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113화>
항주 한 곳에 위치한 야산.
곽휘운은 신혜설과 마주보고 섰다.
“따로 보자는 곳이 이곳인 것이냐?”
“예. 제가 이곳으로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했습니다.”
[북해의 궁주라……. 참으로 재미있구나. 본좌가 살아 있을 때는 만나보지 못했거든.]
백리화가 곽휘운과 신혜설 두 사람을 위해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였는데, 그때 곽휘운이 백리화에게 이곳으로 신혜설을 오도록 해 달라고 부탁했다.
스릉.
검을 뽑아드는 곽휘운.
그 모습에 신혜설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 때로는 말보다 검으로 이야기 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지.”
스윽.
쩌저저저저적.
자연스럽게 뿜어지는 신혜설의 기운에 주변에 있는 풀과 나무들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북해 빙궁의 궁주의 힘은 무림 이천에 비견될 정도로 평가된다.
전통적으로 북해 빙궁의 힘은 신강의 마교와도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단일 세력으로 평가를 받는 정도이니 말이다.
물론 워낙 대외 활동을 잘 하지 않기에 정확한 힘의 측정은 힘들었지만.
슈와아아아악.
사방을 휘감는 곽휘운의 짙은 휘운.
지금까지 그 어느 때보다 짙은 모양새였다.
“갑니다.”
“그래.”
신혜설의 두 손에 피어오르는 푸르른 강기.
그 주변의 공간마저 얼릴 정도로 차가운 한기가 가득한 강기였다.
천해한빙공의 발현이었다.
콰가각.
쩌저저적.
곽휘운의 휘운이 움직여 신혜설을 공격할 때마다, 신혜설은 손으로 그것을 쳐내었는데, 그 여파가 주위에 뿌려질 때마다 여파에 닿은 모든 것이 완전히 얼어붙어 버렸다.
추운 겨울이 아님에도 주변은 이미 얼음의 왕국이 되어 버렸다.
“정말 강해졌구나.”
“누구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강해졌습니다.”
서로 쉬지 않고 공방을 계속하면서도 대화를 이어 갔다.
“어째서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도저히 나올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신혜설이라고 곽휘운의 아버지인 곽호연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지 않고 싶었겠는가?
다시금 혼인도 하지 않고, 오로지 평생을 곽호연만을 생각하며 살았던 신혜설인데 말이다.
하지만 도저히 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 당시 빙궁은 내부의 반란이 일어나, 존폐의 기로에 놓여있었으니 말이다.
신혜설은 모든 반란을 제압한 뒤, 홀로 몰래 곽호연의 묘를 찾아왔었다.
물론 곽휘운은 알지 못하는 일이었지만 말이다.
“너와 호연을 위해서 내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했다. 나는 그럴 자격이 없는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왜 이제는 찾아온 것입니까?”
“그저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 하거라. 주연희 저 아이를 만나고 많은 생각이 변하기도 했고 말이다.”
신혜설이 후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빙궁의 장로들의 강력한 요청.
하지만 신혜설은 곽호연 이외의 사람과 만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렇게 고민하며 북해를 떠돌던 중 만난 아이가 바로 주연희였다.
보통의 아이들과 다르게 백발 백미를 타고난 아이.
주변에서는 저주를 받았다며 핍박을 받는 아이였는데, 신혜설은 그런 주연희를 보고는 곧바로 자신의 양녀로 삼아 빙궁으로 데리고 왔다.
지금까지 본 적 없을 만큼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주연희.
신혜설은 기뻐하며 주연희를 친 딸처럼 키웠다.
그리고 그렇게 주연희를 키우면 키울수록, 곽휘운에 대한 마음이 커졌다.
‘이제 곧 연희에게 궁주를 물려주어도 되겠지.’
신혜설이 주연희에게 이제 궁주의 자리를 물려주려고 마음먹었을 때, 무림맹에서 지원 요청이 온 것이었다.
그리고 무림 경험을 위해 주연희를 대동하고 무림에 온 것이었다.
“……쉽게 용서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 나도 쉽게 용서받을 생각은 없다.”
슈와아아아악!
사아아아아악!
곽휘운의 휘운이 더욱 강렬하게 휘돌기 시작했고, 신혜설의 천해한빙공도 더욱 강렬한 한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여기 일대를 다 날려 버리려는 것이냐?]
강렬한 한기를 머금은 두 힘.
- 진 휘운검법. 극의. 태극(太極).
- 천해한빙공. 오의. 빙하세계(氷下世界).
쫘자자자자자작!
파사사사삭.
두 무공이 부딪침과 동시에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이 얼어붙었고, 그대로 가루로 변해 흩어졌다.
“너가 있는데, 무림맹은 왜 우리에게 지원을 요청했는지 모르겠구나.”
“저는 이제 무림맹의 무인이 아닙니다.”
[네가 객잔을 하는 것은 정말 전 무림적 손해다.]
* * *
신혜설과 같이 온 빙궁일행은 지금 백리세가에서 머물고 있었다.
백리화가 귀한 손님을 꼭 백리세가에 모시고 싶다고 하였기 때문이었다.
곽휘운과 신혜설이 대화를 하기 위해 떠난 백리세가.
그곳에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 둘이 대치를 하고 있었다.
“감히 궁주님을 욕보인 자를 가만히 둘 수 없습니다.”
“뭐라고요? 객주님에게 뭘 하려거든 저부터 넘어서야 할걸요?”
서로 신경전을 하는 둘은 바로 주연희와 남주학이었다.
주연희는 아직까지 신혜설을 무례하게 대한 곽휘운에 대한 마음이 풀리지 않았고, 남주학은 곽휘운을 향해 적대감을 뿜어대는 주연희를 가만히 둘 수 없었다.
“그럼 제가 넘어 드리겠습니다.”
“쉽지는 않을 거예요.”
연무장에 서서 서로를 향해 날카로운 기세를 뿌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은 첨예한 긴장감.
“남 소협. 잠시 만요.”
둘의 첨예한 대립 사이에 끼어든 인물.
위하윤이었다.
위하윤은 수련을 하다가, 곽휘운의 어머니인 신혜설이 왔다는 이야기에 부리나케 뛰어오는 길이었다.
“당신은 누구시죠?”
“저는 위하윤이라 합니다.”
“아! 비화룡.”
주연희는 나름 무림에 오기 전 무림에 대해 공부를 하였다.
그중 당연히 무림오룡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고, 비화룡 위하윤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
“저는 빙궁의 주연희라 합니다.”
인사를 하는 주연희를 가만히 바라보는 위하윤.
위하윤은 주연희를 보자마자 묘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마치 백리화를 보았을 때와 비슷한 느낌.
그리고 위하윤은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았다.
‘연적.’
물론 지금 말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조금도 곽휘운에 대해 마음이 없는 것 같았지만, 그것은 모르는 일이었다.
신혜설이 이곳까지 주연희를 대동하고 온 이유가 있을 것이고, 위하윤은 제발 자신의 생각과 다르기를 바랐다.
“이렇게 뵙자마자 실례인 줄은 알지만, 저랑 대련 한번 하지 않으시겠어요?”
주연희가 무림오룡 중 유일한 여인인 위하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한 생각은 대련을 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비슷한 또래인 위하윤과 비교하면, 과연 자신이 무림에서 어느 정도일지 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물론 사양치 않겠습니다.”
위하윤은 이 기회에 확실히 서열 정리(?)를 하기로 하였다.
스릉.
위하윤의 검이 뽑혀 나오고 자연스럽게 날카로운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스윽.
천해한빙공을 운용하는 주연희.
그리고 그에 맞서는 위하윤은 비연신검을 운용했다.
탓.
탓.
동시에 서로를 향해 달려드는 위하윤과 주연희.
캉! 캉! 캉! 캉!
손과 검이 부딪치는데 마치, 쇠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연신 계속되는 치열한 공방전.
하지만 조금씩 시간이 지날수록 주연희가 우세해지고 있었다.
뼈를 시리게 만드는 한기에 위하윤의 동작이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 비연신검. 오의. 축뢰(畜雷).
하지만 지금까지 위하윤이 그저 막고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주연희의 양손에 이미 위하윤의 내공이 가득 쌓여 있었다.
콰창!
콰창!
주연희의 손에서 내공이 순간적으로 터져 나오며, 손에 둘러져 있던 천해한빙공의 강기가 완전히 깨져 버렸다.
“앗!”
손을 타고 몸으로 전해지는 충격에 주연희가 일순 뒤로 물러났다.
물론 위하윤도 완전히 멀쩡하지는 않았다.
손끝이 조금 얼어붙어 있었다.
이대로 계속해서 싸움이 이어졌다면, 아마 온몸으로 타고 이 얼음이 번졌을 터였다.
“연희야. 가만히 있으라 하지 않았느냐?”
“하윤 소저. 괜찮으십니까?”
그때 곽휘운과 신혜설이 돌아왔다.
둘은 어느 정도의 앙금을 풀고 백리세가로 돌아왔는데, 꽤나 치열하게 대련을 하고 있는 위하윤과 주연희를 보고 서로에게 다가갔다.
“잠시 손을 보여 주십시오.”
위하윤은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 손을 덥석 잡는 곽휘운.
곽휘운은 곧바로 내공을 흘려 위하윤의 얼어붙은 손을 녹여 주었다.
“고, 고마워.”
“빨리 녹이지 않으면, 고운 손이 상할 수 있었습니다.”
곽휘운의 말에 조금 볼을 붉히는 위하윤이었다.
“마침 이렇게 둘 다 있으니, 여기서 말해도 되겠구나.”
곽휘운과 주연희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말을 하는 신혜설.
방금 전까지 볼을 붉혔던 위하윤은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곧바로 느꼈다.
그리고 그 느낌은 여지없이 적중했다.
“내가 이곳에 연희 너를 데리고 온 것은, 휘운이와 혼인을 시키고 싶어서였다.”
“예?”
“네?”
“!!”
* * *
신혜설이 주연희를 이곳 항주까지 데리고 온 이유.
그것은 곽휘운과의 혼인을 위해서였다.
신혜설이 주연희를 옆에서 지켜본 결과 분명 좋은 아이였다.
‘빙궁의 미래를 위해서, 둘의 미래를 위해서도 좋겠지.’
곽휘운이 주연희와 혼인을 한다면, 곽휘운을 빙궁으로 들일 수 있었다.
외부인에 대해 폐쇄적인 빙궁이지만, 지금 자신이 빙궁의 궁주일 때라면 가능했다.
“물론 강제로 하라는 것은 아니다. 연희 너는 이곳에 남겨두고 갈 테니, 여기서 지내면서 생각해 보거라.”
“구, 궁주님!”
이번 무림행은 주연희에게 빙궁을 벗어나 자유의 시간을 줌과 동시에, 곽휘운과의 혼인을 성사시키기 위함도 있었다.
“저는 아직 혼인을 할 생각이 없습니다.”
“호호. 당장 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저 같이 지내만 보라는 것이지.”
신혜설은 말을 하면서 위하윤을 바라보았다.
“너가 무림맹주님의 딸이로구나.”
“예. 위하윤이라 합니다.”
“그래. 정말 들은 대로 예쁜 아이구나. 너도 휘운이와 좋은 짝이 되겠어.”
“감사합니다.”
“영웅은 삼처사첩이라 하였으니, 휘운이 네가 잘 판단하거라.”
“저는 영웅이 아닙니다.”
“그것은 모를 일이지.”
신혜설의 추진력은 빨랐다.
이야기를 마친 신혜설은 곧바로 주연희를 남겨 두고, 곧바로 다시금 무림맹으로 떠날 채비를 하였다.
“다음에 다시 만날 때는 며느리를 보고 싶구나.”
“……그것은 장담할 수 없습니다.”
“다음에 보자.”
히이잉.
말이 힘찬 울음소리를 내며 달려 나갔다.
신혜설이 떠난 백리세가.
그곳에는 어찌해야 할 줄 모르고 서 있는 주연희만이 남아 있었다.
“주 소저께서는 크게 괘념치 마시고, 모든 일이 끝날 때까지 쉬다가 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