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휘운객잔-115화 (115/203)

<휘운객잔 115화>

곽휘운이 쏘아 낸 투명한 화살.

극한의 한기로 휘운을 얼려 내어 만든 얼음 화살이었다.

내공이 가득 담긴 얼음이기에,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정도였다.

“주변에 있는 자들은 다 정리가 된 것 같아요.”

백리화를 필두로 흩어졌던 백리세가 식구들이 모두 돌아왔다.

한껏 강해진 그들이기에 생각보다 빠르게 백리세가를 침공한 마궁가의 무인들을 정리 할 수 있었다.

“가주님 수고하셨습니다. 주 소저도 감사합니다.”

“아, 예.”

주연희도 마궁가를 막는 일에 힘을 보태었다.

이곳에 온 목적이 천마신교를 막는 것이라는 점도 있었고, 이제부터 지내야 할 곳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으니 말이다.

‘강함의 차원이 달라.’

주연희는 곽휘운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방위준이라는 자는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피부가 따가울 정도의 기운을 내뿜는 강자였다.

그런데 그런 자를 상대로 손쉽게 이겨 버렸다.

그것도 검법이 아닌, 궁술로 상대를 압도했다.

궁술은 상대가 평생을 갈고 닦은 무공일 텐데 말이다.

“일단 얼른 백리세가부터 수습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다들 곽휘운의 말대로 백리세가 곳곳에 박혀있는 화살들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몇 곳이 부셔지기는 했지만,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곽휘운이 애초에 전각을 지을 때 값비싼 목재를 사용했기에, 보통의 전각들보다 훨씬 튼튼했으니 말이다.

“흐음……. 벌써 시작되었군.”

곽휘운은 화살을 모두 제거한 뒤,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생각에 잠겼다.

이번 방위준의 공격.

이것은 이제 시작일 뿐일 터였다.

천마신교의 인물들아 이 일을 알게 되면, 분명 더욱 더 많은 이가 이곳을 찾아올 것이다.

그들은 그런 이들이었으니 말이다.

[천마신교의 무인들은 모두 싸움에 미친 자들이지. 크크.]

그들이 무림에 나타난 이유는 무림 정복이 목표가 아니라, 무림의 무인들과의 싸움이 목적일 터였다.

얼마나 더 강한 강자들이 찾아올지 몰랐고, 얼마나 많은 이들이 찾아올지 몰랐다.

‘대비는 빠르게 하고 있지만, 아직도 마교의 무인들과 대적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백리세가의 식구들 모두 다들 빠르게 강해지고 있다.

하지만 곽휘운이 겪은 천마신교에서 순위를 달고 있는 이들의 힘은 상상초월.

독고영 정도를 제외한다면, 사실상 지금으로서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다.

‘이제부터는 편하게 수련할 시간도 없겠군.’

* * *

엄청난 기세로 무림을 침공하던 천마신교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그들은 감숙성, 사천성, 섬서성을 점거한 이후로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무림맹의 입장에서는 한숨 돌린 것이지만, 당연히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언제 다시 그들이 움직일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방위준도 당했다?”

“예. 마궁가의 일원인 방위준인데, 화살에 꿰뚫려 죽었답니다.”

“하하! 재미있군.”

방위준이 당했다는 교마의 보고에 천마는 재미있다는 듯 크게 웃었다.

생각보다 재미있는 자가 무림에 남아 있었다.

지금까지 만나 싸웠던 정파 무림의 고수라는 작자들은 하나같이 겉만 멀쩡한 쭉정이들이었다.

무림에 나온 보람도 없을 만큼 형편없었다.

그런데 지금 예상치 못하게 항주라는 곳에서 재미있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 소식을 듣고 또 몇 놈이 항주로 떠났겠군.”

“예. 지금 철마(鐵魔)와 그를 따르는 다섯이 항주로 발걸음을 옮겼답니다.”

“철마 그자가 직접?”

“예.”

천마신교의 팔마(八魔).

천마신교 내에서 가장 강한 여덟에게 부여되는 수식어.

최근 무림 진출을 위해 엄청난 순위 변동이 있는 천마신교였지만, 이 팔마의 위치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만큼 이들의 무공 수준은 놀라울 정도로 고강했고, 당연히 따르는 이들도 많았다.

철마는 천마신교 서열 8위의 강자.

그가 직접 움직였다는 것은 꽤 시사하는 바가 큰일이었다.

“그런데 말일세. 철마까지 당하면 그때는 어떻게 될 것 같나?”

“천무제 위강천과 나천괴(懶天怪) 설무룡이 아니라면, 철마가 지지는 않을 겁니다.”

무림이천은 천마신교에서도 인정하는 강자들이었다.

교마는 그들이 아니라면, 서열 8위인 철마를 이기지는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가. 흠 그래도 나는 조금 더 재미있어지면 좋을 것 같은데 말일세.”

지금 마교가 진격을 멈춘 것은 일부러 무림맹에게 시간을 주기 위함이었다.

너무나 속절없이 당한 그들이기에 더욱 더 거세게 저항하기를 바랐으니 말이다.

“그런데 교마.”

“예.”

“최근에 독마와 석종이가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은데 뭐 하는지 알고 있나?”

“예? 잘 모르겠습니다.”

천마의 물음에 일순간 되물은 교마.

아주 잠깐이지만, 교마의 두 눈이 흔들렸었다.

물론 금방 되돌아 왔지만 말이다.

“그래? 뭐, 알아서들 잘하겠지.”

천마는 의미심장한 말과 함께 아주 작게 미소 지었다.

* * *

지금까지의 훈련은 곽휘운이 내어 준 단약을 먹고, 내공심법을 운용하는 것이 수련의 전부였다.

하지만 곽휘운은 이제는 직접 몸을 움직이며 수련을 해야 할 때라는 것을 느꼈다.

충만한 내공을 활용할 방법을 터득할 때였다.

“오늘부터는 대련을 중점으로 수련하겠습니다.”

대련만큼 빠른 시간 안에 무공에 대한 이해를 높여줄 만한 수련은 없었다.

물론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이 제일이지만, 그것을 당장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처음은……. 저와 독고 호위님부터 하지요.”

“하하. 좋네!”

대련은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서 진행되었다.

첫 대련부터 백리세가 식구들의 시선이 뜨겁게 모아졌다.

곽휘운과 독고영.

지금 백리세가에 있는 이들 중 가장 강한 둘의 대련이니 당연했다.

“그러고 보니, 독고 호위님과 제대로 대련 한번 해 본 적 없는 것 같습니다.”

“음……. 듣고 보니 그렇군.”

독고영이 정천맹을 나와 휘운객잔으로 들어 온지도 꽤나 시일이 흘렀는데, 이렇듯 서로 대련을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스릉. 스릉.

곧바로 쌍검을 뽑아 드는 독고영.

그는 지금 당장 싸울 준비가 만전이었다.

독고영도 무인이다.

곽휘운이 상식 외의 강자라는 것을 알지만, 그에게 도전한다는 것만으로도 묘한 호승심이 불타올랐다.

슈와아아아악.

곽휘운도 독고영의 실력을 알기에, 곧바로 휘운을 불러내었다.

“자 일단 가네.”

“예.”

독고영의 쌍검이 화려하게 춤추기 시작했다.

눈을 현혹하는 쌍검의 움직임.

캉. 캉. 캉. 캉.

곽휘운은 차분히 쌍검을 쳐 내었다.

자유롭게 움직이며 쌍검을 쳐 내는 휘운.

휘운은 그 자체로 이미 그 어떤 보검보다도 날카로운 무기였다.

“자. 제대로 가네.”

스륵.

독고영이 천잠사를 꺼내어 들었다.

그의 독문무공인 ‘신주만라사’를 펼치기 위해서였다.

- 신주만라사(神蛛滿羅絲). 오의. 천라삭망(天羅削網).

곽휘운의 모든 방위를 둘러싼 독고영의 천잠사.

카각. 카가각. 카가가가각.

곽휘운의 휘운을 갉아먹으며 조금씩 조여 오는 천잠사.

천잠사가 조금씩 얼어붙어 가다가, 독고영이 내공을 가득 주입하자 얼음이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파사사삭.

그것을 지켜보던 곽휘운의 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진 휘운검법. 오의. 무극.

스윽.

사라락. 사락. 사라라라락.

천잠사가 그대로 모조리 끊어지며 바닥으로 흩날렸다.

독고영은 이건 예상치 못했기에 눈을 크게 떴다.

곽휘운의 한기에 실이 얼어붙어 깨져 버릴 수도 있겠다는 예상은 하였다.

하지만 이렇게 모조리 잘려 나갈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천잠사를 자른다는 것은, 정말 웬만한 힘의 차이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니 말이다.

“독고 호위님은 아직 제대로 내공을 쓰지 못하시니, 이렇게 쉽게 잘린 것 같습니다.”

“하하. 과연 그럴까 싶네만.”

지금 독고영은 몸 안에 남아 있는 마령단의 찌꺼기를 제거하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었다.

곽휘운이 건네준 단약을 섭취하고, 운기를 하면 조금씩 그 찌꺼기가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워낙 많은 양의 찌꺼기를 가지고 있었기에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내공을 한계까지 끌어올리면 그 찌꺼기들이 반응할 테니, 제대로 내공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나저나, 이 천잠사 꽤나 구하기 힘든 건데…….”

조각조각 잘려져 바닥에 흩어진 천잠사.

천잠사는 돈을 주고도 구하기 힘든 물품이었다.

당연히 독고영도 여유분의 천잠사를 가지고 있지는 못했다.

지금 바닥에 잘린 것이 마지막 천잠사였다.

천잠사가 없다면 ‘신주마라사’를 제대로 펼쳐 내기 힘들었다.

보통의 실로 한다면, 강도는 물론이고, 절삭력도 한참 부족하니 말이다.

“여기, 독고 호위님에게 드리는 선물입니다.”

목갑 하나를 꺼내는 곽휘운.

독고영은 그 목갑을 받아들고 조심히 열어보았다.

딸칵.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듯 비어 보이는 목갑.

하지만 독고영은 목갑은 안을 보자 조금 눈이 떨려왔다.

“이, 이게…….”

“예. 신잠사(神蠶絲)입니다.”

목갑 안에는 보통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만큼 얇은 실이 들어있었다.

신잠사(神蠶絲).

도검으로 잘리지 않는 천잠사보다도 훨씬 더 강력한 경도를 지니는 물건이었다.

검기와 강기에도 잘리지 않는 신잠사는 정말 무림에서도 신물(神物)로 취급을 받을 정도로 귀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신잠사를 어찌 곽휘운이 가지고 있단 말인가?

“정말 오래전에 구한 물건인데, 이렇게 주인을 찾아가기 위해 그동안 가지고 있었나 봅니다.”

곽휘운이 대막에 임무를 나갔을 때 우연히 구한 물건이었다.

그 당시 대막의 광풍사(狂風沙)와 싸움을 하였을 때 그들의 우두머리를 죽이고 얻은 것이다.

워낙에 귀한 물건이니 그저 언젠가는 쓰일 일이 있겠거니 하고 보관해 둔 것인데, 이렇게 딱 맞는 주인을 찾아갈 줄은 몰랐다.

실을 무공으로 쓰는 독고영에게는 그 어떤 기연보다도 최고의 기연이었다.

“내가 정말 이것을 받아도 되겠는가?”

“물론입니다. 앞으로 더욱 힘든 적들이 올 테니, 너무 고마워하지는 마십시오.”

“내가 목숨을 걸고 막아 주겠네.”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곽휘운과 독고영의 대련이 끝이 났다.

이제 다음 차례.

“다음은 하윤 소저와 묵도님입니다.”

비화룡 위하윤과 묵도 장도웅의 대련.

이 대결 또한 모두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둘이 대련하는 것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 말이다.

“묵도님과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그렇군.”

실제로도 둘은 단 한 번도 대련을 한 적이 없었다.

오늘이 처음.

최근 무섭게 실력을 키운 둘이기에, 둘 사이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