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100화>
독기공(毒氣功).
아직 사천당가도 완전히 다루지 못하는 영역이다.
그런데 그것을 혈교의 장로란 자가 다루고 있다.
그것도 꽤나 능숙하게 말이다.
“그럼 나도 밑천을 보여 주겠소.”
휘이이익.
독왕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빠져나오더니 팔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방금 전 교사가 보여 주었던 독을 배출하는 것과 비슷한 모습.
교사와 다른 점이라면 그냥 배출해내는 것에서 끝이 아니라, 그것을 자유롭게 다룬다는 점이다.
“최근에 조금 깨달은 것이 있어서 말이오.”
휘이이이익!!!
더욱 강렬하게 회전하며, 그대로 독왕의 검에 맴도는 검은 기운.
그렇다.
독왕도 독기공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교사보다 더욱 정교하게 말이다.
“하하하! 이거 재미있군요. 재미있어!”
서슬퍼런 웃음과 함께 교사의 두 눈이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더욱 진해지는 교사의 검은 연기.
치이이익.
교사 주변의 바닥이 독기운에 시커멓게 녹아가고 있었다.
그야말로 엄청난 독기.
“그만!”
또 다시 혈마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림맹주 때와 비슷한 시기에 비무를 중지시키는 혈마.
혈마의 목소리에 순식간에 교사가 모든 기운을 거두어들였다.
“이런, 제가 너무 흥분한 모양입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오.”
정중히 사과를 하는 듯했지만, 눈은 웃고 있었다.
아마 처음부터 이것을 노린 것일 터다.
이 비무로 혈교도 사천당가 못지않은 독공을 다룬다고 소문이 날 테니 말이다.
‘좋지 않군.’
물론 독왕이 더욱 정교한 독기공을 선보임으로 독왕이 건재함을 알렸지만, 사실상 그건 큰 의미가 없어졌다.
사람들은 독보적이었던 사천당가의 독에 대한 영역이 깨진 것에 주목할 테니 말이다.
아마 이래서 자신을 초대한 것일 터다.
* * *
혈마성.
왁자지껄 시끄럽던 장내가 지금은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했다.
다들 눈이 튀어나올 만큼 커져있고, 입에서 침이 흐를 정도로 벌리고 있었다.
그만큼 충격적인 눈앞의 광경.
장내의 몇몇은 자신의 볼을 꼬집거나, 눈을 비비고 있었다.
“저게, 혈마의 힘이란 말인가?”
“허…….”
놀라기는 상석에 있는 무림맹주도, 독왕도, 무명도 똑같았다.
아니, 무림의 그 누구를 데리고 와도 똑같이 놀랄 것이다.
지금 눈앞에 무림이천 중 일인인 소림사 지주가, 아직 한참 젊은 혈마에게 오른팔이 잘린 채로 서있었으니 말이다.
“이런.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힘을 조금 과하게 주었나 봅니다.”
죄송하다고 하지만 전혀 죄송하지 않은 표정의 혈마.
지금 이 상황은 분명 그가 의도한 상황임이 분명했다.
무림맹주, 독왕 다음으로 개파대전에 참여한 소림사의 지주.
사람들은 혈교의 어떤 자가 나올까 기대했다.
다들 새로운 혈교의 장로가 나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혈마가 직접 나섰다.
사람들은 혈교의 우두머리인 혈마의 실력이 어느 정도일까 궁금해 하며 저마다 촉각을 곤두세웠는데, 보란 듯이 단 일 검으로 소림사 지주의 오른 팔을 잘라 버렸다.
이제 사람들의 뇌리에 혈마의 무위가 단단히 박혔을 것이다.
“괜찮네. 팔 하나쯤이야. 아미타불.”
소림사 지주는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으로 혈도를 짚어 지혈을 했다.
그에게 팔 하나는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지금 소림사의 지주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생각은 방금 전 혈마가 보여 주었던 일 검이었다.
분명 막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대로 팔이 잘렸다.
‘신기하군.’
어떤 무공인지 궁금했다.
“다시 한번 가겠네.”
소림사 지주는 왼손으로 주먹을 뻗었다.
그리고 뒤에 나타나는 거대한 형상.
압도적인 기운을 내뿜는 그 모습은 그야말로 전율이었다.
“남은 한 쪽 팔도 잘리실지 모릅니다.”
“상관없네.”
혈마는 웃으면서 다시 검을 들었다.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는 듯한 무방비한 모습.
하지만 아무도 그것이 소림사 지주를 무시하는 모습이라 생각지 않았다.
방금 전 저 상태에서 소림사 지주의 팔을 잘랐으니 말이다.
- 백보신권.
소림사 지주의 권이 움직였다.
너무나 단순해 보이는 일 권.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위력은 엄청났다.
그 모습을 보며 혈마도 검을 움직였다.
- 절대혈원공(絶對血圓功).
그저 혈마의 검이 아주 단순하게 위에서 아래로 움직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혈마에게 다가오던 소림사 지주의 권기가 모두 잘려서 사라졌다.
픽!
그리고 천마의 왼쪽 어깨에서 피가 튀어 올랐다.
장내의 그 누구도 혈마가 어떻게 천마의 검기를 잘라내고, 어깨를 베었는지 보지 못했다.
단 한 명.
천마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이 비무대 전체가 자네의 공간이군 그래.”
“하하. 역시 천마십니다.”
천마는 아주 미세하지만, 혈마의 검이 움직이면서 그 검의 움직임을 따라 이 공간이 갈라지는 것을 느꼈다.
“제 무공은 천력과 합쳐져, 제 주변 공간 모두를 지배하는 것입니다.”
혈마는 당당히 자신의 무공을 밝혔다.
보통이라면 자신의 무공이 무엇인지 저렇게 알려주지 않는다.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것.
안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무공이 아니었다.
“어떠십니까? 더 하시겠습니까?”
“아니. 되었네. 비무로는 자네를 어떻게 할 수 없으니 말일세.”
비무로는?
사람들은 무슨 말일까 고민했지만, 몇몇은 그 말속에 든 속뜻을 알아채었다.
목숨을 건 생사결이라면, 혈마와 싸워 볼 만하다는 뜻이란 것을 말이다.
“하하. 그럼 이것으로 개파대전은 마치겠습니다. 성대한 연회가 준비되어 있으니, 부디 남아서 끝까지 즐겨 주시길.”
혈마는 말을 하고는 곧바로 몸을 돌려 장내를 떠났다.
사람들은 여러 부류로 나뉘어 삼삼오오 흩어졌고, 상석에 있던 이들은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깊은 고민에 잠겨 있었다.
이 짧은 개파대전으로 혈교는 많은 것을 얻었고, 무림맹과 천마신교는 많은 것을 잃었다.
“돌아가자.”
제일 먼저 발걸음을 돌린 것은 사천당가였다.
독왕과 무명은 더 이상 이곳에 남아있고 싶지 않았기에, 곧바로 사천당가로 향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무림맹과 천마신교의 마차도 출발했다.
사람들의 환호와 관심을 받으며 등장했던 처음과 달리, 혈마성을 떠나는 그들의 마차는 너무나 초라하고 쓸쓸해 보였다.
‘혈마성과 혈마.’
전 무림의 머릿속에 혈마성과 혈마의 이름이 각인되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수많은 사람들과 문파들의 생각이 복잡해졌다.
* * *
“이제 거의 다왔다.”
무뚝뚝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풍호혁의 말.
풍호혁의 옆에는 한명의 여인이 따라오고 있었는데, 그녀에게 하는 말 인 것 같았다.
“정말 경치가 좋군요.”
주위의 풍경을 하나하나 눈에 새기면서 걷는 여인.
흑단 같은 머리카락은 바람에 살랑살랑 흩날리고 있었고, 건강하게 그을린 피부는 묘한 색감을 풍기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아주 아름다운 얼굴은 아니었지만, 코에 있는 점이 참으로 인상적인, 묘한 매력을 내뿜는 얼굴이었다.
“난 모르겠다.”
“후훗. 소교주님은 오로지 무공밖에 모르시니까 그렇죠. 가끔씩 이렇게 주변 풍경을 바라보는 것도 좋다고요.”
“알았다.”
사근사근한 그녀의 말에도 여전히 별 감흥 없이 말하는 풍호혁.
그녀는 이런 풍호혁이 익숙한지 그저 미소로 넘겼다.
걷다보니 어느새 집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조금 더 걷자 지부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다.”
“이름이 예쁘네요.”
“들어가자.”
벌컥 지부 문을 열고 들어가는 풍호혁.
여인은 그런 풍호혁을 뒤따라 지부 안으로 들어갔다.
지부 안에는 지부에 머무르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흠.”
“오랜만이네요.”
가장 먼저 풍호혁을 반기는 곽휘운.
“그래, 오랜만이군.”
“어? 근데 뒤의 여자분은……? 정인……?”
“아니다.”
“호호. 안녕하세요. 마교에서 온 혜령이라 합니다.”
티 없이 밝게 인사하는 곽혜령.
누가보아도 호감이 갈 만한 모습이었다.
“오오, 반가워요. 저는 곽휘운라고 해요. 미인은 언제나 환영이에요.”
“어머? 당신이군요. 제 남편이 되실 분이?”
“예에?”
그녀의 말에 지부안의 모든 눈이 놀람을 담아 그녀를 바라보았다.
단 두 명 풍진혁과 풍호혁을 제외하고는.
* * *
곽혜령의 충격적인 발언.
모두가 놀랐지만 역시 가장 놀란 건 당사자인 곽휘운였다.
당소향과의 일도 제대로 끝맺지 못했는데, 새로운 문제가 나타났다.
당소향의 독수로부터 열심히 버티던 곽휘운은 지부 쪽에서부터 느껴지는 강력한 기파에 일단 싸움을 중지하고 지부으로 달려왔다.
당시 당소향과의 싸움은 백중지세 어느 한쪽이 큰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곽휘운가 정말로 죽일 마음을 먹고 싸운다면 이겼겠지만, 상대는 위하윤의 어머니이자 자신들 신풍대가 지켜야할 인물이었다.
흐지부지 끝난 싸움이었기에, 분명 당소향과 다시 싸울 확률이 다분했다.
아직 끝맺지 못한 당소향과의 일에 마교에서 온 새로운 문제인 곽혜령이 추가되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곽휘운은 혹시 자신이 잘못 알아 들었을까봐 다시 한 번 되물었다.
“당신이랑 결혼하러 왔다구요! 곽. 휘. 님.”
돌아온 대답은 역시나였다.
“하하…… 갑자기 결혼이라니…….”
곽휘운은 어색하게 웃으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풍진혁과 풍호혁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둘은 자신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저는 아직 결혼을 할 생각이 없어서요.”
“흐음…… 그럼 나중에는 할 생각이 있다는 거네요? 그때까지 기다릴게요.”
생긋 웃으면 말하는 곽혜령.
분명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미소였지만 곽휘운에게는 어쩐지 무서워보였다.
‘일났네……’
곽휘운의 등 뒤로 느껴지는 싸한 기운들.
곽휘운은 보지 않아도 누가 보내는지 알 것 같았다.
‘아가씨겠지……’
눈을 슬쩍 돌려 보니 위하윤의 안색은 더없이 차갑게 굳어 있었고, 남옥영의 안색도 왜인지 하얗게 변해있었다.
“그, 그런데 곽소저는 제가 어떤 놈인지 알고 결혼을……?”
“음…… 아주 강하고 매력 있으면서, 마음씨도 좋은 분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틀린가요?”
“커흠. 뭐, 맞는 이야기입니다만.”
“호호. 지금 보니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매력적이고 잘생기신 분이네요.”
“칭찬은 감사합니다만…… 저…… 그게…… 휴…….”
“왜 그러시나요? 제가 마음에 안 드시나요?”
“그게 아니라…….”
다시 한번 힐끗 위하윤을 바라보는 곽휘운.
곽혜령은 이 모습을 정확히 포착해내었다.
“저기 앉아계신 아름다운 여성분 때문이군요?”
“예? 예…….”
곽혜령은 굳은 얼굴을 하고 있는 위하윤을 향해 싱긋 웃음을 날려주었다.
위하윤도 어색하게 웃어주었다.
“영웅은 삼처사첩이라는데, 저 한 명쯤 늘어도 괜찮지 않나요?”
“하이고…… 그래도 갑자기 결혼하자니…… 방금 막 만난 사이인데 결혼은 좀…….”
“그러니까 기다린다니까요. 지금부터 알아 가면 되죠.”
강적이었다.
임무를 받아서 온 것인지, 정말 진심인지는 몰랐지만, 쉽게 뜻을 굽힐 것 같지는 않았다.
“휴…… 알아서 하세요. 어차피 제가 지금 말한다고 들어주실 것 같지도 않고…… 명령을 받으셨는지 목적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곽소저가 바보는 아닐 테고…… 곁에서 보시고 결정하세요.”
“후훗. 고마워요.”
웃으며 말하는 곽혜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