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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운객잔-111화 (111/203)

<휘운객잔 111화>

백리세가 식구들은 곽휘운에게 받은 단약을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무공에 무자도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이 단약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듯한 모습.

정말 이런 것을 받아도 되나 싶었다.

“여러분이 강해져야 제가 편해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다들 어서 드십시오.”

이번에는 황중식과 팽현옥, 소정, 소윤도 모두 단약을 섭취했다.

그들이 당장에 전력에 도움이 되지는 못할지 몰라도, 위급 상황에서 충분히 도망칠 수 있는 힘이라도 만들어야 했다.

화아아악!

동시에 단약을 섭취한 백리세가 식구들의 몸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들이 휘돌기 시작했다.

곽휘운은 소정, 소윤 자매의 운기를 도와주면서, 다른 식구들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다들 잘 흡수하고 있군.’

다들 지닌 기운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것이 보였다.

물론 보통이라면 이렇게 급격하게 늘어나면 주화입마에 빠질 위험도 커진다.

하지만 곽휘운이 준 단약은 곽휘운이 정제를 시킨 것이기에, 그런 부작용을 완전히 줄였다.

후우우웅.

물론 똑같은 단약을 섭취했음에도 각자가 얻을 수 있는 내공의 양은 달랐다.

각자가 가진 내공의 양도 틀리고, 각자가 가진 무공도 달랐다.

그리고 각자가 가진 체질과 깨달음도 달랐다.

그러니 당연히 같은 단약을 먹어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역시 백리 가주님인가.’

[그래. 본좌가 보기에도 분명 대단하다. 아마도 타고난 체질이 있을 것이다.]

백리화는 곽휘운이 단약에 주입한 내공을 남김없이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내고 있었다.

단약에 있는 모든 힘을 자신의 것으로 남기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는데도 말이다.

이것은 정말 재능의 영역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었다.

“이제 문제는 무공들이군.”

내공이 늘어난 만큼 그에 따라 무공도 강해져야 한다.

내외의 조화가 어우러져야 완전해지는 것이니 말이다.

* * *

무림맹의 지원 요청에 북해의 빙궁이 먼저 무림에 당도했다.

달그락. 달그락. 달그락. 달그락.

일견 보기에도 위용이 넘치는 팔두(八頭)마차.

주변에 수많은 무인들이 마차를 호위하고 있었는데, 그 기세가 가히 범상치 않았다.

한 명, 한 명이 모두 날카롭고 차가운 기세를 뿌리고 있었는데 최소 절정은 넘은 무인들 같았다.

“어서 오십시오. 무림맹주 위강천입니다.”

위강천이 앞장서서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나왔다.

덜컥. 스으윽.

마차가 멈춰서고 천천히 문이 열렸다.

그 안에서 내리는 한 명의 여인.

그녀가 나타나자 주변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하아…….”

위강천과 함께 나온 무림맹 인원들의 입에서 입김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내공을 끌어 올렸음에도 몸을 파고드는 한기.

위강천은 그 모습을 보고 자신의 기운을 주변에 뿌려서 무림맹 인원들을 보호했다.

그제야 한기가 가신 무림맹 인원들은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때 들려오는 무감정하지만 너무나 매력적인 목소리.

“오랜만에 뵙습니다, 위 맹주님.”

“예. 빙궁의 궁주님. 정말 오랜만입니다.”

마차에서 내린 여인의 정체는 빙궁의 궁주인 신혜설이었다.

중년의 나이를 넘어선 그녀였지만 피부는 눈처럼 새하얗게 빛나고 있었고, 머릿결은 비단처럼 고왔다.

그녀가 누구인지 모르고 본다면, 절대로 중년의 나이로는 생각지 못할 미모였다.

“안으로 들어가시겠습니까?”

“아니요. 그 전에 한 곳 다녀올 곳이 있습니다.”

무림맹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다녀올 곳이 있다고 말하는 신혜설.

위강천은 곧바로 그곳이 어디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항주로 가는 길잡이를 붙여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제 심복 둘만 데리고 가고, 남은 이들은 이곳에 두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일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위강천은 곧바로 신혜설에게 사람을 붙여 주었고, 신혜설은 지체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멀어지는 빙궁의 마차를 바라보는 위강천.

‘음. 일이 어찌 될련지.’

* * *

곽휘운은 매일 매일 백리세가 일행들의 무공을 손봐 주었다.

다들 재능이 있어서 그런지,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 갔다.

곽휘운의 지금 평가로는 정말로 웬만한 무림 문파들쯤은 상대가 안 될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될까?’

곽휘운이 본 풍마전과 사마적 그리고 향초아.

그들의 힘은 분명 상상 이상이었다.

게다가 지금 마교가 준동해 무림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는 상황.

그런 이들이 얼마나 더 튀어나올지 몰랐다.

‘지금은 일단 계속 강해지는 수밖에.’

곽휘운이 모두를 지키겠지만, 이들 스스로도 힘이 필요했다.

얼마나 더 많은, 더 강한 이들이 나타날지 예상을 못하니 말이다.

“객주님, 저기 뭔가 엄청난 분들이 오시는 거 같아요.”

앞으로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던 곽휘운에게 다가와 이야기를 하는 백리화.

백리화의 말처럼 객잔을 향해 엄청난 위용의 팔두마차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 마차를 바라보는 곽휘운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지금까지 곽휘운이 보여 준 적 없는 모습.

이렇게 동요하는 곽휘운을 처음 보는 백리화였다.

휘익.

곽휘운이 바람처럼 튀어나갔다.

백리화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말이다.

백리화는 그런 곽휘운의 뒷모습을 놀랜 눈으로 바라보았다.

‘객주님의 저런 표정 처음 봤어.’

백리화를 스쳐 지나갈 때 아주 잠깐 보았던 곽휘운의 표정.

그것은 너무나 많은 감정을 담고 있는 표정이었다.

분노, 슬픔, 당황 등.

그동안의 곽휘운에게 상상도 할 수 없는 표정.

백리화는 도대체 저 팔두마차가 무엇이기에 곽휘운이 저러는 것인지 궁금했다.

* * *

히이이이잉.

휘운객잔을 향해 다가오던 팔두마차는 갑자기 나타난 인영 때문에 급하게 멈춰 섰다.

“뭣 하는 것이냐!”

마차를 이끌고 있던 빙궁의 무사가 소리쳤다.

“마차를 멈추십시오.”

쿠우우우우웅.

쩌저저저저적.

마차를 가로막은 인영의 몸에서 엄청난 기세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마차가 얼어붙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자신은 빙궁의 무사였고, 이 마차는 빙궁의 마차였다.

한기에는 이미 완전히 적응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이 한기에는 조금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마차를 끌던 빙궁의 무사는 내공을 계속해서 끌어올렸지만, 조금도 한기가 나아지지 않았다.

끼이익.

얼어붙은 마차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 있던 마차의 주인이 직접 모습을 드러내었다.

“오랜만이구나, 아들아.”

“저는 단 한순간도 당신의 아들인 적이 없었습니다.”

마차의 주인은 당연히 빙궁의 궁주인 신혜설이었고, 마차를 막은 인물은 조금 전 휘운객잔에서 달려 나온 곽휘운이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말이란 말인가?

어째서 신혜설이 곽휘운을 아들이라 부른단 말인가?

* * *

신혜설이 예전 무림에 나왔을 때였다.

그녀는 빙궁의 궁주가 되기 직전, 마지막 일탈을 위해 빙궁을 빠져나온 길이었다.

그녀는 무림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라는 항주까지 발걸음을 옮겼고, 그곳에서 곽휘운의 아버지인 곽호연을 만났다.

‘자, 소저. 이것을 한번 드셔 보십시오.’

돈을 얼마 들고 오지 않은 신혜설은 주린 배를 움켜쥐고 객잔에서 소면 하나를 시키며 아껴 먹고 있었는데, 그때 곽호연이 따뜻한 음식을 더 내어 주었다.

신혜설은 감사를 표하며 그 음식을 맛있게 먹었는데, 그 모습을 곽호연이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렇게 음식을 먹고 난 뒤 신혜설은 은혜를 갚겠다며, 곽호연이 운영하는 객잔에서 잠깐 동안 일을 도와주었는데, 그때 서로 눈이 맞았다.

곽호연은 신혜설이 만났던 누구보다 세심하고 다정한 남자였다.

그 모습에 신혜설과 곽호연은 운우지정을 나누었고, 그 결실을 맺었다.

팍팍한 빙궁의 생활에 질려 버렸던 신혜설은 그렇게 곽호연과의 달콤한 일상에 취해 항주에 남기로 하였다.

빙궁은 자신이 돌아가지 않아도 물려받을 이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신혜설의 착각이었다.

‘신혜설을 찾아라.’

빙궁에서 나온 무인들은 무림을 이 잡듯이 뒤져 결국 신혜설을 찾아 내었다.

그리고 곽호연과 둘 사이에 낳은 아이인 곽휘운을 죽이려 하였다.

‘둘을 죽인다면 나도 죽겠어요.’

따라서 죽겠다는 신혜설의 서슬 퍼런 협박에 결국 빙궁이 한발 물러섰다.

‘네가 궁주가 될 때까지 다시는 이들을 보지 않겠다면, 이들을 살려 두겠다.’

거절할 수 없는 빙궁의 제안.

결국 신혜설은 그렇게 둘을 놓아두고 빙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빙궁의 궁주가 되어서 다시금 돌아오려고 했지만, 그때는 이미 곽호연이 죽은 후.

신혜설은 곽휘운을 위해서라도 자신이 더 이상 나서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완전히 둘에게 정을 끊은 것처럼 행동했다.

물론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곽휘운에 대해 보고는 받았지만 말이다.

* * *

마차에서 나온 신혜설은 마차를 막은 곽휘운을 바라보았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곽휘운이었다.

“너의 핏줄을 부정하는 것이냐?”

“나의 아버지는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아버지를 버리고 떠난 당신은 부정합니다.”

너무나도 차갑고 분노에 가득 찬 곽휘운의 목소리.

지금 곽휘운의 두 눈은 신혜설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는데, 두 눈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나도 너에게 인정을 받고 싶지는 않다. 다만 내가 사랑했던 사람의 핏줄이니 보러 왔을 뿐이다.”

“사랑? 정말로 사랑하셨습니까? 그런데 왜 얼굴 한 번 비추지 않았습니까?”

“빙궁의 궁주는 그리 한가한 사람이 아니다.”

“당신은 언제나 그런 식입니다.”

곽휘운의 두 눈이 이번에는 분노와 실망을 물들어 갔다.

신혜설은 언제나 저런 식이었다.

그리고 그런 신혜설을 곽휘운은 조금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하기 싫었다는 것이 맞을 터였다.

눈 앞에 쓸쓸히 눈을 감은 아버지의 모습이 계속해서 떠올랐으니 말이다.

“이만 돌아가십시오. 보기 싫습니다.”

“아니. 나는 오늘 이곳에서 꼭 묵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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