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운객잔 99화>
미남자는 자신의 검이 손에 잡혔다는 것에 놀라고, 자신에게 이렇게 다가올 때까지 몰랐다는 것에 놀랐다.
“보아하니, 극혁이의 핏줄인 것 같구나.”
“누구지?”
“그냥 마교 사람으로 알거라.”
“!!”
검을 거두어들인 미남자.
미남자는 가만히 풍진혁을 바라보았다.
분명 자신보다 위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것보다 너의 이름을 알고 싶구나.”
“풍학진. 그게 내 이름이다.”
“학진이라…… 이만 난동 피우고 돌아가는 것이 좋겠구나.”
“아직 곽휘운를 만나지 못했다.”
“이만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풍진혁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
글쎄 과연 세상에 이 기세를 받고도 멀쩡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산천초목이 벌벌 떨고, 바닥의 땅이 흔들릴 정도의 기세.
하지만 정작 기세를 방출하는 풍진혁의 표정은 평온하기만 했다.
“크으윽…….”
미남자, 아니 풍학진은 최대한 기세를 버텨보려 했으나 도저히 버티질 못하고 인상을 썼다.
“돌아가거라.”
“큭. 젠장.”
풍학진은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더 이상은 몸이 버티질 못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풍마전을 쉽게 꺾어 버렸다는 곽휘운를 만나 자신의 힘을 확인하고, 교내에서의 위치도 공고히 하려했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에 모든 것을 포기했다.
번천혈룡탄을 무사히 확보한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지금 이걸……?’
지금 번천혈룡탄을 폭발시킨다면 방금 전의 노인을 죽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풍학진은 포기했다.
이 번천혈룡탄은 조금 더 큰일에 사용될 것이었다.
‘우선은 대계가 먼저다.’
아마 지금쯤이면 대계가 실행되고 있을 터였다.
전 무림을 혼란의 도가니로 만들 대계가.
풍학진은 대계의 완성을 위해 어디 론가로 빠르게 달려갔다.
불길함을 물씬 풍기는 바람과 함께 말이다.
* * *
곽휘운와 당소향은 지부 쪽에서 느껴지는 큰 기의 파동을 느끼고 부랴부랴 지부로 달려왔다.
하지만 이미 상황은 끝나있었다.
위무악은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지부 앞에 주저앉아 있었고, 그 옆에는 남궁소소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지키고 있었다.
“무슨……?”
“아들!”
상황을 파악하려 노력하는 곽휘운와 재빨리 위무악에게 달려가는 당소향.
“조금 일이 있었다.”
“어르신.”
곽휘운에게 다가와 조금 전의 일을 설명해 주는 풍진혁.
곽휘운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무악이가 그렇게…….”
현 무림에 위무악을 일방적으로 이길 수 있는 또래가 있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자신이라 해도 그렇게까지 압도적으로 이기지는 못 할 것 같았다.
“저, 그리고 그 사람. 휘 오라버니를 찾았어요.”
“나를?”
곽휘운에게 다가와 풍학진이 찾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위하윤.
곽휘운를 찾을 만한 인물 중에 그 정도의 실력을 가진 이는 없었다.
위무악을 제압할 정도의 또래 실력자라면 모를 리가 없었다.
‘왜 나를 찾았지?’
어차피 그자를 만나지 않는 다면 풀리지 않을 의문.
‘잠깐…… 이름이 풍학진……? 으흠…… 아무래도…….’
자신을 찾았다는 인물 풍학진.
이름을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풍마진과 상당히 이름이 비슷했다.
아무래도 무언가 관계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복수를 하러 온 건가? 아니면 그저 정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
하지만 그에게 직접 물어보지 않는다면 알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곽휘운은 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들을 이쯤에서 접었다.
자신에게 볼일이 있다면 어차피 언젠가는 다시 만나게 될터였다.
지금은 위무악의 상태에 대해 걱정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남궁소소와 당소향이 계속해서 위무악을 부르고 있었지만, 위무악은 혼이 빠져나간 듯이 제자리에 계속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야! 위무악!”
곽휘운가 큰소리로 불러도 대답이 없는 위무악.
결국 곽휘운은 최후의 방법을 쓰기로 했다.
-퍽.
바로 주먹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곽휘운의 주먹에 한 대 맞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곽휘운를 바라보는 위무악.
“야, 너 기껏 한번 졌다고 이러는 거냐? 찌질하게?”
“야이, 쓰벌. 주먹으로 얼굴을 왜 쳐? 잘생긴 얼굴에 흠나면 소소가 얼마나 슬퍼하겠어?”
평소처럼 거침없이 말하는 위무악.
그제야 곽휘운와 나머지 사람들은 조금 안도했다.
“그리고 내가 기껏 졌다고 그렇게 퍼져있겠냐? 그냥 어떻게 했으면 그놈을 이길 수 있을까 잠깐 앉아서 고민 한 거다.”
물론 사실이 아니었다.
위무악은 풍학진에게 진후에 큰 충격을 받았다.
남궁소소가 자신의 앞을 가로막아 풍학진에게 죽을 뻔한 사실도 몰랐다.
그저 다른 이들이 자신을 걱정할까봐 하는 소리였다.
다른 이들도 이런 생각을 알고 있었기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고맙다.”
“뭐가? 나 말고 어르신한테 고마워해야지.”
“감사합니다.”
“허허, 되었다.”
그리고 이제야 위무악의 시야에 들어오는 사람들.
눈물 가득한 남궁소소의 얼굴과 놀람이 가득한 당소향의 얼굴이 보였다.
“어머니…… 소소…….”
“정말! 걱정 끼치지 말라구욧!”
“다시 돌아왔으니 되었다. 잘 헤쳐나가리라 믿는다. 아들.”
위무악의 품에 안기는 남궁소소와 미소로 아들을 믿는다고 하는 당소향.
훈훈한 광경이었다.
“그런데 아들. 그 남궁세가 아가씨는 너랑 어떤 사이지?”
“네? 아, 저…….”
곽휘운와 위하윤의 일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간과하고 지나친 다른 두 사람.
바로 위무악과 남궁소소였다.
워낙 일들이 갑작스럽고 빠르게 일어나 미처 소개할 시간도 없었다.
“부족하지만 무악 오라버니의 저, 정인인…… 남궁소소라 합니다.”
당소향은 위무악과 남궁소소가 연인 사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침체되어 있는 분위기를 바꿔보고자 한 질문이었다.
“우리 무악이 잘 부탁해요.”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어머님.”
“어머님? 호호 듣기 좋네요.”
살짝 밝아진 분위기.
하지만 아직까지 위무악의 눈빛은 침체되어 있었다.
“자자, 이러지 말고 일단 들어가서 마저 이야기 하죠.”
지부 안으로 사람들을 불러드리는 곽휘운.
장내에는 구경꾼들이 모여서 둘러싸고 있었기에, 사람들을 피해 조용히 이야기 할 수 있는 지부에서 이야기들을 정리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 어서 들어가자꾸나.”
풍진혁을 필두로 지부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정리해야 할 이야기가 많은 날이었다.
다시금 재개된 개파대전.
이번에는 녹의를 입은 이가 비무대 위로 올라섰다.
“저는 교의 장로 자리를 맡고 있는 교사라는 자입니다. 저는…… 사천당가의 가주님과 겨뤄보고 싶습니다.”
당가의 가주인 독왕은 눈앞의 상대를 차분히 바라보았다.
자신을 교사라 밝힌 혈교의 장로.
사천당가의 옷과 비슷한 색의 녹의를 입은 중년인.
약간 신경질적으로 찢어진 눈이 그를 굉장히 날카로운 인상으로 보이게끔 했다.
“이렇게 독왕을 가까이서 뵈니 영광입니다.”
“과분한 별호일 뿐이오.”
무림맹주와 싸웠던 광호와는 달리 예를 차리는 교사.
하지만 독왕은 그의 눈빛에서 싸늘함을 느꼈다.
정말 뱀과 같이 차가운 눈빛을 말이다.
“준비가 되시면 시작하겠습니다.”
“개의치 마시고 먼저 오시오.”
스릉. 스릉.
교사가 검 두 자루를 꺼내어 들었다.
쌍검.
쌍검술을 사용하는 무인은 온 무림을 다 뒤져도 몇 없을 정도로 흔치 않다.
“갑니다.”
스슥.
움직임 또한 유려하고 은밀하다.
미끄러지듯 독왕의 코앞에 당도한 교사.
그리고 그의 쌍검이 화려한 춤을 추기 시작했다.
휘이익. 휙. 휙.
독왕은 침착하게 피해 내고 있었지만, 점점 더 빨라지는 겸격에 여유가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언제 실력을 보여 주실 겁니까?”
“흠!”
독왕도 반격에 나섰다.
삼류귀원신공에 기반을 두어 발휘되는 ‘흑풍사검’.
아주 날카로운 검격이 연신 교사를 향해 쏟아졌다.
“허어!”
사람들은 독왕의 검법에 탄성을 내질렀다.
사실상 독왕이라는 별호는 무공 실력이 조금 떨어져도, 독이라는 특별한 것을 다루는 이에게 주는 상징적인 별호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독왕이 당연히 무공실력이 다른 무림구왕에 비해 한참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보니, 무공 실력 또한 다른 구왕에게 뒤처지지 않을 만큼 대단했다.
“이제야 재미있어집니다.”
밀리는 듯 보이는 교사지만, 표정에는 여유로움이 넘쳐흘렀다.
챙! 채챙!
교사의 쌍검이 각기 다른 변화를 내기 시작했다.
화려하게 움직이는 오른쪽 검과 은밀하게 움직이는 왼쪽 검.
그 움직임에 익숙해 질 때쯤 되면 또 서로 바뀌었다.
쉭. 쉭.
아주 미약한 파공성만 울리는 쾌속의 대결.
평범한 이들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른 공방이었다.
“자. 제 준비는 끝났습니다.”
“음?”
교사의 검이 순간 멈추었다.
독왕도 일순 검을 멈추었는데, 그의 안색이 조금 이상했다.
얼굴 군데군데 보이는 검은 반점.
틀림없는 중독 증상이었다.
“언제 하독을 했소?”
“하하. 곧 알게 되실 겁니다.”
독왕에게 독을 써서 중독 시켰다.
이건 무공으로 이긴 것보다 훨씬 더 큰 파장을 불러올 수 있는 일이었다.
“자, 패배를 시인하시면 해독제를 드리겠습니다.”
자신만만한 교사의 행동.
얼굴에는 자만감이 충만했다.
자신이 이겼다는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
“좋소이다. 다만…… 당신도 이게 필요할 것이오.”
휘익.
독왕이 교사에게 약병 하나를 건네었다.
누가 보아도 해독제가 들어 있는 병이었다.
“우웩!”
그리고 그와 동시에 교사가 검게 죽은피를 한 움큼 토해내었다.
“빨리 해독제를 마시지 않으면, 내장이 전부 녹아버릴 것이오.”
그렇다 교사도 어느 샌가 중독 된 것이다.
사람들은 과연 독왕이다 생각했다.
이로서 무승부라 생각했다.
그런데
“크흐흐흐.”
챙그랑.
즐거워 죽겠다는 웃음과 함께 교사가 독왕이 준 해독제를 바닥에 던져버렸다.
그대로 바닥에 스며들어 없어져 버리는 해독제.
“죽으려는 것이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다만, 이런 독쯤은 혼자서 해독할 수 있어서 말입니다.”
스으우우우.
교사의 몸에서 괴이한 소리와 함께, 검은 연기가 솟아올랐다.
휘이잉.
때마침 바람이 불어왔고, 그 검은 연기는 한쪽에 있는 관중들에게 날아갔다.
그리고
“우웨엑!!”
“쿠어억!”
검은 연기를 맞은 관중들이 방금 전 교사와 같이 피를 한 움큼씩 토해내기 시작했다.
“이런!”
독왕은 급히 움직여 중독 증상을 보이는 이들에게 해독제를 먹였다.
다행히 여분을 가지고 있었다.
모두에게 해독제를 먹인 후 다시금 교사 앞에 선 독왕.
“체외로 독을 배출하는 무공이라…….”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도 가능 하지요.”
교사의 검에서 방금 전과 같은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독기공. 그래서 내가 중독 당한 것이군.”
“정답입니다.”