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118화>
곽휘운은 새롭게 찾은 친구인 흑궁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검을 쥐었다.
처음 무공을 배우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검 이외에 다른 무기를 써 볼 생각을 해 본 적은 딱히 없었다.
그런데 무릎을 다치고 예전만큼 빠르게 움직일 수 없게 되니, 활에 눈이 들어왔다.
물론 웬만한 범위는 휘운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너무 멀리 있는 적이나, 재빠르게 도망치는 적은 휘운으로 처리하기 힘들었다.
‘새로운 무기를 쓰려니 조금은 설레는군.’
이번 방위준과의 싸움에서 새롭게 깨달은 것들이 많았다.
“자. 해 보자.”
“네!”
힘차게 대답하며 검을 빼드는 남주학.
그리고 남주학은 검을 빼어들자 마자 귀혼신공을 극성으로 운용했다.
대련 상대가 곽휘운이었으니 당연했다.
스으으으으으.
귀무에 가려 사라지는 남주학의 신형.
곽휘운은 입가에 미소를 지은채로 남주학을 바라보고 있었다.
- 귀혼신공. 오의. 귀혼옥(鬼魂獄).
먼저 선공을 취한 이는 남주학이었다.
처음부터 최고의 공격을 하였다.
그동안 갈고 닦은 남주학의 오의.
곽휘운에게도 처음 보여 주는 것이었다.
사아아아악.
남주학의 귀무가 갑자기 휘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느껴지는 심상치 않은 기운.
지금 휘도는 귀무 그 자체가 날카로운 검과 같았다.
조금의 틈도 없이 사방에서 조여 오는 감옥.
이것이 바로 귀혼옥이었다.
스르르르륵.
슝. 슝. 슝. 슝. 슝.
빠르게 조여 오는 남주학의 귀무에, 곽휘운도 흑궁을 들었다.
흑궁에 얼음으로 만들어진 화살이 화살에 걸리기 시작했다.
휘운을 이용해 만든 화살 ‘휘운시(輝雲矢)’.
그리고 쏘아져 나오는 엄청난 속도의 연사.
“엇!”
귀무에 신형을 숨기고 있던 남주학을 향해 모든 휘운시가 일제히 날아가기 시작했다.
스슥.
재빠르게 몸을 움직이는 남주학이었지만, 화살들은 마치 살아 있는 듯 남주학을 계속해서 따라붙고 있었다.
휘운의 안에만 있다면, 곽휘운은 얼마든지 상대를 추적할 수도, 화살의 움직임을 바꿀 수도 있었다.
타앗!
남주학은 재빠르게 뒤로 물러나며 휘운의 범위에서 벗어났다.
그러자 남주학을 따라오던 화살들이 모두 남주학이 마지막으로 휘운을 벗어났던 지점에 틀어박혔다.
푸부부부북.
바닥을 마치 두부처럼 손쉽게 뚫어 버리는 휘운시.
그 위력을 짐작케 해 볼 만했다.
사사삭.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는 남주학.
저런 속도라면, 활로 맞히기조차 쉽지 않아보였다.
휘이잉.
휘운의 범위 밖에서 움직이는 남주학.
곽휘운은 그런 남주학을 향해 휘운시를 아주 가볍게 한 발 날렸다.
물론 그 속도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휘운시를 쏘는 그 순간 휘운시와 화살을 휘감아 도는 휘운.
그리고 그 회전력과 함께 쏘아져 나간 휘운시의 속도는 엄청났다.
슉!
남주학의 머리카락 끝을 스치고 지나가는 휘운시.
남주학은 엄청난 속도로, 반응을 하기도 전에 날아오는 곽휘운의 휘운시에 식은땀이 날 정도였다.
“후아!”
남주학은 크게 숨을 내쉬고는 다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스스스스스.
다시 한 번 더 귀무를 펼치는 남주학.
귀무에 숨어 버린 남주학의 신형.
어디에 있는지 맞추기조차 힘든 상황이었다.
“조심하거라.”
미소와 함께 경고를 하는 곽휘운.
휘이이이잉.
투두둥.
동시에 여러 대의 휘운시가 곽휘운의 활을 떠났다.
하지만 남주학의 신형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이정도의 화살로는 남주학을 맞출 수 없을 터였다.
쩌적.
그런데 그때.
곽휘운이 쏘아 낸 휘운시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수없이 갈라지며 수십 배는 불어난 휘운시.
크기는 작아졌지만, 그 위력은 결코 작아지지 않았다.
- 휘운궁법. 분천우(分天雨).
방위준과의 싸움에서 보여 주었던 ‘천우(天雨)’를 더욱 발전시킨 공격.
더욱 작고, 더욱 많아진 휘운시는 정말로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같이 보였다.
그리고 위력은 오히려 더욱 더 증가했다.
투두두두두둑.
남주학의 귀무가 있는 모든 곳에 떨어지는 분천우.
마치 마른하늘에 떨어지는 소낙비와 같았다.
카가가가가강!
남주학이 열심히 검으로 놀려 곽휘운이 쏘아 낸 휘운시를 모두 쳐내었다.
“저 죽이시려고 그러세요?”
“하하. 그래서 약하게 공격해 주지 않았느냐.”
곽휘운은 당연히 대련이니 내공을 최대한 자제해서 공격하였다.
그래서 남주학이 그리 어렵지 않게 곽휘운의 휘운시를 모두 쳐 낼 수 있는 것이었다.
“좋은 공부가 되었다.”
곽휘운은 남주학과의 대련에서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아직은 익숙지 않은 활이기에 갈 길이 많이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활까지 익힐 필요가 있느냐?]
‘재미있지 않습니까?’
곽휘운은 모든 상황에 대비하고 싶었기에, 활까지 익히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활을 익히려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재미있어서였다.
하나씩, 하나씩 더 알아가는 즐거움은 오랜만이었으니 말이다.
[깨달음의 즐거움이라는 것이냐? 대단한 놈이구나 너는.]
“다시 한번 더 제대로 해 보자.”
스릉.
이번에는 곽휘운이 검을 뽑아 들었다.
“이번에는 독고 호위님. 하윤 소저. 묵도님. 주학이까지 네 분이 동시에 저와 대련하는 것으로 하지요.”
“네?”
* * *
항주에 도착한 철마와 추종자들.
그들은 곧바로 곽휘운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그저 항주에 곽휘운이 있다는 소식만 듣고 온 철마이기에 정확히 어디에 곽휘운이 있는지는 몰랐다.
“저기 가장 큰 곳으로 가자.”
“예.”
철마의 눈에 보이는 가장 큰 전각.
곽휘운의 소재를 묻기 위해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월영루라. 객잔인가 보군.”
그들이 도착한 전각의 정체는 바로 월영루였다.
항주에 수많은 일이 있었지만, 아직 월영루는 건재했다.
“어서 오십시오.”
철마와 추종자들이 월영루에 들어가자 일순 모든 시선이 그들에게 향했다.
그리고 뒤바뀐 공기의 흐름.
조금은 들떠있던 공기가 순식간에 착 가라앉았다.
“곽휘운이라는 자가 어디 있는지 아느냐?”
“예? 어…….”
다짜고짜 곽휘운의 소재에 대해 묻는 철마.
월영루의 점소이는 철마의 거대한 체격과 은연중 뿜어져 나오는 기세에 완전히 얼어붙어 대답도 하지 못하고 얼어붙어 있었다.
“곽휘운이라는 자는 왜 찾으십니까?”
그때 월영루의 위층에서 현소월이 모습을 나타내었다.
심상치 않은 자들이 월영루에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곧바로 내려온 길이었다.
“어디 있냐고 물었다.”
“…….”
현소월은 딱 봐도 지금 저들이 좋은 의도를 가지고 곽휘운을 찾는 것은 아니란 것을 느꼈다.
진하게 풍겨오는 피 냄새와 거칠게 뿜어져 나오는 살기.
오랫동안 월영루의 총관을 해 오면서 많은 이들을 보아서 알고 있었다.
저들은 피에 굶주려 있는 자들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런 사람들을 순순히 곽휘운에게 인도해 줄 수는 없었다.
“눈을 보니 곽휘운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군.”
“…….”
“말을 하지 않는다면, 여기 있는 자들을 하나씩 죽이겠다.”
까딱.
철마가 슬쩍 손을 까딱하자 추종자 중 하나가 몸을 움직였다.
거침없이 움직이더니, 지켜보고 있던 객잔 호위 하나의 목을 그대로 베어 버렸다.
촤악.
“꺄아악!!”
순식간에 수라장이 되어 버린 월영루.
현소월은 눈앞의 이들이 자신의 생각보다도 훨씬 더 위험한 자들이라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 하지?’
지금 자신이 곽휘운이 어디에 있는지 말하지 않는다면, 월영루에서 수많은 목숨이 사라질 터였다.
“하나 더.”
철마가 또 다시 손을 까딱이며 말을 하자, 또 다른 추종자가 몸을 움직였다.
그렇게 또 하나의 목숨이 사라지기 직전.
“그만 하십시오. 제가 곽휘운이니 말입니다.”
“곽 객주님!”
* * *
잠시 항주 시내에 나왔던 곽휘운은 멀리서 느껴지는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강하다.’
조금도 자신의 기운을 숨기지 않고 있었는데, 곽휘운이 만났던 이들 중 단연 손에 꼽을 만큼의 기운이었다.
그리고 그 기운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마기.
피부가 저려올 정도의 마기가 느껴졌다.
‘좋지 않군.’
곽휘운은 저들이 왜인지 모르게 자신을 찾아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탓.
곽휘운은 곧바로 그 기운이 느껴지는 진원지로 몸을 이동했고, 어렵지 않게 진원지를 찾을 수 있었다.
‘월영루.’
월영루 안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기운.
그리고 비릿한 피 냄새까지 풍겨오고 있었다.
월영루에 들어가자 보이는 광경은 목이 베어진 채로 쓰러져 있는 월영루의 호위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거대한 체격의 철마와 다섯 명의 추종자들이었다.
“현 총관님께서는 사람들을 대피시켜 주십시오.”
“예? 아, 예.”
갑자기 나타난 곽휘운에 놀란 현소월이지만, 월영루를 총괄하는 총관답게 그녀는 일단 재빠르게 주변 상황을 수습하며 사람들을 이곳에서 대피시켰다.
현소월의 재빠른 대처에 순식간에 월영루가 텅 비었다.
“무슨 연유로 이렇게 사람을 죽이시면서 까지 저를 찾으셨습니까?”
“그렇군. 그래. 아주 재미있겠어.”
곽휘운을 바라보며 매우 흡족한 듯이 말하는 철마.
그는 지금 곽휘운을 보자마자 느꼈다.
곽휘운이 범상치 않은 무인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런 여흥은 좀처럼 즐길 수 없지. 더욱 더 고조시킬 필요가 있겠어.”
철마는 지금 당장이라도 곽휘운과 싸우고 싶었지만, 지금은 참기로 하였다.
좀처럼 만나기 힘든 상대.
이런 싸움은 모든 것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하여야 재미있는 것이었다.
“삼일 뒤. 너와 무인 다섯을 데리고 와라. 장소는 알아서 보내도록 하지.”
“제가 그 의견을 따라야 할 필요가 있습니까?”
“그러지 않는 다면, 너와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자들을 찾아내어 모조리 죽일 거다.”
“제가 여기서 당신들을 모두 죽인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저들도 무사하지는 못할 텐데?”
사람들이 대피를 하였다고 해도, 아직까지 위층에 사람들이 있었고, 또 주위에는 월영루에서 일하는 자들이 남아 있었다.
곽휘운과 철마 그리고 추종자 다섯까지 모두 상대하다 보면, 필히 엄청난 힘의 충돌이 생길 것이고, 월영루는 물론 사람들까지 무사하지 못할 수 있었다.
“……좋습니다. 삼 일 뒤에 뵙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좋다.”
이야기가 끝나자 미련 없이 뒤돌아 월영루를 빠져나가는 철마와 추종자들.
곽휘운은 그런 그들의 뒷모습을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각오를 단단히 해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