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116화>
위하윤과 장도웅 모두 서로의 실력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쉽지 않겠어.’
‘강하다.’
그래서 누가 먼저 쉽사리 먼저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탁.
곽휘운이 살짝 소리를 울려 긴장감을 깼다.
그와 동시에 움직이는 위하윤과 장도웅.
마치 한 마리의 제비와 같이 가볍고 날렵하게 움직이는 위하윤.
그리고 장도웅은 먹잇감을 노리는 호랑이와 같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달려들었다.
카가강. 캉!
진동을 하는 장도웅의 도와 위하윤의 검이 부딪칠 때마다 거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저릿. 저릿.
위하윤은 부딪칠 때마다 전해지는 진동에 검을 잡은 손이 저릿해 오는 것을 느꼈다.
‘부딪치면 안 돼.’
최대한 검을 부딪치는 것을 자중해야 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비연신검의 오의인 축뢰는 사실상 봉인되는 것이나 마찬가지.
크그극.
최대한 부딪침을 피하고 옆으로 흘려내는 위하윤.
진동은 확실히 적어졌지만, 이대로는 계속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럼 직접 부딪치지 않으면 돼.’
타앗.
뒤로 훌쩍 물러나는 위하윤.
장도웅은 굳이 위하윤을 따라붙지 않았다.
이것은 서로의 힘을 확인하는 대련.
위하윤이 무언가를 보여 줄 것이란 직감이 왔다.
“조심 하십시오.”
“훗.”
조심하라는 위하윤의 말에 장도웅은 웃었다.
강자와의 싸움.
장도웅은 이런 싸움은 언제나 환영이었다.
스르르르륵.
위하윤의 등 뒤로 나타나는 일곱 개의 검.
마치 서무제의 만천구검과 비슷한 모습.
하지만 검 하나, 하나에 담긴 힘이 달랐다.
- 비연신검. 극의. 칠연비천(七燕飛天).
위하윤의 일곱 개의 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슈와악!
쾌속하게 장도웅을 향해 쏘아져 나가는 일곱 개의 검.
마치 검이 의지를 가진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무제가 보여주었던 만천구검은 짜여진 초식에 의해 검의 환영이 움직이는 것이었다면, 위하윤의 칠연비천은 그야말로 ‘어검술‘이었다.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일곱 개의 검.
카가강! 캉!
카가가가강!
장도웅은 열심히 도를 휘두르며 막아 나가고 있었지만, 일곱 개나 되는 검을 막는 것은 힘들었다.
쉬지 않고 집요하게 장도웅을 노리는 일곱 개의 검.
마치 빠르게 끝을 내야 한다는 듯 급해 보이기까지 했다.
‘흐읏.’
어검술로 움직이는 일곱 개의 검은 모두 위하윤의 내공으로 만들어낸 검의 환영.
당연히 내공의 소모가 엄청났다.
거기에 어검술을 위지하는 것에도 엄청난 내공이 소모되니, 당연히 오랜 시간 유지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위하윤은 무리를 해서라도 빠르게 대련을 이기려고 하였다.
“좋군.”
장도웅은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꼴사납게 질 것이라는 것을 느꼈다.
자신도 숨겨 둔 수를 보여 줄 때였다.
키이이이이이.
아주 미세하게 떨리는 장도웅의 거도.
그리고 떨림이 멈추었다.
- 파천거령도. 오의. 초진공(超振空).
카가가가가각!
카가가가강!
장도웅의 주변을 휘몰아치던 위하윤의 검이 갑자기 무언가에 막힌 듯 튕겨져 나가기 시작했다.
다시금 위하윤의 검이 공격을 하였지만, 여전히 똑같았다.
카가가가가각!
카가가가강!
“주변까지 장악했군.”
장도웅의 초진동이 도를 넘어서 주변의 공간까지 장악했다.
단순히 내공을 많이 쓴다고 주변을 장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초진동에 대한 완전한 이해와 섬세한 내공의 조절이 필수였다.
일견 보기에 패도적인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것만 같은 장도웅이었지만, 장도웅은 그 누구보다 섬세하고 똑똑한 사람이었다.
곽휘운이 지난번에 한번 보여 준 초진동을 순식간에 이해하고 똑같이 재현해 내었다.
그런데 거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내어 그 이상을 보여 주고 있었다.
확실히 장도웅은 천재였다.
“제대로 해 보자.”
“물론입니다.”
장도웅도 위하윤도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지금이 딱 최고조로 달아올랐다.
스르르르륵.
다시금 일곱 개의 검을 재정비하는 위하윤.
장도웅의 초진동도 더욱 거세게 주변을 장악해 나가고 있었다.
탓!
팡!
이번에는 동시에 서로를 향해 달려드는 위하윤과 장도웅.
위하윤은 일곱 개의 검과 함께 직접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장도웅은 초진공을 유지하며 위하윤에게 달려들었다.
카가가가가각!
카각! 카각! 카가각!
치열한 공격과 방어.
위하윤이 연속해서 장도웅의 초진공을 공격해 나갔다.
하지만 마치 철벽과 같이 조금도 뚫리지 않는 초진공.
“이런.”
장도웅은 순간 무언가 이상함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초진공을 뚫고 들어오는 이질적은 기운.
위하윤의 기운이었다.
- 비연신검. 오의. 축뢰.
콰가가가각! 콰각!
일순간 초진공이 그대로 찢겨져 나갔다.
그 사이를 찌르고 들어오는 위하윤의 검.
물론 장도웅도 나름 대비를 하고 있었다.
쾅!
슈우우우우.
장도웅의 거도와 위하윤의 검이 부딪치며 강렬한 소리와 함께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음.”
“이런.”
장도웅과 위하윤의 침통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휘우우우웅.
바람이 불어오고 장내의 상황이 보이기 시작했다.
황망한 눈으로 손에 들린 무기를 바라보고 있는 둘.
장도웅의 거도는 부서지기 직전처럼 금이 가 있었고, 위하윤의 검은 검날이 모두 이가 나가 있었다.
무인에게 무기는 생명과도 같은 것.
둘 모두 생명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대단하군.”
“묵도님도 대단하십니다.”
둘은 서로를 인정했다.
막상막하의 실력.
우위를 가릴 수 없는 대련이었다.
“두 분 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곽휘운은 둘에게 순수한 감탄을 했다.
독고영, 위하윤, 장도웅은 따로 무공 지도를 하지는 않았다.
저들은 순수하게 그들만의 깨달음으로 강해진 것이다.
“마침 딱 상황이 공교롭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공교롭다는 것일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곽휘운은 빠르게 어디론가를 다녀왔다.
그의 손에 들려 있는 두 개의 물건.
하나는 거대한 도였고, 하나는 보통의 검보다 조금 더 긴 검이었다.
* * *
곽휘운은 지난번에 무기를 전해 주었던 춘삼, 황혜린, 남주학, 백리화를 제외하고 이번에 모두 새롭게 무기를 구했다.
사실 미리 신철방(神鐵方)에 제작을 맡겼는데, 완변을 기하는 신철방이기에 아무래도 시일이 오래 걸렸다.
장도웅의 거도와 위하윤의 검은 특수한 형태이기에 시일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한번 보시겠습니까?”
먼저 장도웅이 거도를 받아 들었다.
묵빛으로 빛나는 도집은 그 자체로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스르릉.
부드럽게 뽑혀 나오는 거도.
뽑혀 나오자마자 더욱 더 강렬한 위용을 뽐내었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려올 정도였다.
그런데 특이한 점이 있었다.
거도의 도신 중간 중간 구멍이 뚫려 있었다.
“초진동을 더 잘 견딜 수 있을 뿐더러, 새로운 힘도 경험하실 수 있을 겁니다.”
“고맙다.”
장도웅은 새로운 힘이 어떤 것일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새로운 도를 받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웠다.
조금 전 위하윤과의 대련에서 장도웅의 도가 금이 간 이유.
그것은 위하윤의 축뢰의 힘에 더해진, 장도웅 스스로가 발현한 초진동을 도가 견디지 못해서였다.
엄청난 진동을 하는 내공을 보통의 도가 오랫동안 견딜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당연히 이미 균열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대련에서 완전히 균열이 이루어진 것뿐이고 말이다.
“하윤 소저도 여기 받으십시오.”
“응. 고마워.”
조심스럽게 검을 받아드는 위하윤.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곽휘운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이 모두 들었다.
하지만 앞으로 다가올 시련을 알기에 받아들었다.
스릉.
보통의 검보다 긴 검신.
자칫 무거울 수 있었지만, 무게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가벼웠다.
그 이유는 중간 지점까지 검신의 중간이 비어 있어서였다.
경량화를 위해 일부러 비워 둔 곳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특징이 있다면 검의 끝이었다.
마치 창의 끝처럼 뾰족한 모습.
완벽하게 찌르기에 최적화 된 형태였다.
“하윤 소저의 무공에는 가장 어울리는 형태라 생각했습니다.”
위하윤의 무공을 예전부터 많이 봐 왔던 곽휘운이었다.
당연히 어떤 형태가 가장 어울릴지는 잘 알았다.
“두 분은 오늘의 대련으로 분명 많은 것을 얻으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혹여 막히는 것이 있다면, 언제든지 저를 찾아 주십시오.”
위하윤과 장도웅에게는 그저 살짝 조언을 해 주는 것만으로도 분명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이번 차례는 백리 가주님 차례입니다.”
“네.”
앞선 두 대련들이 너무나 엄청난 실력을 보여서일까?
백리화는 조금은 걱정과 긴장이 담긴 표정으로 대답을 하였다.
백리세가의 가주인 자신이 너무나 부족한 모습을 보일까 그랬다.
“상대는 연희 소저가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좋아요. 가가의 부탁이라면 어떤 것이든 듣겠어요.”
“!!”
“!!”
곽휘운을 가가(哥哥)라고 부르는 주연희의 말에 일순 백리세가의 모든 식구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가가는 보통 남편을 부를 때 부르는 호칭.
곽휘운과 주연희가 벌써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었단 말인가?
“연희 소저. 오해가 생길만한 말씀은…….”
“어차피 혼인을 할 사이인데 어떤가요?”
“후우. 일단은 이 문제는 차후에 다시 이야기 하지요. 일단은 대련을 준비해 주십시오.”
“네. 가가.”
곽휘운은 주연희의 계속되는 가가라는 호칭에 머리가 살짝 아파옴을 느꼈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백리화와의 대련이 먼저였다.
시간이 많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주 소저. 가겠습니다.”
“얼마든지요.”
백리화의 백화환영검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화려하게 피어나는 하얀 꽃.
백화검기……. 아니, 예전에 보았던 백화검기와는 달랐다.
더욱 밝게 빛나는 꽃.
‘강기의 경지에 발을 들여놓으셨군.’
검기(劍氣)를 뛰어넘으면 그 다음 경지인 강기(罡氣)로 나아간다.
당연 위력 면에서 검기를 아득히 뛰어넘는 경지였다.
강기의 경지에 발을 들여놓은 무인이라면, 그 누구라도 무림에 그 위명을 떨친다.
그 정도로 엄청난 경지.
백리화는 그 경지를 매우 빠른 속도로 도달한 것이다.
[저 아이는 과연 무슨 체질일지 궁금하구나.]
곽휘운도 천홍과 같은 생각을 하였다.
쉬지 않고 노력하는 백리화이기에 강해지는 것이 당연했지만, 지금 백리화가 강해지는 속도는 노력 그 이상의 하늘이 내린 재능이 있어야만 가능한 속도였다.
만약 백리화가 어릴 때부터 거대한 세가에서 모든 지원을 받으며 성장했다면, 지금쯤 어떤 무인이 되어 있을지 궁금할 정도였다.
사아아아악.
곽휘운이 백리화의 성장에 감탄하고 있을 때.
주변을 장악하는 한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주연희도 백리화의 실력이 범상치 않음을 느꼈기에, 천해한빙공을 극성으로 운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백리 가주님은 무림오룡은 아니시죠?”
“예.”
“재밌네요. 또래 중에서는 무림오룡만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죠.”
탓.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은 채로 주연희가 먼저 백리화에게 쇄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