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102화>
말의 뜸을 들이는 제갈중천.
곽휘운은 어서 말을 하라는 표정으로 제갈중천을 바라보았다.
“혈교가 공식적으로 개파 선언을 했다합니다…….”
“뭐?”
음지에 숨어 있던 혈교가 당당하게 양지로 나온 것이었다.
분명 놀라운 사건이었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무림의 명문 정파 몇이 야습을 받아 멸문 당했고, 몇몇 문파는 혈교의 세력이라고 공식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그 혈교의 공격에 멸문당한 문파 중에…… 남궁세가가 포함되어 있답니다…….”
“뭐!!”
제갈중천의 말에 곽휘운은 물론이고 객잔 안에 있던 모든 이들이 깜짝 놀랐다.
아니, 놀란 것이 아니라 큰 충격을 받은 것이리라……
“정말! 정말 인가요! 정말 남궁세가가…… 남궁세가가…….”
순식간에 달려온 남궁소소.
그녀의 눈과 몸은 지진이라도 난 듯이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제갈중천에게 부디 거짓말이라고 말해달라는 눈빛을 보냈다.
“정……말입니다.”
“안 돼…….”
바닥에 바로 털썩 주저앉는 남궁소소.
그녀의 얼굴은 이미 생기가 없고, 마치 죽은 사람처럼 창백했다.
그리고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소소. 잠깐 쉬고 있어.”
어느새 다가온 위무악은 남궁소소의 수혈을 짚어 잠들게 했다.
그나마 이것이 그녀가 조금 더 편하리라……
“마 부대주.”
“예.”
“지금 당장 남궁세가로 간다.”
“!!…… 하지만, 지금 그곳은 이미 혈교 측에서…….”
“간다고 했네.”
위무악의 눈은 활활 불타고 있었다.
풍학진과의 대결에서 패하고 충격에 빠져있던 모습은 조금도 없었다.
그저 남궁소소의 세가를 멸문시킨 혈교를 벌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물론 혼자 간다면 개죽음을 당할 테지…… 그러니까, 곽휘운. 나 좀 도와줘라.”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도와 달라 말하는 위무악.
흔히 있는 일은 아니었다.
“좋아. 대신 내 몸값 알지? 두둑히 줘라.”
“물론.”
“나도 간다.”
곽휘운와 위무악이 대화를 하는 도중 끼어든 일인.
풍호혁이었다.
위무악은 의아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풍호혁이 갈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혈교를 잡는 건 마교도 마찬가지다.”
“흠…… 뭐, 좋아. 한 명이라도 더 있으면 좋으니까.”
이유야 어찌되었든 실력 있는 사람 한 명이 더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어르신. 어르신께 무공을 배우는 것은 조금 미뤄야 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허허, 미룰게 뭐가 있느냐? 가면서 배우면 되지.”
“예……?”
풍진혁의 말은 자신도 남궁세가가 있는 곳으로 간다는 이야기였다.
“나도 가마. 괜찮겠지?”
“물론입니다. 그래주시면 감사합니다.”
“저희도, 저희도 가겠어요.”
이번에는 위하윤과 남옥영, 그리고 곽혜령이었다.
그녀들도 곽휘운를 쫓아가고 싶었다.
남궁소소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기도 했고, 곽휘운와 떨어져 있기도 싫었다.
“너무 위험해.”
딱 잘라 거절하는 위무악.
그곳은 이미 혈교에 의해 장악된 곳이었다.
여인 세명을 보호하면서까지 싸울 여력이 없을 수 있었다.
“저희도 무인이에요!”
“그치만…….”
“내가 저 아이들은 지켜줄 테니, 같이 가자꾸나.”
풍진혁이 지켜준다면 걱정할 것이 없었다.
이곳보다 차라리 그곳이 더 안전할 수도 있었다.
“감사합니다.”
“허허허.”
이렇게 객잔에 있던 사람들은 남궁세가로 가기로 하였고, 당소향과 제갈중천은 다시 무림맹으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 * *
객잔을 떠나기 위해 나온 일행들.
곽휘운은 길을 떠나기 전에 객잔을 바라보았다.
객잔에 오고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지나왔는지 모를 만큼 바쁜 시간.
떠나있는 동안 허진청에게 객잔을 좀 봐달라고 부탁을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떠나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렸다.
곽휘운은 물끄러미 위하윤을 바라보았다.
분명 위하윤 때문에 위험한 일도 있었고, 곤란한 일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보다 그녀가 자신에게 주는 힘이 더 컸고, 그녀를 위해서라면 그런 일들은 얼마든지 견딜 수 있었다.
위하윤 말고도 남옥영도 곽혜령도 자신에게 다가왔지만, 아직까지 그녀들보다는 위하윤에게 더 마음이 가는 것은 사실이었다.
“네, 괜찮아요. 자자, 더 늦어지기 전에 얼른 출발하죠.”
“네.”
곽휘운은 위하윤이 걱정하지 않게 활짝 미소를 지으며 평소처럼 씩씩하게 말했다.
그녀도 그런 곽휘운의 마음을 알기에 옅은 미소로 화답하며 대답을 했다.
청해성을 떠나는 곽휘운 일행.
안휘성까지의 길이 그리 짧은 길이 아니었기에, 최대한 빨리 도착하기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길어질 것 같은 이번 여행.
과연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떻게 될지는 여기에 있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각자 수많은 생각을 품고 여행길을 떠나지만, 한 가지 생각만은 똑같았다.
부디 여기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무사하기를……
* * *
“끄으윽…….”
“하아……. 하아…….”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과 거친 숨을 연신 토해내는 두 사내.
위무악과 풍호혁이었다.
곽휘운 일행은 지금 안휘성으로 가는 도중이었는데, 가는 중에 풍진혁에게 수련을 받는 중이었다.
본래는 위무악만 받기로 하였는데, 풍호혁도 자신도 받겠다고 하여 둘이 같이 수련을 하는 중이었다.
“클클클. 아직 한참 남았다. 더 열심히 움직이거라.”
위무악과 풍호혁의 손발에는 묵철로 만들어진 족쇄가 채워져 있었고, 딱봐도 엄청 무거워 보이는 쇠몽둥이를 연신 검처럼 휘두르고 있었다.
평소처럼 내공을 사용한다면 이렇게까지 힘들지 않을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모든 내공을 봉인 당한 상태였다.
오로지 근력으로만 버텨야만 하였다.
“짧은 시간에 강해지려면,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것이 가장 좋다. 알겠느냐?”
“예에…….”
“예.”
간신히 대답하는 둘.
얼굴은 이미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져 있었고, 온몸은 이미 땀으로 목욕을 한 상태였다.
과연 이런 수련으로 정말 단기간에 강해질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드는 둘이었지만, 가르침을 내리는 사람이 풍진혁이니 고분고분 말을 따랐다.
그리고 위무악이 열심히 수련을 하는 이유는 바로 남궁소소였다.
그녀는 애써 침착함과 밝음을 보이려하지만, 이미 눈빛이 죽어 있었다.
그녀가 아니라 여기의 누구라도 그녀와 같은 일을 겪는 다면 똑같았을 것이다.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평소와 같은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 더 이상했다.
‘소소……’
위무악은 자신이 지금 어떤 위로를 한다 한들 그녀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걸 알았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지금보다 강해져서 남궁세가를 그렇게 만들어버린 혈교 놈들을 박살내 버리는 것이었다.
이것이 위무악이 남궁소소를 위해 할 수 있는 위로이자 그녀를 위한 일이었다.
“발걸음이 느려지는 구나. 더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너무 늦어버릴지 모른다.”
힘이 들어 발걸음이 살짝 처지자 바로 지적하는 풍진혁.
풍진혁의 말에 위무악과 풍호혁은 다시 힘을 내었다.
자신들 때문에 남궁세가로 가는 발걸음이 늦어질 수는 없었다.
위무악과 풍호혁이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수련을 하고 있을 때 곽휘운은 그들보다 살짝 뒤에서 여유롭게 걸음을 옮겼다.
물론 그렇다고 곽휘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항시 주변을 경계하고, 주변에 있는 신풍대 인원들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내렸다.
“흐음…… 역시 중원의 땅은 좋네요.”
곽혜령은 연신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주위의 풍경 하나하나를 눈에 새기고 있었다.
그녀가 머무르던 신강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중원의 풍경은 훨씬 다채롭고 새로웠다.
“신강은 어때요? 궁금하네요.”
곽휘운은 문뜩 신강의 마교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다.
소문대로라면 항상 어둠이 깔려있고, 음습한 분위기 일테지만, 지금까지 만나본 마교인들의 모습을 보았을 때 절대로 그런 모습은 아닐 터였다.
“어차피 결혼하면 제 아버님께 인사드리러 갈 테니, 그때까지 궁금해도 참으세요.”
곽혜령은 분위기에 맞추어 소리내어 웃지는 않고, 입가에 살짝 미소만을 지으며 말했다.
“기대하죠.”
곽휘운은 이제 곽혜령의 저런 당돌한 발언에 적응이 되었기에 적당히 받아쳤다.
“곽소협”
그때 조용한 목소리로 곽휘운를 부르는 남옥영.
그녀는 혈교가 개파를 하고 남궁세가가 혈교에 의해 멸문했다는 소리를 듣고부터 무언가 의기소침해 지고, 불안해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저는 일행에서 빠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남옥영은 남궁소소와 함께 있는 것이 너무나 미안했다.
자신이 아무리 혈교에서 나왔다고는 해도 아버지가 아직 혈교에 몸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혈교가 남궁세가를 멸문 시켰다.
남옥영은 일행에서 나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남 소저.”
“네.”
진지하게 이름을 부르는 곽휘운.
그의 눈은 진지함을 가득 담고 있었다.
“남 소저는 저희가 싫으세요?”
“네? 아, 아니요…….”
“그럼 저희랑 계속 같이 가요. 아무도 남 소저를 탓하지 않아요.”
“하지만…….”
“남궁 소저에게 미안해서 그래요? 그럼 더욱 저희랑 있어야겠네요. 이번에 남소저가 멋지게 활약해서 남궁소저한테 사죄해야죠. 안 그래요?”
“네…….”
“그래요. 잘 생각했어요.”
남옥영에게 미소를 보여 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곽휘운.
고개를 푹 숙이고 대답하는 남옥영이 귀여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남옥영은 곽휘운의 손이 머리에 닿자, 금방이라도 머리가 폭발할 듯 빨개졌다.
이 모습을 위하윤도 곽혜령도 보고 있었다.
그녀들도 곽휘운의 말에 동의했다.
여기의 누구도 남옥영을 탓하지 않았다.
남궁소소도 아마 그녀를 탓하지는 않으리라……
곽휘운와 남옥영의 모습에 그녀들은 질투보다, 오히려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저런 모습이 바로 곽휘운가 매력적인 이유였다.
아마 곽휘운가 저렇게 하지 않았다면 그녀들은 곽휘운에게 정이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당신. 마음에 들기 시작했어요.”
곽휘운에게 쓱 다가와 속삭이듯 말하는 곽혜령.
곽혜령은 방금 곽휘운와 남옥영의 모습을 보고 곽휘운에게 조금 호감을 느꼈다.
“하하…… 감사하네요.”
“휘 오라버니. 너무 좋아하시는 것 같네요.”
“아가씨 설마요…….”
곽휘운와 남옥영, 위하윤, 곽혜령의 모습은 나머지 일행에게 약간이나마 미소를 짓게 해 주었다.
남궁소소도 오랜만에 아주 작게 미소를 뗬다.
아, 물론 두 사람은 미소를 지을 시간도 없었다.
바로 죽어라 수련하는 위무악과 풍호혁이었다.
“끄윽…….”
“컥.”
이제는 정말 죽어 가는 둘.
하지만 풍진혁은 그런 둘을 계속 재촉할 뿐이었다.
과연 이 둘이 안휘성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지가 의문인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