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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운객잔-112화 (112/203)

<휘운객잔 112화>

곽휘운은 아버지인 곽호연에게 신혜설에 대한 진실을 듣고 난 후, 객잔을 뛰쳐나와 무림맹으로 향했다.

‘내가 인정받아, 아버지를 다시금 바라보게 만들겠어.’

곽휘운은 신혜설이 아버지를 다시금 보게 하기위해 무림맹에 들어간 것이었다.

자신이 인정받으면, 아버지를 다시 볼 것이라 생각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자신이 무림맹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신혜설은 조금도 아버지를 봐주지 않았다.

아니, 아예 관심조차 없는 듯싶었다.

그래도 곽휘운은 자신이 더 노력하면, 반드시 돌아봐 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아버지의 죽음.’

곽휘운이 무림맹에 가 있는 동안 곽호연은 병을 얻었고, 결국 오래지 않아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리고 곽호연의 장례가 있는 날까지 신혜설은 모습은커녕 그 어떤 소식도 전해 오지 않았다.

‘어머니라 인정하지 않겠다.’

곽휘운은 더 이상 신혜설을 어머니라 인정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럼에도 가슴 속 깊은 곳에는, 아직까지 미련이 남았지만 말이다.

* * *

“그렇다면, 다른 객잔으로 가십시오.”

곽휘운은 휘운객잔에서 묵어야겠다는 신혜설에게 다른 객잔으로 갈 것을 요청했다.

최근 많은 사건으로 객잔이 많이 사라진 항주였지만, 그래도 아직 객잔은 차고 넘쳤다.

“나는 이곳에서 묵기로 정하였다.”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이 말하는 신혜설.

“휘운객잔에 당신이 지낼 곳은 없습니다.”

그에 맞서 곽휘운 마저도 더없이 냉랭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탓.

그때 마차에서 하나의 인영이 더 나타났다.

마치 하얀 눈과 같이 새하얀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여인.

피부 또한 마치 눈과 같이 하얗고 투명했다.

“감히 궁주님에게 무례를 저지르다니, 궁주님의 핏줄이라 해도 참을 수가 없군요.”

마차에서 내린 여인은 신혜설의 뒤를 이어 북해의 빙궁의 궁주가 될 재목이었다.

북해의 꽃 백설화 주연희.

그녀는 이번 무림행에 신혜설을 따라 수행을 하기 위해 따라온 참이었다.

“궁주님에게 범한 무례는 빙궁을 욕보인 것. 용서할 수 없습니다.”

주연희는 지금 곽휘운의 모습을 용서 할 수 없었다.

신혜설은 빙궁의 모든 것이자, 자신에게는 부모님 이상의 존재였다.

그런 신혜설을 모질게 대하는 곽휘운을 두고 볼 수 없었다.

곽휘운이 아무리 신혜설의 피를 이어받았다고 해도 말이다.

사아아아악.

주변에 퍼지는 소름끼치는 한기.

쩌적. 쩌저저저적.

엄청난 속도로 주변을 얼리며, 곽휘운에게 한기가 덮쳐왔다.

“그럼 더한 무례를 당하기 전에, 다들 돌아가십시오.”

콰차차차창!

곽휘운의 한기에 얼어붙었던 얼음과 주연희에 의해 얼어붙었던 얼음이 동시에 깨져 나갔다.

휘우우우우.

일순간 주변을 덮치고 있던 하기가 모두 날아갔다.

“이 이상 객잔의 영업을 방해하지 말고 다들 돌아가십시오.”

곽휘운은 지금 객잔 앞에서 자신이 너무나 흥분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주변을 모두 잠식한 얼음을 없애 버렸다.

이 한기와 얼음에 손님들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

주연희는 지금 곽휘운이 자신의 한기를 모두 없앤 것에 상당히 놀랐다.

조금 전 곽휘운이 뿜어낸 한기에도 꽤나 놀랐었는데, 그 정도 한기는 자신도 충분히 뿜어낼 수 있었기에 그러려니 하였다.

하지만 순식간에 한기를 모두 없애 버린 곽휘운의 기운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천해한빙공(天海寒氷功)’으로 만들어낸 한기를 이토록 가볍게 없애 버리다니?

특수한 무공이나, 압도적인 내공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실력이 대단하구나.”

신혜설은 곽휘운의 힘에 감탄했다.

주연희의 빙공에 대한 성취는 신혜설 자신도 놀랄 정도로 뛰어났다.

아주 조금의 시간만 흐른다면 분명 자신도 넘을 것이라 장담할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그런 주연희가 발산한 한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순식간에 와해시켜 버렸다.

“당신에게 칭찬받고 싶지 않습니다. 돌아가십시오.”

곽휘운은 계속해서 신혜설을 이만 돌려보내려 했다.

모순된 마음.

신혜설에게 인정받고자 시작한 객잔이건만, 막상 이렇게 신혜설을 보니 아버지가 떠올라 아파진 마음 때문에, 신혜설을 보기 싫었다.

“마차는 저쪽에 두시면 되고, 자리가 있으니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그때 누군가 객잔에서 나와 신혜설을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였다.

“총관님!”

“객주님. 저분들은 제 손님들이니, 제가 모실게요.”

* * *

백리화는 객잔 안에서 곽휘운과 신혜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신혜설이 곽휘운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쩐지. 그래서 곽 객주님의 무공에 한기가 있던 거구나.’

무공에 한기(寒氣)와 화기(火氣)같은 것을 담는 다는 것은, 무공의 특성만으로는 일정 수준 이상은 힘든 일이었다.

재능의 영역.

곽휘운이 엄청난 한기를 다룰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북해빙궁 궁주의 피가 흐르기 때문인 듯싶었다.

‘뭔가 오해가 있을 거야.’

백리화는 곽휘운과 신혜설 사이에 분명 오해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주제넘은 짓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곽휘운이 여기서 신혜설과 영원히 관계가 틀어지는 것은 보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 모두를 일찍 떠나보낸 백리화이기에, 곽휘운만큼은 자신과 같지 않기를 바랐다.

“제가 그래도 총관이니 이 정도 권한은 쓸 수 있죠?”

“……알겠습니다. 다만, 저는 방에서 나오지 않을 겁니다.”

“네. 알겠어요.”

곽휘운의 허락을 받아 낸 백리화.

곽휘운은 그대로 몸을 돌려 객잔 안으로 휑하니 들어가 버렸다.

“일단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래. 고맙구나.”

백리화는 빙궁 일행을 객잔으로 인도했다.

당연히 특별한 손님들이기에, 가장 좋은 별실로 자리를 안내했다.

“너가 백리세가의 아이인 백리화구나 맞지?”

“네. 맞습니다.”

신혜설은 백리화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곽휘운에 대한 정보들은 최근에도 빼놓지 않고 듣고 있는 그녀였으니 말이다.

“좋은 아이구나. 휘운이와 혼인을 해도 되겠어.”

“네? 아, 아닙니다. 저, 저는…….”

“호호.”

혼인이라는 말에 당황하는 백리화를 보며 미소 짓는 신혜설.

하지만 이내 씁쓸한 눈빛으로 바뀌었다.

어머니로서 혼인에 대해 논하기에는 너무나 사이가 틀어져 버렸다.

“일단 음식을 내오겠습니다.”

* * *

빙궁 일행이 식사를 하는 시간.

백리화는 곽휘운이 있는 객주실을 찾았다.

똑똑.

“객주님. 들어가도 될까요?”

“네. 들어오십시오.”

객주실에 앉아 평소와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곽휘운.

하지만 백리화는 곽휘운의 두 눈이 평소와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아채었다.

역시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을 터였다.

“객주님은 어째서 그렇게나 어머님을 미워하시는 거예요?”

“……아버지 생각이 나서 그렇습니다.”

“아버지가 열렬히 사랑했던 분이면, 미워하면 안 되는 것 아닐까요?”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도, 그리고 돌아가셨을 때도, 단 한 번도 얼굴을 비추지 않은 사람입니다.”

“분명 어머니도 괴로우셨을 거예요. 이유가 있으셨을 거예요.”

곽휘운의 아버지가 항상 곽휘운에게 해 주었던 말이 있었다.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곽휘운은 이유가 있더라도,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곽휘운은 신혜설을 무림맹 멸마대에 들어가서야 처음으로 보았다.

임무를 위해 북해에 갔을 때 말이다.

그때 곽휘운은 신혜설에게 왜 아버지를 만나러 오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리고 들려온 대답에 곽휘운은 크게 실망을 하였다.

‘북해를 이끄는 궁주의 자리는 그렇게 한가한 자리가 아니다.’

당연히 한가한 자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조금의 시간도 낼 수 없는 자리는 아닐 터.

곽휘운은 신혜설이 진심으로 아버지를 생각지 않기에 나타나지 않은 것이리라 생각했다.

“이야기를 한번 나눠 보시는 건 어때요?”

“……싫습니다.”

“객주님도 어머니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이렇게 열심히 사신 거잖아요?”

곽휘운은 백리화의 권유에 조금 마음이 흔들렸다.

지금까지 곽휘운이 했던 모든 일들은 신혜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신혜설에게 인정을 받아, 아버지도, 자신도 그녀에게 다시 보이고 싶어서 말이다.

“제가 보기에는 객주님도, 어머님도 표현을 못하시는 분들인 것 같아요. 하지만 서로의 대화가 없이 이렇게 속으로만 앓으면서 알아주기를 바란다면,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을 거예요.”

“…….”

“객주님이 먼저 다가가 이야기를 나누어 보세요. 그리고 그 후에 다시 생각해도 늦지 않을 거예요.”

백리화가 본 곽휘운과 신혜설은 분명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둘 다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모르고, 속으로만 앓으면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표출하며, 알아봐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자리를 만들어 볼게요.”

* * *

본래 공동파가 있던 곳에 자리를 잡은 천마신교의 세력.

천마와 소천마 그리고 서열 1위부터 100위까지의 무인들.

물론 모든 이들이 이곳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몇몇은 무림에 나오자마자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무림 이곳저곳으로 흩어졌으니 말이다.

“향초아가 죽었다?”

“예.”

천마는 향초아가 죽었다는 교마의 보고에 조금 의외라는 반응을 보내었다.

나름 천마신교에서 서열 21위를 했었던 향초아다.

정도 무림에 그녀를 이길 만한 이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많지도 않을 터.

과연 누가 그녀를 죽였는지 궁금했다.

“제가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곽휘운이라는 자가 죽였다고 합니다.”

“호오? 우리 석종이만큼 젊은 무인이라 하지 않았나?”

“예. 맞습니다.”

“정파에도 그런 인재가 있었군. 역시 무림이란 곳은 재미있는 곳이야.”

천마는 즐겁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데, 언제나 상상을 뛰어넘는 자들이 나타난다.

그래서 무림은 재미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그 곽휘운이라는 자가 어디에 있다고 했지?”

“항주입니다.”

“꽤 멀군. 직접 가기에는 말이야.”

“예. 그런데 벌써 항주로 달려간 자가 한 명 있습니다.”

“누가 벌써 그렇게 달려간 건가?”

“서열 43위인 방위준입니다.”

“43위? 향초아 보다도 낮군 그래.”

향초아의 서열을 21위.

43위라면 향초아 보다도 한참 아래였다.

“이번에 교주님의 말씀 때문에 서열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천마가 서열 100위까지만 무림에 나갈 수 있다고 하자, 마교 내에서는 100위안에 들기 위해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존의 서열이 꽤나 많이 뒤바뀌었다.

힘을 숨긴 이들이 대거 나타났으니 말이다.

방위준도 바로 그중 하나였다.

“지금 43위라면, 향초아보다도 조금 더 강할 겁니다.”

“그래? 흠. 내가 직접 재미를 보고 싶었는데, 재미를 빼앗길지도 모르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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