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106화>
곽휘운이 과거 이야기를 백리화에게 해 주고 있을 때였다.
쾅!!!
객잔에서 들려오는 강렬한 소리.
“음?”
“무슨 소리죠?”
“잠시만 다녀오겠습니다.”
곽휘운은 재빨리 객잔으로 몸을 움직였다.
객잔에 다가갈수록 진해지는 매캐한 화약 냄새.
“객주님!”
남주학이 다급한 얼굴로 곽휘운을 불렀다.
“무슨 일이냐?”
“누가 객잔 앞에다가 화탄을 터트렸어요.”
휘운객잔으로 들어오는 입구.
그 앞에 선면하게 화탄이 터진 흔적이 남아있었다.
다행히 객잔에는 피해가 없었고, 다친 사람도 없었지만, 이미 주변 사람들은 모두 공포에 질려 있는 상황.
휘이익.
그때 방금 전 화탄이 터진 장소로 화살 하나가 날아와 박혔다.
화살에는 쪽지 하나가 묶여 있었는데, 곽휘운은 바로 그 쪽지를 풀어 읽어 보았다.
‘선물은 마음에 들었느냐? 한 달 후 정오까지 ’사마세가‘로 오거라. 그렇지 않으면, 객잔 안으로 선물을 보낼지 모르니.’
명백한 협박.
곽휘운이 찾아가지 않는다면, 객잔 내부에서 화탄을 터트리겠다는 협박이었다.
‘갈 수밖에 없군.’
저들이 작정하고 화탄을 숨겨서 객잔 안에 터트린다면, 문제가 커졌다.
물론 일반인이 있는 객잔에서 그런 짓을 했다가는 관에게도 쫓기게 되겠지만 말이다.
“주학아. 일단 손님들에게 죄송하다고, 술 한 병씩 돌리고, 수상한 사람이 없는지 잘 감시해라.”
“네. 알겠어요.”
* * *
흑룡상단에서 터진 혈사.
수많은 무인이 죽고, 다친 이 사건의 주동자로는 당연히 흑룡상단이 지목되어졌다.
하지만 사람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흑룡상단은 오히려 피해자고, 새로운 주동자들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사마세가와 공동파.
그들은 흑룡상단이 내놓은 부상이 탐이 나서 그들이 공동으로 만든 ‘혼천멸혼진(混天滅魂陳)’을 이용해 어지러워진 틈을 타 부상을 탈취해 달아났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를 반증해 주듯 사마세가와 공동파는 동시에 봉문을 하고, 흑룡상단이 내걸었던 부상들도 모두 사라졌다.
하지만 두 문파 모두 봉문을 한 채로 입을 닫고 있는 상황이라, 진실이 어느 것인지는 판별할 수 없었다.
무인을 잃은 수많은 문파와 세가들이 사마세가와 공동파를 직접 벌하겠다며 움직이려 하고 있었고, 이를 무림맹이 만류하고 있는 상황.
덕분에 지금 무림맹은 또 다시 분열의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맹주님.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요?”
“흐음…….”
무림맹주 천무제 위강천은 지금 깊은 고민에 빠졌다.
무림 곳곳에서 분열의 조짐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었다.
이번에 흑룡상단이 내건 생사회에서 죽거나 다친 이의 복수를 위해 문파, 가문, 개인의 복수가 끊이지를 않고 있었다.
“거기에 다가 지금 신강에 있는 마교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고 합니다.”
정천맹이 마교의 소행이라는 결말이 나고, 마교에 대한 감시를 더욱 더 철저하게 한 무림맹.
그리고 최근 잠잠하던 마교 내부에서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다는 보고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 두 곳을 공적으로 벌할 증거가 없지 않은가?”
여러 정황은 그들이 범인이라는 것을 가리켰지만, 정확한 증거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중립을 지켜야 할 무림맹이 어느 한 곳을 일방적으로 지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사마세가와 공동파 모두 무림맹의 일원이었으니 말이다.
두다다닥.
그때 누군가 밖에서 다급하게 뛰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드르르륵. 쾅.
거칠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무림맹의 문사 한 명.
그의 얼굴에는 지금 다급함이 가득했다.
“무슨 일인가?”
“이번 생사회에서 무인을 잃은 문파들이 일제히 무림맹 탈퇴를 선언하고 있습니다.”
“뭐라?”
“그들은 무림맹을 나가 독자적으로 사마세가와 공동파에 죄를 묻겠다고 합니다.”
“이런.”
결국 우려하던 일이 일어났다.
분열의 시작.
마교가 심상치 않은 모습을 보이는 지금, 이런 분열은 반갑지 않았다.
* * *
백리화도 천소소도 모두 기운을 차렸다.
그리고 곽휘운은 천소소, 남궁태산과 함께 강서성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마세가랑 그 놈들 모두 족친다.”
남궁태산은 지금 눈에서 불을 뿜고 있었다.
사마세가가 강서천가를 괴롭히고, 사마적이 천소소를 괴롭혔다는 것이 용서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 곽휘운이 사마세가로 갈 때 동행하기로 하였다.
“도착했습니다.”
밖에서 도착했다는 이야기가 들렸고, 마차에서 내리자 눈앞에 거대한 문이 하나 보였다.
‘강서천가.’
강서성에서 나름 큰 세력을 가지고 있는 곳으로, 오래된 역사를 지닌 명문세가였다.
끼이이익.
거대한 문이 열리며, 안에서 두 사람이 빠른 걸음으로 곽휘운 일행에게 다가왔다.
“소소야!”
그 중 중년의 미부인은 울음기 가득한 얼굴로 다가와서는 와락 천소소를 안았다.
“어머니. 저 괜찮아요.”
중년 미부인은 천소소의 어머니인 황보란이었다.
그녀는 흑룡상단으로 갔던 하나뿐인 딸이 혹여 잘못되었을까 노심초사 했었는데, 이렇게 얼굴을 보니 그나마 안도했다.
그리고 황보란의 옆에 서있는 중년인.
“그래. 이렇게 돌아와 주어 고맙다.”
따뜻한 눈빛과 따뜻한 목소리.
무림에서 정심검(正心劍)이라고 불리는 천소소의 아버지 천후철이었다.
“아. 이런 손님이 계시는데, 우리가 추태를 보였군.”
천소소와 해후를 나누던 천후철은 그제야 남궁태산과 곽휘운을 보고 인사를 해왔다.
“안녕하신가. 나는 강서천가의 가주를 맡고 있는 천후철이라 하네.”
“숙부님. 저 태산입니다.”
“으음? 허허. 그 아이가 이렇게나 컸군 그래. 최근 네 무명은 잘 듣고 있다.”
“안녕하십니까. 곽휘운이라 합니다.”
“아! 이번에 우리세가를 도와준 은인이셨군. 정말로 고맙네.”
곽휘운이 인사를 하자, 손을 잡으며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천후철.
이미 흑룡상단에서 있던 일들을 전해들었던 천후철이었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어마어마한 자금을 보내준 이가 바로 곽휘운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덕분에 사마세가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니, 감사의 인사를 몇 번이고 해도 부족하지 않았다.
“이 은혜는 반드시, 반드시 갚겠네.”
“하하. 천천히 갚으셔도 됩니다.”
그렇게 인사를 나눈 일행은 일단 강서천가 안으로 들어갔다.
‘흠. 고풍스럽고, 과하지 않군.’
곽휘운이 강서천가에 들어가서 본 소감이었다.
보통의 거대 세가나 문파를 가보면 힘의 과시를 위해 과한 모습을 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강서천가의 전각들과 주변 물건 하나하나가 전부 과하지 않으면서, 고풍스러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곽휘운이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명문 세가의 모습이었다.
“자자. 먼 길 오느라 피곤했겠는데, 일단 식사 전까지 쉬고 있게.”
“예.”
간단하게 차를 한잔 마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후, 저녁 식사 전까지 잠시 쉴 곳을 안내 받았다.
그렇게 곽휘운은 잠시 방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였다.
‘객잔에 있는 시간보다 나와 있는 시간이 더 많군.’
물론 백리화가 있으니, 믿고 나올 수 있는 것이겠지만, 객주란 사람이 너무 자리를 자주 비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일이 끝나면, 객잔에 더 신경을 써야겠어.’
최근 끊임없이 일어난 일들에 곽휘운은 정신이 없었다.
무언가 하나가 끝이 나면, 더 큰 일이 찾아오고 있다.
‘내가 일을 몰고 다니는 원흉인가 보군.’
곽휘운은 아무래도 자신이 그런 팔자를 타고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항주에 내려오니, 항주가 계속해서 난리 통이 되고 있었다.
‘이대로면, 항주에 마교가 통째로 이사 오는 건 아닌지 모르겠군.’
곽휘운은 혼자 실없는 생각이라고 생각하며, 잠시라도 몸을 뉘이기 위해 침상에 막 몸을 눕혔을 때였다.
쾅.쾅.쾅.
누군가 거칠게 정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 멀리까지 울리는 소리라면, 내공을 실어서 문을 두드리는 것일 터.
‘좋지 않군.’
곽휘운은 곧바로 좋지 않은 예감이 드는 것을 느꼈다.
불청객이 아닌 이상에야 누가 정문을 저렇게 두드린단 말인가?
‘나가봐야 하나?’
하지만 이곳은 강서천가다.
자신은 외부인이고 말이다.
괜히 끼어드는 것은 주제넘은 짓일 수 있었다.
“천 가주 나오시오!!”
강서천가 전체를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
내공이 가득실린 목소리에, 몸을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가 보자.”
그때 옆방에 있던 남궁태산도 모습을 나타내었다.
남궁태산이 곧바로 발걸음을 옮기고, 뒤를 곽휘운이 따랐다.
정문 앞으로 가자, 천후철과 한 중년인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제 사마세가와는 볼일이 없다고 하지 않았소.”
“하! 우리가 지금은 잠시 봉문을 하고 있지만, 곧 다시 몸을 일으킬 것이다. 처신을 잘하는 게 좋을 거요.”
“사마세가에 빚은 다 갚지 않았소.”
“그저 돈만 주고 빚을 갚았다? 강서천가도 완전 도둑놈이었군 그래.”
“……오늘은 이만 돌아가시오. 손님들이 와 있으니.”
“흥. 처신을 잘 하라고.”
휑하니 몸을 돌려 사라지는 중년인.
이야기를 들어보니, 사마세가 측 사람인 듯싶었다.
남궁태산은 장인이 될 사람인 천후철에게 막 대하는 사마세가 사람을 당장이라도 죽일 듯 노래보고 있었다.
“저, 저…… 확!”
“가만히 있으시게. 일 키우지 말고.”
곽휘운이 그런 남궁태산을 제지했다.
지금 남궁태산이 여기서 나서 봐야 분명 일만 커질 것이다.
“이런. 손님들 앞에서 못난 모습을 보였군 그래.”
그때 천후철이 곽휘운과 남궁태산을 발견하고는 약간은 침통한 목소리로 말을 하였다.
“숙부님. 무슨 일입니까?”
“허허. 아닐세. 이건 우리와 사마세가간의 일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말을 하는 천후철의 눈이 씁쓸한 빛을 하고 있는 것을 곽휘운은 놓치지 않았다.
‘분명 돈은 모두 갚았을 것인데?’
곽휘운과 금룡남가에서 지원해 준 금액은 분명 돈을 갚고도 남을 만큼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야기를 들어보면, 무언가 더 일이 있는 듯싶었다.
“숙부님. 말씀해 주십시오. 저희가 힘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예. 저희가 이번에 이곳에 온 이유가 사마세가 때문이니, 무언가 일이 있으시다면 듣고 싶습니다.”
남궁태산과 곽휘운이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하자, 천후철은 약간 고심을 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일단 자리를 옮기세나.”
천후철이 집무를 보는 곳으로 자리를 옮긴 셋.
따뜻한 차와 다과가 내어져 오고, 천후철이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분명 사마세가와의 금전적 관계는 완전히 끝이 났네. 그런데 최근에 전혀 다른 이유로 우리를 찾아와서 저렇게 협박을 하고 있는 상황이네.”
“어떤……?”
“사마세가가 조만간 새로운 세력을 만들 테니, 그곳에 들어오라고 하고 있네.”
‘새로운 세력?’
하나의 세력이 나타나려면 그만한 이유나, 힘이 있어야 한다.
정천맹은 썩은 무림맹을 도려내겠다는 이유로 많은 문파들의 지지를 받아 탄생을 한 곳.
지금 사마세가는 지지는커녕 오히려 수많은 문파들의 공적으로 낙인찍힌 곳이다.
그런데 새로운 세력을 만든다니?
‘그렇다면, 그만한 힘이 있다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