로 걸어갔다.

독고영은 자신이 나설 차례라는 것을 잘 알았다.

철마는 어차피 곽휘운이 아니면 상대할 수 없는 자라는 것을 알았으니 말이다.

“독고 호위님.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걱정 고맙네.”

곽휘운은 앞서 걸어가는 독고영에게 조심하라 일러 주었다.

마지막 남은 오패랑에게 느껴지는 기운은 정말로 범상치 않았으니 말이다.

물론 독고영도 그것은 알고 있을 터였다.

“자. 나오시게. 이제 당신만 남았으니.”

앞으로 나선 독고영은 마지막 남은 오패랑을 향해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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