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114화>
주연희는 지금 자신의 상황이 조금 어안이 벙벙했다.
분명 무림맹의 지원 요청을 위해 온 길이었는데, 홀로 이곳 항주에 남겨졌다.
그것도 오늘 처음 보는 곽휘운이라는 자와 혼인을 생각해 보라는 신혜설의 이야기와 함께 말이다.
‘궁주님의 말씀은 뭐든 따르겠지만…….’
주연희에게 신혜설은 모든 것이었다.
핍박받던 자신을 거두어 준 것도 모자라, 아낌없는 베풂으로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 주었다.
평생을 모든 것을 받쳐서 은혜를 갚아야 하였다.
‘그래. 궁주님이 아니라면 죽었을 몸. 궁주님의 아드님이랑 혼인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지.’
주연희는 신혜설의 바람대로 곽휘운과 혼인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마음먹은 일은 바로 실천하는 것이 주연희의 신조였다.
“곽 소협.”
“그냥 곽 객주 정도로 불러 주시면 됩니다. 주 소저.”
“곽 객주님. 저랑 혼인해요.”
“예? 하하. 제……. 어머니의 말씀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곽휘운은 주연희가 신혜설의 말 때문에 자신과 혼인하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
“아니요. 저는 반드시 곽 객주님과 혼인하겠습니다.”
“하하……. 이것 참…….”
곽휘운은 곤란한 웃음을 흘렸다.
지금 보여주는 주연희의 두 눈은 꺾이지 않을 의지로 굳게 빛나고 있었다.
저런 눈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무슨 말을 한다 해도 듣지 않는 다는 것을 잘 알았다.
‘어떻게 한담.’
[뭘 고민하느냐? 다 색시로 맞으면 돼지.]
그렇게 곽휘운이 주연희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할 때였다.
투두두두두두둑.
백리세가의 전각으로 무언가 쏟아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 * *
천마신교 서열 43위 방위준.
그는 무림에 나오자마자 이곳 항주로 발걸음을 옮겼다.
‘향초아가 죽어?’
그는 향초아가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먼저 접하고, 과연 어떤 이가 향초아를 죽였는지 궁금했다.
향초아는 자신이 노리고 있던 먹잇감이었으니 말이다.
‘향초아를 죽이기 위해 그렇게 노력했건만.’
방위준은 오래전 향초아에게 패배한 전력이 있었다.
그때의 복수를 위해 자신의 거처에 틀어박혀 무공 수련만 하였다.
복수를 할 시기를 보고 있었는데, 당해 버렸다는 이야기에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방위준은 향초아를 이긴 곽휘운이라는 자를 찾아 죽이기로 하였다.
그래야만 지금 자신의 이 허무한 마음을 달랠 수 있을 것 같았으니 말이다.
‘항주로 가자.’
그래서 방위준은 자신의 가문의 사람들 함께 곧장 항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 천마신교의 무림행에는 서열 1위부터 100위까지만 왔지만,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이나, 가문의 인물들은 함께 오는 것이 가능했다.
방위준은 천마신교에 있는 수많은 가문 중 하나인 마궁가(魔弓家)의 문주였다.
천마신교 내에서 유일하게 활 쓰는 가문이었다.
‘저기 있군.’
방위준은 항주에 도착하자마자 곽휘운이 있다는 휘운객잔과 백리세가를 찾았다.
“쏴라.”
그리고 보자마자 선전포고의 의미로 공격을 지시했다.
내공이 실린 화살을 일제히 날리는 마궁가의 무인들.
“감히. 백리세가에 손을 댄 것은 감당하셔야 할 겁니다.”
그때 그들의 바로 앞에 하나의 인영이 모습을 나타내었다.
* * *
투두두두두두둑.
콰직. 콰지직.
곽휘운은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전각 밖으로 급히 뛰쳐나왔다.
밤하늘을 새카맣게 뒤덮은 화살비.
이미 전각 곳곳에 가득 화살이 박혀 있었다.
“객주님! 이게 무슨!”
백리화를 필두로 백리세가의 식구들이 모두 뛰쳐나왔다.
“아무래도 적습인 것 같습니다.”
더없이 차가워진 곽휘운의 두 눈.
곽휘운은 지금 백리세가에 공격을 가한 이들을 가만히 둘 생각이 없었다.
‘먼저 공격해오는 것을 용서할 필요는 없지.’
[그런 걸 용서하면 나중에 뒤에서 칼을 맞는 법이다.]
천홍의 말대로 곽휘운은 어설픈 용서와 자비는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을 잘 알았다.
무림에 발을 들인 이상 어차피 지옥에 한자리는 예약해 둔 것이나 마찬가지.
성인군자처럼 행동할 필요는 없다.
“모두 사방으로 흩어져서 적들을 막아 주십시오.”
“네!”
“알겠네.”
혹시 비어있는 백리세가를 공격해 오는 이들이 있을지 모르니 장도웅과 황혜린, 춘삼, 추삼은 남기로 하였고, 남은 이들은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달려 나갔다.
이런 날을 위해 다들 실력을 키운 것이다.
어쩌면 조금 잔인할 수 있지만, 이것은 좋은 실전 경험이 될 터였다.
슈와아아아악.
쩌저저저적.
곽휘운이 등장함과 동시에 휘운이 퍼지고, 주변의 마궁가의 무인들이 모두 얼어붙었다.
그야말로 순식간.
마궁가의 무사들은 소리조차도 지르지 못했다.
슈와아악!
그때 곽휘운의 휘운을 뚫고 화살이 하나 날아왔다.
콱.
그대로 손으로 화살을 강하게 움켜잡은 곽휘운.
쉬이이익.
강렬하게 손을 휘도는 화살.
곽휘운은 화살에 담긴 위력이 꽤나 대단함에 놀랐다.
‘강렬하군.’
분명 이쪽에서 강렬한 기운이 느껴져서 왔는데, 모습은 보이지 않고 이렇게 화살만 날아왔다.
곽휘운은 화살을 잡고는 짙은 미소를 지었다.
오늘 제대로 새롭게 연습한 궁술을 시험해 볼 기회인 듯싶었다.
스윽.
곽휘운은 등에 메고 나온 활을 꺼내어 들었다.
지난번에 챙겨 온 흑궁.
화살은 일단 지금 잡아 낸 것을 돌려주기로 하였다.
스으으윽.
퉁.
곽휘운의 활에서 화살이 떠났다.
위치는 확인을 하였다.
“헛!”
쫘자자자자작.
헛바람을 들이키는 다급한 소리와 함께, 멀찍이서 인영 하나가 튀어나왔다.
* * *
방위준은 지금 자신을 향해 날아온 엄청난 속도와 위력의 화살에 깜짝 놀랐다.
‘이게 무슨 일이냐!’
자신의 위치를 한 번에 찾은 것은 물론이고, 자신이 날린 화살을 손으로 잡아 내었다.
‘회륜마강궁(回輪魔强弓)’으로 쏘아 낸 화살을 맨손으로 잡아 내다니?
쳐내거나 피하는 것이 아니라, 맨손으로 잡는 것은 방위준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
거기에 더해 자신의 화살을 잡은 상대가 자신보다 더 빠르고 강한 힘으로 화살을 날려 왔다.
“안녕하십니까. 곽휘운이라 합니다.”
그때 방위준을 향해 들려오는 상대의 목소리.
‘저자가 곽휘운이구나!’
그런데 방위준은 이상함을 느꼈다.
분명 향초아는 검에 의해 베어져 죽었다고 들었다.
그런데 지금 곽휘운은 엄청난 수준의 궁술을 쓰고 있지 않은가?
“나는 천마신교 서열 43위 방위준이다.”
“천마신교? 복수를 하러 오신 겁니까?”
“복수? 하하하. 향초아와 내가 그런 걸 할 사이는 아니지. 그저 향초아를 죽인 너를 내 손으로 죽이고 싶었을 뿐.”
“그럼 조용히 저만 찾아오셨으면 되셨을 것을, 이렇게 사람들을 대동하고 와서 백리세가에 화살을 날릴 필요는 없지 않았습니까?”
“그저 축포였을 뿐이다.”
“축포라……. 그런 이유로 화살을 날렸다는 겁니까?”
화아아아악.
상당한 거리가 떨어져 있음에도 전해지는 곽휘운의 엄청난 기세.
방위준은 마른침을 삼키면서도,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이것이다. 무인으로 산다는 건 말이지.’
천마신교에 있는 모든 무인은 다들 싸움에 반쯤은 미쳐 있는 자들이라 해도 무방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더 강한 힘과 더 강한 상대.
힘을 숭상하는 천마신교이기에, 지금 방위준은 온몸으로 느껴지는 곽휘운의 힘에 전율하면서도 너무나 기대가 되었다.
“살아서 돌아갈 생각하지 마십시오.”
“크하하! 어차피 그럴 생각 따위는 애초에 없었다.”
쿠우우우우.
기운을 끌어올리는 방위준.
그는 지금 자신이 낼 수 있는 모든 힘을 끌어 올렸다.
스으으으으.
방위준의 두 눈이 검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사마적과 풍마전이 보여 주었던 것과 같은 모습.
물론 그 둘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한 마기를 내뿜어 내고 있었지만 말이다.
‘독마 어르신에게 직접 받은 마혼령단(魔魂靈丹)의 힘은 역시 굉장하군.’
폐관수련에 들어간 방위준을 찾아와 단약을 건넨 독마.
독마는 마혼령단이라고 부르는 단약이며, 마음 속 욕망을 실현시켜 줄 힘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강해지기 위해서는 영혼이라도 팔 수 있는 방위준이었기에, 당연히 곧바로 독마가 건넨 마혼령단을 섭취했다.
그리고 자신은 욕망에 맞는 힘을 손에 넣었다.
‘이 힘으로 향초아를 눕히려고 했건만.’
물론 이제 그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은 눈앞의 상대인 곽휘운을 이기는 것만 생각할 뿐이었다.
- 회륜마강궁. 오의. 만천시(滿天矢).
스스스스슥.
퉁. 퉁. 퉁. 퉁. 퉁.
방위준의 활이 쉴 새 없이 화살을 쏘아 내었다.
동시에 곽휘운을 향해 날아가는 수많은 화살.
키리리리릭.
키리리리릭.
한 발, 한 발에 모두 강렬한 회전이 담겨있었다.
회륜마강궁의 묘는 바로 이 회전하는 화살에 담겨 있었다.
보통의 화살과는 다르게, 내공을 머금고 맹렬히 회전하는 화살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솨아아아아.
하늘을 가득 채우며 엄청난 속도로 쏟아지는 화살비에 피할 곳은 없었다.
곽휘운은 화살비를 바라보며 짙은 미소를 지었다.
슈와아아아악.
- 휘운검법. 오의. 무극.
화살비를 모두 감싸 버린 휘운.
그러자 맹렬한 기세로 쏟아지던 화살들이 모두 힘을 잃고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곽휘운은 휘운을 이용해 그 화살들을 한데 모아 손에 쥐었다.
그리고는 조금 전 방위준이 했던 것과 똑같이 그대로 돌려주었다.
- 휘운궁법(輝雲弓法). 천우(天雨).
슈와아아악.
퉁. 퉁. 퉁. 퉁. 퉁.
방위준을 향해 날아가는 수많은 화살.
회전이 담겨있지는 않았지만, 대신 휘운의 힘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방위준은 이 공격을 자신이 피하지 못할 것임을 느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동귀어진.’
방위준의 활과 화살에 강렬한 기운이 모여들었다.
꾸드드드득.
활시위가 끊어질 정도로 강하게 당기는 활.
- 회륜마강궁. 극의. 마환포(魔環砲).
퉁!
콰아아아아앙!
마치 화약이 터지는 듯 강렬한 소리와 함께, 곽휘운을 향해 날아가는 엄청난 위력의 화살.
콰창. 콰창. 콰창.
나아가는 길에 있는 곽휘운이 날린 화살들을 모조리 부수며 뚫고 나아가는 방위준의 마환포.
방위준의 모든 힘을 담은 위력다웠다.
“좋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방위준의 화살이 곽휘운을 꿰뚫기 전.
너무나 평온한 곽휘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리가 상당했음에도 또렷이 들리는 목소리.
퉁!
쉬이이이이익.
곽휘운의 활에서도 단 하나의 화살이 쏘아져 나왔다.
보통의 화살과는 다르게 투명한 화살.
그 화살은 너무나도 손쉽게 방위준의 마환포를 갈라 버리며, 그대로 방위준의 몸에 꽂혔다.
쩌저저저적.
푹.
화살이 작렬함과 동시에 꽁꽁 얼어 버린 방위준.
그런데 방금 방위준에게 작렬한 화살은 오간데 없이 사라져 있었다.
“화살은 꼭 안 들고 다녀도 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