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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운객잔-122화 (122/203)

<휘운객잔 122화>

철마는 아직까지는 별다른 반응 없이 싸움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에게 그를 따르는 오패랑들은 그저 편리한 소모품에 불과했다.

이미 자신에게 패한 자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철마였다.

그리고 남은 오패랑 중 셋이 모두 져서 죽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흥을 고조시키는 도구들 일 뿐.’

철마는 곽휘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지금 철마가 이렇게 싸움을 하며 흥을 올리는 것은 오로지 곽휘운 때문이었다.

천마신교에서도 보기 힘들 정도의 강자.

솔직히 철마도 지금 곽휘운의 실력을 정확히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

저릿. 저릿.

그 대신 온 몸의 감각이 곽휘운의 실력을 말해주고 있었다.

전신의 피부가 저려 오는 이 감각.

이건 분명 강적을 만났을 때만 오는 감각이었다.

‘너무나도 기대가 된다.’

강자를 자신의 손으로 짓밟았을 때의 그 쾌감.

철마는 그 쾌감을 절대로 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렇듯 강자를 찾아서 무림을 헤매는 것이었고 말이다.

“다음 나가라.”

“예!”

철마의 말에 우렁차게 대답하며, 죽립을 벗어던지며 앞으로 나서는 오패랑 중 하나.

두꺼운 목, 두꺼운 팔, 두꺼운 몸.

마치 온 몸에 갑옷을 두른 듯한 모습의 사내.

그리 큰 키는 아니었지만, 엄청나게 단단해 보이는 몸 덕분에 굉장히 몸집이 커 보였다.

“내가 간다.”

곽휘운 일행 쪽에서는 장도웅이 앞으로 나섰다.

큰 키의 장도웅이 나서자 싸우는 곳이 벌써 꽉 들어차는 듯 했다.

“하하하! 내가 딱 원하던 상대가 나왔군.”

장도웅이 나가자 호쾌하게 웃는 사내.

그는 지금 이 싸움을 정말로 즐기고 있는 듯, 얼굴에 즐거움이 가득했다.

“나는 황랑(黃狼)이라 하네. 자네 이름은 뭔가?”

“장도웅.”

“장도웅이라. 기억하겠네.”

황랑은 싸움 전에 언제나 상대의 이름을 기억했다.

그것이 그가 싸움에 임하기 전 하는 의식이었고, 상대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그가 지금까지 패배해 본 것은 철마가 유일.

자신이 이긴 이들의 이름은 전부 황랑의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황랑은 오늘도 장도웅이라는 이름을 자신의 머릿속에 남길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촤라라라락.

황랑이 꺼내든 무기는 쇠사슬.

보통의 쇠사슬보다 더 두꺼운 쇠사슬로 일견 보기에도 무기가 범상치 않아보였다.

‘쾌류단해랑(快流斷海鋃).’

황랑이 익힌 무공이었다.

기형 병기라 볼 수 있는 쇠사슬로 빠르고 파괴적인 힘을 보여 주는 무공.

스으윽.

장도웅도 곽휘운에게 받은 거도를 꺼내어 들었다.

구멍이 뚫려 있는 거도.

확실히 특이한 형태이기는 하였다.

“호오! 재미있는 형태의 도군 그래.”

“간다.”

장도웅은 황랑이 뭐라 떠들던 크게 관심 없었다.

그는 그저 지금 눈앞의 상대를 이길 생각밖에는 없었다.

팡!

강렬한 진각과 함께 황랑에게 쇄도하는 장도웅.

그 기세가 범상치 않았다.

마치 거대한 화탄이 날아오는 듯한 느낌이 드는 쇄도.

촤르르르륵.

카가가강!

황랑이 재빨리 쇠사슬을 교차해 장도웅의 거도를 막았다.

거도와 쇠사슬이 만나 엄청난 불꽃과 함께 굉음이 터져 나왔다.

장도웅의 힘이 담긴 일격을 꽤나 수월하게 막아 내는 황랑.

이 일합에서 황랑의 힘을 볼 수 있었다.

“이번에는 내가 가지.”

촤아아아악.

엄청난 속도로 장도웅을 향해 뻗어 나오는 쇠사슬.

동시에 양쪽에서 포위하듯 장도웅을 향해 날아오는 쇠사슬은 일견 보기에는 위력이 범상치 않아보였다.

카가가가강!

쾅!

장도웅은 하나의 쇠사슬은 쳐내고, 다른 한쪽의 쇠사슬은 가볍게 움직여 피했다.

큰 키에 어울리지 않는 신속한 움직임.

황랑도 이에 지지 않겠다는 듯 재빠르게 신형을 움직이며, 계속해서 장도웅을 압박해 나갔다.

쾅! 쾅! 쾅! 쾅! 쾅!

장도웅을 향해 쉼 없이 공격해 오는 쇠사슬.

빠르고 강맹한데다가 유기적으로 움직이기까지 한다.

황랑의 숙련도가 상당함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타앗.

물론 장도웅도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쇠사슬이 다가오는 순간 오히려 황랑의 품안으로 들어갔다.

콰가각! 쾅!

황랑은 다시금 쇠사슬을 회수해서 장도웅의 거도를 막았다.

생각 이상으로 빠르게 회수되는 쇠사슬.

하나로는 장도웅의 거도를 막아 내고, 남은 하나는 그대로 장도의의 뒤를 노렸다.

휘릭.

서걱.

순식간에 몸을 돌린 장도웅이 그대로 쇠사슬을 잘라 내었다.

지금까지 잘리지 않던 쇠사슬이 너무나도 쉽게 잘려 나갔다.

“오! 내 사슬을 잘라 내다니. 대단하군.”

황랑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자신의 내공을 가득 담긴데다가, 보통의 철보다 훨씬 단단한 것으로 만들어진 쇠사슬이다.

그런데 이것을 이렇게 쉽게 잘라 낼 줄은 몰랐다.

키이이이이잉.

가늘게 떨며 진동을 하고 있는 장도웅의 거도.

장도웅의 거도가 초진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전과는 다르게 초진동 상태에서도 소리가 울린다는 것이 달랐지만, 위력은 그대로였다.

“제대로 다시 가보자고.”

쿠우우우우웅.

묵직한 황랑의 체격만큼 묵직한 기운이 사방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촤르르르르륵. 착. 착.

쇠사슬이 황랑의 양 팔에 감기기 시작했다.

마치 갑주를 입은 듯한 모습으로 변한 황랑.

쾌류단해랑의 진짜 모습.

- 쾌류단해랑. 오의. 철신갑랑(鐵身鉀鋃).

쾅.

지축을 뒤흔드는 진각.

튕겨져 나가듯 장도웅에게 쇄도하는 황랑의 모습은 그 자체로 전율스러웠다.

엄청난 힘이 담긴 쇄도였다.

키이이이이잉.

콰가가가각.

장도웅이 쇄도하는 황랑에 힘으로 맞섰다.

쉽게 잘렸던 방금과는 달리 장도웅의 도가 초진동을 하여도 잘리지 않는 쇠사슬.

크극. 크그그극.

조금씩 장도웅이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힘에서 밀리는 장도웅.

쾅! 쾅! 쾅!

연신 장도웅을 두들기는 황랑.

장도웅이 거도로 공격을 막을 때마다 주변을 울리는 굉음이 터져 나왔다.

쾅!!

강한 일격을 주고받은 뒤 거리를 벌리는 장도웅.

잠깐의 재정비를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촤아아아악.

거리가 벌어지자 황랑의 쇠사슬이 엄청난 속도로 장도웅을 향해 날아왔다.

근거리도 원거리도 모두 가능한 황랑의 무공.

장도웅은 조금도 쉬지 못하고, 계속해서 공격을 막아 낼 뿐이었다.

키이이이잉.

계속해서 울려대는 장도웅의 거도.

카가가가가각.

장도웅을 공격해 오던 쇠사슬이 갑자기 공중에서 무언가에 막힌 듯 소리를 내었다.

- 파천거령도. 오의. 초진공.

주변을 장악한 장도웅의 초진동이 황랑의 쇠사슬을 막아 내고 있었다.

“그건 또 무슨 수인가? 정말 재미있군.”

황랑은 자신의 쇠사슬이 중간에서 계속해서 막히자 오히려 이채를 띠었다.

다시금 쇠사슬을 몸에 감은 황랑은 다시 장도웅에게 쇄도해 들어갔다.

멀리서 공격하는 것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으니 말이다.

카가가가각. 카가가각!

근처에만 다가가도 쇠사슬이 갈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황랑은 오히려 도전 의식이 불타올랐다.

‘깨부수겠다.’

더욱더 힘을 끌어 모으는 황랑.

콰가가가가각! 쾅!!

결국 장도웅의 초진공이 깨져 나갔다.

거도로 황랑의 주먹을 막을 수밖에 없던 장도웅.

“하하. 뚫어내었네. 더 보여 줄 것이 없다면 내 승리겠군.”

황랑은 자신의 승리를 예감했다.

이미 상대의 힘을 모두 파훼했으니 말이다.

“끝났다.”

“하하. 패배를 인정…… 커억!”

갑자기 울컥 피를 토하는 황랑.

그 모습을 장도웅은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황랑은 눈과 귀, 그리고 코에서도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키이이이이잉.

그리고 황랑의 두 눈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장도웅의 거도를 바라보았다.

아까부터 울려대던 괴상한 소리.

“그렇군……. 음공(音功)이었군 그래.”

“맞다.”

지금 황랑이 피를 흘리는 이유.

그것은 바로 장도웅의 거도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의해서였다.

* * *

장도웅은 곽휘운이 전해준 구멍이 뚫린 거도를 받고, 도대체 어떤 효용이 있을까 고민하였다.

곽휘운이라면 분명 아무런 이유 없이 이렇게 구멍을 뚫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직접 움직여 보면 알겠지.’

장도웅은 거도를 들고 곧바로 파천거령도를 펼쳐보았다.

그저 파천거령도를 펼쳤을 때는 별다른 다른 점이 없었다.

그런데 초진동을 가미한 순간 장도웅은 색다른 점을 느꼈다.

키이이이이잉.

거도가 떨려오면서 미묘한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거도에 뚫린 구멍에서부터 퍼지는 날카로운 소리.

장도웅은 이 소리가 보통의 소리들과는 다른 것이란 걸 대번에 알아차렸다.

몸 안을 울리며, 내공까지 울리는 소리.

‘이거군.’

곽휘운이 말했던 ‘새로운 힘’이 이것임을 깨달았다.

음공.

물론 악기를 사용한 음공과는 다를 수 있었지만, 그 원리 자체는 똑같았다.

키이이이잉.

장도웅은 이 소리에 내공을 담는 것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그저 소리만으로도 속이 울렁거리는 위력인데, 이것에 내공을 담는다면 상상하지 못할 만큼의 위력을 보일 수 있을 것이란 걸 느꼈다.

* * *

* * *

“내가…… 졌네.”

털썩.

자리에 쓰러지는 황랑.

물론 숨은 붙어 있었지만, 황랑은 더 이상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이미 온 몸의 혈이 모두 꼬여 버리고 내장도 크게 상한 상황이었다.

저벅. 저벅.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장도웅.

지금까지 싸운 일행 중 가장 멀쩡한 모습이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덕분이다.”

곽휘운의 말에 덕분이라 말하는 장도웅.

장도웅은 이 모든 것이 곽휘운 덕분이란 것을 알았다.

자신 혼자라면 절대 도달할 수 없는 경지였다.

“그저 힘만이 아닌 묵도님은 지금보다 더욱 더 강해지실 겁니다.”

지금 초진동에 음공까지 섭렵한 장도웅은 그야말로 전천후의 무인이 되었다.

“쓸모없는 머저리는 그냥 죽어라.”

푹.

“컥…….”

그때 아직까지 숨이 붙어 있던 황랑을 누군가 찌르며 앞으로 나섰다.

기다란 창을 든 오패랑 중 한 명.

그는 같은 오패랑인 황랑을 쓸모없는 머저리라 부르며, 오히려 숨통을 끊어 버렸다.

“자. 내 상대는 누구냐? 기왕이면 저기 남아 있는 아가씨면 좋겠는데 말이야.”

백리화를 가리키며 말하는 창을 든 오패랑.

그의 얼굴에는 비릿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백리 가주님. 괜찮으시겠습니까?”

“물론이죠. 제가 나갈게요.”

상대의 도발에는 걸려 주지 않는 것이 상책이지만, 곽휘운은 이번에는 걸려 주기로 하였다.

이건 백리화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였지만, 가장 큰 문제는 지금 마지막으로 남은 오패랑의 힘이 생각 이상이라는 것이었다.

‘저자는 조금 위험하다.’

백리화가 이미 위하윤, 장도웅과 비슷한 실력까지 올라왔지만, 저 뒤에 마지막 남은 오패랑을 상대하기에는 확실히 부족했다.

그나마 지금 눈앞의 오패랑이 나았다.

‘물론 이 자도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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