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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운객잔-120화 (120/203)

<휘운객잔 120화>

철마를 따라온 다섯 명의 추종자.

그들은 모두 철마에게 과거 패배한 전력이 있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철마에게 패배하고, 철마의 힘에 반해 스스로 철마의 밑에 들어갔다.

그리고 철마의 밑에 들어가며 이름도 버렸다.

오패랑(五敗狼).

이들 다섯은 철마에게 패배하기 전에 나름 천마신교에서 서열을 가지고 있던 자들이다.

당연히 실력만큼은 확실한 이들이었다.

쿠르르르릉.

마치 천둥이 울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녹랑의 봉에서 묵빛 강기가 엄청난 기세로 뿜어져 나왔다.

콰가가가가각. 콰드드득. 쾅!

남주학의 귀혼옥을 그대로 힘으로 깨어 부수는 녹랑의 공격.

내공의 힘의 차이를 보여 주는 공격이었다.

“후우우…….”

녹랑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남주학의 귀혼옥을 힘으로 깨어 부수며 녹랑도 완전히 멀쩡할 수는 없었다.

봉을 잡은 손이 가늘게 떨릴 정도로 많은 내공이 소진 되었다.

“쿨럭.”

물론 남주학은 조금 더 큰 피해를 입었다.

강제로 무공이 깨지면서 내상을 입었고, 왈칵 피를 토했다.

“쓰읍.”

남주학은 얼른 입가에 흐른 피를 닦아내며 평정심을 유지했다.

이것은 대련이 아니다.

내상을 치료하고 있을 시간 따위는 없었다.

스륵.

남주학의 신형이 일순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직 주위에 넓게 퍼져 있는 귀무.

귀무에 녹아든 남주학을 향해 다시금 녹랑의 추사봉법이 작렬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네 무공은 소용없다.”

녹랑의 말처럼 남주학의 귀혼신공은 은밀함을 자랑하지 못하고, 녹랑에게 파훼 당하고 있었다.

“그건 두고 봐야죠.”

아직까지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으로 말하는 남주학.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지금 남주학이 얼마나 불리한 상황인지 느끼고 있었다.

오의가 깨지고, 무공 본연의 장점마저 잃은 남주학이 이길 가능성이 많지 않아보였다.

펑! 펑! 펑!

녹랑의 봉이 남주학이 있던 곳을 강하게 타격하며, 귀무까지 날려 버리고 있었다.

내공 소모가 큰 귀혼옥을 사용한데다 내상까지 입은 남주학의 내공은 얼마 남지 않았을 터.

지금 귀무를 위지하며, 녹랑의 공격을 피해 내는 것도 힘들 터였다.

“쥐새끼 같군,”

“이렇게 잘생긴 쥐새끼 보셨어요?”

아직 죽지 않은 남주학의 입심.

하지만 얼굴에는 피로감이 가득한 것이 보였다.

남주학도 녹랑도 이제 슬슬 이 싸움을 끝을 낼 때라는 것을 느꼈다.

- 귀혼신공. 오의. 귀혼옥.

- 추사봉법. 오의. 묵사추룡.

사아아아악.

쿠르르르릉.

다시 한 번 더 녹랑의 봉에서 묵빛 강기가 남주학의 귀혼옥을 향해 쏘아져 나왔다.

녹랑은 지금 이 공격이 적중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콰아아아아. 카가가가가각!

남주학의 귀혼옥을 모두 걷어 내며 쏘아져 나가는 묵사추룡.

그렇게 파훼된 귀혼옥 사이에서 남주학의 신형이 모습을 나타내었다.

공격에 집중해서인지, 움직이지도 못한 채로 가만히 서 있을 뿐인 남주학.

이대로라면 그대로 공격에 적중되어 버릴 것만 같았다.

콰과과과광!

그대로 남주학이 있던 곳에 작렬하는 녹랑의 공격.

그대로 바닥이 터져나갈 정도로 강렬한 공격.

이 상황을 지켜본 사람들은 남주학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곽휘운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푸부부부북.

갑자기 들려오는 무언가 꿰뚫리는 소리.

“커헉……?”

녹랑의 몸이 이곳저곳에서 피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녹랑의 바로 뒤에 서있는 남주학.

“쿨럭. 하. 진짜 힘들었다.”

검게 죽은피를 왈칵 뱉어내었지만, 얼굴 표정은 한결 밝아져 있었다.

“어떻게…….”

녹랑은 분명 자신의 공격이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남주학의 신형이 묵사추룡에 의해 갈가리 찢기는 것을 보았으니 말이다.

“이게 귀혼신공이라구요.”

* * *

이번 싸움이 있기 전.

남주학은 지금 자신의 무공이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인지 묻기 위해 곽휘운을 찾았다.

“객주님. 귀혼신공을 제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걸까요?”

“분명 위력만 본다면 네가 이해하는 길이 맞다.”

“다른 것도 본 다면요?”

“글쎄다. 내가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니다만……. 귀혼신공은 본래 은밀함과 신묘함이 장점인 무공이 아니더냐?”

“아……!”

곽휘운의 말에 남주학은 별안간 큰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너무 위력을 올리는 것에만 치중 했구나!’

똑같은 무공을 배운다고 해도 사람마다 성취가 다르고, 무공의 모습이 다르다.

하지만 그 무공이 가진 본래의 성질까지는 변하지 않는다.

귀혼신공의 본질은 신묘함과 은밀함에 있다.

하지만 지금 남주학은 오로지 무공의 위력을 증가시키기 위해서 그 둘을 신경쓰지 못하고 있었다.

귀혼신공의 오의인 귀혼옥.

남주학은 이 귀혼옥이 위력으로 상대를 격살시키는 초식이 아님을 깨달았다.

‘귀혼옥은 상대를 교란시키는 초식이다.’

매섭게 휘돌며 상대를 압박하는 귀혼옥은 상대를 격살시키기 위한 초식이 아니었다.

상대를 초조하게 만들어 시선과 감을 교란시키며, 주위를 다른 곳으로 향하게 하는 초식이었다.

그리고 그 귀혼옥에 교란된 상대를 귀혼신공의 장점인 은밀함으로 격살하는 것이 바로 귀혼옥의 진짜 모습이었다.

“자. 시험해 보자꾸나.”

“네!”

곽휘운은 남주학이 깨달은 것이 있다는 것을 느꼈고, 곧바로 검을 들고 대련을 준비했다.

침착하게 빛나는 남주학의 두 눈.

곽휘운은 이 모습에 미소 지었다.

“갈게요!”

“그래.”

남주학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변에 깔리는 귀무.

- 귀혼신공. 오의. 귀혼옥.

사아아아악.

그리고 곧바로 귀혼옥의 초식이 발현되었다.

곽휘운의 주변을 감싸며 날카롭게 휘도는 귀무.

사방에서 조여 오는 귀혼옥은 확실히 위력적으로 보였다.

스윽.

곽휘운도 검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만히 귀혼옥에 당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서거걱. 서걱. 서걱.

휘운은 불러내지 않고, 오로지 순수하게 검술로만 귀혼옥을 베어 나가는 곽휘운.

그런데.

캉!!!

갑자기 검과 검이 부딪치는 강렬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단하구나.”

“쉽게 막으셨으면서…….”

“아니다. 정말 지근거리까지 다가올 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헤헤.”

곽휘운이 귀혼옥을 베어 내는 동안 아주 은밀한 움직임으로 곽휘운의 뒤를 잡은 남주학.

귀혼옥 내에서는 남주학의 은밀함이 더욱 더 올라갔다.

주변을 감싸는 귀혼옥의 기운이 남주학의 기운을 가려 주었으니 말이다.

남주학이 지근거리에 다가올 때까지 곽휘운도 제대로 느끼지 못할 정도로 은밀했다.

“조금 더 상대의 힘을 빼놓고 쓴다면, 정말 무서운 공격이 되겠다.”

* * *

녹랑의 패배.

남주학은 녹랑을 쓰러트리고 일행들 곁으로 돌아왔는데, 곁에 도착하자마자 풀썩 자리에 쓰러졌다.

“흐아아아. 죽겠어요.”

“잘했다.”

남주학은 지금 정말로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다.

내장은 이미 상할 대로 상했고, 내공은 한줌도 남지 않았다.

곽휘운은 그런 남주학에게 기를 조금 나누어 주고는, 철마를 바라보았다.

“흠.”

추종자 중 하나가 죽었음에도 표정하나 바뀌지 않은 철마.

바닥에 주검으로 쓰러져 있는 녹랑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일말의 감정조차 남겨져 있지 않았다.

“계속하지.”

철마의 계속하지는 말에 녹랑의 시체를 치우며 앞으로 나오는 또 다른 추종자.

사락.

앞에 나섬과 함께 죽립을 벗어던졌다.

그러자 드러나는 얼굴.

반쪽 얼굴이 화상으로 인해 반쯤 녹아내려져 있는 여인.

남은 반쪽 얼굴을 보았을 때 화상만 아니라면, 상당한 미인이었을 것이란 짐작을 할 수 있었다.

휘이익. 착!

추종자의 허리춤에서 풀려나온 채찍.

꽤나 보기 힘든 무공인 ‘편법(鞭法)’을 익힌 듯싶었다.

“적랑이라 한다.”

자신을 적랑이라고 밝힌 추종자.

그리고 그녀에 맞서서 곽휘운 일행 중에는 위하윤이 앞으로 나섰다.

저벅. 저벅. 저벅.

가벼운 발걸음으로 앞으로 나서는 위하윤.

치열한 싸움을 하는 중이지만, 그 모습이 마치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고고했다.

“하윤 소저. 조심하십시오.”

“걱정 고마워.”

곽휘운은 조금 위하윤이 걱정이 되었다.

그녀의 실력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가 내뿜는 기세가 만만치 않았다.

분명 남주학이 상대했던 녹랑이라는 자보다도 더 위.

거기에 더해 채찍이라는 조금은 생소한 무기를 사용하는 무공을 상대해야 하니, 분명 위하윤이 더 불리한 상황이었다.

“호호. 얼굴이 아주 이쁜년이구나.”

적랑은 위하윤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요사스럽게 웃었다.

그리고 그 웃음에는 아주 진득한 살기가 담겨 있었다.

“네 얼굴도 나와 똑같이 만들어 주마.”

적랑은 본래 꽤나 부유한 집안의 금지옥엽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집안에 불이 붙었고, 그 화마에 갇혀 있던 적랑은 목숨은 건졌지만, 얼굴 반쪽이 완전히 녹아내려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사람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진 것을 느꼈다.

아름다운 얼굴을 가졌을 때는 그렇게나 달라붙던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괴물 보듯 바라보는 그 눈빛을 견딜 수 없었다.

‘모조리 죽여 버리겠어.’

그래서 적랑은 이를 갈며 무공을 수련했다.

그리고 힘을 손에 넣었을 때부터, 아름다운 여인을 보면 모두 얼굴을 완전히 뭉개버리며 다녔다.

일부러 죽이지 않고, 평생을 망가진 얼굴로 살아가게끔 만들었다.

무인이라면 내공과 힘줄마저 모조리 잘라 내어 버리고 말이다.

“정말 뭉개버릴 맛이 나는 얼굴이겠구나.”

적랑은 위하윤의 아름다운 미모를 보며, 살심이 아주 가득 끓어올랐다.

지금까지 그녀가 뭉개왔던 그 어떤 여인보다 아름다운 얼굴.

그런 얼굴이 뭉개졌을 때 어떤 소리로 울부짖을까 생각하니 즐거움에 벌서부터 몸이 떨려왔다.

“입으로 싸우실 겁니까?”

“호호호. 그럴 리가?”

휘이이이익.

순식간에 적랑의 채찍이 위하윤을 향해 날아 왔다.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기에, 미처 위하윤이 검을 뽑기도 전.

촤아악!

하지만 어느새 위하윤의 신형은 사라져 있었다.

적랑의 채찍은 애꿎은 바닥만 때렸다.

스릉.

적랑의 공격을 피한 위하윤의 검이 드디어 뽑혀 나왔다.

곽휘운이 선물한 장검.

그리고 그 장검이 빠르게 적랑을 향해 뻗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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