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휘운객잔-103화 (103/203)

<휘운객잔 103화>

* * *

안휘성.

굳건히 자리잡아오던 남궁세가가 멸문을 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혈교에 붙은 사마세가가, 멸문당한 남궁세가의 빈자리를 꿰차고 앉았다.

남궁세가의 흔적들은 빠르게 지워지고, 곳곳이 사마세가의 이름으로 채워져 나갔다.

혈교를 등에 업은 사마세가는 거칠 것이 없었고, 자신들을 따르지 않는 중소방파들을 모조리 죽이고 안휘성을 잠식했다.

대 사마세가.

피의 숙청을 본 이들은 혹여 그들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그들을 추켜세우면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다.

남궁세가의 근처에 도착한 곽휘운 일행.

“흠…… 너무 조용한데?”

곽휘운가 남궁세가 근처에 와서 처음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분명 오랜 기간 자리 잡던 남궁세가가 무너지고, 혈교 같은 세력이 자리를 잡으면 많은 소요가 일어나기 마련인데, 마을은 지나치게 조용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이, 일단 세, 세가로.”

남궁소소는 남궁세가의 근처에 왔을 때부터 당장 세가로 달려가고 싶어 했다.

그녀는 지금 당장 세가를 보지 못하면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말을 더듬으며, 눈빛이 지진이 난 듯 흔들리는 것을 보니 그녀의 마음이 어떨지 짐작이 갔다.

하지만 지금 이 상태로 갔다가는 분명 좋지 않은 상황이 벌어질 것이 뻔했다.

“저희 셋이 먼저 가 볼 테니, 남궁 소저는 나머지 분들이랑 객잔에 들어가서 쉬고 계세요.”

“저, 저도…….”

“소소. 믿고 기다려줘.”

“그, 그…… 네…….”

곽휘운은 위무악, 풍호혁과 함께 먼저 남궁세가에 가보기로 했다.

남궁소소는 자신도 같이 가고 싶었지만, 위무악의 만류에 같이 가는 것을 포기했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가면 방해가 된다는 것을 말이다. 지금은 너무나 보고 싶어 미칠 것 같아도 잠시 참을 때였다.

“어르신 일행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 걱정 말거라.”

안휘성 근처에 도달했을 때부터 감시가 따라 붙었다.

물론 바로 제거해 버릴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그냥 놔두었다.

감시를 제거해 봐야 더 많은 감시가 붙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이정도 인원이 아무도 모르게 움직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곽휘운은 감시가 붙은 만큼 어떤 일이 생길지 몰라 신풍대에게 잘 보호하고 있으라 말했지만, 그들의 실력을 뛰어넘는 적이 나타날 수도 있었기에 풍진혁에게 정중히 부탁한 것이다.

겉은 평화로워 보일지 몰라도, 이곳은 분명 적지였다.

항상 위험에 대비해야만 했다.

“자, 가자.”

“그래.”

“알았다.”

재빠르게 남궁세가가 있는 곳으로 사라지는 셋.

나머지 일행은 남궁소소의 안내에 따라 근처 객잔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드디어 남궁세가에 도착한 곽휘운 일행.

* * *

남궁세가의 가주실.

이미 전 주인은 죽임을 당한 후였지만, 새로운 주인이 그 자리를 꿰차고 앉아 있었다.

“남궁소소랑 위무악 일행이 이곳에 당도했다고?”

양 옆에는 여인들을 끼고, 거만한 모습으로 말을 하는 사내.

사마세가의 사마청이었다.

남궁세가를 정리한 뒤 사마진은 사마청에게 남궁세가의 관리를 맡겼다.

사마청은 교활한 머리를 이용하여 꽤나 훌륭하게 남궁세가의 모든 것을 잠식했다.

“크크, 뭐 당연히 올 줄 알았지. 게다가 이런저런 맛있는 먹이들도 같이 데려오다니…… 역시 내 것이라 할 수 있겠어.”

더럽고 음침한 웃음.

이 웃음에 옆의 여인들은 몸을 흠칫 떨었다.

그가 이런 웃음을 지을 때마다 꼭 사람이 처참한 꼴로 죽어 나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이 근처 마을 사람들은 아주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지내고 있는 것이었다.

“어차피 그 놈들이 찾아오지 않겠나? 우리는 여기서 그 놈들 맞을 준비를 하면 되겠지.”

“예.”

“아, 그래도 혹시 심심할지 모르니, 애들 몇 명 보내서 좀 놀아드려라. 제일 더러운 놈들로. 크크.”

“실력 좋은 놈들로 몇 명 보내겠습니다.”

“좋아. 그리고 ‘그년’도 내방으로 데리고 와라. 아주 좋은 미끼가 될 거니까.”

“예.”

사마청의 지시를 받아든 사내는 가주실을 빠르게 벗어났다.

가주실에 남은 사람은 사마청과 여인 둘 뿐.

“크크크…… 남궁소소. 네년이 드디어 다시 내 손에 들어오겠구나. 이거 너무 흥분되서 미치겠군.”

자연스레 자신의 것이 될 뻔한 남궁소소였지만, 중간에 위무악의 방해로 얻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 제발로 찾아온 것이다. 그것도 때려죽이고 싶던 위무악과 함께 말이다.

“일단 이것들로 좀 놀고 있어볼까.”

사마청은 음심이 치솟아 오르는 걸 참지 못했다.

남궁소소라는 그 고상한 꽃을 꺾을 생각을 하니 너무나 흥분이 되었다.

사마청의 양 옆에 있던 여인들은 감히 사마청의 손길을 거부하지 못하고, 그의 손과 몸에 놀아났다.

그녀들의 눈에서는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이 하염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들은 사마청이 제발 져주기를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크크크크…….”

하지만 사마청은 그런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벌게진 눈으로 자신의 욕망을 분출할 뿐이었다.

* * *

“잠깐. 멈추시지.”

그때 전 남궁세가 안에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

위무악과 곽휘운, 풍호혁은 물론이고 일사와 이사의 고개도 그쪽을 향해 돌아갔다.

열려져 있는 문으로 보이는 세 명.

이남 일녀의 조합.

그 중 한명을 제외하고 일남과 일녀는 위무악이 익히 아는 얼굴이었다.

“사마청!”

이남 일녀 중 한명의 정체는 바로 사마청이었다.

사마청은 문 쪽에서 싸움이 났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달려 나온 길이었다.

마침 도착했을 때에 이미 싸움은 거의 끝나있을 무렵이었다.

“오랜만이군. 무악 나으리.”

“네놈!!!”

위무악은 불같이 분노했다.

사마청의 옆에 초점 없는 눈동자로 서있는 여인.

전 남궁세가의 안주인이자, 남궁소소의 어머니인 모용혜였다.

그녀는 마치 영혼이 없는 인형같이 땅을 바라본 채로 멍하니 서있을 뿐이었다.

“숙모님! 저 무악이 입니다!”

위무악은 모용혜를 큰 소리로 불렀다.

모용혜는 느릿하게 고개를 들어 위무악을 바라보았고,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무, 무악아…….”

힘없고 가는 목소리.

절로 마음이 아파지는 목소리였다.

“숙모님…….”

“어서 도망치거라…… 여긴 무엇 하러 온 것이냐…… 설마……?”

“남궁세가를 되찾으러 왔습니다.”

“아니 된다! 어서 도망치거라!”

애타는 목소리로 말하는 모용혜.

걱정이 가득 담긴 절규였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제가 지금 구해드리겠습니다.”

검을 들고 달려갈 준비를 하는 위무악.

“그만. 멈춰라. 이 년이 죽는 꼴을 보고 싶지 않으면.”

사마청의 옆에 있는 흑의로 온몸을 감싼 이가 모용혜의 목에 검을 들이대었다.

위무악이 아무리 빠르다 해도 저자의 검보다 빠르지는 못할 터였다.

“나를 구할 생각은 말고…… 그냥 도망치거라…….”

“입 닥치고 있어라 모용혜.”

자신의 어머니뻘이 되는 모용혜에게 거칠게 말을 내뱉는 사마청.

위무악은 물론이고 풍호혁과 곽휘운의 미간도 절로 찡그려졌다.

“거, 말이 너무 심하시네요.”

“말이 심하다? 이 여자는 우리의 전리품이다. 주인이 물건에게 상냥하게 대할 필요가 있나?”

“이 개자식이 진짜!”

위무악이 다시 발끈하며 달려가려고 하자 더욱더 검을 모용혜의 목에 가까이 가져가는 흑의인.

모용혜의 목에서 아주 살짝 피가 흘러내렸다.

그 모습에 위무악은 감히 움직이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분을 낼 수밖에 없었다.

“당신. 정말 마음에 안 드네요.”

“크크. 그렇다고 네 놈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지.”

“왜 없을 것이라 생각하죠? 이렇게나 많은데.”

-쉭.

아주 미세한 파공음.

-땅.

그 찰나의 순간 흑의인이 들고 있던 검이 기이한 충격과 함께 살짝 튕겨져 나갔다.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 움직인 풍호혁.

풍호혁은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모용혜를 품안에 안고 빠져나왔다.

정말 아차 하는 순간에 일어난 일.

위무악은 물론이고 사마청마저도 잠시간 멍해졌다.

“흑영! 뭐하는 것이냐! 쓸모없는 놈!”

정신이 돌아온 사마청은 흑영이라 불린 흑의인을 향해 불같이 화를 내었다.

자신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던 중요한 패를 어이없게 빼앗기고 만 것이었다.

“자, 이제 상황이 많이 바뀐 것 같네요? 그쵸?”

“이익……!!”

이를 악다무는 사마청.

위무악은 당장 사마청에게 달려가려 했지만, 곽휘운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오늘은 이만 가 볼게요.”

“야! 왜!”

“오늘은 인사만 하러 온 거니까 이정도면 되죠? 제대로 된 만남은 다음으로 미룰께요.”

도대체 왜 그냥 돌아가냐는 항의 가득한 위무악의 눈빛을 뒤로한 채로 곽휘운와 풍호혁, 위무악은 모용혜와 함께 일행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네놈들은 절대로 안휘성에서 살아서 나가지 못할 것이다!!”

“그건 두고 봐야 알 일이죠.”

사마청도 바로 무사들을 이끌고 뒤따라가고 싶었지만 당장은 그럴 수 없었다.

분명 자신이 전 남궁세가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실질적인 주인은 따로 있었다.

저 세 명을 잡을 만한 실력의 무인들을 쓰려면, ‘그 분’의 허락이 필요했다.

지금 ‘그 분’은 잠시 남궁세가를 비운 상태였다.

“제길!”

아까웠다.

저들을 자신의 발아래 무릎 꿇리고 남궁소소를 취한다면 정말 기분이 좋았을 텐데……

“뭐가 그리 화가 나지?”

아주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

사마청은 그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자신의 뒤를 바라보았다.

단단한 체격에 각이진 얼굴.

머리는 산발이었는데 마치 사자를 연상시키는 모습이었다.

사내의 특이한 점이라면 얼굴을 가로지르는 십(十)자 모양의 검상이었다.

이 사람이 바로 ‘그분’이었다.

“장로님. 제게 무사들을 빌려 주십시오.”

“음? 방금 전까지 여기 있던 자들을 잡기 위함인가?”

“예. 그들은 분명 저희 교에 크나큰 걸림돌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 분명 큰 적이 될게 분명해. 하지만 그런 것도 있어야 재미있지 않겠나?”

약간은 위험할 정도로 기대감에 반짝이는 눈빛.

그는 분명 곽휘운 일행이 남궁세가를 수복하는데 있어 크나큰 걸림돌이 될 것임이 분명했다.

한동안 곽휘운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고 있던 그는 문 안으로 들어갔고, 사마청은 아직 분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그의 뒤를 따랐다.

둘이 사라지자 바닥에 반쯤 죽어있는 이사와 일사를 세가 안에 있던 또 다른 적의인들이 데리고 세가의 모처로 사라졌다.

다시금 고요해진 남궁세가의 앞.

하지만 이 고요함이 얼마가지 않을 것이란 것을 방금 전 여기에 있던 이들은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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